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국가안보 전략 키워드는 ‘강압’
강압은 내 방책 상대가 선택하도록 압박하는 것
美, 가치 확산보다 자국 이익 확보에 우선순위 부여
동맹국엔 ‘부담 전가’…‘비용-편익 계약 대상’ 간주
강압 반복될수록 정당성 약화, 빈번한 위협 ‘모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6일(현지 시간)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억제의 목적은 상대방이 원하는 방책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도록 억누르는 것이다. 일례로 핵확산 억제의 목적은 북한이 핵무기 사용을 행동으로 옮길 경우, 감당해야 할 비용이 잠재적 이익보다 훨씬 크다는 점을 주지시켜 사전에 행동을 포기시키는 데 있다. 반면 강압의 목적은 상대가 지금의 선택을 유지(고집)할 경우 더 큰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을 확신시킴으로써 특정 행동을 취하도록 강요 또는 강제하는 것이다. 2017년 중국이 우리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보복 조치로 관광 제한, 롯데그룹 제재, 비관세 장벽 등을 시행해 “한국이 사드 배치를 유지할 경우 막대한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는 경고를 보내면서, 궁극적으로 사드 배치 중단을 택하도록 압박하는 것이 강압 전략의 대표적 사례다.
요컨대 억제는 상대가 선호하는 방책(북한의 핵무기 사용 등)을 하지 못하도록 포기시키려는 전략인 반면, 강압은 내가 선호하는 방책(사드의 경우, 한국의 사드 배치 포기)을 선택하도록 압박하려는 전략이다.
美, 가치 확산보다 압박해서라도 자국 이익 우선
2017년 NSS는 동맹과의 통합된 역량으로 억제와 경쟁 전략을 병행했다. 그러나 2025년 NSS는 국익의 범위를 ‘확장형’에서 ‘집중형’으로 좁히면서 가치 확산보다 본토 방어, 경제 이익, 산업기반 등에 우선순위를 부여했다.특히 ‘부담 분담(burden-sharing)’을 강조하는 동시에 동맹국에 책임 증대를 요구하는 표현은 ‘부담 전가(burden-shifting)’에 가까운 정책 변화를 시사한다. 이는 동맹을 규범적 공동체로 인식하기보다는 ‘비용-편익 계약의 대상’으로 간주한다는 신호다. 이로써 미국은 ‘선의의 패권’이라는 전통적 내러티브를 약화시키고, 패권의 정당성을 강압의 능력과 거래 성과로 측정하려는 의도를 내비쳤다. 아울러 2025 NSS는 서반구를 최우선 공간으로 설정하면서 패권국 전략의 무게중심을 ‘글로벌 공공재 제공’에서 ‘세력권 관리’로 옮겼음을 보여줬다.
2025 NSS는 ‘억제의 논리’로 서술돼 있지만, 실제 작동 방식은 ‘파월 독트린’과 확연히 구분되는 ‘강압의 문법’에 가깝다. 파월 독트린은 명확한 정치적 목표, 압도적 전력의 사용, 그리고 분명한 출구전략을 전제로 군사력 사용을 엄격히 제한했다. 반면 2025년 NSS에 반영된 트럼프식 접근 방식은 이러한 전제들을 선행 요건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불완전한 목표와 유동적 전략하에서도 군사력을 협상 레버리지로 활용하려 한다.
실제로 올해 초 베네수엘라와 이란에서 벌인 대외적 군사행동에서 작전의 목적이 핵 프로그램 제거, 정권교체, 최대 압박 사이에서 일관되게 고정되지 않았다. 이는 군사력이 결정적 승리를 위한 수단이라기보다 상대방의 계산을 흔들어 협상에서 우세를 선점하기 위한 도구라는 점을 시사한다. 이러한 방식이 효과를 거두려면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타격을 통해 상대에게 “앞으로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압적 신호 발신 전략이 필요하다. 동시에 명확한 종결 조건 없이 압박을 지속해야 하는 부담도 뒤따른다.
