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호

임인배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의 솔직 반론

“낙하산이 무슨 문제냐, 리더십과 능력이 문제지”

  •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9-10-08 17: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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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류 조작하는 허위점검, 곧바로 파면했더니 사라져
    • 업무성과·태도 하위 3% 집중관리, 개선 안 되면 퇴출
    • 회사 노조에 ‘민주노총 탈퇴’ 설득하는 까닭
    • 신입직원 임금 깎아 채용 늘리는 정책, 솔직히 문제 있다
    • 남보다 1초라도 빨리 시장에 적응하는 ‘1초 경영’
    • 공기업 최대의 적은 매너리즘…잘하는 사장도 때 되면 바꿔야
    • 기술자들이 정치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낫더라
    임인배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의 솔직 반론
    한국전기안전공사. 영문 약자로는 KESCO(Korea Electrical Safety Corporation)로 불리는 이 회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평범한 독자라면 공기업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흔히 그렇듯 ‘신이 내린 직장 중 하나 아니냐’는 정도가 첫 번째 느낌일 듯싶다.

    “한마디로 전기의 안전한 사용을 책임지는 종합병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기가 안 들어오면 국민들은 한국전력을 찾지만 사실은 KESCO 직원들이 달려갑니다. 사실 저도 여기 오기 전까지는 한전에서 고장수리를 하는 줄 알았어요. (웃음) 전봇대에서 가정, 빌딩, 아파트, 공장, 발전소까지 전기 고장과 안전 문제는 우리가 책임집니다.

    건물을 처음 지을 때도 업자들이 전기공사를 하고 나면 우리 직원들이 나가서 사용 전 점검을 해야 합니다. 이걸 받아야 비로소 한전에서 전기를 보내주는 거죠. 그 후에도 사업장의 경우 1년에 한번, 주거용 건물의 경우 3년에 한 번씩 의무적으로 안전점검을 받아야 합니다. 기억하는 분은 많지 않아도 누구나 전기안전공사의 방문을 받고 있는 거죠. 이만하면 꽤 국민 가까이에 있는 기업 아닙니까?”

    경상북도 억양이 진하게 배어있는 빠른 말투. 임인배(55) KESCO 사장의 설명이다. 1996년부터 고향인 경북 김천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래 내리 3선을 했고, 2002년 원내 수석부총무, 2006년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장을 지낸 한나라당의 유력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공천을 받지 못한 그는, 6개월 뒤인 10월초 KESCO 사장에 임명됐고 이제 취임 1년을 앞두고 있다.

    “낙하산이라면 낙하산이죠. 임명될 때부터 많이 받은 비판이지만 굳이 부인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봐요. CEO가 회사의 모든 디테일을 다 알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방향을 잘 설정해서 직원들의 역량을 통합해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게 리더십이죠. 디테일을 아는 사람이 와도 큰 방향을 놓치고 우왕좌왕하다가 임기가 끝나는 경우도 많거든요. 능력 있고 리더십 있는 사람을 뽑는 게 중요하지 어느 분야 출신이냐는 건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임인배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의 솔직 반론

    농촌 지역의 전기 안전을 점검하는 KESCO 직원들.

    정면돌파다. 돌려 말하는 법이 없다. 점잔 빼는 다른 인터뷰이보다는 훨씬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허위보고는 파면한다”

    ▼ 취임 후 1년 동안 공부를 적잖이 하셨을 듯 합니다. 뭘 느끼고 배우셨는지 궁금한데요.

    “제가 문과 출신이에요. 전기에 대해서는 국회 산업자원위원회에서 보고 들은 게 전부죠. 여기 와서야 모두 배웠어요. 직원 2900명 대부분이 엔지니어입니다. 본사에 있는 사람들도 일부 사무직만 빼놓고는 전부 검사를 나갑니다. 전국 13본부 48개 지사에서도 소장하고 부장 빼놓고는 전부 현장에 나가고요.

