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호

115년 역사 한국 승강기산업, 제2의 도약 위한 갈림길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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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입력2025-01-14 11: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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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0년 조선은행 수압식 승강기로 시작된 역사

    • 고도성장기 지나 1998년 IMF 사태 후 위기 봉착

    • 주무부처 행안부 안전위주 규제‧정책이 산업 저해

    • 낮은 유지관리비‧부실 실태조사‧인력난 대책 전무

    • 지난해 승강기산업 진흥법 시행으로 도약 계기 마련

    • “산업 진흥‧안전 함께 이룬다는 인식 없인 실패할 것”

    모두가 매일 편리하게 이용하는 승강기. [대한승강기협회]

    모두가 매일 편리하게 이용하는 승강기. [대한승강기협회]

    국내 승강기산업이 새 도약을 위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지난해 1월 공포, 7월 시행된 ‘승강기산업 진흥법’이 그 시작이다. 승강기산업 진흥법은 과거의 안전 위주 정책에서 벗어나 승강기산업 진흥을 위한 종합적 지원 체계 구축을 목표로 한다. 이는 국내 승강기산업의 역사적 흐름과 현재 직면한 과제들을 고려할 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국 승강기산업 115년史

    국내 승강기산업의 역사는 1910년 조선은행에 최초로 수압식 승강기가 설치되면서 시작됐다. 1945년 광복 전까지 전국에 150여 대의 승강기가 설치됐으나 중‧일 전쟁 발발 후 약 80%가 철거되는 등 초기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해방 이후 미군정 체제가 안정화되고 국내 경제활동이 이뤄지면서 부족한 물자 조달을 위해 수입품 판매 대행과 무역상이 탄생했다. 이 가운데 ‘미국종합무역상사’가 오티스 엘리베이터(OTIS)의 승강기를 취급하며 승강기 수입이 시작됐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엔 국내 기술진에 의해 주한 미국 대사관에 승강기 설치가 이루어지는 등 본격적으로 산업 활성화의 기반이 마련됐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며 승강기산업은 성장 시작 단계에서 침체기에 봉착한다. 휴전 후 전후복구 차원에서 건설경기가 활발해지면서 다시 활력을 얻을 수 있었다. 1960년대부터 국내 승강기산업은 본격적 성장기에 접어들었다. 정부의 국가재건계획과 건축법 제정으로 대형건축물 건설이 가능해지면서 승강기 수요가 급증했다. 1970년대에는 도시재개발법 개정으로 6층 이상 신축건물에 승강기 설치가 의무화되면서 산업이 더 발전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는 국내 승강기산업의 고도성장기였다. 1980년 택지개발촉진법 제정, 500만호 건설계획 시행, ‘86 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개최 등으로 건설 붐이 일어나면서 승강기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 시기엔 국내 수요는 물론 수출도 증가했고, 고속 승강기 개발 등 기술력이 향상되면서 승강기산업은 독립 경제업종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 특히 국내 건축물의 고급화 및 고층화로 고속 승강기 개발이 이루어졌고, 에스컬레이터, 장애인용 엘리베이터, 자동차용 엘리베이터 등 다양한 제품이 본격적으로 설치되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 승강기 기술력은 해외 기술을 적극 수용하면서도 독자적 개발을 통해 지속적으로 향상됐다.

    승강기산업이 급격히 성장하며 정부는 승강기산업 발전 및 안전관리를 위해 제도를 정비했다. 1989년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승강기 관리체계를 제도화했고, 1991년엔 승강기제조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1996년엔 승강기 안전관리 체계 일원화를 위해 승강기 관련 법률 및 주무부처를 산업자원통상부(산자부)로 일원화했다. 또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승강기 안전검사 내용을 삭제하고, 해당 내용을 승강기 제조 및 관리에 관한 법률로 일원화했다.

    그러나 1998년 외환위기(IMF)를 기점으로 국내 승강기산업은 큰 위기를 맞았다. 국내 주요 승강기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에 매각되면서 산업 기반이 크게 흔들렸다. LG산전은 오티스에, 동양엘리베이터는 티케이엘리베이터에, 중앙엘리베이터는 쉰들러엘리베이터에 매각됐다. 이로 인해 연구개발이 감소하고, 생산시설이 축소 및 해외 이전되면서 국내 승강기 부품 산업 기반이 붕괴됐다.

    외환위기 이전까지 국내 승강기 업계는 토종기업들이 많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IMF 이후에는 자급률이 급락하는 등 많은 어려움에 처한 실정이다. 국내 부품산업의 붕괴로 값싼 중국산 부품의 수입이 증가하면서 국내 협력사들도 줄줄이 경영난에 봉착하게 됐다.

