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코네’ 일본 앱 출시 3일 만에 교육 사이트 1위 등극
- NHN재팬 설립, 일본 온라인 게임 개척
- 코코네는 게임, 애니메이션, 커뮤니티 접목
- 초·중·고 동창인 김범수 카카오 대표와 고교후배 위해 각 1억원 기부
- 한·중·일 엮는 언어 교육 포털 만들겠다
궁금하다. 어떻게 일본인도 아닌 한국인이 만든 앱이 일본 시장에서 1위를 할 수 있었을까? 코코네 창업자를 보면 절로 ‘아~’ 소리가 나온다. 천양현 코코네 대표는 일본 온라인 게임업계를 개척한 독보적인 인물이다. 2000년 일본에서 한게임재팬을 설립했고 2003년 한게임재팬과 네이버재팬 합병 이후 NHN재팬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NHN 퇴직 아닌 졸업
2000년만 해도 PC게임 위주이던 일본 게임업계에서 온라인 게임 시장은 황무지였다. 2000년 등장한 한게임재팬은 판도를 바꿨다. 2004년 한게임재팬은 사이트에 10만명이 동시 접속하는 기록을 세웠고, 2007년에는 연 이익이 100억엔을 돌파했다. 지금도 한게임재팬은 온라인게임 업계에서 독보적이다.
2009년 천 대표는 NHN재팬을 떠났다. 그는 “퇴직이라기보다는 ‘졸업’”이라며 “NHN재팬이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여 더 성공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줬다”고 말했다. 2년 만에 돌아온 천 대표. 그런데 왜 하필 교육 사이트일까?
“인터넷 사업을 10년간 하면서 인터넷 비즈니스가 얼마나 발전하는지 아주 가까이서 지켜봤죠. 검색, 전자상거래 등 많은 게 발전했지만 언어 교육 서비스는 제자리더라고요.”
▼ 인터넷 교육 사업이 발전 안 했다고요? 메가스터디 등 e-러닝 사업이 승승장구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e-러닝 사업은 동영상 서비스가 대부분입니다. 동영상 서비스는 쌍방향이 아닌 일방향이에요. ‘인터넷 서비스’라기보다는 인터넷 회선을 이용한 ‘교육서비스’에 가까워요. 이 경우 고객이 중시하는 건 동영상 내 선생님의 강의지, 인터넷이나 서비스 모델이 아니에요.”
▼ ‘코코네’가 다른 e-러닝과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코코네는 일방적인 언어 학습 사이트가 아닙니다. 게임, 커뮤니티, 커뮤니케이션을 한데 모았습니다. 애니메이션, 게임을 하면서 재밌고 자연스럽게 공부할 수 있고, 반복 학습을 하면서 자연스레 언어를 습득하죠. 문법 지식이 아니라 언어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요. 공부뿐 아니라 가상현실에서 친구도 만날 수 있어요.”
천 대표는 “보면서 설명해야 한다”며 노트북으로 코코네 일본사이트에 접속했다. 피곤한 듯 연신 얼굴을 비비던 그의 눈에 갑자기 생기가 돌았다. 천 대표는 “저는 코코네 프로그램 보면서 설명할 때 가장 기뻐요. 온갖 고생하며 만든 거라 자랑하고 싶어요”라며 활짝 웃었다.
언어를 순차적으로 이해하는 원리 이용
코코네재팬은 귀엽다. 마스코트인 하늘색 스마일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일본 애니메이션과 문구류가 그렇듯 아기자기한 멋이 있다. 외국인이 한국어를 공부할 때 가장 어려워 하는 것은‘이, 가, 는’ 등 조사 의미는 비슷한데 뉘앙스, 상황별로 쓰임새가 다르다는 점. 그는 “전치사 공부를 한 방에 마칠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며 ‘문장연습’을 클릭했다.
사진 속에는 신랑이 신부 들러리 6명에게 둘러싸여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리고 음성으로 “The groom is standing among the bridemaid(신랑이 신부 들러리에게 둘러싸여 있다)” 문장이 나왔다. 이어 음성은 ‘the groom’ ‘is stan-ding’ ‘among’ ‘the bridemaid’ 라고 덩어리(chunk)별로 읽어줬다. 갑자기 화면 속 ‘말 덩어리’ 순서가 뒤바뀌었다. 이용자가 각 덩어리를 클릭해 문장을 순서에 맞게 만들어야 하는 것. 깔깔 웃으며 반복하다보니 그토록 헷갈렸던 전치사 ‘among’에 대한 ‘느낌’이 머릿속에 콕 박혔다.
코코네일본어 단어연습 초급 게임.