    반복적인 점검 업무라고 무시하면 안 돼요. 현장에 가서 보니 직원들이 고생 엄청 많이 하더라고요. 감전사고 당하지 않으려면 한여름에도 두꺼운 목장갑이며 옷이며 다 갖춰 입고 지하 배전실을 구석구석 누벼야 합니다. 사실 말이 쉽지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사업장, 주택마다 일일이 점검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업무분량이 어마어마합니다. 그래서 제가 느꼈지요, ‘아 현장에 있는 직원들은 혼내면 안 되겠구나. 하급직원들하고는 대화하고 설득하고, 간부들을 쪼아야겠다….’ (웃음)

    혁신과제를 꺼내놓고 추진해보니 직원들의 의식이 변화하도록 만드는 게 가장 어렵습니다. 극단적으로는 현장직원 가운데 나가지도 않은 전기설비 검사를 했다고 허위로 보고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한다’는 회사의 존립근거를 흔드는 일이죠. 제가 취임하고 나서 몇 달 안 되어 그런 사례가 적발됐는데, 이튿날 바로 회의를 열어서 그 직원을 파면시켰습니다.

    요즘도 조회 때마다 얘기합니다. 수익을 못 올려도 좋다, 적자가 나도 좋다, 그렇지만 주어진 임무를 안 할 것 같으면 회사 그만둬라, 그렇게 말이죠. 워낙 강하게 얘기하고 감사도 많이 나가니까 거의 뿌리를 뽑았습니다. 직원 대부분은 성실한 분들인데, 간혹 그렇게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사례들이 있었어요.”

    ▼ 조직 슬림화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건가요, 자료를 보니 정원의 10% 감축을 추진하고 있고, 지사도 축소하고 있더군요. 다른 공기업처럼 자연감소분을 충원하지 않는 방식이 아니라 아예 인위적으로 직원을 퇴출하는 공격적인 정책이던데요.

    “본사와 전국 지사에 업무 성과와 태도에서 하위 3%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제출토록 했습니다. 지사별로 많아야 두 명 정도 됩니다. 이들을 인사실장이 직접 교육시키고 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개선이 안 되는 직원들은 연말까지 퇴출할 계획입니다. 정부에서 정한 인력감축 규모와는 별도로 생산성이 안 나오는 직원을 정리하겠다는 겁니다. 문제는 열성과 성격이에요. 기술이나 경력은 충분한데도 나태한 사람들이 어느 조직에나 있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들을 정리하겠다는 거죠.”

    한전에 대한 피해의식

    ▼ 직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요.

    “부실점검하다가 파면당한 직원들은 소송하겠으면 해봐라, 제가 그렇게 얘기합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우리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직원들도 공유하고 있거든요. 지난해에는 노조가 상당히 강성이었는데, 올해 집행부가 바뀌면서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민주노총 소속임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온건한 편이고요. 대화가 통한다고 할까요. 스킨십을 강화하면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도 거듭 노사합의를 강조하고 있고요. 제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민주노총에서 탈퇴하는 것이 좋지 않느냐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4급 직원이 노조 상근자가 되면 비공식적으로 2급이나 1급 수준의 월급을 주곤 했습니다. 상급단체에 파견된 직원들까지 월급을 다 줬고요. 심지어는 특채를 할 때 노조위원장이 동의하지 않으면 잘 안 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그런 식의 비정상적인 일들은 철저히 없애려고 합니다.

    임인배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의 솔직 반론
    우리 회사는 아무리 적자가 나도 나라에서 월급을 보장합니다. 그런데도 상급단체에 조합비의 상당부분을 납부하고 있더라고요. 그 규모가 꽤 큽니다. 그럴 필요가 뭐 있느냐는 거죠. 그런 문제의식에 동의하는 직원도 많고요.

    물론 꼭 민주노총을 탈퇴할 필요는 없겠죠. 다만 회사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자는 겁니다. 저희가 요즘 연봉제를 도입하려고 협의하고 있습니다. 담당처장이 전국 사업소를 하나하나 돌면서 새로운 임금체계 안을 설명하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또 직원들 사기를 높이는 일도 같이 해야죠. 전기 관련 회사다보니 아무래도 한전이 미치는 영향이 꽤 큽니다. 한전 자회사로 잘못 알고 계신 국민도 많아요. 직원들에게도 알게 모르게 피해의식이 있고요. 심지어는 우리 회사 임원조차 한전에서 오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번에는 제가 못 받겠다고 잘라서 거절하고, 대신 내부승진으로 이사를 임명했습니다. 직원들에게 ‘나도 열심히 하면 임원 될 수 있다’는 동기를 부여하는 거죠.”

