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미국 하원은 일본 정부의 집요한 로비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관련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여기에는 미국에 있는 한인 풀뿌리 단체가 큰 역할을 했지만 청문회 등을 주도한 애니 팔레오마베가 하원 아시아태평양 소위원장의 활약이 주효했다. 강원도가 9월1~3일 주최한 ‘2009 한국 DMZ 평화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그를 인터뷰했다.
▼ 개인적으로 위원장이 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온 것에 감명받았다. 위원장은 왜 하원 결의안 통과를 적극 지원했나.
“하와이에서 자란 나는 고등학교, 초등학교 친구 중에 한국인이 많다. 물론 일본, 필리핀, 중국인 친구도 많다. 한국인과 결혼한 친척도 있고, 한국전에 참전한 친척도 있다. 한국의 슬픈 역사에 대해 잘 안다. 일본의 식민지였고,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에는 분단됐다. 나는 외교위에서 20년 넘게 있었는데, 지금은 영예롭게도 아태소위 위원장으로 있다. 지금까지 미 의회 역사상 아시아태평양계 출신이 아태소위 위원장을 한 것은 내가 처음이다. 그래서 내가 가진 모든 힘을 다해 그 문제에 대해 미국 의회와 미국인이 관심을 갖도록 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더욱이 한국과 아시아는 미국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한국에 관심이 있는 사안은 미국에도 중요하다.”
▼ 당시 결의안 통과에는 한인유권자센터 등 풀뿌리 단체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미국에는 200만명 이상의 한인이 있다. 김동석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등이 미국 동부를 중심으로 많은 노력을 했다. 현재 아시아태평양 출신이 미국에 1500만명 이상 살고 있지만 문제는 정치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아시아태평양계가 투표에도 더욱 활발하게 참여하고 정치활동을 하는 것은 미국에도 좋은 일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위안부’(comfort women)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것은 사실을 오도하기 때문에 다른 표현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적인 노예’(sexual slaves)라고 해야 맞는 표현이다.”
‘나눔의 집’을 찾아 위안부 할머니를 위로하는 팔레오마베가 위원장.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위안부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성매매를 강요당했다. 당시 일본군 입장에선 ‘위안’(comfort)이 됐을지 모르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한국인, 중국인, 인도네시아인, 필리핀인 등 20만명이 동원됐다. 그런데 아이러니는 미 의회에서 결의안을 주도한 정치인이 마이클 혼다라는 일본계 미국 하원의원이라는 점이다. 나는 또 우연히 아태소위 위원장이어서 청문회를 열 권한이 있었다.”
일본 외무상의 압력
▼ 청문회가 미 여론을 바꾸는 데 중요한 구실을 했다고 들었다.
“의회에서 그 문제에 대해 청문회가 열린 것은 미 역사상 처음이었다. 일본에 의해 납치돼 성적인 노예로 살아야 했던 할머니 세 분이 청문회에 참석해 증언했다. 그러자 2주 후에 ‘뉴욕타임스’가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뤘다.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선 아시아계 언론만 다뤘다. 아소 다로 당시 일본 외무상이 나를 찾아오더니 ‘결의안 상정이 계속된다면, 일본과 미국 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이다’라는 말까지 했다. 그렇지만 나는 설득당하지 않았다. 나는 개인을 공격한 것이 아니다. 내 친구 중에 일본인도 있는데 이렇게 말했다. ‘희생자가 당신의 어머니, 누이, 부인이 될 수 있다. 당신이라면 분노하지 않겠는가’ 세 명의 할머니가 청문회에서 증언했을 때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20만명에 달하는 희생자가 이런 일을 겪지 말았어야 했다. 이제 우리는 미 의회 결의안을 넘어서야 한다. 유엔 차원에서 결의안을 내도록 해야 한다. 또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이런 행위를 범죄로 간주해야 한다는 내용의 국제협약을 맺어야 한다. 그것이 나의 바람이다.”
▼ 위원장 지역구인 아메리칸 사모아는 어떤 곳인가.
“한국과도 인연이 많은 곳이다. 아메리칸 사모아는 수년 동안 4억~5억달러 어치의 참치 통조림을 미국 본토에 수출해왔다. 주로 한국 원양어선이 참치를 잡아온다. 그런데 동원이 최근 가장 큰 참치 브랜드 회사인 스타키스트를 매입했다. 스타키스트는 아메리칸 사모아에서 가장 큰 민간기업으로 고용규모도 가장 큰 회사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과 오늘 점심도 함께 했다. 아메리칸 사모아는 태평양 중간에 있는 섬으로 공장이 없어 물이 매우 깨끗하다.”
▼ 한미 관계로 화제를 돌려보자. 미국과 한국 간 자유무역협정(FTA)은 아직도 양국 의회와 국회의 비준을 받지 못하고 있다. 향후 전망을 어떻게 보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시절 한미 FTA에 유보 의견을 강하게 표시한 바 있다. 미국 자동차산업이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그가 최근에는 달라졌다. 그 이슈를 기꺼이 살펴보고 있다. 상원이 먼저 통과시켜야 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문제가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 특히 최근 경제상황을 보면 더욱 그렇다. 미국은 수출을 더 많이 해야 하는데, FTA가 발효되면 미국의 수출이 110억~200억달러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농업 수출이 많이 늘어난다고 한다.”
DMZ평화포럼에 참석한 팔레오마베가 위원장(왼쪽)과 김진선 강원지사.
