경제정책 최우선 과제 일자리 정책, 막상 보니 속 빈 강정
더불어 잘사는 경제? 현실은 ‘빈자 소득 줄고 부자 소득 늘고’
취업자 수 급감 시기는 새 최저임금 발효 직후
‘최저임금 무리하게 올리고도 일자리 증가 주장’…경제학 논리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과 내수침체로 소규모 자영업자 폐업이 급증하고 있다. 7월 25일 오후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용품 거리에서 상인들이 중고 주방물품을 정리하고 있다. [뉴스1]
선언 다음에는 계획이 등장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3개월 만인 지난해 7월에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내놨다. 국민이 주인인 정부, 더불어 잘사는 경제,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등 다섯 개 축(원칙)으로 이뤄진 새 정부의 청사진이었다. 흔히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J노믹스’로 불린다. 사람마다 J노믹스를 달리 정의하겠지만 5개년 계획에 담긴 두 번째 축, 즉 ‘더불어 잘사는 경제’야말로 J노믹스의 핵심 가치라고 하는 게 정답일 것이다.
‘더불어 잘사는 경제’는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일자리경제, 활력이 넘치는 공정경제,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민생경제, 4차 산업혁명, 중소벤처가 주도하는 창업과 혁신성장 등 다섯 개 전략으로 짜여 있다. 이 중 J노믹스의 첫 번째 단추인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일자리경제’ 세부 과제를 살펴보자. 여기에는 좋은 일자리 창출, 사회서비스 공공인프라 구축과 일자리 창출, 성·연령별 맞춤형 일자리 지원 강화, 실직·은퇴에 대비하는 일자리 안전망 강화,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서비스산업 혁신, 가계부채 위험 해소 및 금융산업 구조 선진화 등의 과제가 담겨 있다. 일자리라는 단어만 6번 반복되는 셈. 따라서 J노믹스의 핵심이 일자리 창출이라는 건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10일 취임 당일 1호 행정명령으로 일자리위원회를 구성토록 하면서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인 지난해 6월 1일 이용섭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일자리 100일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마치 1993년 초 김영삼 정부 출범 때의 신경제 100일 계획을 연상케 했다.
YS정부 ‘신경제 100일’ 연상케 하는 ‘일자리 100일 계획’
국정 운영의 패러다임은 자연스레 일자리에 초점이 맞춰졌다. 신(新)성장동력 창출과 경제 체질 개선을 통해 이뤄야 할 목표도 ‘고용창출력 제고’였다. 이를 위해 공공부문은 일자리 창출의 마중물 역할을 수행코자 했다. 문 대통령과 이 부위원장은 경제·사회 시스템을 고용 친화적으로 전환해 ‘성장-일자리-분배’의 선순환 구조를 복원하는 데 모든 행정 역량을 집중하려 했다.그로부터 4개월 후인 2017년 10월. 좀 더 완성된 형태의 정책 구상이 ‘일자리 5년 로드맵’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이번에는 ‘혁신’이라는 단어에도 강조점이 찍혔다. 기업 경쟁력과 노동자 삶의 질, 일자리 증가가 서로 상승작용을 하도록 혁신성장과 일자리 정책을 조화시킨다는 복안이었다.
이때 5대 분야 10대 중점과제가 공개됐다. 여기에는 공공부문 81만 개 일자리 창출과 민간부문 혁신창업, 산업경쟁력 강화, 신산업과 신서비스 육성, 사회적 경제 활성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또 비정규직 남용과 차별을 막고 근로 여건을 개선하면서 청년·여성·신중년 등에게 맞춤형 일자리를 지원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두 달 뒤 나온 ‘2018년 경제정책 방향’에도 일자리와 소득주도성장은 맨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일자리 로드맵에 비해 빈약했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다진다면서 내놓은 정책이 외국인이나 유턴기업(중국 등 해외로 진출했다가 국내로 복귀하는 기업)의 국내투자유치를 지원하고 고용을 늘릴 프로젝트를 발굴하기 위해 정부합동지원반을 구성하겠다는 내용 정도였다. 청년을 위해 정부가 직접 일자리 사업을 벌이는 것 말고는 눈에 띄는 일자리 정책이 없었던 셈이다.