    돈 벌려면 길은 많다

    KESCO는 지난해 정규직원을 72명 선발했다. 당초에는 45명을 뽑을 예정이었지만 직원들의 성과상여금 일부를 돌리고 신입직원들의 연봉을 14% 줄여서 규모를 늘린 것. 하반기에는 간부직원들의 성과금 20%를 유보해 청년인턴을 채용하기도 했다. 정부가 강도 높게 추진하는 ‘일자리 나누기’와 ‘경영효율화’ 정책에 따른 조치들이다.

    ▼ ‘일자리 나누기’ 정책을 보면서 흔히 갖는 의구심이, 줄어든 임금으로 채용된 직원들의 월급은 앞으로도 계속 격차가 유지되는 건지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경제위기가 해소되면 그만큼 다시 인상해주는 거냐는 거죠.

    “솔직히 말해 제가 보기에도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듭디다. 올해도 60명을 새로 채용할 계획인데, 마찬가지로 임금을 낮춘 상태로 뽑아야겠죠. 정부에서는 장기적으로 모든 공기업 직원의 임금을 그 정도 선으로 낮추겠다는 생각을 하는 듯한데, 그게 과연 될까 싶어요. 올해 1월1일부터 입사한 모든 공기업 직원은 위 기수에 비해 400만원씩 연봉이 적어요. 그렇다고 경기 회복 후에 원상 복구한 월급으로 직원을 뽑을 수도 없겠죠.

    그렇다보니 최근 공기업들이 신입직원을 잘 안 뽑으려고 합니다. 아예 경기가 풀리고 나서 예전 임금으로 뽑는 게 편하겠다는 판단이겠죠. 300개 공기업 가운데 하반기 채용이 예정된 회사가 4개뿐이에요. 젊은 대졸자들이 갈 데가 없는 거예요. 저 개인적으로는 월급 액수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봐요. 마인드에 문제가 있는 직원들을 정리하고 어떻게든 수익을 만들어내는 게 더 중요하죠.”

    ▼ 반복되는 안전점검 업무를 하는 회사의 특성상 수익 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데요.

    “그게 고정관념이에요. 발상을 바꾸면 길은 있습니다. 우선은 공공기관이나 일반기업과 파트너십을 맺어서 전기안전 컨설팅을 제공하고 긴급출동 서비스를 해주는 사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몇 해 전에 GS칼텍스 여수 공장에서 단 1초 동안의 정전으로 200억원 가까운 피해가 발생한 일이 있잖아요. 법적으로 강제된 안전점검은 3년 주기지만, 이렇게 한 번 정전으로 엄청난 손해를 보는 회사들로서는 저희한테 상시 안전점검을 받는 게 오히려 이득이죠. 인천국제공항부터 소방방재청, 문화재청 같은 기관들이 이미 협약을 맺었고 삼성정밀화학, 현대하이스코㈜, 이마트 같은 민간회사들도 파트너십을 맺었습니다.

    해외에도 같은 방식으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사실 국내시장은 이미 포화상태거든요. 건물이나 공장을 예전만큼 짓지 않으니까요. 제3세계 국가에 진출한 우리 기업이나 현지 기업들의 시설을 점검해주는 겁니다. 오늘도 경기지사에서 중국에 사업이 있어 나간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디다.

