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호

尹 극단적 우파 인사 중용, 다가오는 선거 ‘보수 필패’ 예고편

[유창선의 정치읽기]

  • 유창선 시사평론가

    입력2024-10-1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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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선 뒤 극단적 보수 인사 고위 공직 임명

    • 국회 동의 없이 임명된 장관급 인사 29명

    • 보수 재집권 위한 절박한 과제, 보수-중도 연합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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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화론에 대한 과학적 증명이 없다고 생각한다. 진화론과 창조론은 과학적 근거보다는 믿음의 문제다. 학교에서 둘을 같이 가르치면 좋겠다.”

    “‘동성애는 공산주의 혁명의 중요한, 핵심적 수단이다’ 이런 주장이 있다. 여러 상황을 비춰볼 때 가능성이 제로라고는 저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가인권위원회 수장으로 임명된 안창호 위원장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 말들이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학교교육을 둘러싼 논쟁은 미국에서도 1920년대부터 계속해서 법정다툼을 낳았던 사안이다. 창조론자들은 학교에서 진화론만 가르치는 것은 학생들의 선택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창조론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 연방대법원은 수정헌법 1조를 근거로 “종교적 신념·주장을 이유로 지식을 교육하는 것을 방해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그리고 1986년 이후로 공립학교에서 창조설을 가르치는 것은 금지됐다.

    마시모 피글리우치의 책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Nonsense on stilts)’를 보면 “창조론은 과학인가”를 묻고 있다. 저자는 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미국에서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동안 진행된 창조론 소송을 다룬다. 그 판결문에 근거해 저자는 ‘초자연적 인과성’ ‘오류와 비논리성’ 등을 근거로 창조론이 과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물론 국내에서도 교과서 내용에서 진화론과 창조론을 둘러싼 논쟁은 종종 있었다. 그렇다고 국가인권위원장이라는 고위 공직 후보자의 입에서 창조론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 나온 것은 생뚱맞은 일이었다. 장관급인 국가인권위원장이라면 개인의 종교적 신념을 우선할 것이 아니라 국민 보편의 정서와 소송에서 나온 법률적 판단에 근거한 언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권위원장 입에서 나온 소수자 증오 발언 논란

    “동성애는 공산주의 혁명의 중요한 핵심적 수단”이라는 주장이 실제일 가능성을 열어놓은 발언도 놀랍다. 물론 동성애에 대한 호불호의 의견은 다양할 수 있고, 특히 종교적 관점에서 동성애는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타고난 동성애라는 문제를 난데없이 공산주의 혁명의 수단으로까지 비약해 연결 짓는 것은 어떤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극단적 설정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안 위원장은 “차별금지법에 의해 다수의 표현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며 소수자 인권 보호를 위한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는 논리를 폈다. 안 위원장에게는 ‘다수의 표현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우선이었다. 안 위원장은 인사청문회 내내 보수 개신교에 속한 개인의 강한 종교적 색채와 극단적 보수의 가치를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일부 발언은 소수자에 대한 ‘증오 발언(hate speech)’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문제는 안 위원장의 이러한 극단적 인식이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가 해오던 사회적 역할과는 정반대의 것이라는 우려에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1조는 “이 법은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하여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 확립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개인’은 물론 국민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하지만 특히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곤 하는 소수자들이 우선적 대상이 됨은 이제까지 국가인권위원회가 추구해 온 기본 방향이었다. 그런데 안 위원장이 쏟아낸 말을 듣노라면 국가인권위라는 기관이 가는 길이 180도 달라질 것만 같다. 소수자, 혹은 차별받는 다양한 사람의 인권을 보호하는 국가의 정책은 보수냐 진보냐 하는 이념의 문제를 넘어선다.

    9월 3일 국회 운영위원회는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열었다. [뉴스1]

    9월 3일 국회 운영위원회는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열었다. [뉴스1]

    ‌김대중 정부 시절에 만들어진 이래로 국가인권위는 때로는 정부와는 다른 입장에서 중요한 사회적 현안에 대해 발언함으로써 인권 개선에 상당한 역할을 해왔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았다. 보수 정부 시절에도 국가인권위가 민감한 현안에 대해 말을 아끼는 소극적 태도는 보였지만 이렇게 퇴행적 방향성을 예고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이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고 그대로 안창호 위원장을 임명한 것은 윤 대통령의 인사가 얼마나 오른쪽 이념의 극단으로만 치우쳐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 장면이다.

