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호

이슈 추적

팔이식 수술 국내 1호 손진욱 씨의 1년 6개월

“의수 대신 진짜 손, 새로운 삶 얻었어요”

  •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8-09-05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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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부터 팔이식 수술 합법화

    • 남의 팔 붙이고 살고 싶을까? “절단 환자에게는 필생의 꿈”

    • 심장, 간이식보다 어려운 ‘복합조직 이식’의 현재

    • 1억 원 넘는 수술비 및 재활치료비 장애물

    • 수술 대기자 7000명, 장기 기증자는 0명

    국내 최초 팔이식 수술 1주년을 기념해 2월 2일 대구 W병원에서 열린 경과 설명회 현장. 우상현 원장(오른쪽)이 손진욱 씨의 팔과 손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국내 최초 팔이식 수술 1주년을 기념해 2월 2일 대구 W병원에서 열린 경과 설명회 현장. 우상현 원장(오른쪽)이 손진욱 씨의 팔과 손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실례가 안 된다면 악수를 청해도 될까요?” 

    “네, 그럼요. 그런데 지금 손에 땀이 많이 나서…. 잠시만요.” 

    손진욱(36) 씨가 왼손을 바지춤에 슥슥 닦은 뒤 곧장 내밀었다. 마주 잡자 가볍게 쥐어오는 악력이 느껴졌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8월 9일, 대구에서의 일이다.

    국내 최초로 팔이식 수술을 받은 손진욱 씨가 수술 5개월 만인 2017년 7월 21일 삼성 라이온즈와 LG 트윈스 경기에서 시구하고 있다. 팔 절단 사고 전 사회인 야구 선수로 활동하던 손씨는 이날 포수 미트에 공을 정확히 꽂아 넣었다. [뉴스1]

    국내 최초로 팔이식 수술을 받은 손진욱 씨가 수술 5개월 만인 2017년 7월 21일 삼성 라이온즈와 LG 트윈스 경기에서 시구하고 있다. 팔 절단 사고 전 사회인 야구 선수로 활동하던 손씨는 이날 포수 미트에 공을 정확히 꽂아 넣었다. [뉴스1]

    평범한 악수 장면을 길게 묘사한 건, 어쩌면 바로 이 순간을 위해 그날 대구까지 달려갔기 때문이다. 손씨는 지난해 2월 우리나라 최초로 팔이식 수술을 받았다. 이날 악수를 나눈 그의 왼손은 40대 뇌사자가 공여한 것이다. 

    손씨는 2015년 불의의 사고로 왼팔 손목 아랫부분을 절단했다. 이후 1년 넘게 의수를 사용했다. 딱딱한 의료기구가 달려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지금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손이 있다. 손씨는 그 사실이 요즘도 종종 꿈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뼈, 피부, 근육, 신경, 혈관

    팔이식 수술을 받은 왼손으로 기자의 손을 단단하게 마주 잡은 손진욱 씨(오른쪽). 그의 왼팔은 지금 과거의 힘을 70% 정도 회복했다. [사진제공·W병원]

    팔이식 수술을 받은 왼손으로 기자의 손을 단단하게 마주 잡은 손진욱 씨(오른쪽). 그의 왼팔은 지금 과거의 힘을 70% 정도 회복했다. [사진제공·W병원]

    물론 불현듯 옛일이 기억날 때만 떠오르는 감상이다. 수술 후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 손씨는 왼손으로 악수하고, 땀 닦고, 운전하고, 걸레도 짠다. 그의 왼팔에 남아 있던 근육과 힘줄, 신경과 혈관들이 이식받은 손의 조직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이제는 더울 때 땀이 나고, 추운 날엔 손끝이 얼듯 느껴진다고 했다. 감각이 살아난 것이다. 악수하는 힘이 다소 약하게 느껴져 “아직 손에 힘을 주기는 어려우신가 봐요”라고 하자 손씨는 “아니요, 세게 잡으면 아프실까 봐”라고 말하며 수줍게 웃었다. 

