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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는 교만 버리고 DJ는 기죽지 말라”

‘악의 축’ 발언 예고한 크리스찬아카데미 설립자 강원용 원로목사

“부시는 교만 버리고 DJ는 기죽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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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9·11테러 사건 보면서 한반도 여파 직감했다
  • ● 부시정권, 군사력만 믿으면 세계에서 고립된다
  • ●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제거 해법은 2+4 회담뿐
  • ● 비전과 리더십 갖춘 대선 후보 보이지 않는다
  • ● 내각제 필요하지만 지역당 구도에서는 안돼
김대중 대통령이 우리 사회의 원로들을 청와대 오찬에 초청한 2월15일 오후, 기독교계의 대표적 원로 중 한사람인 강원용(84) 목사는 경기도 가평군 북면 소법리 ‘바람과 물 연구소’에 머물고 있었다.

경춘가도는 밝은 햇살과 신선한 바람으로 상쾌했지만 북한강 중류는 아직도 얼음이 녹지 않았다. 가평군청을 지나 ‘바람과 물 연구소’로 가는 좁은 길목에는 훈련중인 군부대의 차량행렬이 이어졌고 저수지의 물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지만, 연구소 옆을 지나 내려오는 가느다란 계곡물은 맑은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비포장 도로를 따라 도착한 연구소는 마치 어머니의 품에 안긴 어린 아이처럼 세찬 겨울의 찬바람을 막아주는 산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갑작스런 ‘배탈’ 때문인지 연구소 세미나실에서 마주앉은 강목사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과 국내 정치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하면서 점차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오후 2시부터 2시간30분 동안 강목사는 80대 중반이라는 나이도 잊은 채 한번도 일어나지 않고 때로는 열변을 토하며 자신의 견해를 펼쳐 나갔다. 독재정권 시대에는 크리스찬아카데미를 설립,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수많은 인재를 키워낸 강목사는 최근에는 통일논의를 위한 민간기구인 ‘평화포럼’ 이사장으로서 한민족의 평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

인터뷰에서 강목사는 우리 정부나 국민이 반미(反美)나 대미(對美) 추종 일변도에서 벗어나 민족의 생존을 위해 슬기롭게 현재의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월19일 방한한 부시 대통령이 추구하는 ‘힘의 우위’ 전략은 강력하게 비판했지만 미국내 평화를 옹호하는 사람들과 단체들에 대해서는 강한 신뢰를 갖고 있었다. 또한 최근 거론되고 있는 여야 대선 후보들에 대한 실망감도 감추지 않았다. 우리 민족을 올바로 이끌고 나갈 비전이나 리더십을 갖춘 인물을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불길한 기류 예고


-강목사님도 청와대 오찬에 초청받은 것으로 아는데 왜 가지 않았습니까?

“웬만하면 가려고 했는데 몸상태가 좀 좋지 않아서 못 갔어요. 오늘 참석한 분들은 모두 훌륭한 분들이지만 나와 생각이 다른 분들도 있어서 어떻게든 가려고 했어요. 그분들이야 부시 대통령이 방한하면 한미간에 사이가 벌어지지 않도록 하라고 대통령에게 이야기하겠지요….”

강목사는 뭔가 더 이야기할 듯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일단 시작이니까 가벼운 화제부터 물어보았다.

-‘바람과 물 연구소’란 이름이 특이합니다. 어떻게 이런 곳에 연구소를 만들게 됐습니까.

“김지하 시인과 의논해서 연구소 이름을 지었어요. 창세기 1장2절에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한다’는 구절이 있는데 히브리어로 ‘영’이라는 것이 바람이라는 뜻입니다. 즉 바람과 물에 의해 생명이 생겨난다는 말이지요. 애당초 우리 사회 집단간 갈등이 격심했던 1970년대에는 수원에 ‘내일을 위한 집’을 지어 중간집단 교육을 했지요.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서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이 생명과 환경문제로 바뀌면서 ‘내일을 위한 집’을 팔아 환경문제를 다룰 이 연구소를 만든 겁니다.”

-‘바람과 물’이란 표현은 우리 고유의 ‘풍수(風水)’와도 관련이 있습니까.

“일맥상통한 면이 있지요. 사실 이곳에서 나오는 물이 참 좋습니다. 음료수로 최적의 판정을 받았어요. 예전에 조안리씨의 남편으로 서강대 총장을 지낸 분이 제가 크리스찬아카데미 하우스 등의 자리를 잘 잡는 것을 보고 ‘목사님은 풍수가가 아니냐’고 묻기도 했어요. 풍수를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집터는 잘 잡아요.”

-강목사님은 자연의 풍수만 잘 보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기류도 잘 관측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연말 강목사님이 경동교회에서 “한반도에 불길한 바람이 불 것”이라고 예고해서 화제가 됐는데요.

“글쎄, 누가 계시를 받았느냐고 하는데 그런 것은 아니고요. 지난해 9월11일 미국의 쌍둥이빌딩이 폭파되는 것을 보면서 그 여파가 한반도에도 미치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6·25사변이 나기 전 해인 1949년 12월에도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있어요. 내가 관여하던 신인회(新人會)라는 대학생그룹의 한 회원이 미국 유학을 떠났는데, 송별회를 하는 자리에서 ‘우리가 사는 한반도는 오래지 않아서 전쟁으로 폐허가 될 터인데 잊지 말고 돌아와서 조국을 재건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어요. 내가 계시를 받아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고 주한미군이 남북대치 상황에서 1949년 가을에 군사고문단만 남겨놓고 철수하는 것을 보고 오래지 않아 북한이 남침할 것이라고 판단한 거죠.”

강목사는 이슬람과 기독교, 그리고 이스라엘과의 오랜 갈등에 대해 길게 설명을 했다. 633년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기독교와 이슬람의 충돌, 십자군전쟁, 2차대전 이후 세계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태인들의 귀환과 이스라엘 건국, 이를 지원한 미국과 영국, 1967년 6일전쟁 때 중립지대였던 예루살렘과 가자지구, 시나이반도를 이스라엘이 무력으로 차지한 것, 그리고 이에 대한 이슬람의 보복 등을 열거하며 지난해 9·11 테러사건도 이러한 기독교와 이슬람의 오랜 갈등의 산물로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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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석 <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 da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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