    9월 2일 국회 국방위원회는 김용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을 열었다. [뉴스1]

    9월 2일 국회 국방위원회는 김용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을 열었다. [뉴스1]

    ‌함께 임명된 김용현 국방부 장관의 경우도 민심의 지지를 얻기에는 여러 가지 걸리는 문제가 존재했다. 우선 윤 대통령의 고등학교 선배이고 윤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그가 경호처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카이스트 졸업식장에서 이른바 ‘입틀막’ 사건 등의 과잉 경호 논란이 빚어졌다. ‘채 해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연루 의혹 문제도 아직 말끔하게 결론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민심보다도 자신의 신임을 우선하는 인사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 윤 대통령의 인사정책이 중도층을 비롯한 민심을 얻으려 하기보다는 자신의 뜻을 충직하게 이행할 사람을 중용한다는 평가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22대 총선에서 여당이 최악의 참패를 당한 이후로도 그 같은 인사 기조가 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보수우파 지지층만을 의식한 진영 인사로 더욱 치우친 모습이다.

    윤 대통령이 두 사람의 임명을 강행하면서 국회 동의 없이 임명된 장관급 인사는 모두 29명으로 늘었다. 물론 국회 다수당인 야당의 비협조 환경에서 불가피한 면은 있지만, 4·10 총선 참패 뒤에도 야당이 청문보고서 채택을 거부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에 이어 김용현 장관과 안창호 인권위원장까지 전원 임명한 것은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는 문제다. 윤 대통령이 중도층을 중심으로 한 지지 기반을 복원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오직 강성 보수우파층만 의식한 국정운영을 고집한다는 비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김문수=태극기 부대, 뉴라이트

    8월 2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는 김문수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뉴스1]

    8월 2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는 김문수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뉴스1]

    이에 앞서 임명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의 경우도 그러하다. ‘김문수’라는 이름을 들으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당시에 태극기를 들고 연단에 올라가 탄핵 반대를 외치던 모습을 많은 국민은 기억하고 있다. ‘김문수=태극기 부대, 뉴라이트’라는 인식은 단지 야당만의 주장이 아니라 중도층에서도 광범위하게 확산돼 있는 인식이다. 실제로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김 장관이 적극적으로 발언한 내용을 봐도 그러하다.

    김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관련해 “탄핵은 잘못됐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재평가될 것”이라는 소신을 밝혔다. “(헌재) 결정은 결정대로 인정 안 할 수가 없다”는 말을 덧붙이기는 했지만, 이는 어떤 의미로든 역사의 교훈을 남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부정하는 입장으로 해석된다. 김 장관은 더 나아가 “박근혜 전 대통령은 뇌물도 알지도 못하고 받을 사람도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물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임 중에 여러 가지 잘못을 했던들, 그렇다고 징역 20년의 중형을 받아야 할 일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나올 수 있다. 당시의 분위기 때문에 법원도 범죄 내용에 비해 가혹한 판결을 내렸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장관 후보자가 된 사람의 입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자체를 부정하는 얘기가 나오는 광경은 결국 윤 대통령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어째서 전광훈 목사나 태극기 부대와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을 장관으로 임명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나오게 돼 있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는 김 장관의 역사 인식을 둘러싼 논란도 그대로 재연됐다. 제주 4·3 사건에 대해 김 장관은 “명백한 남로당 폭동”이라며 “그 과정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양민에 대해 국가가 사죄한 것”이라고 답했다. 또 “일제시대 때 나라가 망했는데 무슨 국적이 있느냐”며 당시 선조들의 국적은 ‘일본’이라고 주장해 논란을 키웠다. 건국 연도에 대해서도 1919년에 세워진 것은 임시정부이며, 1948년 8월 15일이 건국절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답변을 했다. 김 장관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보여준 입장은 우리 사회에서 ‘극우’ 혹은 ‘뉴라이트’라고 불리는 층에서 나오는 주장과 대동소이하다.