    그의 수술 성공을 계기로 우리나라 법이 바뀌었다.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 시행령’(장기이식법)에 이식 대상 장기로 ‘손 및 팔’이 추가된 것이다. 기존에는 신장, 간장, 췌장, 심장, 폐, 골수, 안구와 췌도(膵島), 소장, 위장, 십이지장, 대장, 비장 등만 ‘합법적으로’ 이식할 수 있었다. ‘국내 1호’ 팔이식 수혜자 손씨는 사실상 ‘무법(無法)’ 상태에서 수술받았다. 그러나 8월 9일 ‘손·팔’을 더한 새로운 법령이 시행됐고, 이제는 상지(손·팔)절단 장애인도 원할 경우 손씨처럼 새로운 팔을 얻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6년 말 현재 우리나라 상지절단 장애인은 2급 6504명, 1급 517명이다. 손씨 수술을 집도한 우상현 대구 W병원 원장(성형외과 전문의)은 “우리 병원에 팔이식 수술 희망자로 등록한 이만 400명이 넘을 만큼 많은 이가 이 수술을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단 법이 개정됐다고 이들 앞에 장애물이 없는 건 아니다. 먼저 살펴볼 것이 ‘수술의 어려움’이다. 1954년 미국 조지프 머리 박사는 일란성 쌍둥이 중 한 명의 신장을 다른 한 명에게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현대 의학사 최초의 장기이식 수술 성공 사례다. 그는 이 공로로 1990년 노벨의학상을 받았다. 

    머리 박사의 성공 이후 장기이식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했다. 인체가 다른 사람 장기를 이물질로 인식해 발생하는 면역거부반응을 다스리는 면역억제제가 속속 개발됐고, 신장뿐 아니라 간 심장 폐 등 다양한 장기가 이식 대상이 됐다. 

    그러나 팔이식은 다른 얘기였다. 1964년 남미 의료진이 팔이식 수술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뒤 오랫동안 관련 기술에 진전이 없었다. 우 원장에 따르면 신장이나 폐, 심장 등은 한 종류의 세포로 이뤄진 단일 조직이다. 반면 팔에는 피부, 근육, 신경, 혈관, 뼈, 손톱 등이 뒤섞여 있다. 특히 피부와 근육은 인체에서 면역거부반응이 강한 기관으로 꼽힌다. 의사들은 “이러한 복합 조직을 이식할 경우 수혜자의 면역거부반응을 진정시키기 힘들 것”으로 봤다. “면역억제제를 과도하게 투여했다가 정상적 면역 기능까지 훼손해 수혜자가 가벼운 질환에도 목숨을 잃는 상황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 이 상식을 깨뜨리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앤드루 리 박사와 하버드대 병원 공동연구팀의 실험 결과, 일반 장기를 이식할 때와 비슷한 수준의 면역억제제만 투여해도 복합 조직 이식이 가능했다. 이후 다시 팔이식 수술 시도가 이어졌고, 1999년 1월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대 클라이넛 수부외과센터 의료진이 사상 최초로 팔이식 수술에 성공했다. 당시 뇌사자의 왼팔을 이식받은 매튜 스콧은 현재까지 팔을 문제없이 사용하며 살고 있다.

    핑크색 기적

    지난해 2월 2일 대구 영남대의료원에서 진행된 손진욱 씨 팔이식 수술 현장(왼쪽). 수술 이후 병실에서 의료진이 손씨(왼쪽)의 팔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제공·W병원]

    지난해 2월 2일 대구 영남대의료원에서 진행된 손진욱 씨 팔이식 수술 현장(왼쪽). 수술 이후 병실에서 의료진이 손씨(왼쪽)의 팔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제공·W병원]

