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 지난 아이를 키우는 한 엄마가 인터넷에 남긴 기저귀 사용 후기다. 제품 분석 보고서 뺨치는 상세한 육아용품 사용 후기는 아기 엄마들이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마다 가득 쌓여 있다. 젖병, 물티슈, 유모차, 동화책, 심지어 유아용 면봉까지 엄마들의 까다롭고 까칠한 품평을 피하지 못한다. 그중 엄마들이 가장 혹독하게(?) 대하는 품목 중 하나가 기저귀다.
엄마들이 기저귀를 ‘분석’할 때 고려하는 사항은 한둘이 아니다. 흡수성, 통기성, 밀착력, 부드러움, 두께, 냄새, 디자인, 밴드 접착력과 늘어남 정도 등등. 심지어 “사용한 기저귀가 납작하게 말리지 않아 내다버릴 때 불편하다”는 지적도 있다. 아기 신체의 민감하고 중요한 부위에 24시간 밀착해 있고, 하루 8~10장씩 갈아주다보니 엄마라면 누구나 기저귀 박사가 되는 것이다.
한국 엄마들이 유독 기저귀에 까다롭다보니 여러 브랜드의 기저귀 샘플을 집으로 배달해주는 인터넷 쇼핑몰도 성업 중이다. 엄마들이 요청한 기저귀 브랜드마다 서너 장의 제품을 모아 제공하는 것.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아니 불여일용(不如一用)이라고 생각하는 엄마들을 위한 맞춤 서비스다.
2009년 온라인에서 국내 최초로 기저귀 샘플 사업을 시작한 맘스엔젤 노회성 대표는 “요즘 엄마들은 한국, 미국, 일본, 독일, 덴마크 등 세계 각국 기저귀 샘플을 두루 써보고 가장 맘에 드는 브랜드를 골라 재구매하고자 한다”며 “해외에 이런 유형의 사업이 있다고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런 험난한 전장에서 30년 동안 1위를 고수해온 기저귀 브랜드가 있다. 유한킴벌리 하기스(Huggies)다. “선물로 들어오는 기저귀는 모두 하기스”란 말이 엄마들 사이에 있을 정도로(기저귀 사러 들른 슈퍼마켓에서 “하기스 주세요”라고 하기 때문에) 하기스는 지난 30년간 국내 소비자 사이에서 기저귀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하기스는 1983년 국내 최초의 위생 종이 기저귀로 출시됐다. 하기스란 ‘Hug Babies’, 즉 ‘아기를 껴안다’란 뜻이다. ‘아기의 편안함을 추구한다’는 브랜드 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까다롭고 까칠한 기저귀 박사들
하기스는 30년 동안 아기의 편안함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꾸준히 품질을 업그레이드해왔다. 흡수력이 좋아지고 얇아서 착용감이 향상된 울트라슬림 디자인(1993), 순면 감촉 통기성 커버(1996), 아기 활동성을 높여주는 매직벨트(1997) 등을 잇달아 내놓으며 국내 기저귀 시장을 이끌어갔다. 그리고 2005년 ‘걷기 시작하면 입히세요’라는 광고카피가 귀에 익은 팬티기저귀, ‘하기스 매직팬티’를 출시했다.
1990년대 들어 미국 P·G 팸퍼스가 입성하는 등 국내 종이기저귀 시장이 경쟁체제로 돌입했지만, 하기스는 시장점유율을 높게는 80%대까지 기록할 정도로 성공을 이어갔다. 기저귀는 유한킴벌리 전체 매출에서 비중이 가장 높은 제품군이기도 하다.
2009년 여름의 일이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육아용품 박람회에 들른 기자는 희한한 광경을 목격했다. 배가 부른 임산부와 예비 아빠들이 한 부스를 향해 수십m의 긴 줄을 형성하고 있었다. 조금 뒤 서너 명의 직원이 “군 오늘 품절”이라고 큰소리로 외치고 다녔다. 운 좋게 ‘군’이라는 걸 산 부부들은 만족한 웃음을 띠며 자리를 떴고, 남은 이들은 내일 다시 들르면 살 수 있는지 등을 물었다.
