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호

세계경제 막강 실세 ‘국부(國富)펀드’의 실체

중동 산유국 외환 운용책에서 선진국도 떨게 하는 큰손으로

  • 고승철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cheer@donga.com

    입력2008-03-07 11: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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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30개국 40개 국부펀드 총 규모 3조달러
    • 2022년엔 세계 금융자산 9.2% 차지
    • 최대 국부펀드는 자산 8750억달러 아부다비 투자청
    • 씨티그룹, 메릴린치 “제발 투자해주오…”
    • “너무 크면 우리가 먹힌다”…선진국 비상경계
    세계경제 막강 실세 ‘국부(國富)펀드’의 실체
    요즘 소리 없이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큰손이 있다. 바로 ‘국부(國富)펀드’다. 귀에 썩 익은 용어는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단어가 국제적으로 통용된 지가 몇 년밖에 되지 않았고, 한국에서는 여전히 생소하기 때문이다. 영어로는 ‘SWF(Sovereign Wealth Fund)’라고 한다. 영한사전에 따르면 ‘sovereign’은 ‘최고 권력을 가진, 통치권이 있는, 자주의, 최고의…’ 등의 의미다. 단어 뜻만으로도 이 펀드가 범상치 않은 존재임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 1월23~27일 ‘다보스 포럼’이 열린 스위스의 휴양도시 다보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등은 연단에 올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게이츠 회장은 “선진국이 저개발국 국민의 건강을 챙겨야 한다”고 감동적인 연설을 해 우레 같은 박수를 받았다. 블레어 전 총리는 “테러리즘, 기후변화, 물 부족 등 지구촌이 당면한 과제들을 극복하려면 정부, 기업, 시민단체 지도자들이 협력적, 혁신적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해 주목을 받았다.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언론을 통해 즉시 보도됐다.

    이들이 연설하는 동안 다보스 시내의 다른 곳에서는 몇몇 유력 인사가 조용한 회합을 가졌다. 핵심 사안을 논의하려면 언론의 눈길을 피하는 게 좋다는 판단에서였다. 참가자 가운데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얼굴이 알려진 인물이다. 흰색 다슈다샤(원피스형 아랍 전통 복장)를 입고 검은색 이칼(머리띠)을 맨 풍채 좋은 아랍 신사도 여럿 동참했다. 그들은 중동 산유국의 실력자였다. 서머스 전 장관은 침통한 얼굴로 미국의 경제상황을 설명했다.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미국 금융회사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어 금융계 전체에 난리가 났다”는 게 요지였다. 씨티그룹, 메릴린치,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 미국 유수의 금융회사가 서브프라임모기지 때문에 입은 손실은 줄잡아 600억달러나 된다는 것이다.

    유럽 금융 전문가들은 서머스 전 장관의 설명에 맞장구를 치면서 “유럽의 투자은행도 막대한 손실을 입기는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이들은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 탓에 전세계 금융회사들이 당한 손실이 2000억~3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미국과 유럽의 금융 전문가들은 산유국 실력자들에게 하소연했다.

    “2007년 11월, 아랍에미리트연방(UAE)의 아부다비 투자청(ADIA)이 미국 씨티그룹에 75억달러의 긴급 자금을 공급한 점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ADIA도 씨티그룹의 최대 주주로서 새로운 역할을 맡을 것이다. ADIA 같은 산유국 국부펀드가 미국 및 유럽 금융회사에 더욱 활발히 투자할 필요가 있다. 이는 양측에 모두 이익이 된다.”



    국부펀드 안건이 다보스 포럼에서 본격 논의된 것은 2008년이 처음이다. 국부펀드는 현재의 세계경제 난국을 돌파하는 열쇠로 요긴하게 쓰인다. 하지만 선진국 일각에서는 “국부펀드가 앞으로 미국 금융회사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성장하면 곤란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부펀드가 미국 및 유럽의 핵심 기업이나 부동산 등을 본격적으로 사들이는 상황을 걱정한다. 미국의 일부 극우세력은 “사막의 유목민들이 오일달러로 서방을 공략하면 중세와 같은 암흑기가 올지 모른다”고 경각심을 부추긴다.

