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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쟁영웅 16인에 뽑힌 유일한 아시아계 고(故) 김영옥 대령

“망국의 한, 인종차별 딛고 전사(戰史)에 이름 남긴 인도주의자”

미국 전쟁영웅 16인에 뽑힌 유일한 아시아계 고(故) 김영옥 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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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일제 항거해 미국으로 망명한 독립운동가의 아들
  • ●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럽 전선에서 불세출의 활약
  • ● 미군 역사 최초의 비(非)백인 야전대대장
  • ● 제대 후 6·25 발발하자 재입대해 전선으로
  • ● 한국·프랑스·이탈리아 최고 무공훈장
미국 전쟁영웅 16인에 뽑힌 유일한 아시아계 고(故) 김영옥 대령

2003년 한국인의 미국 이민 100주년을 맞아 이민 영웅으로 선정된 김영옥(왼쪽) 대령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겸 의학박사 새미 리씨가 캘리포니아주 패사디나에서 개최된 로즈퍼레이드에 참석한 모습. 두 사람은 죽마고우다.



미국 포털사이트 엠에스앤닷컴(msn.com)은 최근 미국 현충일을 맞아 미국 역사상 최고의 전쟁영웅 16명을 발표했다. 고(故) 김영옥 대령(1919~2005)이 그중 한 명으로 꼽혔다. 미국 독립전쟁의 영웅이자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 남북전쟁 당시 북군 총사령관으로 북군을 승리로 이끈 뒤 18대 대통령이 된 율리시즈 그랜트, 제2차 세계대전 승리의 주역으로 34대 대통령이 돼 6·25전쟁의 포성을 멈추게 한 아이젠하워, 역시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맥아더….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니미츠 제독조차 들어가지 못한 이 명단에 유색인종으로는 유일하게 그가 포함된 것이다. 니미츠 제독은 미군 사상 최대의 해전으로 꼽히는 미드웨이 해전(1942)에서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일본 해군에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혀 태평양전쟁 승리의 발판을 마련한 인물로 꼽힌다. 하와이와 캘리포니아에는 그의 이름을 딴 ‘니미츠 고속도로’가 있다. 대령으로 퇴역한 ‘김영옥’이 군인으로서 그보다 높게 평가받은 셈이다.

엠에스앤닷컴은 명단을 발표하면서 “김영옥은 1919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한국계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후 예편했으나 6·25전쟁이 터지자 재입대했다. 6·25전쟁 당시 김영옥은 한국어를 모르는 것처럼 행동해 통역장교가 되는 대신 보병부대로 갔다. 이후 여러 차례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 후 미국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계 야전대대장이 됐다”는 설명과 함께 그의 사진을 게재했다.

이번 발표는 미국이 김영옥 대령을 어느 수준으로 평가하는지와 함께, 그에 대한 국제적 역사적 평가가 깊이 있게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엠에스앤닷컴의 짧은 설명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먼저 ‘6·25전쟁 당시 한국어를 모르는 것처럼 행동해 보병부대로 갔다’는 내용을 보자. 당시 미군은 한국어를 단 한 마디라도 할 줄 아는 한국계 미군 장병은 모두 정보·통역·번역 병과에 배정했다. 그런데도 김 대령은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것처럼 행동해 최전선 전투부대로 갔다는 의미다. 실제로 김 대령은 극동군사령부 한국어 시험에 일부러 떨어진 뒤 1951년 3월 한국에 왔고, 도착한 뒤에도 정보나 통역 장교로 후방에 붙잡아두려는 주한미군사령부와 7사단 사령부의 시도를 애써 뿌리친 채 최전선으로 갔다.

미국 최고의 전쟁영웅



‘여러 차례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 후’라는 설명은 미국 정치권이나 미군 지휘부의 정치적 제스처 덕택에 대대장이 된 게 아니라 자신의 능력으로 대대장이 됐다는 의미다. 특히 눈여겨볼 것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계 야전대대장이 됐다’는 부분이다. 이 문장에는 실로 커다란 의미가 함축돼 있다. 김영옥 대령은 사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유색인 야전대대장이다.

흑인 노예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건국된 미국은 6·25전쟁이 진행되던 195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인종차별이 합법적으로 이뤄지던 비인간적인 나라였다. 1964년이 돼서야 법적으로 인종차별을 폐지했으나 현실적인 차별은 계속되다가, 불과 2년 전인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처음으로 유색인도 대통령이 되는 나라로 발전했다.

미국사(史)는 인종차별의 개선 과정, 다시 말해 자유와 평등의 확산 과정으로 볼 수 있는데, 이 같은 자유와 평등의 확산은 미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유색 인종이 흘린 피와 직접적으로 관계돼 있다. 미국은 전쟁에서 백인 군대의 힘만으로 승리하기 어렵거나 승리가 불확실할 때 유색인에게 미군 군복을 입혔다. 군대는 계급장을 공개적으로 달고 다닌다는 점에서 유색인에 대한 대우가 가장 직설적으로 나타나는 곳이었다. 유색인이 전장에서 능력을 입증하고 큰 희생과 공헌을 하면 조금씩 높은 계급과 중요한 보직이 허용됐고, 이는 다시 미국사회 전반의 인종차별 개선으로 이어졌다.

미국은 군을 대단히 소중하게 대우하는 국가다. 미군에 대한 미국인의 자부심과 애정은 실로 대단하다. 매년 현충일, 부모들이 자녀의 손을 잡고 전국 도처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기념식장을 찾는 모습에서도 이런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국민적인 지지를 누리는 미군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만 해도 유색인을 징병대상에서 제외시켰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는 유색인에게 야전중대장까지의 보직만 허용했다. 6·25전쟁 때 첫 유색인 야전대대장이, 월남전에서 첫 유색인 야전연대장이 탄생했다.

미군이 전장에서 유색인을 대대장에 임명하는 것은 백인 장병 800명의 생사를 유색인에게 맡긴다는 걸 의미한다. 미국사(史)와 미국인의 유색인에 대한 사고를 고려하면 파격 중의 파격이다. 사회 전반에 걸친 평등의 확산이라는 면에서도 커다란 의미가 있는 조치다. 그 주인공이 바로 김영옥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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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성│재미언론인,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 저자 wshan@stanford.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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