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남아 한류 공연 대성황…“누나~ 예뻐요, 여신 같아요”
- 한류 몰고 오는 제비 ‘대장금’ 스리랑카서 90% 시청률
- “문화침투로 접근해선 안 돼…각국 전통 존중해야”
박근혜 정부도 ‘매력한국’ 건설을 위한 국민외교시대의 개막을 선언하며 공공외교를 대폭 강화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국회에서도 처음으로 공공외교 활성화 법이 발의돼 관련 상임위원회에서 논의 중이다. 공공외교의 전초기지 격인 178개 재외공관에서 벌일 ‘매력한국 알리기’ ‘코리아 코너’설치,‘코리아 콘테스트’ 등을 위해 50억7000만 원의 예산을 배정하는 등 외교부 예산만 60억 원이다. 전 재외공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업수요조사 결과를 토대로 현지 실정에 맞는 ‘맞춤형’ 공공외교도 펼쳐나갈 예정이다.
외교부는 수교 40주년을 맞은 방글라데시와 독립 65주년을 맞은 스리랑카를 축하하기 위해 문화공연단을 파견했다. 케이팝(K-POP)과 한국 드라마가 전 세계 대중의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에 비해 두 나라는 우리 문화의 소개가 미진했던 지역이다.
4월 26일 스리랑카 대통령 부인 시란티 라자팍사 여사가 한류 공연이 열린 넬럼파쿠나 극장을 찾아 공연 팀에게 선물을 증정하고 있다.
4월 26일 오후 스리랑카 콜롬보 넬럼 파쿠나 극장. 스리랑카 독립 65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파견한 문화공연단이 ‘한국, 스리랑카를 만나다’라는 주제로 공연을 펼치는 곳이다. 무대는 이미 스리랑카 국립무용단의 멋들어진 군무(群舞)로 예열이 끝난 상태였다. 가슴을 울리는 강력한 타악기 리듬에 맞춰 화사한 전통의상으로 한껏 멋을 낸 남녀 무희들은 신명 나는 손동작과 스텝을 보여줬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모자와 몸에 걸린 수많은 장신구가 만들어내는 파열음은 무질서 속의 묘한 질서를 느끼게 했다. 1269석 규모의 공연장을 빈틈없이 메운 관객들의 어깨도 덩달아 들썩거렸다.
뒤이어 오늘의 주인공인 비보이 ‘진조크루’와 퓨전 국악팀 ‘퀸’이 나란히 섰다. 처음으로 공모를 통해 선발된 두 팀은 한국과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싹트고 있는 스리랑카에 한류(韓流) 열풍을 확산시킬 기폭제가 돼달라는 외교부의 특명을 받고 방문길에 올랐다. 진조크루는 세계 5대 비보이 대회에서 우승하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비보이들. 퀸 역시 한국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수많은 해외무대에서 한국을 소개해온 베테랑들이다.
반응은 시작부터 폭발적이었다. 최고의 비트박서 제이캅(J-COP)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진조크루의 신기에 가까운 환상적인 몸놀림에 스리랑카의 한류팬들은 극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으로 화답했다. 한국 사람보다 더 정확한 발음으로 “사랑해요!”라고 환호성을 지를 때는 마치 유명 케이팝 스타의 한국 공연장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단아한 미모의 여성 5인조 그룹 퀸의 선율은 스리랑카 청년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누나 예뻐요” “여신(女神) 같아요” 라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퀸 멤버들은 온화한 미소와 절제됐지만 우아한 몸동작으로 답했다.
