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호

호주 육군 ‘가평대대’를 아시나요?

6·25전쟁서 혁혁한 공 세운 3대대의 별칭

  • 시드니 = 윤필립 시인, 호주전문 저널리스트

    입력2011-10-26 10: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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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 육군 ‘가평대대’를 아시나요?

    ‘가평부대’로 불리는 호주 육군 제3대대.

    호주의 4월은 가을이다. 호주 동부해안에서, 여름 한철을 보낸 큰뒷부리도요새(bar-tailed godwit)가 한반도를 비롯해 지구 북반구로 날아간다. 호주의 가을에서 한반도의 봄으로. 평균 시속 100㎞로 7~8일 동안 무려 8000㎞를 쉬지 않고 날아간다.

    시드니 늪지대에 철새도래지가 여러 군데 있다. 4월 초 그중의 한 곳인 홈부시에서 ‘도요새 환송식’이 열렸다. 모자를 흔들면서 휘파람을 불어준 다음, 도요새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기도문을 외우는 간단한 의식이다.

    도요새들은 한반도에 잠시 머물면서 영양을 보충한 다음, 아무르 강(Amur River)으로 날아가서 짝을 짓고 새끼를 부화한다. 다음해 9월에 다시 호주 동부해안으로 돌아오면 ‘도요새 환영식’이 열린다. 휘파람 대신 종을 울려서 무사귀환을 축하한다. 아무르는 정인(情人)이라는 뜻이다.

    ‘도요새 환송식’에서 6·25전쟁 참전용사 데릴 타운젠트씨를 만났다. 그는 호주 육군 3대대 소속이었고, 1951년 4월24일 가평전투에서 전사한 동료를 추모하기 위해서 ‘도요새 환송식’에 참여했다. 한반도로 떠나가는 도요새들에게 다음과 같은 3대대의 ‘부대 기도문(Regimental Prayer)’을 읽어주었다.

    ‘우리가 지혜롭게 생각하고, 똑바로 말하고, 용감하게 해결하고, 친절하게 행동하면서 순수하게 살아가도록 도와주소서/ 우리에게 정의와 자유를, 진리와 자유를 지킬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Help Us To Think Wisely, To Speak Rightly, To Resolve Bravely, To Act Kindly And To Live Purely Give Us The Courage To Defend The Cause Of Justice, Freedom, Truth And The Right To Liberty.)’



    6·25전쟁에 1만6000여 명 참전

    어찌된 영문일까?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평화롭게 보이는 호주가 150년 동안 전쟁을 하고 있다니. 1861년 호주는 마오리족과 백인들이 전쟁을 벌였던 뉴질랜드전쟁(New Zealand War·1861~64)에 파병했다. 꼭 150년 전의 일이다. 지금도 호주군인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목숨을 건 전쟁을 수행하는 중이다. 호주가 참전한 전쟁의 역사를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수단전쟁(1885), 남아프리카전쟁(일명 Boer War·1899~1902), 중국 의화단혁명(Boxer Rebellion·1900~1901),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승전국으로 일본 점령(1946~1951), 6·25전쟁(1950~1953), 말레이안 비상사태(1950~1960), 인도네시아 내전(1963~1966), 베트남전쟁(1962~1975), 제1차 걸프전쟁(1990~1991), 이라크전쟁(2001~2005), 아프가니스탄전쟁(2001~현재), 평화유지군 임무 수행(1947~현재).

    이 가운데 6·25전쟁 이전의 참전은 정확하게 말해 호주군으로서가 아니라 영국군의 지휘를 받던 영국왕실군대의 일부분이었다. 호주가 영국 왕/여왕을 국가수반으로 삼는 입헌군주제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6·25전쟁에 참전하면서 마침내 호주군대로 새롭게 출범했다. 자체 작전권을 확보한 것. 그 부대가 호주육군 3대대이고 나중에 ‘가평대대’가 됐다.

    1950년 6월25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졌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즉각 참전을 선언했다. 1950년 9월27일 참전한 호주는 16개국 중에서 미국에 이은 두 번째 참전국이다. 6·25전쟁 발발 당시, 패전국인 일본에 점령군으로 주둔했던 3대대가 가장 먼저 부산항을 통해서 참전했다. 1952년 2월9일 본국에서 1대대가 한국에 도착했고, 2대대는 1953년 3월21일에 1대대와 임무교대를 했다.