    국부펀드와 외환보유고
    국부펀드 외환보유고
    관리 주체 정부 중앙은행(한국은행)
    우선적인 운용 기준 수익성 안 전성, 유동성
    주된 투자대상 주식, 채권, 파생상품, 부동산주요 선진국 국채
    자료: 한국은행


    외환 불리기

    세계경제 막강 실세 ‘국부(國富)펀드’의 실체

    싱가포르 국부펀드는 ‘돈 될 만한’ 곳은 어디든 투자한다. 서울 강남의 스타타워 빌딩도 그 중 하나.

    국부펀드는 각국 정부가 잉여 외화를 굴리기 위해 설정한 펀드다. 주로 오일달러가 넘쳐나는 중동 산유국들이 앞장서 국부펀드를 조성했다. UAE,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이 주인공이다. 1953년 쿠웨이트가 원유수출금을 재원으로 삼아 세운 국부펀드가 원조다.

    싸구려 물건을 전세계에 수출해 벌어들인 외화를 1조5000억달러나 쌓아놓은 중국도 2007년 9월 2000억달러 규모의 국부펀드를 설정했다. 중국은 중국투자공사(CIC)를 출범시켜 이 자금을 관리하도록 했다. 러시아도 올해 국부펀드를 출범할 것으로 알려졌다. 싱가포르는 국부펀드를 운용한 지 오래다. 한국은 2005년 3월 한국투자공사법을 공포하고 이를 근거로 한국투자공사(KIC)를 설립했다. 한국의 국부펀드인 KIC는 2006년 6월 한국은행에서 170억달러를 위탁받아 돈을 굴리기 시작했다. KIC는 이어 재정경제부에서도 30억달러를 받아 모두 200억달러를 관리한다. 2008년에는 정부로부터 추가로 100억달러를 받아 300억달러를 굴릴 예정이다.

    각국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나라 곳간에 경화(硬貨), 즉 외환을 쌓아둔다. 이는 외환보유액으로 표시되고 대외지급능력을 나타낸다. 미국은 세계의 기축통화인 달러를 스스로 찍어내므로 외환보유액이라는 개념이 다른 나라보다 덜하다. 개발도상국은 달러, 유로, 엔 등 기축통화가 모자라면 국가 부도가 생기므로 외환보유액에 늘 신경을 쓴다. 한국은 1997년 12월 외환보유액이 거의 바닥나 외환위기를 맞은 바 있다. 이런 고초를 겪은 한국은 그 후에는 외환을 꾸준히 쌓아 보유액을 늘렸다. 2007년 말에는 2662억달러에 이르렀다. 외환은 가급적 안정적으로 굴린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수익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막대한 외환을 더욱 크게 불리는 방법이 없을까. 이런 발상에서 국부펀드가 탄생했다. 산유국은 원유가 천년만년 생산되지 않음을 잘 안다. 지금 손에 쥔 오일달러를 불려야 미래 비전을 실천할 수 있으므로 국부펀드를 통해 고수익 재테크에 나섰다. 산업연구원 김계환 부연구위원은 산유국들의 국부펀드 운용에 관한 기고문(‘주간동아’ 618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슬람권을 중심으로 한 자원 부국들의 전략은 2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산업적 다각화다. 경제의 자원수출 의존도를 줄여 외적 충격에 강하고 고용 창출력이 높은 산업구조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2015~2025년으로 예상되는 피크 오일(peak oil·세계 석유 생산량이 최고점에 이르는 시기)의 현실화에 대응해 새로운 경제성장의 원천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또한 베이비붐 세대의 노동시장 진입으로 청년실업 문제가 점점 커지며, 이슬람 근본주의 부상과 같은 사회·정치적 압력이 가중되는 현실에 대처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다.

    둘째는 포트폴리오 투자, 즉 위기에 빠진 선진국 금융기관과 기업을 인수한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개도국들의 이런 움직임은 선진국의 보호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서유럽의 가스 유통망을 장악하려는 러시아의 시도는 영국과 유럽연합의 반발에 부딪혔다.”