2018년 3월에 나온 청년일자리대책은 또 어떤가. 청년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기업에 그 규모에 따라 최장 3년간 2700만 원을 최다 3명에게 지원해준다는 정책 말고는 별다른 게 없었다. 그 밖에는 교통비 지원이나 목돈마련 지원 대책 정도에 그쳤다. 한 마디로 정부 출범 후 연이어 나온 일자리 대책은 공공부문 81만 개 일자리 창출을 제외하면 구호에 그치거나 막연하거나 혹은 미흡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그간 내놓은 일자리 정책을 이토록 장황하게 늘어놓은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일자리 창출이야말로 문재인 정부가 J노믹스를 통해 이룩하고자 한 마스터플랜이기 때문이다. 과연 이 플랜은 지금 얼마나 효과를 발휘하고 있을까. 가시적 성과는 있을까.
효과도 결실도 보지 못한 ‘더불어 경제’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왼쪽 네 번째)과 회원들이 8월 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최저임금 재심의 거부 규탄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이 자리에서 “소상공인들의 분노를 모아 오는 8월 29일 ‘전국 소상공인 총궐기’에 나서는 등 직접 행동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뉴스1]
이미 발표됐다시피 지난 1년(2017년 1분기~2018년 1분기) 동안 최저 1분위와 2분위 계층의 가계총소득(월)은 오히려 줄었다. 1분위 가계소득은 월평균 139만8000원에서 128만6000원으로 11만2000원(-8.0%) 감소했다. 2분위도 월평균 283만6000원에서 272만2000원으로 11만4000원(-4.0%) 줄었다. 반면 상위 3분위 계층 가계소득은 예외 없이 늘었다. 특히 최상위 계층인 5분위 가계소득은 월평균 929만 원에서 1015만2000원으로 86만2000원(9.3%)이 증가했다. 적어도 지난 1년간 ‘더불어 잘사는 경제’는 효과나 결실을 보지 못했다는 말이다.
일자리 성적표도 마찬가지다. 2018년 6월 취업자(일자리)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만6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취업자 증가 숫자는 올해 2월부터 연속 5개월째 10만 명에 머물고 있다. 이는 2008∼2009년 금융위기 이래로 10여 년 만에 최악의 일자리 성적이다. 2012년 불경기(2.9% 성장) 때 취업자 증가 숫자(42만8000명)보다 적고 28개월 연속 수출이 감소하던 2015∼2016년 기록한 28만 명, 23만 명보다도 형편없는 수치다. 일자리를 J노믹스의 최우선으로 내세운 정부로서는 민망하기 짝이 없는 결과다.
부진한 일자리 성적표 원인은 최저임금 상승
많은 학자는 부진한 소득 실적과 일자리 실적을 문재인 정부의 정책, 특히 반기업적 정책 기조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서 찾는다. 지난해 내내 전년대비 25만 명 증가하던 취업자가 올해 2월부터 급격히 떨어져 10만 명 선에 그쳤다. 올해 기준 16.4%가 오른 최저임금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근거는 무엇일까.첫째, 취업자 수가 급격히 감소한 시기가 새 최저임금이 발효된 직후인 올해 2월부터라는 점이다. 사실 1월 취업자 증가 수(33만5000명)도 매우 이례적인 농림어업 취업자 증가(9만4000명)와 비정상적으로 제조업 취업자가 급증(10만6000명)한 걸 제외하면 10만 명 선에 머물렀을 것이다. 둘째, 최저임금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으로 관측되는 50세 이상 취업자 증가 폭이 올해 2월을 전후해 급격히 떨어졌다. 2017년 내내 50세 이상 취업자는 전년 대비 40만 명 내외 증가했다. 그러나 올해 2월부터는 3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최저임금 인상은 영업시간 단축이나 근로자의 근무시간 단축과도 맞물려 있다. 이렇게 되면 자영업자 매출은 감소하고 취업자의 소득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음식점업·주점업 등 노동비용이 큰 업종의 매출은 6년 새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발표된 통계청 서비스업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음식점업과 주점업의 올 상반기 소매판매액지수는 95.9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 낮아졌다. 상반기 낙폭으로는 지난 2012년(-2.7%) 이후 가장 큰 폭이다. 인건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영업시간을 줄였고, 이에 따라 피고용인의 근무시간도 줄어들었음을 강력히 암시하는 대목이다.