    호주 항공모함 1척과 구축함 4척, 프리키트함 4척이 인천상륙작전 등에 참가해서 큰 공을 세웠다. 호주는 6·25전쟁에 육군 1만657명, 해군 4057명, 공군 2000명을 참전시켰다. 그 결과 전사 339명, 부상 1216명, 포로 29명의 희생을 기록했다. 다음은 가평대대 트렌트 스콧 현직 대대장과의 일문일답이다.

    가평전투 정신 지금도 살아있어

    호주 육군 ‘가평대대’를 아시나요?

    가평부대 대대장 트렌트 스콧.

    ▼ 올해 4월24일 3대대에서 ‘가평전투’60주년을 기념하면서 ‘가평의 날(Kapyoung Day)’ 행사를 크게 펼쳤다.

    “3대대가 1951년 4월23일과 24일, 이틀 밤낮을 중공군과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만약에 3대대가 중공군을 저지하지 못했으면 한국군 6사단과 유엔군 전체가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서울을 사수하기 힘들었을 것이고.”

    ▼ 당시의 전황이 그렇게 심각했나?

    “1951년 4월에 중공군의 춘계대공세가 시작됐다. 그 유명한 인해전술(Human Sea)로 중공군이 파죽지세로 내려왔고, 한국군과 유엔군은 가평전선까지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전쟁 초기에 낙동강전선까지 밀린 이후 최대의 위기였다.”

    ▼ ‘가평전투’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해달라.

    “한국군 6사단을 추격하던 중공 제118사단은 신속히 가평을 점령할 목적으로 종대 대형을 유지하고 도로와 계곡을 따라서 내려왔다. 504고지에서 매복하다가 중공군을 포착한 3대대는 집중공격을 퍼부어서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

    트렌트라는 특이한 이름을 갖고 있는 스콧 대대장은 오랫동안 ‘가평전투’를 설명했다. 남하를 거듭하던 중공군 118사단은 23일과 24일 이틀 동안 비교적 기동이 용이한 가평천 골짜기를 통해 서울-춘천 간 도로를 차단함으로써 연합군의 전선을 갈라놓으려 했다.

    3대대와 중공군의 일진일퇴 공방은 24일 아침 녘까지 이어졌다. 날이 밝아 연합군의 항공폭격과 포병사격이 집중되자 중공군은 산더미 같은 시체를 남기고 급히 철수했다. 호주군 1개 대대가 중공군 1개 사단을 퇴각시키는 믿기 어려운 전과를 올린 것.

    ▼ 언제부터 ‘가평대대’라는 별명을 얻었나?

    “3대대는 가평전투의 공로로 미국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부대 표창을 받았고 ‘가평대대’라는 별칭을 얻었다. 호주는 가평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4월24일을 ‘가평의 날’로 정했으며, 가평 퍼레이드 같은 행사를 통해 호주 군인의 용맹스러운 정신을 기리고 있다.”

    ▼ 한국 가평에서 열리는 ‘가평전투’ 60주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 줄리아 길라드 총리가 한국을 방문했다.

    “길라드 총리는 가평전투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서 한국전 참전 용사들을 만나서 격려했다. 3대대 부대원 20여 명도 가평 행사에 참석했다. 현직 총리가 직접 가평에 가서 가평전투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부대원들의 사기진작에 큰 도움이 됐다.”

    ▼ 3대대 병사들의 자긍심이 크겠다. 부대를 돌아보니 1950년 11월에 평안북도에서 전사한 찰리 그린 초대 대대장이 영웅처럼 모셔지고 있는데….

    “그분은 가평대대뿐만 아니라 호주 육군의 영웅이다. 지금 이 자리에 고 찰리 그린의 부인 올윈 그린 여사가 계신데 우리는 그분을 ‘맘’이라고 부른다. 3대대 병사들은 선배들의 업적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그런 전통을 지켜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지난 4월24일 오전 10시30분, 시드니 근교 홀스워디에 위치한 가평대대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가평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가평전투 60주년을 기념하는 퍼레이드였고, 시드니에서 열리는 마지막 ‘가평의 날’ 행사였다.

    한편 이날 가평 퍼레이드는 시드니에서 작별을 고하는 대단원의 장이었다. 3대대가 올 연말에 타운즈빌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3대대 출신의 전역병사들이 대거 참석해서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이들은 스콧 대대장의 “가평 퍼레이드 종료!”라는 구호를 들으면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트렌트 스콧 대대장은 “퍼레이드는 연례행사이기 때문에 타운즈빌에서도 계속 이어지겠지만 가평의 날 행사는 오늘이 마지막”이라면서 “그러나 가평전투에서 비롯된 3대대 정신은 지금도 살아있고 가평대대에서 잘 보전될 것(The spirit from that time is still alive and well in the Kapyong battalion)”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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