    반면 그로부터 불과 1년 전인 1998년 프랑스에서 팔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는 수술 후 채 1년이 되기 전 이식 부위를 다시 절단했다고 한다. 우 원장은 그 원인을 면역거부반응과 ‘팔이식 수술의 어려움’에서 찾았다. 그에 따르면 심장이식 수술은 공여자의 심장 동맥과 정맥을 수혜자의 동맥 정맥에 각각 연결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와 비교할 때 팔이식은 난도가 훨씬 높다. 공여자의 손·팔이 수혜자 몸에서 제 기능을 하게 하려면 근육 힘줄과 신경, 동맥, 정맥을 정확히 제자리에 연결해야 한다. 우 원장은 “사람이 머릿속으로 ‘엄지손가락을 들고 싶다’고 생각할 때 진짜 엄지손가락이 움직이도록 만드는 게 생각보다 꽤 어려운 일이다. 숙련된 의료진이 아니면 팔이식 수술은 엄두도 내지 못 한다”고 밝혔다. 

    한국 최초의 팔이식 수술도 결코 쉽지 않았다. 우 원장은 “지난해 2월 2일 오후 4시 손씨 팔이식 수술을 시작해 이튿날 오전 2시까지 꼬박 수술실에 있었다. W병원과 영남대의료원 소속 의사 25명이 참여했다. 미세접합술이 4~5시간 걸리는 것과 비교하면 2배 이상 걸린 것”이라고 소개했다. 의료진은 이날 공여자의 팔과 손씨 팔에 있던 뼈를 각각 연결해 단단히 고정한 뒤 동맥부터 이어 붙였다. 가능한 한 피가 빨리 흐르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윽고 두 사람의 혈관이 연결되자 냉동 상태여서 새파랗던 기증자의 팔에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우 원장은 “그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말 그대로 ‘핑크 미라클’이었다”고 말했다. 피가 흘러 들어간 팔이 기적처럼 핑크색으로 살아났다는 의미에서다. 이후 의료진은 서로 다른 두 팔의 힘줄과 근육을 봉합하고, 잔신경 하나하나까지 찾아내 단단히 이어 붙였다. 수술용 현미경을 사용해야 할 만큼 섬세한 작업이었다. 

    “많은 의사가 오직 손씨 팔만 들여다보며 수술에 집중했어요. 그사이 밖에서 무슨 난리가 벌어지고 있는지 상상도 못한 채로요.” 

    우 원장이 미소를 띠며 한 말이다. 알고 보니 손씨가 팔이식 수술을 받는 사이, 수술실 밖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우 원장이 ‘불법 장기이식 수술’을 하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과 보건복지부 등이 조사에 나선 것이다. 

    “개정 전 장기이식법에 팔 관련 규정이 없는 게 문제였죠. 손씨한테 팔을 준 공여자는 사망하면서 팔 외에도 간, 신장, 폐, 관절, 골수 등 많은 장기를 기증했어요. 그래서 제가 공여자의 팔을 채취할 때 현장에는 다른 부위를 받으려는 전국 각지 병원 의료진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중 누군가가 ‘팔이식 수술은 불법 아니냐’며 신고한 겁니다.” 

    우 원장의 말이다. 그는 수술 전 사망자와 유족 동의를 모두 받았고, 영남대의료원 기관윤리심의위원회(IRB) 심의 절차도 거쳤다. 하지만 그렇다고 곤란한 문제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고 한다. 

    “당시 팔이식 수술이 ‘무법’보다 ‘불법’ 쪽에 가까웠던 건가요?” 

    우 원장에게 물었다. 

    “글쎄요. 법은 없었고, 그 상태에서 수술하는 걸 어떻게 볼지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죠. 저는 기본적으로 관련 규정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봐요. 의료기술이 계속 발전하고 장기이식을 원하는 환자는 많습니다. 그런데 법령에 특정 장기 종류를 명시해놓고 그것만 이식을 허용하는 게 바람직하냐는 거죠.” 

    우 원장의 대답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팔이식 수술을 집도하기로 결심한 그는 이 ‘규제’를 깨뜨리고자 안간힘을 썼다고 한다. 잠시 우 원장의 인생 행로에 대해 들었다.