    2000년대 들어선 승강기 주무부처가 산자부에서 행정안전부(행안부)로 이관됐다. 2009년 승강기 업무 가운데 안전분야를 시작으로 2019년엔 승강기 안전인증제도가 산자부에서 행안부로 이관되며 승강기 전체 업무 이관을 완료했다.

    주무부처 산자부 → 행안부… 안전 위주 정책‧규제로 산업 저해

    주무부처 이관으로 인해 승강기산업은 산업 육성 주체가 사라졌고, 국내 산업규모 축소 및 해외 경쟁력 상실이라는 어려움을 맞이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세계 승강기 시장규모는 767억 달러(약 112조 원)에 이르며 5년 동안(2023~2028) 연평균 10.13%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국내 승강기 시장규모는 약 5조 원에 불과한데, 이마저 6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에스컬레이터는 수입 의존율이 100%에 육박한다. 산업 기반이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

    승강기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은 안전 위주 정책‧규제다. 이에 따른 최저가낙찰제로 인한 유지관리 품질 저하, 고속 엘리베이터 관련 기술개발 부진, 인력난 등이 주요 문제로 꼽힌다. 이로 인해 승강기 사고 예방 및 이용자 안전 제고를 위한 승강기 유지관리 작업이 평균 4만 원 선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승강기 안전을 담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매년 표준유지관리비가 공표되고 있지만, 이는 단순한 권고사항에 불과해 실제로 이행하는 관리주체가 전무한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유지관리업체 선정방식을 최저가낙찰제에서 적격심사제로 변경하고, 표준유지관리비의 최소 70%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으나 반영되지 않고 있다.

    승강기산업에 대한 기초적 실태조사도 전무한 상황이다. ‘승강기 안전관리법’에 의한 안전실태조사만 실행되고 있을 뿐, 산업 육성‧기술개발‧전문인력 양성 관련 정책 마련에 필요한 산업 실태조사는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정책 수립에 필요한, 양질의 데이터 자체가 부재한 상황이다. 또 젊은 층들이 승강기 관련 산업을 ‘3D 업종’으로 분류하면서 승강기산업 전반에 인력난이 가중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관련 대책 마련이 전무한 실정이다.

    지난해 1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 411회 국회(임시회) 4차 본회의가 열리고 있다. 이날 국회는 ‘승강기산업 진흥법’을 의결했다. [뉴시스]

    지난해 1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 411회 국회(임시회) 4차 본회의가 열리고 있다. 이날 국회는 ‘승강기산업 진흥법’을 의결했다. [뉴시스]

    승강기산업 진흥법 시행됐지만… “정책 패러다임 변화 필요”

    승강기산업 진흥법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제정된 법률이다. 이 법은 2023년 의원입법으로 대표 발의돼 국회를 통과했다. 지난해 1월 공포돼 7월부터 시행됐다. 이로 인해 산업 진흥을 위한 실태조사, 해외진출 지원, 인력양성, 기본계획 수립, R&D 지원 등의 근거가 마련됐다.

    또한 올해 정부 예산안에 ‘승강기산업 진흥법’에서 규정한 승강기산업 실태조사와 승강기산업 정보시스템 구츅 연구용역 사업이 포함됐다. 이에 올해부터는 승강기산업에 대한 일반현황과 더불어 사업체, 매출, 인력현황 등에 대한 실태조사가 매년 시행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승강기산업 정보시스템’ 구축 등 향후 정책 수립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업계에선 근본적 정책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승강기산업의 진흥을 위해서는 안전‧규제 위주의 정책 패러다임을 변화시켜야 한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춘 새로운 기술개발과 안전정책의 조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AI 등 새로운 기술을 승강기에 접목시키는 글로벌 트렌드에 맞춰 국내 정책도 변화해야 한다”며 “그래야 국내 승강기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승강기산업 진흥법이 시행되긴 했지만 여전히 승강기 주무부처가 행정안전부인 것도 과제로 남아있다. 이에 향후 산업 진흥을 위해선 정부 조직 개편 등의 변화가 더 필요하리라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아울러 국내 승강기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등 주요 경쟁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선 정부‧업계의 지속적 노력‧투자가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유지관리 품질 향상을 위한 제도 개선,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체계적 프로그램 마련 등이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전략적 접근과 국내 부품산업 육성을 통한 자급률 향상도 주요 과제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국내 승강기산업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새로운 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산업 진흥과 안전이 같이 갈 수밖에 없다는 절실함을 가져야 한다. 이와 같은 인식 변화가 없다면 국내 승강기산업의 도전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혜연 차장

    정혜연 차장

    2007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여성동아, 주간동아, 채널A 국제부 등을 거쳐 2022년부터 신동아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금융, 부동산, 재태크, 유통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의미있는 기사를 생산하는 기자가 되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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