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호

‘암바사’도 신의 음식 ‘암브로시아’에서 유래

[브랜드가 된 신화] ‘술의 신’ 디오니소스와 ‘디오니스’ 호프집

  • 김원익 홍익대 문과대 교수·㈔세계신화연구소 소장

    입력2026-05-08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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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용 명품 미니백 ‘디오니서스’

    • 그리스를 대표하는 두 맥주, ‘미토스’와 ‘알파’

    • 외아들 ‘인육 요리’로 신들을 시험한 탄탈로스

    • 신의 음료 ‘넥타르’에서 비롯된 ‘복숭아 넥타’

    그리스신화 속 ‘술의 신’ 디오니소스. Uffizi Gallery 웹사이트

    그리스신화 속 ‘술의 신’ 디오니소스. Uffizi Gallery 웹사이트

    그리스신화에서 ‘술의 신’은 디오니소스(Dionysos)다. 그는 엄밀히 말해 포도주의 신이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엔 술이 포도주밖에 없었기에 디오니소스를 통상 술의 신이라고 칭한다. 어쨌든 술의 신이니만큼 시중에 ‘디오니소스’라는 이름의 술집이 많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와 관련한 술집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구찌(Gucci)’에서 나온 여성용 ‘디오니서스(Dionysus)’ 미니백이 눈에 띌 뿐이다. 디오니서스는 디오니소스의 영어식 표기다. 왜 명품 가방에 하필이면 술의 신 이름을 붙였을까. 혹시 디오니소스가 연인 아리아드네에게 결혼 선물로 준 황금관을 염두에 두고 아내나 여자친구에게 선물하라고 그런 것은 아닐까.

    디오니소스는 아니지만 ‘디오니스(Dionys)’라는 호프 프랜차이즈는 있다. 디오니스 로고엔 나비처럼 생긴 두 개의 날개도 있는데 “신의 자유로움의 상징을 날개 모양에 담고 있습니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하지만 왜 디오니소스를 디오니스로 줄였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아마 상호를 기억하기 쉽게 한 자 줄였을 수도 있고, 디오니소스를 빨리 발음하면 디오니스처럼 들릴 수 있으니 큰 문제 없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피로회복제 ‘박카스’, 장수 비결은 신의 은총?

    이에 비해 디오니소스의 로마식 이름 ‘바쿠스(Bacchus)’를 상호로 사용한 호프와 맥주 전문점은 몇 있다. 특히 술과 연관은 없어도 우리나라엔 ‘박카스’라는 피로회복제가 있다. 박카스는 로마식과 발음만 다른 디오니소스의 영어식 이름 ‘배커스’를 우리식으로 편하게 표기한 것이다. 박카스가 엄청난 사랑을 받으며 장수를 누리게 된 것은 혹시 아무 연관도 없는 자신의 이름을 써준 것에 감동한 바쿠스 신의 은총 덕분 아닐까.

    이 대목에서 불현듯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언덕 바로 아래에 있는 ‘디오니소스(Dionysos Zonar’s)’ 레스토랑이 떠오른다. 그 앞쪽 아크로폴리스 경사면엔 세계적 예술가들에게 꿈의 무대인 로마시대에 지어진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이 있고, 오른쪽으로 약 300m 떨어진 경사면엔 연극의 발상지로 유명한 디오니소스 원형극장도 있다. 



    디오니소스 레스토랑 야외 식탁에서 밤에 포도주나 맥주를 마시며 감상하는 파르테논 신전의 야경은 그야말로 필설로 표현할 수가 없다. 몇 년 전 국제 행사로 아테네 시내 숙박 사정이 좋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근교에 여장을 풀었다가 그곳에서 바라본 파르테논 신전의 야경이 너무 그리워 밤늦게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택시를 불러 달려갔던 추억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친다. 아, 그곳에 가고 싶다.