    계속되는 성장세

    국부펀드의 자금 규모는 공식 집계되지 않는다. 각국 정부가 보고할 의무도 없다. 따라서 세계 전체의 국부펀드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경제 전문기관들의 추정치만 있을 뿐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세계 30여 개국의 40여 개 국부펀드 규모를 모두 합치면 2조5000억~2조9000억달러에 달한다고 추정한 바 있다. 나라별로는 UAE 8750억달러, 사우디아라비아 3000억달러, 쿠웨이트 2500억달러 등이다. 독일계 투자은행인 도이체방크의 셈법에 따르면 실제 운용되고 있는 세계의 국부펀드는 3조1000억달러, 곧 설립될 펀드를 포함하면 3조4000억달러다. 여러 기관의 분석을 종합하면 각국 국부펀드에 쌓인 돈은 3조달러에 달한다.

    엄청난 금액이다. 기업 인수합병(M&A)에서 폭풍의 핵 노릇을 하는 사모펀드가 2조달러, 국제 금융시장에서 게릴라식으로 치고 빠지는 투자수법으로 고수익을 올리는 헤지펀드가 1조4000억달러임을 감안하면 국부펀드가 얼마나 큰 규모인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세계 전체의 돈 흐름과 견줘보면 아직 대단한 금액이라 할 수는 없다. 전세계 은행자산은 63조5000억달러다. 그러니 국부펀드는 아직 은행자산의 5%에도 미치지 못한다. 투자펀드(21조달러), 연기금(17조9000억달러), 보험사 자산(16조달러)의 15~20%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국부펀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놀라운 속도로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고유가 체제가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 원유가는 2002년 이후 줄곧 상승했다. 막대한 오일머니가 중동 산유국으로 몰려들었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IMF, 도이체방크, 모건스탠리 등은 국부펀드가 2012년엔 5조~8조7000억달러, 2017년엔 10조~17조5000억달러, 2022년엔 27조7000억달러로 급증하리라 추측한다. 세계 전체 금융자산에서 차지하는 국부펀드의 비중도 2007년 2.5%에서 2022년엔 9.2%에 달할 전망이다.

    한국은행 해외조사실 종합분석팀은 2007년 10월 ‘세계 국부펀드의 확대 배경과 향후 전망’이란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국부펀드의 확대가 세계경제 질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한다.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요지를 달았다.

    ‘개도국들의 국부펀드를 통한 선진국 주요기업 인수합병 등 전략적 투자 확대 우려가 확산되면서 선진국을 중심으로 국부펀드 운용의 투명성 제고 압력, 자국 기업 보호 확대 등 국부펀드에 대한 경계가 강화되는 움직임.

    고유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단기간 내에 해소되기 어려워 국부펀드의 성장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따라 선진국 투자를 확대하려는 개도국과 이를 견제하려는 선진국 간 마찰이 심화되면서 보호주의 확산 등 글로벌 투자여건이 악화될 가능성.’

    세계 국부펀드 1인자, ADIA

    걸프지역에 자리 잡은 UAE는 아부다비, 두바이 등 7개 토후국으로 이뤄진 연방국가다. 대추야자 열매와 양젖을 먹고 살던 유목민들이 사막 한가운데서 솟아난 원유 덕분에 오일달러를 움켜쥐게 됐다. 7개 토후국 가운데 아부다비와 두바이에 원유가 집중적으로 매장돼 있다. 나머지 5개 토후국은 상대적으로 빈곤하다. 아부다비와 두바이는 오일달러를 효율적으로 굴려 원유가 고갈될 때를 대비한다. ‘중동의 쇼핑센터’라 불리는 두바이는 일찍이 상업 중심지를 지향했다. 미래에 원유가 마르더라도 두바이를 비즈니스 중심지로 성장시켜 자생적으로 굴러가도록 할 계획이다. 아부다비는 오일달러를 주로 국부펀드로 굴린다. 1976년 아부다비투자청(ADIA·Abu Dhabi Investment Authority)을 세워 국부펀드 관리 업무를 맡겼다.