    우리보다 기술수준이 못한 나라에 점검기술을 교육하고 전수하는 사업도 있습니다. KESCO의 기술력이 세계적인 수준이거든요. 제3세계 국가들 가운데는 전기가 하루에도 몇 차례씩 나가는 나라가 수두룩해요. 이게 단순히 우리 회사만을 위한 일이 아닌 것이, 베트남이나 몽골 같은 나라에 우리 기술을 전파하면 한국식 전기안전 표준이 그 나라 표준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 민간기업들이 해당 국가 관련 사업에 진출하는 데도 아주 유리해지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나갈 때는 민간기업들이 자기 돈 들여서 함께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해서 해외사업 부분에서만 지난해 20억원이 남았습니다. 전체적으로는 부채 600억원 중에서 200억원 가까이 갚았고요. 내년부터는 흑자가 날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첫인상처럼 거침이 없다. 정부의 일자리 늘리기 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말은 평범한 공기업 CEO라면 하기 쉽지 않은 말이다. “장기적으로는 북한 진출도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더욱 그렇다. 의원 시절 방문한 평양의 전기설비 관리 수준이 엉망이었다는 것. “만약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우리가 그 대가로 원자력발전소를 지어줄 수도 있는데, 그러자면 먼저 낡은 송배전망부터 손봐야 한다”고 임 사장은 말했다. 동향 출신인 한전 김쌍수 사장과는 북한에 함께 진출해보자는 아이디어를 자주 나눈다는 이야기였다.

    ‘1초 경영’을 내놓은 이유

    ▼ 그렇다고 월급이 크게 늘어나는 것도 아닐 텐데, 직원들 입장에서는 도리어 부담스럽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부분도 있지요. 전임 CEO 분들이 해외사업을 생각하고도 선뜻 나서지 못했던 게 그 때문이고요. 근로여건이 열악한 국가에 나가 몇 달씩 일하라고 하면 당장 직원들이 손을 들어버리죠. 곧 제도를 고칠 계획이긴 하지만, 지금은 별도 수당도 없어서 사장이 차나 한잔 대접하는 게 전부거든요. 그렇지만 공기업도 돈을 벌어야 합니다. 흑자가 나야 남는 돈으로 사회봉사도 하고 직원들 복지도 개선할 수 있지요.

    사실 공기업이 해외에 진출하려는 경우가 많지 않아요. 공기업 CEO는 제아무리 좋은 일로도 언론에 안 나는 게 좋다고들 하잖아요. 가만히 있으면 임기 3년 채울 수 있는데 괜히 부산하게 굴다가 사고 터지면 단박에 날아간다는 거지요. (웃음) 제가 워낙 밀어붙이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어서 이러는 걸 수도 있겠다 싶어요.

    취임한 지 7개월쯤 됐을 때 제가 ‘1초 경영’이라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공기업 CEO 안 했으면 아마 생각도 안 했을 테지만, (웃음) 어떻게 해야 300여 명이나 되는 공기업 사장 가운데 뭔가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낼지 고민하면서 전문가 자문을 구하다보니 나온 개념입니다.

    임인배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의 솔직 반론

    9월2일 충남 천안에서 한국해비타트와 공동으로 사랑의 집짓기 봉사활동을 벌인 KESCO 직원들.

    1초 경영은 다른 말로는 스피드 경영입니다. 뭐든지 빨리만 하자는 게 아니라,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빨리 적응해서 고객이 원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남보다 1초라도 빨리 시장에 내놓자는 겁니다. 물건을 만들어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남보다 1초라도 빨리 결정해서 만들어야 팔리지 않겠습니까. 공기업도 민간보다 빨리 더 좋은 서비스를 해야 사랑받는 공기업이 되죠. 우리 회사로 치면 정전사고가 생겼을 때 1초라도 빨리 출동하자는 겁니다.”

    KESCO는 지난해 ‘1초경영추진위원회’를 조직해 220개의 실행 아이디어를 만들어냈다. 그 가운데 중점추진 24개 과제를 우선순위에 따라 추진하고 있다는 것. 임 사장은 그간의 경험을 담아 지난 7월 ‘위기 때는 1초 경영을 펼쳐라’라는 제목의 경영서적을 출간하기도 했다. 24개 추진과제는 올 연말까지 마무리될 것이라고 임사장은 설명했다. 그는 “정부가 하달한 공기업 선진화 방안을 대부분 달성한 덕분에 창사 35년 만에 처음으로 국무총리상을 받는다”는 자랑을 덧붙였다.