결국 이러한 무력 사용 방식은 파월 독트린이 지향했던 ‘결정적 승리를 통한 신속한 종료’가 ‘압박의 지속을 통한 행동 변화 유도’ 중심의 수정된 형태로 나타났다. 요컨대 이는 트럼프 독트린이 규범·규칙 기반 질서가 아닌, 압박·거래 기반 질서의 작동 원리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체면을 지키는 출구’ 병행하지 않으면 역효과
상대가 특정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억제와 특정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강압은 의사결정의 방향 자체가 정반대다. 일례로 2025년 NSS의 핵심 개념인 ‘힘을 통한 평화’는 일견 궁극적 목표가 ‘평화’처럼 보이지만 “힘이 최선의 억제력”이라는 명제를 천명한다. 실제 정책 운용에서 군사력을 협상력의 제고 수단으로 빈번히 동원함으로써 억제의 명분 아래 강압의 실행을 정당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억제-강압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는 수준을 넘어 전략적 언어와 정책적 도구 간의 기능적 불일치가 고착되고 있음을 시사한다.강압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요구의 명확성, 위협의 신뢰성, 상대가 감내해야 할 비용의 범위·강도를 정밀히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전제돼야 한다. 트럼프 독트린하의 강압은 대규모 점령이나 장기적 개입을 회피하는 대신 상대 지도부와 핵심적 군사 역량을 겨냥한 ‘단기적·고강도 충격’을 통해 행동의 변화를 압박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체면을 지키는 출구’를 병행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장기적 저항과 보복의 동기를 자극하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나아가 정치적 목표가 너무 높게 설정되면 군사적 파괴가 곧바로 정치적 복종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가정이 쉽게 붕괴되고, 결국에는 당초 의도와 달리 단기적 강압이 갈등의 장기화와 통제 불가능성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이러한 개념적 변화는 전쟁의 빈도·강도·종결 조건까지 바꿀 수 있는 구조적 전환이다. 강압 중심 전략은 ‘장기 억제의 안정성’보다 ‘단기 강압의 가시적 성과’를 우선시한다. 국내적으로 “확전 없는 통제 가능”의 약속과 전략적으로 “신뢰성 유지를 위한 행동 지속”의 필요성 사이에서는 긴장 관계가 조성된다. 성공의 기준이 ‘공격 억제’에서 ‘행동(상대방) 변화’로 이동할 경우 사소한 도발이나 제한적 보복도 강압의 ‘미완성’을 증명하는 근거로 해석돼 추가 타격의 명분이 된다.
강압이 동맹 관리에 미치는 영향도 심각하다. 동맹국은 억제 구조의 공동 설계자가 아니다. 그보다는 강압의 비용 분담과 명분의 정당화 도구로 변질되면서 ‘연루-방기’ 딜레마에 더욱 빈번히 노출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억제에서 강압으로의 개념 전환이 ‘참수·위임 모델’과 ‘원거리 반복 타격’이라는 작동 방식으로 구체화함에 따라 ‘전쟁의 문턱’이 낮아지고, ‘개입의 상시화’가 구조화되며, 결과적으로 분쟁이 단기적 억제의 대상에서 지속적 압박의 대상으로 변환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단호한 결의 작전’의 정치·군사적 의미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를 생포한 ‘단호한 결의 작전(OAB)’은 “지도부를 제거하되 국가를 점령하지 않는” ‘참수-위임’ 독트린의 대표적 사례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최고지도자를 직접 체포한 이 작전은 전면적 영토 침공 없이 해당국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를 외과수술식으로 제거했다. 참수 작전의 논리는 냉혹할 정도로 간단하다. 정권의 핵심 기둥인 지도자의 지휘권·통제력·정당성을 단 한 차례의 타격으로 붕괴시켜 체제 전체를 지탱하는 구심점을 최소 비용으로 해체하는 것이다.정밀타격-특수작전의 결합은 군사적 효율성을 넘어 정치적 비용 관리의 차원으로 시너지 효과를 나타낸다. 일례로 작전이 단기적·제한적일수록 국내 여론의 반대와 의회의 전쟁권 논란을 우회하기 수월하다. 신속한 성공은 후속 작전의 정치적 정당화에 필요한 ‘피드백’ 자산으로 활용된다. 또한 OAB는 “미국의 피해를 거의 수반하지 않으면서도 야심적 목표의 달성에 성공”한 전례로 고위험 작전에 대한 심리적·정치적 진입장벽을 낮추는 효과를 낳았다.