    ADIA의 자산은 8750억달러로 세계 최대의 국부펀드다. 해마다 수백억달러의 잉여 오일달러를 쌓은 금액이다. 여기에 투자수익, 이자 수입이 덧붙여져 금액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몇 년 후엔 1조달러를 돌파할 것이 확실시된다. ADIA에는 금융전문가와 사무직원 등 1400여 명이 근무한다. 미국 금융회사 씨티그룹에 75억달러를 투자해 세계 금융가를 놀라게 했을 뿐 아니라 이미 여러 금융회사에 대주주로 참여해 ‘금융계의 큰손’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튀니지, 바레인, 이집트 등의 주요 은행에도 투자했다.

    UAE 대통령이자 아부다비 토후국 통치자인 셰이크 할리파 빈 자이드 알나흐얀(60)이 ADIA의 회장이다. 할리파 대통령의 동생인 셰이크 아흐마드는 ADIA의 최고경영자다. 이들 형제가 아부다비의 국부를 좌지우지한다.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가 2007년에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할리파 대통령의 총재산은 190억달러다. 하루 생산되는 원유 250만배럴에 대한 관리 책임을 맡고 있다. 말이 ‘책임’이지 판매 대금을 운용하는 권한을 가졌다. 총재산 가운데 특기할 품목은 경주용 낙타로, 1만4000마리를 갖고 있다. 그가 태어나던 1948년에만 해도 아부다비에는 변변한 학교조차 없어 그는 가문에서 전통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주요 국부펀드의 투자 포트폴리오
    투자 기관명 포트폴리오
    싱가포르 투자청(GIC) 주식 50%, 채권 30%, 부동산 등 기타자산 20%
    싱가포르 테마섹 주식, 채권, 외환 등. 주식 비중(기업 매수)이 상대적으로 높음
    노르웨이 연금펀드 주식 40%, 채권 60%. 장기적으로 주식 비중 확대
    호주 미래펀드 주식, 채권, 부동산, 사모주식, 원자재 등에 투자
    자료: 한국은행


    싱가포르는 싱가포르 투자청(GIC), 테마섹 홀딩스 등 2개의 국부펀드를 갖고 있다. 이들 국부펀드는 지구촌 어느 곳이든 ‘돈 될 만한’ 곳을 노려 투자한다. 서울 한복판에 자리 잡은 대형 건물인 파이낸스 빌딩과 서울 강남의 대표적인 건물인 스타타워 빌딩을 사들인 것만 봐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부동산을 헐값에 사서 비쌀 때 판다는 것이 투자 원칙이다.

    싱가포르 국영기업들의 지주회사인 테마섹은 2007년 말 미국 유수의 투자은행 메릴린치 주식 44억달러어치를 사들여 지분 9.4%를 가진 대주주가 됐다. 올 3월까지 행사할 수 있는 옵션까지 포함하면 50억달러를 투자하는 셈이다.

    돈 되는 곳은 어디든 노린다

    1981년 설립된 GIC는 더욱 공격적이다. 지난해 12월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자금난에 빠진 스위스의 투자은행 UBS에 11억달러를 투자해 지분 9%를 차지했다. 이어 GIS는 미국 씨티그룹에도 68억8000만달러를 투자했다. 자산 총액 3300억달러인 GIC의 달음질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 부동산 헤지펀드인 로젠 펀드에 3억달러를, 영국의 부동산 투자회사인 브리티시랜드에 1억3000만파운드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GIC는 세계 50여 개국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다. GIS가 투자하는 대상은 모두 일시적으로 ‘돈맥(脈)’ 경화에 걸린 우량 업체들이다. “위기 때 참여해야 큰 수익을 올린다”는 투자 상식을 실천하는 것이다.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신장섭 교수는 ‘싱가포르의 미국 사재기’(‘중앙선데이’ 2008년 1월20일자)란 제목의 칼럼에서 이렇게 밝혔다.

    “GIC는 비밀주의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의 수익률이 얼마인지 베일에 싸여 있다. 그러나 테마섹은 2004년부터 실적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테마섹의 32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18%였다. 장기간 이 정도 수익률을 올린 펀드는 세계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투자해온 결과다. 물론 이들의 투자 판단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 앞으로 상황이 더 나빠지면 좀 더 기다렸다 사지 못하고 너무 빨리 들어갔다고 후회할 수도 있다. 테마섹의 경우 탁신 전 태국 총리가 갖고 있던 신코퍼레이션을 인수했다가 큰 손해를 본 전력도 있다.”