한류 씨앗 물고 온 제비 ‘대장금’
공연 중간에 마련된 ‘비보이 교습’ 행사 역시 미래의 비보이 스타를 꿈꾸는 스리랑카 젊은이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4명만 올라와 달라는 장내 아나운서의 안내 방송에도 불구하고 무려 21명의 자원자가 무대로 단걸음에 뛰어올랐다. 진조크루의 리더이자 예술감독을 겸하고 있는 베테랑 비보이 김헌우(예명 ‘윙’) 씨가 5개의 기본동작을 친절하게 설명했다. 세계 랭킹 1등의 자리까지 오른 경험이 있는 ‘윙’은 대형 스리랑카 국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무대에 오르는 자상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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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콜롬보,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열린 한류 공연은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한국 문화 전령사들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 사람들 중에는 스리랑카 대통령 부인 시란티 라자팍사 여사도 있었다. 귀빈석에 동행한 티사 비타라나 과학부 장관, 반둘라 구나와데나 교육부 장관, 와산타 에카나야케 문화예술부 차관, 말리카 사마라세케라 국세청장 등 정부 요인들도 공연 내내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스리랑카 대통령 부인이 이날 공연장을 찾은 것은 최종문(외무고시 17회) 주(駐)스리랑카 대사 부부와의 특별한 인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해 4월 한국을 국빈 방문한 스리랑카 대통령 부부는 최 대사 부부와 친밀한 관계로 발전했다. 특히 최 대사 부인 박순주 씨와 라자팍사 여사는 매일 오전 같이 조깅을 하는 특별한 친구가 됐다.
사실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등 서남아 지역은 한류 열풍의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불모지에 가까웠다. 동남아 지역과 중동 지역이 일찌감치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와 사랑에 빠진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전문가들은 서남아 지역이 이른바 ‘발리우드’로 불리는 인도 영화산업의 영향권에 들어 있고 최상류층은 여전히 영국 등 유럽의 문화를 선호하는 탓에 상대적으로 한류의 진출이 힘들었다고 평가한다.
스리랑카 한류 열풍의 첨병은 역시 흥행보증수표 ‘대장금’ 이었다. 한국 대사관은 올해 초 스리랑카의 국영방송국 격인 루파바히니 방송국에 거의 공짜로 대장금의 방영권을 주되 수익이 날 경우 분배한다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고, 오후 6시반 황금시간대에 배정된 대장금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평균 90%라는 믿기지 않는 시청률을 기록해 이 시간이면 스리랑카 주부들이 거의 모두 일손을 멈추고 TV 앞에 앉았다는 말도 회자된다.
‘대장금’의 인기를 사극 ‘동이’가 그대로 이어받아 한국 드라마 열풍에 가세했다. 최종문 대사는 “역대 주스리랑카 대사 13명이 36년 동안 못한 일을 대장금이 단 1년 만에 해냈다”고 말했다.
4월 26일 방문한 현지 방송국에서 대장금 흥행의 또 다른 이유를 찾아낼 수 있었다. 한국에서 찾아온 필자를 위해 방송국 관계자들은 대장금과 동이의 더빙 과정을 재현해줬다. 서너 명의 성우가 변사(辯士)처럼 여러 배역을 소화하는 저개발국들의 일반적인 관행을 탈피해 전 배역에 대해 전담 성우를 맡길 정도로 성의를 다했다. 우리로 치면 배한성, 송도순 급의 특급 ‘더빙 아티스트’가 총망라됐다는 것이 아툴라 란시리랄 페레라 더빙국장의 설명. 문맹률 47.5%의 방글라데시가 대장금을 방영할 때 더빙이 아닌 자막 처리를 했고 그나마 영어자막을 사용해 흥행 참패를 맛본 뼈아픈 경험도 고려했다.
매스컴 활용한 한류 확산
서남아 최고의 인기 스포츠는 크리켓이다. 주재국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이 최고의 공공외교임을 잘 알고 있는 최종문 스리랑카 대사는 부임 직후 크리켓을 배웠고, 크리켓 경기장을 자주 찾고 최고의 크리켓 스타를 관저에 초청해 교분을 쌓는 등 현지인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최 대사는 여러 나라의 도서관 한 곳을 할애해 만드는 ‘코리아 코너’나 ‘세종학당 개설’ 등의 방식보다는 미디어를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한국을 알리는 것이 보다 효과적인 공공외교의 방식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한국의 문화 공연단이 한 번 방문하면 최소 1억 원 이상의 비용이 드는데 이틀 공연으로 2000명 정도의 현지인만 보고 끝나서는 안 된다는 지론이다.
한국대사관의 주선으로 진조크루와 퀸은 공연 전에 현지 주요 방송국과 인터뷰를 통해 공연 홍보를 했다. 유력 방송국 중 하나인 ‘ITN’은 행사 당일 공연실황을 자세히 전했고 일간지 ‘실론 투데이’는 2개면에 걸쳐 특집기사를 실었다. 국영방송 루파바히니는 5월 11일 오후 공연실황 전체를 다시 중계했다.