그러나 참수 이후 ‘위임’ 단계에서 이런 독트린의 취약성이 드러난다. ‘지상군 주둔’ 배제를 정당화하는 논리는 현지에서 ‘안정화’가 자생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경험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엉성한 전제 위에 놓여 있다. 국가 리더십이 와해된 이후의 권력 공백은 기존 지도자보다 폭력적인 행위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억압적 기관, 예를 들어 이란의 이슬람혁명수비대가 건재하는 한 권위주의 체제는 지도부 손실에도 불구하고 ‘생존을 통한 승리’를 선택할 수 있다. 위임 모델에서 미국은 “참수 이후는 현지가 결정한다”는 논리로 직접 통치의 책임을 차단하려 했다. 하지만 전환기의 혼란이 미국의 핵심 이익을 위협하는 임계점에 도달한다면 제한적 추가 개입으로 회귀하는, 반복적 강압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
결국 ‘참수’는 군사적 실행의 차원인 반면 ‘위임’은 정치적 종료의 차원이다. 트럼프 독트린은 양자가 결합돼야만 온전히 완결될 수 있다. 그러나 위임이 안정화로 귀결되지 못한다면 이 독트린은 출구전략이 아닌 또 다른 개입으로 귀결될 수 있는 것이다.

3월 3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이란 테헤란 도심에서 거대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뉴시스
강압 반복될수록 정당성 약화, 빈번한 위협 ‘모순’
‘장대한 분노 작전(OEF)’은 인공지능(AI) 및 네트워크 기반의 정보·감시·정찰(ISR)과 대규모 정밀 공습을 결합해 지상군 투입을 최소화하면서도 고강도 타격을 반복하는 ‘원거리 강압’의 전형이다. 미 펜타곤의 합동전영역지휘통제(JADC2)는 다양한 센서와 플랫폼에서 수집된 ISR 데이터를 네트워크로 통합하고, 이를 AI를 통해 신속히 분석한 뒤 정밀타격 자산으로 즉각 연결하는 ‘센서·결심·타격(sensor-to-shooter)’ 형태로 구체화한다.이제는 병력 규모의 우위보다 정보와 의사결정 속도의 우위가 전장에서의 지배력을 좌우한다. 지도부 회의·이동·통신 같은 취약 행동은 곧바로 타격 기회로 변환된다. 표적이 재생산되거나 이동하면 시스템은 같은 논리로 다시 타격을 실행할 준비를 갖춘다. 그러므로 정밀타격은 ‘원샷-원킬’보다는 ‘반복 가능 패키지’로서의 작전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치 지도부는 “지상군 없이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강화하고 그러한 확신은 강압의 문턱을 더욱 낮추는 ‘자가 강화 루프’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원격 강압과 반복 타격은 새로운 형태의 딜레마를 수반한다. 일례로 미국·이스라엘의 대 이란 전쟁에서 이란은 단지 생존하는 것만으로도 정치적 승리를 선언할 수 있다. 이처럼 상대가 ‘생존=승리’ 전략을 선택하면 정치적 목표 달성이 불확실해진다. 나아가 미사일·기뢰·드론 같은 비대칭 수단이 호르무즈해협을 마비시키는 데 충분한 현실은 타격의 물리적 성과와 전략적 효과 사이의 불일치를 드러낸다. 강압은 반복될수록 정당성이 약화되고, 더욱 빈번한 위협과 더욱 강력한 타격이 필요해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처음에는 제한적 목표(예: 핵시설 타격, 특정 지휘부 제거)로 시작한 강압 작전이 타격 후에도 상대가 굴복하지 않으면 “추가적 타격 필요”의 명분으로 공격 대상과 작전 범위를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갈 수 있다. 이는 목표 확장(미국)과 생존 전략(이란)이 결합할 때 ‘짧은 전쟁’이 오히려 새로운 ‘장기 얽힘’으로 귀착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AI 기반의 알고리즘 전쟁은 ‘센서-결심-타격’의 템포를 드라마틱하게 높이지만, 비례성·예방조치·민간보호의무 등 국제인도법의 준수를 어렵게 만들어 정당성 손실이라는 정치적 비용을 함께 불러왔다. 결론적으로 ‘장대한 분노 작전’에서 선보인 원거리 강압 방식은 “영토 점령 없는 전쟁”을 현실화했지만, 종결 조건의 불명확성과 반복적 타격의 경로 의존성을 통해 트럼프 독트린의 지속가능성을 시험하는 전략적 모순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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