최저임금 상승 탓 아니라는 반론은 온당치 않아
그러나 취업자 증가 폭은 생산가능인구 증가 폭보다 현저히 감소했다. 생산가능인구의 증가 폭은 2014년 초 50만 명에서 2018년 2분기 24만 명으로 26만 명이나 줄었다. 연평균 6만5000명 쪼그라든 셈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 취업자 증가 폭은 60여만 명에서 10여만 명으로 50여만 명이나 감소했다. 한 해 평균 12만5000명이 준 것이다. 취업자 증가 폭의 감소가 인구증가 폭의 감소보다 두 배 정도 크다. 재차 거론하면, 인상된 최저임금이 적용된 2018년에 취업자 증가 수가 현저히 떨어졌다. 2017년까지만 해도 매년 25만 명 이상 이던 취업자 증가 폭이 올해 갑작스레 10만 명대로 주저앉았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학자는 이를 두고 최저임금 인상의 결과라고 보지만 유독 정부는 이를 인정하기 꺼린다.
두 번째 나오는 반론의 근거는 기저효과다. 2017년 상반기에 취업자가 많이 증가하다 보니 2018년 상반기에는 증가 폭이 줄었다는 논리다. 2017년 1, 2분기 취업자 증가 수는 35만 명이다. 이는 예년의 25만 명에 비해 비교적 큰 폭으로 증가한 게 맞다. 그런데 2018년 1, 2분기 취업자 증가가 기저효과가 없던 2015년 1, 2분기의 취업자 증가(20만 명)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점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2018년 상반기 경제성장률은 2.9%로 2.5%이던 2015년 상반기보다 더 높았다. 2018년 상반기 제조업 성장률은 2.5%로 2015년 1.0%의 두 배도 넘는다. 그럼에도 취업자 증가는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건가.
세 번째 반론의 근거는 2018년 상반기의 제조업 부진에 기인한다. 2018년 상반기 제조업 성장률은 2.5%이므로 2017년 상반기 4.2%보다 낮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2017년 상반기에는 취업자가 7만 명 줄었지만 2018년 상반기 제조업 취업자는 평균 2만3000명 줄었다. 2018년 상반기 제조업 성장률이 2017년 상반기보다 더 낮은데 고용은 덜 줄었으니 제조업 부진이 취업 부진의 원인이라는 말은 맞지 않는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고용 부진의 원인을 다른 데로 돌리는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고용의 양도 나쁘지 않을뿐더러 고용의 질이 ‘확연히 개선’됐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고용의 질을 상용직 취업자 숫자나 비율을 가지고 이야기한다. 상용직 취업자의 비율이 2018년 6월 전체 취업자의 50.7%로 역대 최고치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이 상용직의 비율은 2002년 이후 16년 동안 한 해도 예외 없이 상승했다. 카드대란으로 경기가 특별히 나빴던 때(2003~2004년)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2008~2009년)도 상용직 취업자 비율은 올랐다.
특히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는 더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 예컨대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상용직 취업자 비율은 매년 평균 1.62%포인트 올랐고, 박근혜 정부 때에는 매년 1.1%포인트 상승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는 1% 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그러니 최근 상용직 취업자 비율이 오른 게 정부의 공적이라고 주장하는 건 온당치 않다.
게다가 상용직 취업자는 총 1373만 명으로 전체 취업자 2700만 명의 절반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반은 자영업자이거나 임시직이거나 일용직인데, 이들은 직업 속성상 대부분 상용직이 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상용직 취업자가 4만 명 늘어나는 동안 자영업자와 임시직, 일용직 일자리는 3만 개가 사라졌다.
이들이 모두 상용직으로 옮겨간 것은 아닐 터인데 일자리를 잃은 자영업자와 임시직, 일용직 근로자들의 생계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취업자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 상용직의 비율을 가지고 노동정책을 평가한다면 일자리와 생계를 잃은 700만 자영업자와 650만 임시직, 일용직 근로자의 생계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경제학의 대원칙 중 하나가 가격이 오르면 수요량이 준다는 법칙이다. 소위 수요의 법칙이다. 최저임금을 무리하게 올리고도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강변한다면 이미 경제학이 아니다. 무리한 최저임금으로 J노믹스의 기반이 흔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