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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파도소리 : 다음 문명을 위한 인문학적 상상

“지금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야만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책임감”

내일의 파도소리 : 다음 문명을 위한 인문학적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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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세계 질서가 상당기간 큰 변화 없이 유지될 것인지 아니면 어떤 새로운 질서에 의해 대체될 것인지의 두 전망 가운데 어느 쪽으로 개연성의 저울이 기울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도 물론 점검 작업에 속한다. 지난 60년간 세계를 주도해온 나라는 미국이고, 결정적으로 18세기 이후 200년 이상 세계를 장악해온 문명은 미국이 포함된 서유럽 문명이다. (‘주도’라는 용어는 비판적 관점에서는 환영할 만한 것이 아니지만 현실적 관점에서는 그것을 대체할 다른 마땅한 용어가 없다.)

국가로서는 미국, 문명권으로서는 서유럽 문명이 주도하는 세계의 현상 질서는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가까운 미래에, 21세기 안에, 그 지배 세력을 대체할 만한 다른 세력으로서 지금 사람들의 가시권 안에 들어오는 나라나 문명이 있는가? 동아시아의 중국은 가장 눈에 띄는 강력하고 야심만만한 대체 후보의 하나다. 세계의 눈은 지금 중국으로 쏠리고 있다. 세계가 미국과 중국의 한판 경쟁을 보고 있다는 생각도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판도 변화를 정치적 영향력, 경제력, 군사력 등 힘을 기준으로 예측하는 것은 인문학적 관점에서는 거의 무의미하다. 그런 예측이라면 그것은 단순한 통계상의 수치 변화를 따라가는 일만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명의 자산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중국은 세계의 주도국으로 올라설 만한 ‘문명의 자산(civilizational assets)’을 갖고 있는가? 미국은 경쟁국들을 물리치고 계속해서 세계를 주도해나갈 만한 문명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가? 중국이 힘을 길러 세계의 주도국으로 부상한다면 그 중국은 어느 문명에 속하고 어떤 문명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미국이 주도국의 지위를 유지한다면 그 능력은 미국이 가진 어떤 문명적 자산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미국도 중국도 아닌 또 다른 제3의 세력이 나타난다면 그 새로운 세력은 어떤 문명적 자산을 힘의 기반으로 하는 것일까?

어떤 국가도 ‘문명’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서 세계의 주도국으로 올라서는 일은 없다. 이것이 문명의 중요성이며, 국가와 문명이 다른 이유다. 칭기즈칸의 몽골제국은 이렇다 할 문명의 기반 없이 제국을 구축할 수 있었던 예의 하나다. 로마는 어떤 문명을 기반으로 해서 출발하고 또 제 손으로 문명을 만들어나갔던 제국의 예에 속한다. 그러나 몽골은 바람처럼 한때 중앙아시아를 제패했던 제국의 이름으로만 기억될 뿐 어떤 문명적 유산으로 현재에 살아 있지 못하다. 로마제국도 몽골제국처럼 멸망했지만 몽골과는 달리 로마가 남긴 문명적 자산은 지금도 계승되고 있다. 미래의 상당 기간에도 국가라는 것이 존속하는 한 모든 국가는 국익(國益)추구라는 명령으로부터 놓여나기 어려울 것이지만, 어떤 국가도 자국 이익의 추구만으로 세계의 주도국이 될 수는 없다. 이 결정적 차이를 만드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문명적 자산’이라 부른 것의 유무다. 국익은 서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문명적 자산은 국가들 사이에 공유될 수 있다. 이 공유 가능한 자산의 있고 없음을 점검하기-이것이 앞에서 우리가 인문학의 관점으로 미래 문명의 모습을 미리 점검할 수 있다고 말했을 때 그 ‘점검’의 두 번째 중요한 의미다.



그런데 그 문명적 자산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우리는 계몽철학자 볼테르에게서 쉬운 예를 하나 꿔올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문명적 자산이라는 것과 유사한 의미에서 볼테르가 문명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 생각한 것은 ‘관용(tolerance)’이다. 관용의 핵심은 타자의 인정과 존중이다. 나와 다른 사람, 내 생각과 다른 생각, 내가 가치라고 여기는 것과는 다른 가치, 내 삶의 방식과는 다른 삶의 방식-이런 것이 통틀어 ‘타자’다. 이 타자를 인정하고, 단순 인정을 넘어 존중하는 것이 관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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