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군 물량까지 폴란드에 내줬지만
불량품 납품 ‘누명’ 쓰게 된 KAI
FA-50GF 12대 중 11대 비행 중
레이더, 지상 장비 점검 일정대로 진행
무장 등 장비 도입은 폴란드가 美 허가 받아야
폴란드 수출용 FA-50PL. [홍중식 기자]
FA-50을 둘러싼 논란은 국정감사 도마에도 올랐다. 10월 15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방위사업청 국정감사에서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FA-50GF) 11대가 서 있다는 현지 언론보도가 있고, 6대밖에 서 있지 않다는 것이 방사청과 KAI 주장인데 내가 알기로는 7대가 서 있다”며 “전투기를 사면 무장도 꾸러미로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무장을 통합 제공하지 못해 작금의 문제가 발생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KAI 측은 이러한 지적이 “누명에 가깝다”고 반박한다. 계약 내용에 따라 FA-50을 폴란드 정부에 수출했다는 것. KAI 관계자는 “세부 계약 내용을 두고 오해가 있던 부분도 해소됐다”며 “납기 일정에 맞게 FA-50 납품을 마칠 것”이라 말했다.
현지 규정상 수리 부품 발송 어려워
논란의 핵심은 초도 수출 물량인 FA-50GF의 불량 여부다.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FA-50GF는 불량이 아니다. FA-50GF는 당초 폴란드의 사정 때문에 급하게 수출한 기체다.
KAI는 2022년 9월 폴란드 정부와 FA-50 수출 계약을 맺었다. 계약한 물량은 총 48대. 폴란드는 FA-50이 당장 필요한 상황이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에 노후 전투기인 MiG-29를 대거 공여했다. 노후 전투기지만 공군 전력이 일시에 사라진 셈이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한 기체가 FA-50GF였다.
KAI는 한국 공군에 납품 예정이던 FA-50 12대를 폴란드에 우선 수출하기로 결정했다. 계약 1년 3개월 만인 올해 1월 인도를 완료했다. 현재 FA-50GF 12대 중 11대가 가동되고 있다. 대부분이 비행 불가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닌 셈이다.
물론 일부 항공기가 정비 대기로 비행이 불가능한 기간도 있었다. 이는 수리부속·부품 통관 절차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2022년 7월 신설된 폴란드 기술개발부 규정상 일부 수리 품목을 한국에 발송할 수 없게 됐다. 문제는 해당 품목이 비행 성능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부품이었다는 점이다.
이에 KAI는 지난해 7월 폴란드 민스크 공군기지에 기지 사무소를 열었다. 한국에서 부품을 받아 수리할 수 없다면 이를 정비할 수 있는 인력을 보내겠다는 심산이었다. 이후 이곳에 정비하기 위한 인력과 부품을 보냈다. 지금도 관련 인력이 이곳에 상주하며 FA-50GF를 정비하고 있다.
FA-50GF는 무장이 실리지 않았다는 비판도 받았다. 폴란드의 유명 군사 매체인 ‘Defense24’는 9월 12일 “폴란드가 도입한 FA-50GF가 무장이 없는 전투기”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KAI 측이 밝힌 바에 따르면 FA-50GF는 계약상 무장 장착 의무가 없다. KAI 관계자는 “현재 FA-50GF에 무장을 장착해 폴란드 맞춤형 개발 모델인 FA-50PL로 개조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 밝혔다.
FA-50의 장점 중 하나는 미국 전투기와의 유사성이다. FA-50의 원형은 대한민국 최초의 국내 개발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이다. KAI가 미국 록히드마틴과 F-16을 기반으로 공동 설계한 기체다. T-50에 무장을 달 수 있게 개조한 기체가 FA-50이다. F-16 구조와 유사해 훈련기로 적합한 데다가 경전투기인 만큼 전투 능력도 있다.
FA-50은 한미연합훈련을 치르며 미군기들과 합동 훈련한 경험도 있다. 그 때문에 미국산 항공 무기 도입을 생각하는 나라들은 FA-50에 관심을 갖고 있다. 폴란드 공군도 2009년부터 F-16을 도입해 주력기로 운용하고 있다. 폴란드의 FA-50 도입 배경에는 훈련기로 사용할 의도가 깔려 있었을 공산이 크다. 수출 계약 체결 당시 안현호 전 KAI 사장도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폴란드 공군이 FA-50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F-16과의 유사성”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한국의 신형 전투기 KF-21. [KAI]
2023년 8월 폴란드 라돔에어쇼 참가를 위해 FA-50GF(좌)와 MIG-29(우)가 임무 교대 비행을 하고 있다. [KAI]
레이더 도입, 일정대로 진행 중
KAI는 나머지 36대는 FA-50PL로 납품할 예정이다. 계약상 2028년까지 납품을 완료해야 한다. 하지만 FA-50GF에 대한 불량 루머와 함께 FA-50PL 도입 지연설도 불거지고 있다. KAI가 FA-50PL에 탑재할 미국산 레이더와 무장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
도입 지연설도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폴란드 정부는 FA-50 도입 결정 당시 능동위상배열(AESA·Active Electronically Scanned Array) 레이더와 미국산 무장을 요구했다. 주력기인 F-16과의 연동을 고려한 판단이었다.
