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이나 경력만으로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데 늘 ‘누구의 딸, 누구의 언니’로 소개되는 게 불쾌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네 살 때부터 가야금을 갖고 놀았어요. 악기와 친해지고 이 소리를 좋아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평생 이 길을 걸어야겠구나’ 생각한 걸요.”
“누가 뭐라든 신경 쓰지 않고 내 길을 걸을 뿐”이라는 말의 부드러운 표현이다. 중학교에 진학한 날부터 그는 자신의 삶이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고 한다. 입학식이 끝나자마자 학교 선생님들이 ‘문 교수님 딸이 누구냐’며 이씨의 교실로 찾아온 것. 전국 대회에서 대상을 받아도 늘 ‘문 교수님 딸이니 당연한 것 아니냐’는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그 덕분에 ‘적당히 하면 안 되겠다. 인정받으려면 진짜 잘해야겠다’는 걸 깨달았지요. 이후로 한 번도 한눈팔지 않고 음악만 했고요.”
‘그리고 그리다’는 이렇게 갈고 닦아온 그의 연주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앨범이다. 이씨는 전통 가곡 ‘벽사창이 어룬어룬커늘’에 곡을 붙인 9번 트랙 ‘창에 비친 그리움’ 등을 통해 작곡 솜씨도 선보였다.
“사람들이 이 음반을 ‘가야금 앨범’이라는 정보 없이 들으면 좋겠어요. ‘우리 음악이니 들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내려놓고 소리 자체에 집중하면, 어떤 현악기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가야금의 아름다움에 반하게 될 겁니다. 앞으로도 가야금의 이런 매력을 널리 알리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