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류’는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이제는 ‘글로벌 문화 현상’이다. 그런데 중동국가인 이란에서 한국 드라마의 폭발적인 인기가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MBC의 ‘대장금’이 시청률 90%를 기록한 이후 지난해에는 MBC의 ‘주몽’이 85%가 넘는 시청률을 보였다. 언뜻 봐서는 한국과 문화적인 공감대가 별로 없을 것 같은 중동국가 이란. 왜 이란인은 한국 드라마에 열광할까.
(좌) 이란에서 한류열풍을 주도했던 ‘대장금’의 이영애. (우) 최근 이란을 강마 ‘주몽’의 송일국과 한혜진.
송씨가 이란에 머문 기간은 18일부터 21일까지 3박4일 일정이었다. 이란 언론은 그의 도착 일정을 전하지 않았지만 공항에는 송씨 팬이 150여 명이나 몰려들었다. 그가 머문 기간 내내 호텔 밖에는 팬들이 진을 치고 송씨가 오갈 때마다 길을 막았다.
1500km나 떨어진 지방에서 테헤란으로 무작정 상경한 여성도 있었다. 호텔 경비가 삼엄해 들어갈 수 없자 송씨 얼굴을 한번이라도 볼 수 있도록 들어가게 해달라고 우는 여성도 있었다. 일부 여성 팬 중에는 송씨 숙소인 에스테그랄 호텔을 예약해 송씨와의 만남을 요청하는 바람에 송씨가 파자마 바람으로 만나주기도 했다.
한 이란 아이는 주몽을 만나고 싶다며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해 부모가 이란 주재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 소년은 결국 김영목 이란 주재 한국대사의 특별 주선으로 송씨를 만났고, 소년 부모는 “아이를 살려줘 고맙다”며 김 대사에게 감사를 표했다.
주몽이 이란에서 첫 전파를 탄 것은 2008년 12월9일. 이란 국영방송 3번 채널에서 매주 화요일 오후 8시30분에 ‘전설의 왕자’라는 제목으로 방송되기 시작했다. 주몽은 2005년부터 2006년까지 한국에서도 인기리에 방송됐던 드라마로 고구려 건국 시조인 주몽에 대한 이야기다.
주몽은 방송 시작과 동시에 떠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한 이란인은 2009년 12월 전세계 누리꾼들이 영어로 자국 소식을 전하는 블로그 사이트인 글로벌포스트(www.globalpost.com)에 익명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한국 드라마 주몽은 이란의 안방풍경을 바꿔놓았다. 이란에서 가족들은 보통 밤에 함께 모여 신선한 차를 마시거나 과일을 먹으면서 담소를 나눈다. 학교가 방학을 하는 여름에는 가족 간의 대화가 밤늦게까지 계속되기도 한다. 그런데 한국 드라마로 이런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란인은 이제 저녁식사만 끝나면 TV 앞에 모여든다. 주몽을 시청하기 위해서다. 주몽 주인공 사진은 이란 도처에 있다. 심지어 음식을 담는 접시에까지 있을 정도다. 이란 팬은 이제 블로그를 만들어 드라마에 대해 토론하기도 한다. 청소년들에게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주몽과 소서노(주몽의 여인으로 한혜진이 역할을 맡았음) 사진을 실은 공책 등 문방구가 나오기도 했다.”
한국행 요구하며 자살 기도
이란에서 주몽 인기가 치솟자 다소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해 이란 언론에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이란 언론에 따르면 이란 남서부 도시인 잔얀에 사는 한 젊은이가 주몽의 여주인공인 소서노에게 푹 빠졌다. 이 젊은이는 한국에 가서 소서노에게 청혼을 해야겠다며 아버지에게 기르고 있던 염소와 양을 팔아 여비를 마련해달라고 몇 차례 요청했지만 거절당하자 천장에 목을 매고 자살을 기도했다는 것이다.
이란 주재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한 이란 청년은 자신의 이름을 ‘주몽’으로 개명해달라고 법원에 신청했고, 목장 경비원은 주몽을 보는 데 정신이 팔려 근무 중에 양 90마리를 도난당하기도 했다.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지만 어떤 부모는 외출했다가 주몽을 보기 위해 서둘러 귀가하면서 어린 아들을 방기해 아들이 교통사고로 숨졌다는 소문도 있다고 한다.
이란에서 인기가 있는 한국대중문화 콘텐츠 전용사이트 캡처화면. 사이트 이름이 주몽이다.
주몽이 인기를 끌면서 송일국씨가 출연한 다른 드라마도 동시에 뜨고 있다. 송씨가 출연한 KBS의 ‘바람의 나라’도 이미 이란에 수출돼 방송을 앞두고 있는 상태다.
주몽의 인기를 계기로 이란에선 주몽을 딴 한국 드라마와 음악 등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 전용사이트(www.jumong.ir)도 개설돼 인기를 끌고 있다. 이곳에선 최근 한국 드라마와 영화 등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구매할 수도 있다. 이 밖에 한국 드라마와 영화 콘텐츠 구입 사이트(www.dvdirani.com)도 인기 사이트다.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열기도 높아가고 있다. 이를 겨냥해 한국에 살고 있는 이란인들이 고국에 있는 이란인에게 한국어도 가르치고 한국 드라마 정보도 알려주는 블로그(iraniankorea.blogfa.com)를 개설해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블로그의 경우 접속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누리꾼이 이란에서 접속하는 사람들이다.