공연단은 성공적인 스리랑카 공연을 마치고 4월 28일 방글라데시 다카 공항에 내렸다. 나흘 전 발생한 의류공장 붕괴사고로 10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국가 재난급 손해를 입은 직후라 분위기는 무거웠다. 둘째 날 공연이 예정된 5월 2일에는 의류공장 붕괴 사고 등에 항의하는 야당 주도의 대규모 하탈(일종의 총파업 또는 동맹휴업 시위)이 예정돼 있다는 소식도 들렸다. 국가재난사태 때 국가가 분열돼서는 안 된다는 여야 합의로 하탈 계획은 막판에 취소됐다. 인구 1억6220만 명으로 세계 7위지만 국토면적 대비 인구밀도로는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나라답게 거리에서 보이는 것은 온통 사람뿐이었다.
이윤영(외무고시 21회) 주방글라데시 대사는 한국 외교가 지향하는 공공외교가 주재국의 실정에 맞게 맞춤형으로 가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문화는 단순히 문화 전파 차원에서만 보면 효과가 반감되고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상대방을 존중하고 문화의 교류 역시 쌍방향 흐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 이 대사는 대사관저에서 열리는 기업인 만찬 등 현지인들과 교류가 이뤄지는 현장에서는 방글라데시 전통의상인 ‘빤자비’를 즐겨 입는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최근 국회 ‘한류(韓流)연구회’ 창립총회 연설에서 “전 세계 178개 재외공관이 문화외교와 공공외교의 전초기지가 되도록 하고자 한다”며 “재외공관들은 현지 습관, 문화적 특성 및 외교적 관계 등을 고려하고 공관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현지 실정에 맞는 맞춤형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류 및 우리의 공공외교가 문화침투나 문화 우월주의로 비치지 않아야 세계인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톱 5% 상류층 공략하라
주방글라데시 한국대사관은 아직 한국 문화의 저변이 폭넓게 확대되지 않은 현지 사정을 고려해 일단 한국의 문화를 상류층이 향유하는 문화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했다. 여론 주도층이나 방글라데시 사회에 영향력이 강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공공외교를 통해 보통 사람들에게도 한국의 가치와 문화가 사랑받는 방식을 택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교민 수가 1000명을 약간 웃도는 정도의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만 한국식당이 7개가 넘고 앞으로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 현지에서 만난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식당이 가장 고급 식당으로 통한다”며 “손님 중 대다수는 방글라데시 사람”이라고 말했다. 매운맛을 좋아하는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기호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국 음식의 가치가 현지인들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다카에서 한식은 상류층이 비싼 값을 내고도 기꺼이 즐기는 고급문화가 되고 있었다.
한국은 다카에서 남동쪽으로 약 29㎞ 떨어진 ‘황금의 도시’ 소나르가온의 유적복원 사업을 돕고 있다. 방치된 인류의 문화유산을 되살린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작업이다.
이윤영 대사의 소개로 방글라데시 문화계를 이끌고 있는 상류층의 생활을 엿볼 기회도 있었다. 방글라데시 현대미술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2011년 설립한 비영리 ‘삼다니 예술재단(Samdani Art Foundation)’의 창립자이자 재단이사장을 맡고 있는 라지브 삼다니 회장 부부의 갤러리 겸 저택은 방글라데시 미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모두 만날 수 있는 종합전시장이었다. 자녀가 미술을 전공하는 이 대사의 개인적 흥미로 시작된 만남이지만, 이제는 한국과 방글라데시 간 현대미술의 교류 활성화를 논하는 공식적인 소통의 창구로 발전했다.
방글라데시의 삼성과도 같은 존재인 벵갈그룹이 출연해 만든 ‘벵갈재단(Bengal Foundation)’은 방글라데시의 문화를 진흥하기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법인이다. 음악과 미술은 물론 영화, 연극, 행위예술 등 문화와 관련된 거의 모든 분야를 후원하고 있다. 벵갈그룹 창업자이자 벵갈재단 회장인 아불 카이르 씨의 집에서 열린 오찬모임에는 벵갈재단의 주요 관계자는 물론 교수, 언론인이 다수 모였다. 이 자리에서 이윤영 대사는 5월 1, 2일 이틀간 양국 수교 40주년을 기념해 방글라데시 국립극장 ‘실파칼라 아카데미’에서 열리는 기념문화행사 ‘한국의 매력(Charm of Korea)’ 행사를 적극 홍보했다.