    튀르키예 에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유적지. Gettyimage

    튀르키예 에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유적지. Gettyimage

    그리스를 대표하는 맥주는 ‘미토스(Mythos)’와 ‘알파(Alpha)’다. 두 맥주는 그리스에서 우리나라의 카스나 하이트에 비견될 수 있다. 미토스는 그리스어로 ‘신화’라는 뜻이고, 알파는 그리스어 알파벳 중 첫 글자다. 언제부터인가 그리스에 가서 맥주를 마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늘 미토스를 찾는데, 없다고 하면 그렇게 아쉬울 수 없다. 미토스 맥주엔 마치 우리가 재미난 신화를 읽을 때처럼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깊고 오묘한 맛이 있다. 그리스 식당에서 손님들이 “미토스 있어요?” 혹은 “미토스 주세요”라고 말할 때마다 내심 미소를 짓곤 한다. 그 말이 내겐 꼭 “신화 있어요?” 혹은 “신화 주세요”쯤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튀르키예 맥주 중에 ‘에페스(Efes)’가 있다. 에페스는 고대 그리스 도시 에페소스(Ephesos·우리나라 성서에서는 에베소)의 튀르키예식 지명이다. 고대 에페소스는 규모가 엄청나서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가 된 ‘달과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신전으로 유명했다. 이 신전은 기원전 356년 헤로스트라토스라는 인물이 저지른 방화로 소실됐다. 그는 이 건물에 불을 질러 세상에 영원히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 했다는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신전에 화재가 일어나던 날 밤에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 대왕이 태어났다. 그래서 그리스신화에서 ‘산파의 여신’ 에일레이투이아의 역할도 함께 수행했던 아르테미스가 특별히 대왕의 탄생을 돌보느라 마케도니아의 펠라에 가 있는 바람에 자신의 신전을 지킬 수 없었다고 한다. 현재 튀르키예 에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유적지엔 복원된 신전의 기둥 한 개만 덩그러니 남아 과거의 화려했던 영광을 무색하게 한다. 이곳은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은 성서의 ‘사도행전’ 19장에도 등장한다. 사도 바울이 에페소스에 왔을 때 아르테미스를 섬기는 것이 우상숭배라며 비난하자 큰 소동이 벌어졌다. 은으로 아르테미스 신상의 피겨(figure)를 만들어 팔던 데메트리우스라는 은장이의 선동으로 바울의 제자 둘이 그의 직공들과 같은 직종의 사람들에 의해 원형극장으로 잡혀갔기 때문이다.

    이때 극장에 몰려든 군중은 흥분하며 두 시간 동안이나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여신은 위대하다!”라고 함성을 지르며 바울의 제자들을 위협했다. 그러자 로마 지배하에 있던 에페소스시의 관리가 그 소동을 듣고 급히 달려와 그들이 문제가 있으면 법정에서 재판을 받도록 하겠다며 가까스로 군중을 진정시켰다. 

    나는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에페스 맥주를 처음 접했을 때 맨 먼저 아르테미스 신전을 상상했다. 그래서 맥주 어딘가에 그 신전이 그려져 있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세계 맥주 콘테스트에서 몇 번 상을 받았다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 로고나 라벨 어디에서도 신전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뭐 어떤가. 로고에 신전이 그려져 있다고 상상하며 마시면 되는 거지. 

    튀르키예 맥주 에페스와 아르테미스 신전

    대학에서 그리스신화 강의를 할 때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생각이 많아진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부담 없이 시험을 치르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때문이다. 해가 갈수록 서술형 문제는 적게 내고 단답식 문제나 보기를 주고 번호를 고르는 문제를 많이 내게 된다.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고, 정답을 채점하며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다.

    그래서 시험지에 약방의 감초처럼 꼭 들어가는 문제들이 있는데, 대개 이런 유형이다. ‘니오베의 자식은 아들딸 모두 몇 명이었나요? 책에 있는 대로 쓰시오.’ ‘디오니소스의 여신도들을 총칭하는 이름은 무엇일까요? 참고로 그것은 ‘미친 여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신들이 먹는 음식은 암브로시아(Ambrosia)입니다. 그렇다면 신들이 마시는 음료수는 무엇이라고 할까요?’

    문제의 정답은 차례로 ‘14명’ ‘마이나데스(Mainades)’ ‘넥타르(Nektar)’다. 처음 접하면 어려워 보여도 강의 중에 강조한 사항들이라서 학생들은 대부분 정답을 맞게 쓴다. 그런데 마지막 문제에서 가끔 ‘삼다수’라는 생수 이름이 나올 때가 있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이렇게 답을 쓴다. ‘선생님이 가장 잘 마시는 삼다수’. 물론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수업하기 전에 늘 삼다수를 두어 병 들고 강의실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넥타르’와 ‘암브로시아’의 의미는 각각 ‘영생하는’ ‘죽지 않는’이라는 뜻으로 비슷하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둘을 음료와 음식으로 구분하지 않고 모두 음료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호메로스에 의하면 넥타르는 음료이고 암브로시아는 음식이다. 그리스신화에서 원래 인간은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를 먹고 마실 수 없지만, 딱 한 명 예외가 있었다. 바로 제우스의 아들 탄탈로스(Tantalos)다. 