    ‘태극기 부대’를 이끌어온 전광훈 목사가 김문수 장관 후보자 지명에 대해 “제일 잘한 인사”라고 평가한 것은 그런 의미가 실린 얘기다. 전 목사는 유튜브 채널 ‘전광훈 TV’에서 “(윤 대통령이) 싸워서 이기는 사람을 장·차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며 “지난 2년 동안 했던 인사 중에 윤 대통령이 제일 잘한 인사”라며 김 장관을 치켜세웠다. “장관은 오래 할 필요 없다. 1년만 하고, (김 후보자를) 총리로 임명해야 윤 대통령이 임기 끝나고 감방에 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전 목사의 주장이었다. 중도층 시선이 싸늘한 가운데 태극기 부대를 대표하는 인사로부터 격찬을 받는 인사가 어떤 의미인지 윤 대통령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야당에 의해 국회에서 탄핵 소추 의결이 이뤄져 현재 직무정지 상태에 있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도 강성 보수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물론 방통위가 공영방송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하려고 방통위원장에 대한 ‘무한 탄핵’을 거듭해 온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모습은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자신들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1년 만에 공영방송을 손봐서 자기들 편으로 만드는 조치들을 밀어붙이고서, 윤석열 정부가 집권 3년차에 이르러서야 공영방송의 재편을 모색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가로막는 행위는 납득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야당으로 하여금 탄핵 소추의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정치적 중립성을 인정받는 인물을 방통위원장에 중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시절에 현재의 MBC 주도 세력과 대립관계에 있어 원한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과거 보수 정부 시절 인사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야당의 반발 이전에 국민의 시선이 어떠할지를 생각했어야 했다. 결국 정권만 바뀌면 여야 정치세력이 서로 똑같이 내로남불의 방송 장악을 한다는 시선을 윤석열 정부도 자초한 결과가 됐다. 특정 진영에 갇혀 있지 않은 다수 국민은 공영방송이 어느 한 진영의 방송이 아니라 국민의 방송이 되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윤 대통령이 솔선해서 자기편 사람들에게만 갇히지 말고 국민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탕평의 중립형 인사를 하는 결단을 내렸어야 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그런 바람과는 정반대로 오직 자기편의 가장 오른쪽에 있는 인사만 중용하는 인사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4월 총선 결과는 정권에 대한 심판

    4월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역대급 참패를 당한 것은 정권에 대한 심판이었다. 이에 윤 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총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더 낮은 자세와 더 유연한 태도로 더 많이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이러한 다짐은 국민에게 직접 육성으로 전달됐으니 국민에 대한 약속이었던 셈이다. 다수 국민은 당연히 윤 대통령이 민심에 부응하는 국정 쇄신을 모색할 것으로 기대했다. 윤 대통령에게 실망해 등 돌린 중도층의 마음을 다시 얻으려는 노력은 그 가운데서도 핵심이 되는 일이었다.

    국정에는 여러 가지 영역이 있지만, 인사야말로 만사라는 얘기를 할 정도로 국민의 피부에 가장 와닿는 정책이다. 윤 대통령이 이반된 민심을 되찾고 이제라도 국민의 협력을 기대하려면 좀 더 중도적으로 전환하는 길을 모색했어야 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정반대의 길을 가는 모습을 특히 장관급 인사를 통해 반복적으로 보이고 있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영문을 모를 일이다. 진영을 넘어서는 탕평 인사를 해야 윤 대통령이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을 판에 거꾸로 보수우파의 가장 오른쪽에 있는 인사들만 중용하는 고집을 부렸다.

    대통령실에서는 보수우파 지지층을 결집하는 일이 우선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들려온다. 대통령이 감당해야 할 통합의 리더십 같은 말은 차치하고라도, 정무적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방향성이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킨 보수-중도 연합의 복원이야말로 윤석열 정부의 재기를 위해서도, 보수 정치세력의 재집권을 위해서도 절박한 과제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인사 때마다 중도층을 외면하고 강성 보수우파층의 지지만 받는 선택을 반복하고 있으니 단견이 아닐 수 없다. 고집스러울 만큼 이념적으로 오른쪽의 극단만 중용하는 윤 대통령의 인사로는 윤석열 정부는 물론이고 여당인 국민의힘도 다가오는 선거에서 필패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런 앞날을 세상 사람들은 다 내다보고 있는데, 어째서 윤 대통령과 용산 사람들만 그 생각을 못하는지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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