입장권 못 구해 발 동동
5월 1일, 2일 열린 문화공연은 대성황리에 끝났다. 740석 규모의 공연장은 객석은 물론 복도까지 빼곡히 들어차 만원사례를 이뤘다. 공연장 밖에선 미처 입장하지 못한 방글라데시 젊은이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기자의 티켓이라도 쥐여주고 싶었다. 7월에 한국을 찾을 예정인 아불 아자드 문화부 장관을 비롯해 문화부 차관, 외교부 동아태국장 등 정부인사와 20여 개국의 주방글라데시 외교사절단이 대거 참석했다.
공연은 건물붕괴 사고로 희생당한 방글라데시 국민에 대한 애도와 묵념으로 시작했다. 엄숙했던 분위기는 방글라데시 국립무용단의 오프닝 쇼와 진조크루, 퀸의 활기차고 화려한 무대가 이어지면서 이내 탄성과 박수, 그리고 진한 감동으로 이어졌다. 공연 팀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현장에 취재 나온 기자들과 카메라 크루들의 움직임도 부산했다. 한국 공연단의 소식은 현지 신문과 방송을 통해 자세히 소개됐다.
두 차례의 공식공연에 앞선 4월 29일 한국대사관은 방글라데시 최고의 사교클럽인 ‘굴샨클럽’에서 특별공연을 했다. 한국의 문화공연팀이 온다는 말을 듣고 평소 친분이 있던 굴샨클럽 임원진이 특별히 부탁해 이뤄졌다. 상위 5%의 방글라데시 여론 주도층을 상대로 적극적인 공공외교를 펼치겠다는 이 대사의 생각과도 딱 맞아떨어지는 좋은 기회였다.
무대용 조명이 설치돼 있지도 않았고 대형 공연을 위한 공간도 아니었지만, 방글라데시 여론 주도층 250여 명의 연주 몰입도는 예상보다 강렬했다. 대다수가 이미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50~60대 남녀 관객이라서 요란한 환성이 터져 나오거나 즉각적으로 감정을 표현하진 않았지만 공연 순서가 끝날 때마다 아낌없는 박수가 나왔다. 공연이 끝난 뒤 일샤드 호세인 굴샨클럽 회장, 시린 실라 씨 등 이사진은 대거 무대에 올라 공연자 개개인에게 일일이 꽃다발을 선사했다.
스리랑카 일간지 ‘실론 투데이’가 5월 5일자에 한류 공연과 관련한 특집기사를 2개 면에 걸쳐 실었다.
공연을 보며 느낀 감동은 제각각이었지만 한국에 이런 문화가 있었는지는 몰랐다는 반응은 같았다. 그만큼 한국과 방글라데시 사이에 인적교류가 많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필자를 정부 관계자로 생각한 굴샨클럽 회원들은 “한국의 문화를 좀 더 자주 알려주면 좋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샤이니’에 푹 빠진 여기자 루
스리랑카에서 우리 대사관의 소개로 2명의 특별한 기자를 만난 수 있었다. ‘스리랑카 데일리 뉴스’의 구나팔라 라자싱헤(69) 기자와 ‘실론 투데이’의 밀란 루(21·여) 기자였다. 한국과 한국의 문화를 가장 잘 알고 현장에서 취재하는 기자라는 것이 대사관의 설명.
1980년대부터 한국을 오가기 시작했다는 라자싱헤 기자는 오래된 책 3권을 선물이라며 건넸다. ‘내가 본 한국’ ‘우정의 유대’ 그리고 ‘불교인의 신앙사진’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한국 방문의 경험과 추가적인 연구조사를 통해 쓴 책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
양국은 1977년 수교했다. 36년이 지났지만 한국인의 스리랑카 방문은 연간 5500여 명, 스리랑카인의 한국 방문은 연 1만3300여 명밖에 안 될 정도로 인적교류가 제한적이다. 모르긴 해도 라자싱헤 기자가 건넨 이 3권의 책이 한국을 오가고 한국에 관심이 많은 스리랑카인에게는 일종의 ‘한국 교과서’로 자리매김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자싱헤 기자는 지난해 12월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승리해 한국에 첫 여성대통령이 탄생했다는 기사가 실린 4쪽짜리 호외판 신문도 들고 나왔다. 좀 어눌한 발음이지만 한국의 역대 대통령 이름을 줄줄 꿰고 있는 노(老)기자의 정성이 감동적이었다.