한국 드라마가 이란에서 인기를 끌면서 한국 제품도 브랜드 가치 제고 효과가 크다는 전언이다. 특히 LG전자는 주몽 주인공인 송일국씨를 자사 TV광고모델로 선정해 공격적인 마케팅활동을 하는 중이다.
이란이 한국 사극 좋아하는 이유
그렇다면 왜 이란인은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는 걸까. 마흐디 사다티씨는 최근 영자지인 ‘코리아타임스’ 기고를 통해 이렇게 분석했다.
“한국 드라마는 스토리 라인이 단순해 선과 악이 분명한 점과 함께 역사를 소재로 한 것이 많아 이란에서 인기가 있다. 또 드라마 속의 주인공 설정이 잘 돼 있고, 배우들이 마음속에 담고 있는 것을 잘 표현해 이란 젊은층에 인기가 매우 높다. 이란 젊은이는 한국 드라마 주인공을 통해 사랑, 증오, 질투, 희생 그리고 배신 등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보며 느낀다. 그리고 한국 드라마는 서구에서 만든 작품에 비해 친구에 대한 우정, 가정에 대한 배려 등을 훨씬 많이 언급하고 있어 이란인들이 공감하기 쉬운 구조다. 또 두 나라 역사가 깊다는 점도 공통점이어서 한국 역사극을 이란인이 좋아하는 것 같다.”
그의 분석 중 흥미로운 점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복장에 관한 언급이다. 사다티씨는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옷이 아름답고 색깔이 화려해 많은 이란 여성이 한국 옷을 사고 싶어한다. 특히 한국의 전통 옷은 몸 전체를 감싸는데, 이는 이란 여성들의 복장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MBC 해외사업팀의 허정숙 차장은 “이란은 사극을 선호하는데 이는 종교적인 이유로 맨살이 드러난 여자가 등장하는 TV드라마를 기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란에서 방송되는 TV드라마에서는 여자의 어깨가 노출되거나 혹은 치마를 입었을 때 무릎 위가 드러나는 것은 금기시된다는 것.
한국 기준으론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은 장면도 이란에선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문제 장면은 편집할 수 있지만 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의 경우에는 전체적인 줄거리가 훼손될 정도로 편집을 많이 해야 해 재미가 떨어지기 때문에 얼굴을 빼놓고 맨살이 드러나지 않는 한국 사극은 안성맞춤이라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이란에서 수입해간 한국 드라마는 사극이 대부분이다. MBC의 경우 이란과 ‘일지매’‘이산’ 수출계약을 맺었고, KBS는 ‘바람의 나라’ 외에도 ‘해신’을 이란에 판매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주몽 언급
지난해 이란을 방문했던 ‘주몽’의 송일국씨(오른쪽에서 세 번째).
한국 드라마의 인기로 이란에서 한국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고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 드라마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역풍도 없지 않다. 일각에선 이란인들이 이란 역사에 대해선 관심을 두지 않고 한국 드라마 출연인물에 대해 지나친 관심을 두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영화비평가인 페즈만 카리미씨는 “이란과 전혀 다른 문화권의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은 문제이며, 이런 드라마가 인기를 끌도록 한 것은 예술행정가들의 책임”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또 ‘자메잠지’라는 잡지에는 “주몽 출연인물에 대해선 줄줄 꿰면서 이란의 역사적인 인물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것이 있을 수 있는가. 이란인의 취향과 문화를 담은 인기 드라마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칼럼이 게재되기도 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전반적으로는 한국드라마에 대해서 우호적인 분위기다. 특히 신정(神政)국가인 이란에서 그 영향력이 대통령보다도 크다고 할 수 있는 아야톨라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지난해 9월 이란 문화예술인 대표와의 간담회에서 주몽을 언급해 이 같은 논란을 정리했다.
다음은 그의 발언 내용이다.
“예술작품은 가상을 그럴듯하게 만드는 것이다. 현재 방영되고 있고, 모두가 시청하고 있는 이 한국드라마(주몽)는 역사를 만들고 있는, 가상의 판타지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샤흐나메(이란의 영웅이야기)를 펼쳐들고 그와 유사한 영웅 이야기를 찾으면 열댓 개는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예술적으로 작품을 만들면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이라도 그저 앉아서 재미있게 지켜보기만 하면 역사와 문화에 대해 부지불식간에 접하게 되고, 이를 흡수하게 된다. 이것이 좋은 예술의 특징이다.”
주몽을 비판만 하지 말고, 이란 예술계와 문화계는 이에 견줄 만한 작품을 만들어보라는 취지의 발언이다. 그의 발언은 이란 언론을 통해 보도됐으며, 최고지도자 공식 웹사이트에도 올라 있다. 언론과 일부 종교계에서 주몽을 사회적 병리 현상의 한 원인으로 지목하고, 이에 대한 자성 운동의 움직임이 있자 국가 최고지도자까지 나서서 주몽 관련 논의를 긍정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주몽을 포함한 한국 드라마가 이란 내에서 얼마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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