    네팔의 팔 절단 장애인

    영남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 영남대의료원 성형외과 레지던트 시절 처음 ‘재건수술’ 분야에 관심을 뒀다. 당시 주임교수이던 설정현 전 영남대의료원장이 “성형외과 의사에게 재건성형을 잘하는 것만큼 보람된 일도 없다”고 일깨워준 덕분이다. 이후 잘린 손가락을 붙이는 수지접합 등 ‘수부(手部)외과’ 수술에 전념했다. 1994년 영남대 의대 교수로 임용된 뒤에도 ‘돈 되는’ 미용성형은 외면했다. 대신 미세재건수술 분야에서 국내 권위자가 됐다. 

    우 원장이 ‘팔이식’에 관심을 갖게 된 건 1997년, 네팔에 의료봉사를 갔다가 양팔 절단 장애인을 만나고부터다. 그는 우 원장에게 “한국에서 손 수술 전문가가 온다는 얘기를 듣고 일주일을 걸어왔다. 나를 치료해줄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우 원장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그때 의사로서 무력감을 느꼈다. ‘만약 뇌사자의 팔을 이식해줄 수 있다면 한 사람 인생이 크게 달라질 텐데’ 하는 생각을 그때 처음 한 것 같다”고 밝혔다. 

    미국 클라이넛 수부외과센터가 세계 최초로 팔이식 수술에 성공한 1999년, 우 원장은 바로 그 병원으로 연수를 떠나 임상강사(clinical fellow)로 일했다. 현장에서 팔이식 수혜자 매튜 스콧의 치료 및 재활 과정을 생생히 지켜보며 우 원장은 “나 또한 반드시 해내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귀국 직후인 2001년 대한수부재건외과학회지에 ‘복합조직 이식술의 개념과 최근 경향’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본격 연구를 시작했고, 동물을 대상으로 다리 이식수술을 실험해보기도 했다. 

    1999년 국내 제정된 장기이식법은 신장, 간장, 췌장, 심장, 폐, 골수, 각막 등의 이식만을 규정했다. 그러나 우 원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의학적으로 보면 팔이식 수술도 가능하다. 공여자와 희망자만 있으면 이 수술을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수부외과 수술에 전념하고자 영남대를 퇴임하고 전문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더욱 적극적으로 관련 여건 조성에 뛰어들었다. 일단 복지부 문을 두드렸다. 팔이식 수술이 2010년 복지부의 신의료기술 승인을 받은 건 여러 해에 걸친 그의 노력 덕분이라고 한다. 우 원장은 “정부가 팔이식 수술의 필요성과 안전성을 이해하게 하려고 애썼다. 온갖 논문과 데이터를 제출하고 설명한 끝에 마침내 복지부 승인을 받았을 때 얼마나 기뻤던지, 생각해보면 전문의시험에 합격했을 때보다 그때가 더 좋았던 것 같다”고 했다. 

    이후에도 우 원장의 노력은 멈추지 않았다. 2011년에는 영남대의료원과 팔이식 수술 공동추진에 따른 업무협력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장기이식법상 이식 수술은 복지부가 지정한 장기이식 의료기관에서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6년에는 대구시가 팔이식 수술을 신의료기술로 선정했다. 대구시는 팔이식 수술비용도 5000만 원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팔이식에 대한 희망을 갖고 W병원 문을 두드리는 사람 수는 점점 많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장기이식법에는 ‘손·팔’ 이 포함되지 않았고, 수술은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계속 시간이 흘러갔다.