기자 생활 2년차의 루 기자는 2008년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보고 열혈 한류팬이 됐다고 한다. 아이돌 그룹 ‘샤이니’라면 죽고 못사는 루 기자는 볼리우드의 영향권에 들어 있는 스리랑카에서 한국의 대중문화를 알리는 문화 전도사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현재 300여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페이스북의 ‘스리랑카의 한류 친구들’(www.facebook.com/ groups/slkrhallyufriends/)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다. 루 기자의 권유로 필자도 이 커뮤니티의 명예회원이 됐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한류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어요. 스리랑카의 케이팝 팬들도 하나로 뭉쳐 스리랑카에 한류 붐이 일어나도록 같이 노력해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루 기자는 한국 문화를 사랑하게 된 뒤 콜롬보대학의 ‘세종학당’에서 한국말을 공부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라자싱헤 기자의경우 최근 스리랑카에 불기 시작한 한류 바람보다는 한국의 전통문화에 훨씬 호감을 갖고 있다는 점. 솔직히 머리에 형형색색의 염색을 하고 미국 래퍼처럼 옷을 입고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부르는 젊은이들보다는 가장 한국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더 끌린다고 말했다. 반면 20대 여기자 루 씨는 한국적인 것을 독창적으로 발전시켜 세계인의 보편성을 얻고 있는 한류 바람이 훨씬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여하튼 한국의 문화가 두 세대 가까운 차이를 보이는 두 명의 스리랑카 기자의 가슴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한 것은 대단히 고무적이었다. 한국의 공공외교가 키워낸 현지 문화외교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았다.
외교와 문화는 뗄 수 없는 관계
스리랑카와 방글라데시에서의 7박 8일은 서남아시아 국가에서 한국은 어떤 나라인지를 알 수 있게 한 소중한 경험이었다.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원조를 받던 최빈국이 이제는 원조를 주는 나라로 탈바꿈한 성공스토리는 서남아시아의 저개발 국가들에는 용기와 희망을 주는 신화(神話)였다. 또한 정치 분야에서의 민주화 성공과 한류로 대표되는 한국 문화가 지구촌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게 된 비결을 배우고 싶다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현지 공관의 지속적인 노력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스리랑카의 대통령 부인이 한국 문화공연단의 공연 현장에 직접 나와 격려를 아끼지 않고, 방글라데시의 최상류층 엘리트들이 앞다퉈 ‘코리아 원더풀’을 외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외교와 문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정부는 이번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행사를 준비하면서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일과성 이벤트 차원을 넘어 우리 문화의 가치를 전파하고 한국이 추구하는 이상을 설득할 수 있는 종합적 외교정책의 틀로 접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외부 사회의 도움이 필요하고 시급한 나라, 국제사회의 대접이 미흡한 나라일수록 우리의 진심이 더 잘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한충희 외교부 문화외교국장은 “우리의 경험을 나누는 한편 돈독한 유대관계를 맺어 선한 영향력을 갖자는 것이 공공외교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역사, 문화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품격 있는 국가 이미지를 창출해내고, 이를 통해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존경과 신뢰를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이 바로 공공외교라고 그는 설명했다.
한류 확산이 일시적인 문화 현상일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기보다는 우리의 문화와 가치, 창의성이 어떻게 하면 지속적으로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더 건설적일 것이다. 문화 향유자의 시각에서 진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공공외교의 활발한 작동이 절실한 시점이다.
여건이 나쁘지는 않다. 일본처럼 군국주의 침략의 기억이 없고 중국처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게’ 원조를 제공하지도 않는다.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경험과 평화를 사랑하는 한국의 가치에 기반을 두고 선진국과 후진국 간 가교 역할을 하는 중견국의 소임을 다해간다면 우리의 아름다운 얼굴을 지금보다 더 많이 알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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