    중국 정부는 중국투자공사(CIC·China Investment Corporation)를 설립해 2000억달러의 국부펀드를 굴리도록 했다.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1조달러를 넘은 지 오래고 해마다 2000억달러 이상이나 늘어나고 있다. 산유국의 오일 달러와 달리 중국의 외환은 수출로 벌어들인 것.

    CIC가 출범하자 세계 금융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CIC의 투자 행태를 살폈다. CIC는 일단 조용한 걸음을 내디뎠다. 2000억달러 가운데 3분의 2는 중국 내 은행의 지분을 매입하는 데 사용했다. 아직 외국 기업에 대한 대규모 지분 매입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CIC는 2007년 6월 미국계 사모 투자펀드인 블랙스톤의 지분 10%를 30억달러에 사들여 주목을 받은 바 있다. CIC가 아직 정식 출범하기도 전에 사전투자 형식으로 이뤄진 일이다. 블랙스톤 투자 건은 난항을 겪고 있다. 투자 초기엔 블랙스톤의 주식 가격이 주당 29달러대였으나 신용경색 여파 탓에 20달러 수준으로 폭락했다. 투자금액 30억달러가 20억달러로 줄어든 셈. 이 때문에 중국 정계에서는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비판론이 제기됐다.

    중국, 일본도 설립

    중국의 국영 에너지 업체인 해양석유공사(Cnooc)는 2005년 미국의 종합석유회사인 유노칼을 인수하려다 미국 내에 조성된 반대 여론 때문에 좌절한 경험이 있다. 미국에서는 “항공사, 통신업체, 에너지 기업, 기술업체 등 기간산업체를 외국에 넘기면 곤란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유노칼 인수 실패에 이어 블랙스톤 투자 불안이 잇따르자 CIC는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넌다는 자세를 보였다. 그러다 2007년 12월 미국의 모건스탠리에 50억달러를 투자했다. 일시적으로 자금 위기를 겪는 모건스탠리는 언젠가는 이름값을 할 투자은행이기 때문이다.

    국부펀드의 금융회사 투자 사례
    시기 국부펀드명 투자대상 회사 투자액 금융회사 손실액
    2008년 1월한국투자공사 메릴린치 20억달러약 160억달러
    2007년 12월중국투자공사 메릴린치 50억달러약 160억달러
    2007년 12월중동 국부펀드,싱가포르 투자청 UBS 115억달러약 142억달러
    2007년 11월아부다비 투자청 시티그룹 75억달러100억~130억달러
    2007년 7월싱가포르 테마섹 바클레이즈 20억달러-
    2007년 5월중국투자공사 블랙스톤 30억달러-
    자료: 모건스탠리


    CIC의 초기 임직원은 중국인민은행에서 자리를 옮긴 20명이었다. 이들은 국제금융 거래 경험이 거의 없었다. 해외투자를 맡을 전문가를 모집하기 위해 신문 및 온라인 사이트에 구인 광고를 냈다. 리스크 분석가, 포트폴리오 운영자, 홍보 담당자 등 전문 인력 70명을 뽑았다. 포트폴리오 운영자를 해외 연수를 보내 선진 기법을 익히도록 할 계획이다. 이들은 앞으로 베이징에 머물면서 미국, 유럽, 일본 등의 금융시장을 대상으로 주식, 채권, 파생금융상품을 거래할 작정이다.

    일본도 국부펀드를 설립할 가능성이 있다. 외환을 9000억달러나 쌓아둘 필요가 없다는 점이 그 이유로 꼽힌다. 만약 외환위기 상황을 맞더라도 일본은 선진국이어서 국제금융시장에서 자본을 끌어들이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기 때문. “보유하고 있는 거액의 외환을 너무 안정적으로만 굴리지 말고 국부펀드 형식으로 수익성에 중점을 두고 운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일본은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5%에 달해 이를 줄여야 한다.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어 앞으로 사회보장비용이 많이 들 텐데 재정적자가 심각해지면 노인에게 줄 돈이 바닥난다. 국부펀드로 돈을 크게 불려 재정적자를 메워야 한다는 논리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이론적으로 가능한 일본의 국부펀드 규모는 7000억달러 수준”이라 분석했다.