    탄탈로스는 소아시아 프리기아의 부유한 왕이었다. 그는 제우스와 요정 플루토의 아들이어서 신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래서 자주 올림포스 궁전으로 초대받아 신들이 마시는 넥타르나 신들의 음식 암브로시아를 맛보기도 했다. 그는 친구들에게 그 사실을 자랑하며 오만을 떨었다. 급기야 친구들이 더는 믿지 않자 올림포스 궁전에서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훔쳐다가 맛을 보여주기도 했다. 신들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지만 그를 귀엽게 생각해 눈감아 주었을 뿐이다. 

    신들을 시험에 들게 한 탄탈로스

    어느 날 탄탈로스는 신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자신만 대접받는 것 같아 미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사실은 세상 사람들에게 신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과시하고 싶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음식을 충분히 준비했는데도 신들이 시장했던지 금방 동이 나버린 것이다. 탄탈로스는 음식을 다시 장만하다가 불현듯 기상천외한 생각을 하게 됐다. 신들을 한번 시험하고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자신이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훔쳤는데도 아무 일 없는 것을 보면 신들의 능력이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는 당장 몸부림치는 외아들 펠롭스의 입을 틀어막고 짐승처럼 잡아 토막을 내어 불고기 요리를 해서 신들에게 내놓았다. 하지만 신들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곡물의 여신 데메테르만 무심결에 펠롭스의 어깻죽지를 들고 물어뜯고서야 인육인 것을 알았다. 그녀는 마침 지하 세계의 신 하데스에게 납치당한 딸 페르세포네 생각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녀는 얼른 입안에 있던 살점과 뼛조각을 뱉어냈고, 그것을 신호로 신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탄탈로스가 신들을 위해 연 만찬. 위키피디아 커먼스

    탄탈로스가 신들을 위해 연 만찬. 위키피디아 커먼스

    신들은 탄탈로스를 불러 단박에 지하 감옥 타르타로스에 가두고 끝없는 갈증과 허기에 시달리게 했다. 탄탈로스는 타르타로스에 있는 호숫가 한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어야 했다. 물은 가슴까지 차 있었고, 호숫가엔 과일이 주렁주렁 열린 과일나무가 즐비했다. 하지만 그가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 고개를 숙이면 호수는 금세 바닥을 드러냈고, 배가 고파 과일에 손을 뻗으면 가지가 멀리 달아났다. 

    그런 탄탈로스의 형벌에서 ‘감질나게 하다’라는 뜻의 영단어 ‘탠터라이즈(tantalize)’가 유래했다. ‘탄탈로스의 형벌’이라는 격언도 그가 받은 형벌에서 비롯됐다. 그것은 주변에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그것을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의 애타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넥타르’에서 유래한 영어 단어 ‘넥타(nectar)’는 ‘꽃의 꿀, 과일즙’이라는 뜻이다. 한때 우리나라에 ‘복숭아 넥타’라는 음료가 있었다. 왜 하필 복숭아 주스에만 넥타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알 수는 없다. 아마 중국에서 신선들이 복숭아를 먹었다는 일화에서 착안했을 수 있다. 수입 음료 중에 ‘암브로시아’ 허브 음료가 있다. 아마 암브로시아가 음료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만든 브랜드일 수 있다. 

    올림픽 발상지인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유적지 탐방을 끝내고 입구로 돌아가는 길에 ‘암브로시아 가든(Ambrosia Garden)’이라는 레스토랑이 있다. 뜨거운 여름날 탐방을 마치고 그곳에서 마시는 그리스 맥주 미토스는 그야말로 넥타르 부럽지 않다. 혹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문을 닫지나 않았을까 하여 최근 구글 지도를 통해 확인해 보니 다행히 아직도 영업하고 있다. 

    강원도 속초 델피노 리조트 10층에 있는 카페 이름도 ‘암브로시아’다. 코카콜라에서 제조돼 1984년부터 우리나라에서 판매되기 시작한 ‘암바사(Ambasa)’라는 탄산음료 이름도 암브로시아에서 유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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