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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정몽준 향해 칼 빼들었나”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도쿄·LA·서울 숨바꼭질 인터뷰

“나는 왜 정몽준 향해 칼 빼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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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정몽준 향해 칼 빼들었나”

이익치 전회장이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참고 있다.

11월5일 아침 8시50분, 일본 나리타공항 제1터미널의 한 커피숍. 인사를 나누고 구석 자리를 찾아 앉은 이익치(李益治·58) 전 현대증권 회장의 얼굴이 한순간에 일그러졌다.

“이익치는 1999년 9월10일 구치소 들어가던 날 죽었어요. 그때 나를 땅에 묻었어. 묻어버렸어….”

꽉 다문 입술께가 부들부들 떨리는가 싶더니 이내 눈물을 쏟아냈다. ‘왈칵’이라는 표현 그대로였다. 커피와 팬케이크를 날라온 웨이트리스가 어쩔 줄을 몰라 “스미마셍”만 연발하곤 황급히 사라졌다. 눈물이 팬케이크 위로 시럽처럼 내려앉았다.

“정몽구 회장이 면회를 와서 그럽디다. 명예회장님(故정주영 회장)이 매일같이 성화라고. ‘내가 이익치 생각에 잠이 안와. 이익치가 뭘 잘못했다고 거기다 가둬놓냐. 뭣들 하는 거야, 빨리 빼내란 말이야’ 하시면서…(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낌). 그래서 두 달 만에 나왔어요. 그때부터 나는 산송장이었어.”

“너 같은 놈 하나만 더…”



시간은 33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1969년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현대건설에 들어간 이익치 사원은 입사 한 달 만에 정주영 회장의 비서로 발탁됐다. 이런저런 훈련을 받으며 두 달쯤 지난 어느 겨울밤, 정회장이 퇴근하는 그의 뒤통수에다 대고 말했다.

“내일부터는 고속도로 현장에 나갈 거니까 새벽 4시 전까지 우리집으로 와.”

야간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다. 통금이 끝나기 전에 회장집에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미 떨어진 명령이다. “알았습니다” 하고 나왔다.

궁리 끝에 정회장의 운전기사에게 물어보니 정회장 차에 야간통행증이 붙어 있다고 했다. 기사는 당시 무교동 사옥 숙직실에서 잠을 자고 새벽에 회장집으로 차를 몰고 간다는 것. 숙직실은 두 사람이 누울 공간이 못됐다. 하는 수 없이 난방도 안되는 비서실에서 꼬박 밤을 지샌 후 차를 얻어타고 갔다. 다음날부터는 아예 비서실 한켠에 침낭과 이불을 갖다놓고 자명종 시계를 새벽 3시에 맞췄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정회장이 뜬금없이 물었다.

“그런데 이비서는 야통증이 있나?”

“없습니다.”

“그럼 그동안 어떻게 왔어?”

“올 방법이 없어서 비서실에서 자고 12호차 얻어타고 왔습니다.”

대답을 들은 정회장은 “응, 그랬구만” 하며 돌아섰다. 그러면서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 툭 던졌다.

“너 같은 놈 딱 하나만 더 있으면 좋겠다….”

노회한 총수는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그를 시험했던 것이다. 그날 이후 정회장은 어딜 가나 이비서를 곁에 뒀다. 국내 곳곳의 건설현장에서부터 중동 개발현장까지 빠짐없이 데리고 다녔다.

정회장의 ‘이익치 사랑’은 각별했다. 입사 6개월 만에 대리, 1년 만에 과장을 달아줬다. 파격적으로 빠른 승진에 뒷말이 무성하자 “비서실에서 6개월이면 비서실 밖에선 5년이야. 투덜거리는 놈들은 내 밑에 와서 비서해보라 그래” 하고 일갈해 잠재웠다.

고속 승진은 계속됐다. 현대건설 부장, 현대엔진 상무, 현대중공업 전무, 현대해상화재 부사장으로 거침없이 내달렸다. 특히 1996년에는 현대증권 부사장으로 발령난 지 한 달여 만에 사장으로 승진했고, 곧이어 그룹내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7인 운영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됐다. 3년 후엔 마침내 현대증권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

이익치 전회장은 ‘정주영교(敎)’의 독실한 신도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물으면 1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정주영”이란 답이 튀어나온다. “제로에서 100%를 만드는 명예회장님을 만나게 해준 신께 감사드린다”고 내놓고 말할 정도다.

그런 이 전회장이 정 명예회장의 아들인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통령후보를 향해 날이 퍼렇게 선 칼을 빼들었다. 2000년 9월 현대를 나와 그간 해외에 체류해온 이 전회장은 10월27일 도쿄에서 돌연 기자회견을 자청, “1998년의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에서 내가 죄를 뒤집어썼다”며 “이 사건은 당시 현대중공업 오너인 정몽준 후보의 지시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다”고 주장, 정후보의 도덕성을 걸고 넘어졌다. 그는 또 “내가 가진 자료 중 정후보 검증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공개하겠다”며 ‘속편’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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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형삼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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