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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전문의 정혜신의 ‘대한민국’ 비판

“사상이나 신념보다 중요한 건 죽음 앞에 놓인 사람 구하는 일”

정신과전문의 정혜신의 ‘대한민국’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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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왕따’는 왜 자살하는가
  • ● 쌍용차 해고 노동자는 정신적 피폭자
  • ● “당신을 만나니 고문당하길 잘했다 싶네”
  • ● 다 버리고 홀가분해지기
  • ● 인생의 ‘바닥’에서 깨달은 행복의 비결
정신과전문의 정혜신의 ‘대한민국’ 비판
“사람이 관계에서 배제당할 때 느끼는 고통은 아주 날카로운 것에 온몸이 찔리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비유적으로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뇌에서 정말 그런 통증을 느낀다는 거지요. 우리 사회는 그것에 너무 무감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가장 강해 보이는 해병대원에게조차 마음이 있다는 걸 인정하려 들지 않아요.”

해병대에서 일어난 총기 사고로 세상이 떠들썩한 때였다. 정혜신(48)씨와 마주 앉자마자 ‘군대’ 얘기가 나왔다. 그는 부대 안에 팽배하다는 ‘기수 열외’ 등 왕따문화와 연이은 군인들의 자살 소식에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한숨을 내쉬며, 화제는 자연스레 ‘사람’으로, ‘마음’으로 이어졌다.

정씨가 보기에 우리 사회는 문제가 된 군부대와 다르지 않다. 사람을 별것 아닌 존재로 여기는 분위기, 마음의 상처쯤은 알아서 해결하기를 강요하는 문화가 곳곳에 있다. 그것이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죽음의 원인이라고, 그는 말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로 인한 사망률 1위, 자살 사망률 증가 속도 1위 국가다. 7월 초 ‘뉴욕타임스’는 “한국은 전 국민이 신경쇠약에 걸리기 직전인 듯하다”고 보도했다. 치솟는 이혼율,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 입시에 짓눌린 학생들, 근무시간 뒤에도 폭음을 권유하는 남성 위주 기업문화 등을 근거로 들었다. 우리는 지금 불행한 건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비정상적인 상태인 건가. 정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사람이 불안해하고 있어요. 표현하지 못할 뿐 고통받고 있지요. 사회에서 개인이 받은 심리적인 상처는 결코 저절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혼자 지치고 나가떨어지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카운터 리액션(반대 급부)이 돌아와요. 해병대 사건처럼 더 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막아야 합니다.”



그가 “우리 사회는 지금 이머전시(응급)상황”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팔로어가 3만3700여 명에 달하는 정씨의 트위터 자기소개란에는 ‘쌍용차 해고노동자, 국가공권력에 의한 고문 피해자들의 심리 치유에 몰입 中’이라고 쓰여 있다. 고문 피해자는 1980년대에 간첩 누명을 쓰고 끌려가 고초를 겪은 이들을 가리킨다. 쌍용차 해고자는 2009년 회사의 구조조정 방침에 맞서 평택공장을 점거하고 77일간 농성하다 강제 진압된 이들이다. 정씨는 매주 월요일 오후마다 고문 피해자를, 토요일엔 쌍용차 해고자와 그들의 가족을 만나고 있다. 집단상담을 통해 이들의 상처를 치료하고 그 내용을 트위터에 올린다. 이들의 정신적 고통에 무감한 우리 사회를 비판하는 글도 자주 남긴다.

사람이 죽고 있다

“무슨 생각으로 그 사람들을 만나는 거냐고 묻는 이가 많습니다. 사상이나 신념의 문제로 보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단순합니다. 가장 급한 사람, 정신과 의사가 꼭 필요한 사람이 그들이기에 만나러 가는 거지요. 그들 바로 앞에 죽음이 있어요. 그걸 막고 싶은 겁니다.”

특히 쌍용차 해고자 상담에 대해, 그는 절박함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정씨가 이들을 만나기 시작한 건 지난 봄부터다. 해고자 임무창씨가 돌연사했다는 기사를 읽은 게 계기가 됐다. 임씨의 부인이 지난해 자살한 터라 두 자녀가 고아가 됐다는 내용이었다. 정씨는 “정신과 의사로서 견디기 어려웠다”고 했다.

쌍용차 파업사태가 마무리된 뒤 2년 사이에 해고자와 그들의 가족 가운데 15명이 세상을 떠났다. 임씨는 그중 13번째다. 죽음의 행렬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지난 4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등이 발표한 ‘쌍용자동차 구조조정 노동자 3차 정신건강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193명 중 80%가 중등도 이상의 우울증을 앓고 있다. 최근 1년간 자살률은 일반인의 3.74배, 심근경색 사망률은 18.3배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는 이런 결과의 원인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이하 PTSD)를 지목했다. 인간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을 망가뜨리다 끝내 파국으로 이끌고 가는, 정신과 질환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높은 병이다.

“2009년 파업 때부터 늘 마음에 걸렸어요. 저분들 심리적인 상처가 클 텐데 어쩌나 싶었죠. 자살이 이어지다 임무창씨가 돌연사했다는 기사까지 나왔을 때는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떻게든 치료를 시작해야겠다 싶어 평택 쪽에 연락을 했어요. 희망자를 모아달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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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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