레이더와 무장 탑재에는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일단 AESA 레이더를 사용하려면 상용 내장형 위성관성항법장치(EGI·Embedded GPS Inertial Navigation System)가 필요하다. 계약 당시 EGI는 폴란드가 미국 정부로부터 확보해 KAI에 제공하기로 했다. 이 EGI 확보가 지연되면서 레이더 장착에 차질이 빚어졌다. KAI 관계자는 EGI 확보 지연 문제에 대해 “확보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폴란드 정부와 함께 노력 중”이라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한국산 AESA를 설치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미국의 대외 군사무기 판매 정책상 미국산 무장을 달려면 미국산 레이더를 설치해야 한다. 미국은 한국의 신형 전투기 KF-21에 미국산 레이더 미설치를 이유로 미국산 미사일 장착을 거부한 이력이 있다. FA-50PL도 이 같은 이유로 한국산 AESA를 장착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편 KAI 측은 “레이더 문제가 납품 일정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 주장한다. 당장 레이더가 필요한 시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계약에 따르면 FA-50PL 레이더 성능과 기능 시험 일정은 내년이다.
KAI 측 설명에 따르면 현재 FA-50PL 개발 일정에 맞춰 지상장비 점검과 관련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폴란드 현지 언론 ‘Portal Obronny’도 10월 25일 “FA-50PL 개발이 큰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다”며 “급유 시스템, 레이더 설치 관련 실험도 진행 중”이라 보도했다.
폴란드 FA-50에 KF-21 수준 무장 원해
한국 공군 F-35A 전투기가 가상의 공중 표적을 향해 AIM-120 암람(AMRAAM)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왼쪽). 공군 KF-16 전투기가 공중 표적을 향해 AIM-9X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하는 모습. [뉴스1]
폴란드 정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FA-50PL에 AIM-9 L/M의 최신 개량형인 AIM-9X와 AIM-120(AMRAAM·암람·능동 유도형 중거리 공대공미사일)을 장착할 계획이었다. 이 두 무장은 한국의 신형 전투기 KF-21에 실릴 뻔했다. 하지만 미국의 수출 승인 지연으로 무산됐다. 대신 KF-21에는 유럽산 공대공미사일인 AIM-2000과 미티어를 탑재할 계획이다.
폴란드 정부는 일단 미국에 AIM-9X 도입 승인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군 관계자는 “AIM-9X는 미국이 아닌 국가에서 생산된 전투기에 탑재된 이력이 없다”며 “수출 이력이 없는 무기인 만큼 폴란드 정부가 미국 정부의 승인을 얻는 데 꽤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AIM-120 탑재는 조금 더 복잡한 사정이 있다. AIM-9X에 비해 AIM-120이 훨씬 설치가 어려운 무기이기 때문이다. AIM-9X는 적외선을 사용해 표적을 추적한다. 반면 AIM-120은 레이더를 이용해 표적을 추적한다. AIM-9X에 비해 훨씬 더 먼 거리에서 많은 표적을 격추할 수 있다. 레이더와 무기를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설치가 어렵다. 일부 기체에는 아예 설치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KAI도 폴란드와 FA-50PL 수출 계약을 맺을 때 AIM-120은 장착 가능성만 검토해 주기로 못 박았다. 장착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공은 다시 폴란드 정부로 넘어간다. 폴란드 정부가 직접 미국 정부에 도입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KAI는 폴란드의 무기 도입을 돕겠다고 나섰다. 윤종호 전 KAI 부사장은 폴란드 현지 언론 ‘Polsat News’와의 인터뷰에서 “KAI가 미국 정부와 협상할 권한은 없다”면서도 “KAI는 물심양면으로 폴란드 정부를 돕겠다”고 밝혔다. KAI는 미국 정부, 방위산업체와 다년간 협력해 온 경력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 정부를 설득하는 일을 돕겠다는 취지다. 윤 전 부사장은 ‘언제쯤 문제가 해결될 것 같으냐’는 질문에 “최악의 경우에도 내년 3~4월까지는 레이더 및 무기 승인 문제가 일단락될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KAI가 일정대로 FA-50 시리즈를 폴란드에 납품한다면 합계 수출액은 약 4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폴란드 수출 FA-50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한국 방위산업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대형 계약이라 잡음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며 “이를 극복하고 FA-50 납품에 성공하면 한국은 방위산업 강국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KAI가 납품한 FA-50GF 12대가 폴란드 민스크 공군기지에 늘어서 있다. [KAI]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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