    “정치인 출신이 제일 낫더라”

    공연한 선입관일까. 1년간 공기업 CEO로서 공격적으로 진행해온 경영방식을 들으면서, 기자의 머릿속에서는 내내 ‘절치부심(切齒腐心)’이라는 말이 떠나지 않았다. 잘나가는 정치인으로서의 12년 세월, 공천 탈락, 그리고 전에는 생각지 않았던 공기업 사장직. ‘뭔가 보여주겠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김쌍수 사장이 저한테 늘 하는 얘기가 있어요. 그분이 ㈜ LG 부회장을 지낸 전문경영인 출신인데, ‘민간기업 있을 때는 오너 한 사람한테만 충성하면 되는데 공기업에서는 나라에서 시키는 것도 잘해야 하지만 공적인 일도 해야 하는 곳이라 신경 쓸 곳이 많다’는 거지요.

    이명박 정부 들어서 지난해 제가 발령 받을 때까지 임명된 공기업 사장이 6명이었습니다. 함께 모인 자리가 있었는데, ‘정치인 출신들 낙하산이라고 욕 많이 먹는데, 우리가 잘해야 낙하산 소리 안 들을 것 아니냐’, 그런 얘길 했습니다. 4월에 대통령께서 과천에 공기업 사장 90명을 모아놓고 강연을 하셨어요. 서울시청에 있던 사람, 교수, 민간인, 정치인을 공기업에 발령내보니 국회의원 출신 정치인 출신들이 제일 열심히 잘하더라고 하셨다더군요. 추진력은 그래도 정치인 출신이 제일 낫지 않겠습니까.”

    ▼ 독특한 공기업 CEO론인데요. (웃음)

    “보면 볼수록 공기업의 역할이 참 중요합니다. 바뀌어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고요. 민영화할 것은 과감히 민영화해야죠. 해외진출도 지금은 대부분 민간기업들이 앞서지 공기업이 먼저 나서는 경우는 정말 드물잖습니까. 어려움이 예상되는 해외진출 사업은 공기업이 선도적으로 개척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나라의 힘을 믿고 할 수 있잖아요. 외국 가도 공기업이라고 하면 무조건 믿어줍니다.

    지금 우리 공기업들은 유리한 조건에 비해 지나치게 수동적이에요. 물론 다들 열심히 하고 있지만, 국정감사를 할 때마다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아쉬운 점이죠. 대통령 입장에서는 ‘시켜놨더니…’ 하는 생각이 들지 않겠어요?

    공기업 사장들이 그렇게 수동적인 데는 지나치게 강한 노조도 분명 영향을 미칩니다. 국감장에서 노조가 시위하는 바람에 세 시간씩 정회한 일도 있어요. 어떤 공기업은 노조가 반대해서 신임 사장이 석 달간 출근도 못했어요. 저하고 같이 임명장을 받았는데 연말이 되어서야 출근했다니까요. 그런 분위기라면 정말 뭔가 시도하기가 쉽지 않겠죠.”

    혁신하려면 사장을 바꿔야

    ▼ 듣다보니 정치를 떠나 있지만 여전히 정치를 생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공기업 CEO 경험이 정치에 어떤 도움이 될까, 그런 생각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제가 만으로 마흔 살에 처음 국회의원이 됐는데, 그때 참여했던 국정감사는 전부 현실을 모르고 보좌관이 연구한 자료만 보고 진행했어요. 다시 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정치를 다시 한다면 이제는 공조직의 속살을 많이 알게 됐으니 제도적으로 뭘 바꿔야 할 지 알 것 같다 싶죠.

    요즘 드는 생각인데, 국회의원은 너무 일찍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각계각층에서 최소한 이사급 이상은 지낸 사람이 하는 게 맞을 듯합니다. 검사장쯤은 돼야 검찰의 어느 부분을 바꿔야 옳겠다고 꿰뚫어 볼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너무 어린 나이에 국회에 들어가면 추상적인 얘기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놓고 보면 공기업에서 사장을 한 분들이 정치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고, 또 국회의원들이 공기업에 오는 것도 꼭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닌 것 같아요.”

    ▼ 하지만 공기업 사장의 임기가 통상 3년인데, 해당 분야에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이 CEO가 되면 업무 파악만 하다가 나가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거셉니다. 실제로 회사에 도움이 될 만한 결정을 할 수 있겠느냐는 거죠.

