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림수직 니트류는 한림수직을 기억하는 중장년층뿐 아니라 따뜻하고 편안한 할머니 스타일, 이른바 ‘그랜마 코어’ 트렌드를 좇는 젊은 층의 관심을 받고 있다. 한림수직
서울에 사는 김지연 씨는 1990년대에 제작된 한림수직 카디건을 어머니에게 물려받았다. 어머니를 잃고 상실감에 젖었을 자매들이 허한 마음을 달래려 똑같이 사 입은 양모 니트. 30년 넘게 시간이 흘렀지만, 흐트러짐 없이 포근하다, 할머니 품처럼.

축산 기술엔 익숙했으나 뜨개질할 줄 몰랐던 맥그린치 신부는 고향 아일랜드에서 성골롬반 수녀들을 초청했다.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

제주 여성들은 아일랜드에서 온 수녀에게 꽈배기, 다이아몬드 등 다채로운 아란 무늬를 배웠다.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
푸른 눈의 수녀들에게 배운 꽈배기, 다이아몬드 등 다채로운 아란(Aran) 무늬는 아일랜드 서쪽 아란섬에서 유래한 것으로 제주 여성들의 꼼꼼한 손기술이 더해져 탄탄하면서도 보드랍고 고급스러운 니트로 완성됐다.

한림수직은 까다로운 교육과 검수로 유명했고, 당시 한림수직에서 일하는 것은 제주 여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

과거 한림수직에서는 손뜨개 방식으로 스웨터, 모자, 장갑, 머플러 등을 만들었고, 베틀로 짠 직조 제품으로 담요, 숄, 스카프, 탐라판초 등을 만들었다.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던 한림수직이 제주 기반 콘텐츠그룹 재주상회와 이시돌농촌산업개발(성이시돌목장)이 함께 시작한 ‘한림수직 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2021년 성이시돌목장에서 버려지던 양모와 재생 양모를 섞은 울 100% 실로 한림수직 니트류를 일부 복원해 펀딩을 시도한 결과, 며칠 만에 1억 원어치가 팔렸다.

한림수직에 13년간 몸담았던 김명열 장인이 손수 짠 카디건. 한림수직
섬(아일랜드)에서 섬(제주)으로 전해진 아란 무늬는 아가일(Argyle), 페어 아일(Fair isle)과 함께 국적 불문, 찬 바람 불면 찾게 되는 대표적인 니트 패턴이다. 특히 아란 무늬 니트는 전체가 크림색이나 네이비 같은 단색 계열이라 일각에서는 ‘할머니 니트’라고도 하지만, 클래식해서 럭셔리 브랜드에서도 몇 년에 한 번씩 꼭 선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마릴린 먼로, 사라 제시카 파커, 테일러 스위프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사들로부터 오랜 세월, 유행을 타지 않고 사랑받는 디자인이다. 제주 여성들은 반세기도 더 전에 아일랜드 수녀에게 30가지 넘는 아란 무늬를 배우며,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그 무늬를 ‘제주 무늬’라고 부르곤 했다고 한다.
한림수직 재생 프로젝트는 사라진 패션 브랜드의 부활,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생계를 위해 이방인에게 배운 기술로 한 땀 한 땀 명품을 만들어낸 제주 여성들과, 그 섬세한 손기술로 완성된 니트류를 아껴 입고, 소중히 대물림해 온 사람들의 기억을 엮어 하마터면 잊힐 뻔했던 이야기를 복원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다.
재주상회는 과거 한림수직에서 일했던 어르신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전국의 옛 한림수직 고객들로부터 카디건, 스웨터, 직조 담요, 머플러 등 한림수직 제품을 수집해 제품 복원에 활용한다. 옛 한림수직의 시그니처 제품들을 되살린 오리지널 라인 외에 한림수직에 13년간 몸 담았던 김명열 장인과 그에게 배우고 실력을 검증받은 제자들이 100% 손으로 뜨는 장인 니팅(knitting) 라인도 선보였다. 한림수직 전용실과 한림수직만의 뜨개질법을 설명한 도안으로 구성된 DIY 키트도 제작한다.
또한 가난했던 시절에도 ‘품질은 생명’이라는 브랜드 철학을 고집한 한림수직의 뜻을 이어 첫해부터 양모 100%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성이시돌목장의 양모를 섞어 사용하거나, 양을 학대하지 않고 채취한 뮬징프리(mulesing free) 울을 사용한다.

11월 8~16일 서울 계동 창창당에서 열리는 팝업은 한림수직의 전통, 복원, 재해석 과정을 하나의 서사로 엮고, 서울과 제주를 연결하는 전시다. 한림수직
11월 21일부터는 디앤디파트먼트 제주에서 팝업 전시가 열리며, 12월 말엔 ‘츠타야 서점’으로 잘 알려진 일본 도쿄의 복합문화공간 다이칸야마 츠타야 티사이트(T-SITE)에서 전시 및 판매, 뜨개 워크숍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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