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고은이 드라마 ‘변호사들’에서 차지한 비중은 주연이라 하기 힘들다. 드라마가 방영되기 전부터 ‘정혜영 김상중 한고은 김성수’가 나란히 메인 타이틀롤이라고 소개됐지만, 한고은이 연기한 양하영은 나머지 세 명이 맡은 역할과 비교하면 그 비중이 한참 못 미치는 인물이다. 드라마가 정혜영과 두 남자 김상중, 김성수의 삼각관계로 흘러가면서 한고은은 그야말로 ‘주변인물’로 전락했다. 이 때문에 방영기간 중 한고은의 비중을 놓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혹자는 한고은의 캐릭터가 “생각 없는 푼수역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며 한고은이 극중에서 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동료 변호사(이휘재 분)와 ‘농담 따먹기’를 하는 장면은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극치”였다고 혹평한다. 그러나 한고은은 이 작품을 통해 연기변신을 했다고 평가받을 만하다. 연출을 맡았던 이태곤 PD는 한고은에 대해 “늘 도도하거나 깔끔한 이미지로 나오는 이 여자가 한번 망가지면 어떤 모습이 될까 궁금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PD의 예상대로, 한고은이 망가지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존재감이 확실한 팜파탈을 연기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말이다.
한고은은 자신이 지닌 섹시한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할 줄 안다. 이번 드라마에도 시청자들이 ‘과다 노출’이라고 지적할 만큼 파격적인 옷차림을 하고 등장했다. 매끈한 각선미가 돋보이는 미니스커트와 가슴 굴곡이 드러나는 아슬아슬한 옷차림에 대해 그는 “대본에 있는 대로 표현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양하영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동원한 방법의 하나라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빛날 수 있다는 걸 알고, 또 그 배역을 즐길 수 있었던 건 한고은에게 큰 수확이었다.
도톰한 입술이 차가운 이미지 보완
푼수 같은 여비서 역할로 연기 변신에 성공했지만 한고은에게 잘 어울리는 배역은 따로 있다. 그동안 그가 맡은 캐릭터들을 살펴보자. 한고은의 도시적이고 스타일리시한 이미지는 그가 연기한 직업군에서도 드러난다. ‘꽃보다 아름다워’의 캐피털리스트, ‘봄날’의 패션 디자이너, ‘보디가드’의 경호원 등 대부분 전문직이다. 도도하고 차가우며 일에 전력을 다하는, 프로근성이 돋보이는 당찬 커리어우먼을 주로 연기했다.
이런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는 한고은의 얼굴 생김새가 한몫 했다. 한 성형외과 전문의는 한고은의 얼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남성적인 직선의 코와 또렷하고 큰 눈 안에 담긴 눈동자가 차가운 느낌을 준다. 코와 눈동자의 조화는 도회적이고 세련돼 보이지만 타인이 쉽게 다가가기 어렵게 하는 단점도 있다.”
또 다른 성형외과 전문의는 “한고은의 도톰한 입술이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는 동시에 코와 눈동자의 차가운 이미지를 보완한다”고 평했다.
그러나 한고은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차가움과 동시에 따뜻함이 느껴진다. 그가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미수를 연기했을 때, 엄마(고두심 분)를 부여잡고 울거나 오빠를 죽인 인철(김명민 분)과 가슴 아픈 사랑을 나눌 때 누구보다 따뜻한 인간미를 풍겼다. 또한 그의 달걀형 얼굴은 순종적이고 여린 느낌을 주며, 큰 눈에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엿보인다.
드라마 ‘변호사들’의 여비서 양하영이 한고은과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듯한 느낌을 준 것은 그가 그간 보여주던 ‘당당함’을 잃었기 때문이다. 만약 한고은이 여비서가 아니라 변호사 역을 맡았더라면 어땠을까. 커리어우먼의 이미지로만 굳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겠으나, 분명 꽤 그럴 듯한 그림이 됐을 것이다. 한 가지 이미지에 갇히는 것은 배우로서 한계가 될 수도 있지만 한고은에게 당당한 커리어우먼 역을 맡기는 것은 반쯤은 ‘안심’해도 되는 장사다.
그러니 한고은이 사극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고은은 ‘장길산’에서 사당패 창기 출신이자 장길산(유오성 분)의 첫사랑인 ‘묘옥’을 연기했다. 캐릭터의 성격을 떠나 ‘한고은과 사극’이라는 조합에 계속해서 물음표가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