    “업무 파악에만 최소한 3~4개월은 걸리는 것 같습디다. 물론 우리 회사의 경우는 업무가 복잡한 편이 아니어서 짧게 걸린 건지도 모르지만, 7개월쯤 지나니까 뭘 바꿔야 할지 과제가 뭔지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런데 그중 대부분은 사람이나 조직을 익히는 일인 것 같아요. 그렇게 보면 누가 오든, 전기분야에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 정도 시간은 걸린다고 봐야겠죠.”

    ▼ 그렇게 놓고 보면 도리어 3년이라는 임기가 너무 짧은 것 아닌가요.

    “언뜻 그런 것도 같지만, 가만히 보면 3년이 적당한 것 같아요. 첫 1년간 혁신하고 다음에는 계속 돈 벌어서 마지막 나갈 때는 직원들 복지향상에 신경 쓰는 사이클이면 딱 맞지 않을까요. 우리 회사만 해도 35년 역사가 있다보니 웬만한 일상적인 일은 지금도 잘 돌아갑니다. 공기업 중에서는 사업이 상당히 투명한 편이거든요.

    오히려 공기업이 걱정해야 할 건 매너리즘이죠. 사장이 한 번씩 바뀌어서 그 매너리즘을 깨고 시대나 환경의 변화에 맞춰 바꿀 건 바꿔줘야 합니다. 지금 사장이 별문제 없이 잘한다고 5년이고 10년이고 계속 시키면 그게 더 안 좋을 수 있어요. 혁신을 못하니까요. 공기업은 특히 더 그렇다고 봅니다.”

    임인배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의 솔직 반론

    7월 20일 저르거트 몽골 자원에너지부 장관과 전기안전기술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임인배 사장(오른쪽). 이날 KESCO는 몽골 공무원에 대한 전기안전 교육, 주요 공공시설물에 대한 안전진단, 전기안전에 관한 포괄적 컨설팅 및 전기화재연구 분야에 대해 전략적 협력을 약속했다.

    ‘라보엠’을 보며 든 생각

    ▼ 기사를 찾아보다가 흥미로웠던 게, 국회의원을 하는 동안 맡았던 대한사이클연맹 회장직을 내놓으셨더군요.

    “경기단체를 운영해보니 우선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갑디다. 공기업 사장이 유지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에요. 국회의원 떨어지니까 힘이 없어서 그리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이것들이 국회의원 할 때는 그렇게 깍듯하더니만 끝나니까 바로…’ 그런 느낌이랄까요. (웃음) 정치인이라는 게, 그만두면 끝이죠. 한편으로는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그동안 맡고 있던 직함은 향우회장만 빼고 모두 내놨거든요. 회사 일을 열심히 하려다보니 시간도 없고요. 직함이라는 게 자주 만나서 술도 사고 해야지 그게 안 되면 욕먹기 딱 좋아요.”

    ▼ 성격이 워낙 오래 집착하거나 미련을 두는 편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스타일은 아니죠. 아니다 싶으면 바로 포기합니다. 그러다보니 머리도 안 세고 늙지도 않아요. (웃음) 동기모임 같은 데 가면 가장 젊어 보인다고 그래요. 지난번 선거에서 공천 떨어졌을 때만 해도, 저는 쉽게 생각했거든요. 솔직히 섭섭했지만 7전8기, 또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식구들이 다 앓아눕더라고요. 우선 아버님이 그 직후에 돌아가셨어요. 아들이 국회의원이라는 것에 자긍심이 대단하셨거든요. 이제 와 문득 돌아보면 저한테 참 갖은 정성을 다하셨어요. 가문에 인물 하나 만들겠다는 생각이셨겠죠. 지금은 거의 회복했지만 집사람도 크게 아팠고요. 집안이 완전히 풍비박산이 난 거죠. 그러고 나니 진정이 안 돼서 외국을 많이 다녔어요. 잊어버리려고 무진장 애썼죠. 생각해보면 인생에서 좋은 경험을 했다 싶습니다.”

    ▼ 자료를 보니 영화를 좋아한다고 돼 있는데, 정치 그만두시고 많이 보셨습니까.