    “다시 손을 가질 수 있다면”

    2015년 손진욱 씨가 팔 절단 사고를 당했을 때도 국내법상 팔이식 수술은 불가능한 상태였다. 사실 손씨는 당시 세상에 그런 수술이 있는지도 모르긴 했다. 그가 일하던 경남 김해의 한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프레스 기계 안에 손이 빨려 들어갔을 때, 그리고 구급차에 실려 도착한 근처 병원에서 ‘팔을 자를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손씨는 자기에게 벌어진 일이 현실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한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의 왼팔 아랫부분은 이미 생경하게 잘려나간 뒤였다. 사회인야구 동호인으로 활동할 만큼 스포츠를 좋아하던 서른세 살 청년은 깊은 절망에 빠졌다. 몇 달간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지냈고, 무시로 울었다. 그러다 W병원에서 팔이식 수술을 추진 중이라는 걸 알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신청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손씨는 “사고 후 얼마 지나 의수를 했고, 다시 회사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 반쯤 지났을 때 W병원에서 ‘팔이식 수술을 받을 생각이 있느냐’는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상상도 못한 일이라 잠시 ‘이게 꿈인가’ 싶었어요. 팔 기증자가 나타났는데 혈액형과 팔 두께 등을 볼 때 제가 이식받기 적합하다고 하더군요. 생각해보고 연락드리겠다고 하고 일단 전화를 끊었죠.” 

    손씨 얘기다. 여전히 팔이식 관련 법률은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우 원장은 2010년 신의료기술 승인을 받고, 이듬해 영남대와 MOU를 맺은 뒤, 2016년 대구시 지원까지 약속받고는 ‘팔 기증자만 나타나면 어떻게든 수술을 시도하겠다’고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고 한다. 복지부가 ‘안전하고 유효한 신의료기술’이라고 확인하고, 관할 지방자치단체 또한 적극적 지지 의사를 밝혔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40대 뇌사자 유족이 팔 기증 의사를 밝혔다는 걸 알게 됐을 때, 그는 곧장 이식수술 희망자에게 연락해 상황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손씨가 결정할 차례였다. 우 원장에 따르면 당시 W병원에서는 손씨와 비슷한 조건을 가진 이식 수술 희망자 몇 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모두 ‘이번에는 안 할랍니다’라며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그들의 바람은 다음 순서로 이식 수술을 받는 것. 만에 하나 면역거부반응 등 부작용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팔이식 수술을 해본 적 없는 우 원장이 아무 문제없이 전 과정을 해낼 수 있는지 확인하고 수술대에 눕고 싶었던 것이다. 

    손씨 또한 망설임이 없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의 부모조차 ‘지금처럼 그냥 살면 안 되겠나’ 하며 수술을 말렸을 정도다. 그러나 그는 결국 수술을 선택했다. 다시 손을 갖고 싶은 마음이 두려움을 이긴 것이다. 손씨는 2017년 2월 1일 우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선생님을 한번 믿어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10시간에 이르는 수술 끝에 새로운 삶을 얻었다. 

    “다행히 수술이 잘 끝났어요. 이후 손씨가 회복하는 몇 주 동안 한순간도 긴장을 풀지 못했죠. 오랫동안 꿈꾸며 준비한 수술이니 부작용 없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고, 만에 하나라도 손씨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몰라 두렵기도 했습니다.” 

    우 원장 얘기다. 수술 직후엔 우 원장이 당장 구속된다 해도 이상할 게 없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손씨가 수술 후 22일 만에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고, 그의 손이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게 확인되면서 우 원장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장기기증법 개정 작업이 본격화한 것도 이때부터다. 

    수술 5개월 만에 팔 기능을 상당 부분 회복해 프로야구 시구까지 해낸 손씨 사례는 “우리나라도 이제 장기이식을 폭넓게 허용할 때가 됐다”는 여론을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손씨는 “수술 후 한 달 정도는 그저 얼떨떨하기만 했다. 수술 부위가 퉁퉁 부어 있어서 내 팔이라는 실감도 잘 안 났다. 그런데 석 달쯤 지나고부터 부기가 빠지면서 손 움직임이 한결 수월해졌고, 5개월이 지났을 때는 야구공을 포수 미트에 정확히 꽂아 넣을 정도가 됐다”고 밝혔다. 

    “내 손으로 물건을 집고, 단추를 잠그고, 청소 후 걸레를 짜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수술 후 일상적인 일을 할 때마다 새삼 실감하곤 합니다.” 

