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 분석의 ‘컨센서스’
국책연구소나 일반 경제연구소 연구원도 하는 일은 대동소이하지만, 그들은 국가 경제정책이나 기업 전략에 필요한 자료들을 가공한다는 점에서 분석의 목적이 다르다. 물가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면 국책연구소는 인플레이션 예방을 위한 금리인상 가능성을 타진하고 그것이 경제 성장에 미칠 영향을 분석한다. 민간연구소는 금리인상의 여파가 소비에 미칠 영향을 검토하고 기업의 대응 전략을 모색한다. 하지만 증권사의 애널리스트(이코노미스트)는 시중 유동성이 감소함으로써 부동산이나 주식시장에 미칠 영향을 체크하는 것이 주 임무다. 같은 칼인데 용도가 다르다.
애널리스트는 여러 섹터에서 일한다. 업종이나 기업별로 각자 담당분야가 있어 해당 섹터의 현황과 전망을 분석한다. 업종별, 산업별 전망치를 추측하고 개별기업의 실적과 현황을 예측하는 게 주업인데, 이들이 근거로 삼는 자료는 다양하다. 국가기관의 공식 연구자료, 기업의 공정 공시 내용, 외국의 동일업종 기업 자료, 기업 탐방을 통해 수집한 개별 자료 등을 버무려서 자신이 담당한 섹터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판단한다.
그래서 애널리스트마다 현재에 대한 판단이 다르고 미래에 대한 예측도 다르다. 어느 애널리스트가 ‘반도체 가격이 지나치게 하락해서 반도체 업계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전망을 내면 다른 애널리스트는 ‘그렇기 때문에 자금력이 떨어지는 업체는 어려움을 겪겠지만 삼성전자처럼 시장지배력이 있는 회사는 오히려 좋아질 것이다’라는 상반된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같은 자료를 두고도 해석이 다르고 업황에 대한 시각이 달라진다. 이 때문에 애널리스트는 경제지표에 대한 계량분석 능력뿐 아니라 경험도 풍부해야 하며, 아울러 기업을 탐방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데 필요한 폭넓은 인맥과 성실성을 갖춰야 한다.
애널리스트의 힘과 한계
하지만 이런 자료들은 대개 ‘컨센서스’라는 이름으로 평준화가 이뤄진다.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면 같은 자료에서 전혀 딴판인 견해가 나오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반도체 현물가가 5달러에서 3달러로 하락했는데 ‘업황이 좋다’고 해석할 가능성은 거의 없고, 기업들도 이 애널리스트에게는 실적이 좋다고 하고 저 애널리스트에겐 나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애널리스트들의 의견을 모아보면 대개 엇비슷하다.
애널리스트에게 삼성전자의 다음 분기 영업이익 예상치를 물어보면 대부분 ‘1조~1조2000억원’에서 답이 일치한다. 5000억원, 혹은 2조원이라고 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언론매체는 애널리스트들의 이런 의견을 모아 현재 삼성전자의 영업실적 예상치는 ‘1조1000억원이 컨센서스’라고 기사화한다.
그런데 주가 전망치는 편차가 꽤 심하다. 기업 실적이 주가의 변동과 1대 1로 대응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 기업의 주가를 결정하는 요인은 당장의 실적 외에도 미래 가능성, 수급, 시장상황, 투자자의 심리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따라서 애널리스트는 다들 알고 있는 정보에 자신의 직관 등을 담아 주가 전망치를 발표한다. 주관의 영역과 객관의 영역이 공존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