    “어이쿠, 바쁘긴 여기가 더 바빠요. 최근만 해도 행사가 워낙 많았고 인터뷰에 곧 국정감사도 준비해야 하고요. 가장 근래에 본 영화가 ‘적벽대전’인 모양이네요. 딸이 ‘국가대표’가 재미있다고 꼭 보라고 했는데 아직도 짬이 안 나서 극장엘 못 갔네요.

    대신 요즘은 문화생활도 회사 일의 연장입니다. 얼마 전에 본사 직원들하고 서울지사 간부들 모시고 예술의전당에 가서 오페라 ‘라보엠’을 관람했습니다. 오페라를 한 번도 안 보셨다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제가 오페라단 후원회장을 오래 한 사람이라 그건 좀 안 되겠다 싶더군요. 원래는 저도 재미를 몰라서 누가 초청하면 집사람 따라 억지로 가는 식이었는데, 보다보면 이게 무척 재미나거든요. 나중에는 제가 가자고 졸랐죠.

    우리 직원들과 그런 재미를 좀 나누고 싶어요. 그런 일 아니면 아내랑 밖에서 저녁 외식 한번 하기 어렵잖아요, 매일 술 먹느라 바빠서. 그렇게 다 같이 변해서 다 같이 누려보자고 설득하는 중입니다.”

    정치인 아버지와 CEO 아버지

    그러면서 임 사장은 처음 KESCO 사장으로 일하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의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처음에는 “화끈하게 일할 수 있는 곳이 좋지 않겠느냐”고 답했다는 것. 본인의 성격상 역동적인 곳이 좋을 것 같다는 뜻도 전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다음날 다시 온 연락은 “괜히 큰 데 갔다가 사고 나면 정치 다시 하기도 어려우니 조용한 곳에서 조직관리를 익히는 게 낫지 않겠느냐”였다고 한다. “뜻이 그렇다면 잘 알겠다”는 게 임 사장의 답이었다.

    “막상 와보니 생각보다 훨씬 일도 많고, 또 인연이 맞았던 것 같아요. 물론 평가는 임기가 다 지나야 알겠지만, 공기업 사장 중에서는 제일 잘한다는 말을 들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정치할 때보다 고민하는 시간은 훨씬 많지만, 골치 아픈 일은 없어요. 정치는 돈도 모아야 하고 지역구 관리도 해야 하고 말도 많지만 여기는 딱 한 가지, 우리 직원들만 생각하면 되니까요.

    직원들로서는 몰아치는 사장이 피곤하기도 하겠지요. 그래서 대신 소통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팀별로 식사도 하고 지사에도 자주 나가고요. 행보는 강하게 해도 스킨십은 열심히 해야죠. 자주 만나고 술 먹고 얘기 나누면 마음이 약해지는 게 인간이잖아요. 제가 국회의원 12년 하는 동안 몸무게가 3kg 늘었는데, 여기 와서 1년 만에 6kg이 늘더라고요. (웃음) 우리 직원들이 엔지니어들이라서 순수하고 때가 안 묻어 있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나아요.

    설정해둔 과제들을 연말까지 다 완성하고 나면, 내년부터는 이제 진짜로 일을 하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합니다. 잔소리도 한두 번이지, 3년 내내 혁신 계획만 짜다가는 직원들이 피곤해서 못살겠다고 들고 일어날 것 같아서 말이죠. (웃음) 간부회의에서도 그렇게 얘기했어요, 고칠 건 올해 안에 다 고치고 내년부터는 열심히 일만하자고요.”

    임 사장에게는 딸만 둘이 있다. 올해 스물다섯 살과 열다섯 살, 터울이 꽤 큰 편이다. 정치할 때보다는 딸들이 좋아하겠다고 말하니 “작은딸은 그렇게 말하는데 큰딸은 아닌 것 같더라”는 답이 돌아왔다. 큰딸도 어릴 때는 친구들이 ‘너희 아빠 국회의원이라며?’하고 놀려대는 걸 싫어했는데, 사회생활을 시작해보니 또 생각이 달라지는 모양이라면서. 한국에서 정치인이라는 직업이 가진 복잡다단한 의미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에피소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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