“민주당 지도부는 아시아와의 관계에 더욱 집중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일본의 최대 무역 상대국은 중국 아닌가. 그런데 언론이 일본 선거가 미일 관계에 미칠 영향을 너무 확대해석한 것 같다.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도 기본적으론 아소 다로만큼 보수적인 정치인이다. 출신이 자민당이고, 그의 할아버지도 총리를 지낸 분 아닌가. 어떤 변화가 올지 한번 지켜보자. 그런데 적어도 안보문제의 경우 미일 간 관계가 약화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 다만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
▼ G2(미국+중국)를 언급하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긴밀한 협력이 최근 글로벌 경제가 안정을 찾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갈수록 영향력이 커지는 중국으로부터 우리는 어떤 역할을 기대할 수 있나. 미중 관계는 어떻게 보나.
“양국 정상이 전략적 대화를 시작한 것은 이제 세계가 더 이상 중국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중국이 이제 미국과 같은 리그에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중 관계는 어떻게 될까. 미국과 협력을 원한다고 말하는 중국의 의도는 진실하다고 본다. 빈곤, 기후변화, 특히 북한에 대해 중국만큼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없다. 미국에서도 중국을 ‘제2의 소련’이라며 경계하는 시각이 많다.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미국과 서구를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이 많다. 미국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에 깊숙하게 작용하고 있다.”
美 의료보험 개혁해야
▼ 의료보험 개혁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다. 이 문제는 때로는 미국인들을 양극단으로 분열시키고 있다. 의료보험 문제에 대한 견해는 어떤가. 그리고 음모론을 믿는 일부 우파인사는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따라서 미국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까지 주장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친한 친구로서 이런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참고로 미 헌법은 미국에서 출생한 사람만 대통령에 출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지만 내가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지난해 미 전역에서 인지도가 있는 블로그에 내가 오바마 대통령의 ‘특수요원’으로 인도네시아에 갔다는 글이 올라왔다. 실제로 나는 그곳에 갔다. 그리고 내가 오바마 대통령이 어린 시절 다녔던 학교를 방문했다는 내용이 이어졌다. 실제로 나는 그 학교를 방문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 대목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오바마의 출생기록을 은폐하라는 특수요원 자격으로 내가 인도네시아에 갔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내가 지금까지 들었던 가장 이상한 주장이다. 오바마가 하와이 호놀룰루 병원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모든 공식기록에 다 나와 있다. 하와이에 사는 내 친구가 어릴 때부터 그를 알고 있다. 오바마 어머니가 인도네시아 출신 남자와 재혼하면서 인도네시아에서 산 적은 있지만 태어난 것은 분명히 하와이다. 오바마는 어머니가 다시 하와이로 돌아오면서 편모와 외조부모와 함께 살았다. 그리고 의료보험 문제와 관련해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의 16%가 의료비로 나간다. 끔찍한 이야기다. 또 세계에서 가장 부자나라에서 무보험자가 4600만명이라는 게 말이 되나. 한마디로 시스템이 망가진 것이다.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 문제는 의료보험 개혁 관련 법안이 1만쪽이 넘어서 비판자가 문맥을 뒤틀어 제멋대로 인용하고 있다. 공화당은 뒤트는 데 재주가 있다. 우선 미국인에게 왜 개혁이 필요한지를 잘 알려야 한다. 의회에서 더 좋은 전략을 세워야 한다.”
▼ 의료보험 개혁의 최종 결과는 어떻게 될 것 같나.
“예상하기 어렵다. 한국에 와보니 의료보험 제도가 잘돼 있더라. 캐나다, 일본, 이스라엘 등이 잘돼 있는 곳인데 왜 우리가 배울 수 없는지 이해가 안 된다.”
▼ 오바마 대통령과 의회 간 관계는 어떤가.
“상호 좋은 관계다. 우리가 상원과 하원에서 모두 다수당이지 않은가. 대통령으로선 어려운 측면도 있다. 의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서 너무 왼쪽으로 가서도, 너무 오른쪽으로 가서도 안 된다. 결국 중간을 유지하면서 다수를 확보하는 방법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극단적인 우파나 극단적인 좌파는 안 된다. 정치인은 실질적일 필요가 있다.”
▼ 당신은 DMZ 평화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의회에서 당신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소위원회는 글로벌 환경이슈를 담당하기도 한다.
“DMZ의 아이러니는 전세계에서 가장 삼엄한 무장이 이뤄진 곳이 환경 측면에서는 낙원이라는 점이다. 야생동물은 어울려 살고 있는데, 왜 남한과 북한은 그렇게 살 수 없는지 의문을 갖게 만든다. 지금 당장 통일은 비현실적이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남북한이 차이점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남북한 당사자들이 스스로 이뤄내야 한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미국이 역할을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빅 보이’는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있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있다. 잘 헤쳐나가야 한다. 내 사촌이 사모아 총리인데 아프리카의 한 대통령과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아프리카 대통령이 ‘아프리카에 두 코끼리가 싸우면 풀밭이 짓밟힌다는 말이 있다’고 말하자, 내 사촌은 ‘사모아에는 두 코끼리가 짝짓기를 할 때에도 풀밭이 밟힌다는 속담이 있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사실 사모아에는 코끼리가 없다.(웃음) 한반도에서 중요한 열쇠는 중국이 쥐고 있다. 중국에 대해 첫째 북한 난민들이 중국에 대거 유입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과 둘째 중국의 안보 이슈가 절대로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