    손씨 얘기다. 그의 손에 다시 땀이 나기 시작한 건 수술 후 9~10개월이 지나고부터라고 한다. 지금은 예전 팔 힘의 70% 정도가 돌아왔다고 느낄 만큼 상태가 더 좋아졌다. 물론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하고, 재활운동도 꾸준히 해야 하는 등 남은 과제도 있다. 손씨는 “내가 팔을 많이 사용해 조직이 더 활성화하면 기능이 더 많이 회복될 것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재활에 몰두하고 있다”며 “내가 느끼는 팔이식 수술의 만족도는 100%”라고 답했다. “지금도 많은 분이 간절히 팔이식을 바라실 텐데, 법령 개정을 계기로 더 많은 분이 수술 기회를 갖게 되면 좋겠다”고도 덧붙였다.

    “그 돈은 누가 낼낀데요”

    팔이식 수술 1주년인 2월 2일 우상현 원장(오른쪽)이 손진욱 씨의 수술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뉴스1]

    팔이식 수술 1주년인 2월 2일 우상현 원장(오른쪽)이 손진욱 씨의 수술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뉴스1]

    실제로 손씨 사례는 많은 상지(손·팔)절단 장애인에게 희망의 근거다. 우리나라 의료기술이 팔이식 수술을 무리 없이 해낼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게 입증됐기 때문이다. 최근 관련 법령이 개정되면서 법적으로도 ‘제2의 손진욱’ 탄생이 가능해졌다. 이제는 손 또는 팔 절단 부위 치료를 받고 6개월이 지난 사람 중 장애진단서를 받은 이는, 손·팔 장기이식 관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견서를 받은 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시스템에 손·팔 이식대기자로 등록할 수 있다. 정신과 소견서가 필요한 건, 전문의를 통해 이식 후 일어날 수 있는 정신적 문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해하는 절차가 필요해서다. 예를 들어 수술 후 이식 부위가 눈에 보이고 양손 모양이 서로 다른 데 대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이를 미리 알리는 것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건강보험 급여다. 팔이식 수술이 실시된 지 1년 반이 지났고, 관련 법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지도 3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관련 의료행위는 건강보험 급여 대상이 아니다. 이 때문에 수술비와 투약·치료비를 전액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 원장은 “손씨의 경우 지금도 일주일에 3~4회씩 재활치료를 받는다. 수술비와 매일 먹는 면역억제제 값, 물리치료비 등을 더하면 의료비 총액이 1억5000만 원 정도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손씨는 ‘우리나라 1호 팔이식 환자’라 이 비용을 대구시와 W병원, 영남대의료원 등이 나눠서 부담했다. 그러나 다음 팔이식 희망자에게는 이런 혜택이 주어질 리 없다. 우 원장은 “팔절단 장애인 대부분은 산업재해 피해자 등 상대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어려움 없이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빨리 결론을 내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팔 기증에 대해서도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팔이식을 기다리는 장애인이 수천 명 있지만 팔 공여자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는 것이다. 

    우 원장은 “신체 내부 장기라면 모를까, 외부에 드러나는 팔을 기증하기는 좀 어렵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팔 절단 장애인에게 팔이식 수술은 필생의 소망이고, 그들에게 팔을 주는 것은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는 굉장히 가치 있는 헌신”이라고 강조했다. 

    “옛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죠. 지금은 다릅니다. 이제 사람은 죽으며 자기의 모든 것을 남길 수 있어요. 내 장기가 필요한 곳에 전달되면 약 30명이 새로운 삶을 얻게 됩니다. 그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더 많은 분이 알게 되면 좋겠습니다.” 

    우 원장의 말이다. 팔이식 수술에 건강보험이 적용돼 환자 부담이 줄어들고 팔 공여자가 나타난다면, 우 원장은 앞으로도 계속 팔이식 수술을 해나갈 예정이다. 그는 “팔이식 수술 기술은 장기적으로 성대, 복벽, 자궁 등 인체 각종 복합 조직 이식에 적용될 수 있다. 더 많은 사람이 미래 의학 발전에도 관심을 두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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