    야누스의 얼굴

    서방 선진국들은 중동 산유국과 중국의 국부펀드를 천사와 악마의 얼굴을 반반씩 가진 야누스로 보고 있다. 메릴린치, 씨티그룹, UBS 등이 자금난에 몰렸을 때 수십억달러씩 급전을 대준 국부펀드의 얼굴은 천사로 비쳤다. 그러나 국부펀드가 선진국의 통신, 에너지, 금융산업 등에 대한 투자를 늘릴 경우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악마로 비친다. 선진국들은 개도국 국부펀드가 막대한 자금력을 이용해 환율 개입, 공정경쟁 저해 등 국제경제 여건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하는 데 이용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국부펀드가 외국의 신문, 방송사를 인수해 여론에 영향에 줄 개연성도 걱정한다.

    진석용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국부펀드에 대한) 국제 금융계의 환대는 잠시뿐이었고 지금은 국부펀드의 투자 활동에 대해 선진국들이 우려하고 있다”면서 “물론 그 기저에는 선진국들이 기득권을 누려오던 글로벌 경제가 점차 다원화하는 데 대한 불만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선진국들은 국부펀드의 손발을 묶을 준비를 슬슬 하고 있다. 첫 번째 요구는 투명성을 높이라는 것. “국부펀드의 운용에 관한 정보가 부족해 루머가 난무하므로 시장이 불안해진다”는 것을 그 명분으로 내세운다.

    미국은 “IMF와 세계은행이 국부펀드의 자산운용에 관한 국제적인 행동규범(code of conduct)을 제정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행동규범의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운용 목표, 투자전략, 운용결과 발표 등이다. 다른 나라 국부펀드의 속살까지 보겠다는 심산이다. 이와 함께 국부펀드가 미국 기업을 인수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엑손-플로리오(Exon-Florio)법을 ‘외국 정부 또는 대리인의 투자도 외국인투자관련 필수 조사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고쳤다.

    독일은 미국의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와 같이 국부펀드의 자국 기업 투자를 감시·제어할 수 있는 기구 설립을 추진 중이다. 독일은 또 프랑스와 함께 유럽연합(EU) 차원에서 국부펀드에 대한 대응방안을 찾으려 한다.

    선진국들은 개도국 국부펀드로부터 자국 핵심 산업을 지키기 위해 입법을 서두른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부르짖으며 시장개방, 투자자유화를 강요하던 선진국이 자국의 사정이 다급해지자 보호주의로 돌아서는 꼴이다.

    일본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미국 브라운대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아 국제 경험이 풍부한 박해식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부펀드의 미래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혔다.

    “국부펀드의 자산규모가 아직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데도 국제사회의 관심을 끄는 것은 성장 잠재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높은 성장세를 바탕으로 국부펀드가 수익성 위주로 자산운용을 본격화할 경우 국제자본의 흐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수익성 위주의 자산 운용은 국부펀드 자금이 안전자산→위험자산, 선진국 시장→신흥 금융시장, 미 달러화 자산→비(非)달러화 자산으로 이동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대체 효과는 국부펀드의 이동이 민간자금의 ‘군집(herd) 행위’를 동반할 경우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국부펀드의 투명성과 관련한 이슈도 주요 쟁점이다. 특히 이 논의는 중국투자공사 출범 이후 국제적으로 본격화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적인 행동규범이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본다. 펀드의 투명성은 비단 국부펀드뿐만 아니라 헤지펀드, 사모펀드, 연기금 등에 모두 걸려 있는 문제로 국부펀드에만 해당하는 어떤 장치를 마련하기는 힘들 것으로 여겨진다.”

    증권연구원 김재칠 연구위원은 국부펀드 부상과 관련, “국내 금융기관들도 새로운 서비스 제공 기회로 삼아야 한다”면서 “국제 국부펀드의 흐름 변화를 주목하여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하우 축적에 주력해야 할 것”이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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