일본 기저귀의 습격과 추락
군(GOO.N)은 일본 3대 종합제지회사 중 하나인 (주)다이오제지의 기저귀 브랜드다. 4~5년 전부터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국내에 판매되기 시작하면서 “얇고 부드럽다” “흡수력이 뛰어나다” “발진이 생기지 않는다” 등의 평판을 얻으며 날로 인기가 높아졌다.
군을 비롯한 일본 기저귀의 선전은 하기스에 위협 요소로 작용했다. 모 대형 인터넷 쇼핑몰 판매 통계에 따르면 일본 기저귀의 시장점유율이 상승하는 기간에 하기스 점유율은 하락했다. 이 쇼핑몰에서 하기스는 여전히 기저귀 점유율 1위 자리를 지켰지만, 어느새 2위로 올라선 군과의 격차는 줄어드는 추세였다. 2011년 2월 이 쇼핑몰에서 둘 사이 격차는 10.4%포인트까지 좁혀졌다.
그리고 한 달 뒤인 2011년 3월 11일. 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했다. 그와 동시에 군을 비롯한 일본 기저귀 판매고는 급격히 꺾였고, 하기스의 점유율은 상승세로 돌아섰다. 엄마 고객이 일본 기저귀가 제조 과정에서 방사능에 노출됐을까 우려해 발길을 돌린 것이다.
하지만 하기스가 가만히 앉은 채로 반사이익을 얻은 것은 아니다. 국내 기저귀시장에서 하기스가 30년 동안 독주할 수 있었던 가장 주요한 요인으로 ‘방대하고 상세한 소비자 조사와 소비자 요구에 맞는 신제품 개발’이 꼽히는데, 이런 노력은 이 시기에 더욱 강화됐다. 2011년 유한킴벌리가 실시한 기저귀 리서치 프로젝트는 총 116건. 이 과정에서 무려 3만8380명의 소비자와 접촉했다. 또 2011년 한 해 동안 ‘하기스 프리미어’ ‘하기스 네이처메이드 팬티’ 등 2개 제품을 새로 출시하고 ‘하기스 매직팬티’ ‘하기스 네이처메이드’ ‘하기스 소프트드라이’ ‘하기스 보송보송’ 등 4개 제품을 리뉴얼했다.
기저귀 리서치 프로젝트의 주제와 방법은 다종다양하다. 기존 제품이나 경쟁 제품에 대한 평가, 소비자 인식 및 수요 조사, 시제품(試製品) 테스트 등 설문조사, 면접조사, 행동관찰 등으로 평가한다.
일례로 신제품을 출시하기 전에 600여 명의 엄마에게 시제품과 경쟁사 제품을 함께 제공해 둘 다 사용해보도록 한다. 이 리서치에 참가한 엄마들은 300개에 달하는 세세한 문항에 답을 하게 된다. 유한킴벌리 유아·아동사업 부문 하기스 마케팅팀 관계자는 “기저귀가 아기 체형에 잘 맞는지를 묻는 문항도 엉덩이 어느 부분에 잘 맞는지, 허리는 어떤지 등을 분류해 조사한다”고 말했다.
2011년 9월 ‘뉴 하기스 매직팬티’를 출시하기에 앞서 유한킴벌리는 신제품이 아기 체형에 잘 맞는지 직접 테스트하기 위해 1500명의 아기를 대상으로 Fit Study를 진행했다. Fit Study란 아기가 실제 제품을 입고 활동하면서 체형에 잘 맞는지, 움직임이 편안한지 등을 연구하는 것이다. 유한킴벌리 연구실에 아기들이 초대됐고, 시제품을 착용한 아기들이 놀이 공간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관찰하며 Fit Study가 진행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