“사람은 말을 순차적으로 이해해요. ‘나는 당신을 좋아해’라는 문장을 다 듣고 거슬러서 의미를 파악하는 게 아니라 ‘나는’ ‘당신을’까지 듣고도 이미지를 떠올리고 대강 이해하죠. 말은 허공에 사라지지만 그 이미지는 남아요. 반대로 ‘코코네’는 먼저 이미지를 보여주고 이용자가 먼저 모국어로 이미지를 만든 이후에 외국어를 순차적으로 떠올릴 수 있게 도와주는 거죠.”
학계의 반응을 묻자 그는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학계에서 정말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며 활짝 웃었다.
다음은 단어 공부 게임. 회전초밥 테이블에 3명이 앉아 있다. 화면 상단에 단어가 나타나고 3명이 각각 다른 뜻을 말한다. 해당 단어 뜻을 옳게 말한 사람을 클릭하면 그가 기뻐하며 초밥을 먹는다. 잘못해서 다른 뜻을 말한 사람을 클릭하면 바른 뜻을 말한 원 주인이 “내 초밥인데 왜 네가 먹냐!”며 화를 낸다.
문제 15개를 다 맞히면 다이아몬드 메달을 받고, 오답 개수에 따라 금메달, 은메달 등을 받는다. 화면 오른쪽에는 다이아몬드 메달을 벌써 160개나 모은 사람들 이름이 쭉 놓여 있었다. 천 대표는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사람들은 승부욕 때문에 다이아몬드 메달 나올 때까지 게임을 반복한다. 자연스레 반복 학습이 된다”고 말했다. 이밖에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 등 각 영역을 개발해주는 다양한 게임이 있다.
남한테 잘 보이고 싶은 일본인, 아바타 사업 인기 비결
한참 공부했더니 손이 근질거린다면 아바타(분신)가 돌아다니는 가상세상에서 놀 수 있다. 동글동글 귀여운 2등신 아바타는 이용자가 직접 꾸민다. 직접 돈을 주고 아바타 옷, 소품, 배경 등을 살 수 있고 게임을 통해 얻은 포인트로도 꾸미기가 가능하다. 신발 한 켤레 사려면 120엔(1600원). 아바타 하나를 잘 꾸미려면 3만~4만원이 든다. 천 대표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아직도 아바타가 인기 있다. 일본 한 아바타 업체는 아바타만으로 월 12억엔의 수익을 얻는다”고 귀띔했다.
아바타는 학교도 가고 수업도 듣고 집에 친구들을 초대한다. 같은 공간에 있는 아바타 친구들과 대화도 나눈다. 함께 공부도 한다. 천 대표는 “코코네 아바타 친구의 파티에 참가하기 위해 월차를 낸 회사원 유저도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 아바타 세계에 일본인뿐 아니라 한국인, 영국인, 중국인 모든 국적 세계인이 모인다면 얼마나 멋있을까요?”
코코네는 4월부터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일본어 교육 서비스를 시작했다. NHN과 제휴해 네이버 아이디만 있어도 이용할 수 있다. 일본어라고는 ‘가와이’(귀엽다), ‘스고이’(멋있다) 밖에 모르는 기자도 농부와 원숭이가 나오는 ‘초급 히라가나 가타카나 외우기 게임’을 10분 했더니 일본어 모음 몇 개를 외웠다.
▼ 왜 일본에서 먼저 서비스를 시작하셨나요?
“일단 일본은 한국처럼 영어 공부에 대한 니즈(needs)가 강하지 않아요. ‘기러기 아빠’나 ‘조기교육’이 없죠. 한국 영어교육 시장은 포화상태지만 일본 시장은 아직도 개척할 부분이 많죠. 그리고 제가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니즈를 강력하게 느꼈기 때문이에요.”
천 대표는 20년 전 일본어를 모르는 상태로 일본에 갔다. 그는 “대학 졸업 후 회사 몇 군데에 들어갔지만 새로운 세계로 떠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한 나라에 20년 이상 살아봤으니 다른 나라도 가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 반, “일본이 얼마나 잘사나 내 눈으로 보고 오겠다”는 생각 반이었다. 당시 그는 26세였다.
명확한 목표도 없었다. 랭귀지스쿨부터 다니며 일본어를 익힌 그는 일본 정착 6년 만인 1998년 일본 최고 대학 중 하나인 게이오대학 대학원 정책미디어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그는 “26세면 일명 ‘뇌가 굳은 상태’였지만 현재는 일본인만큼 일본어를 구사한다”고 말했다.
“요즘 외국어 교육의 유일한 해답은 ‘조기유학’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바이링구얼(bilingual·2개 국어 능통자) 역시 생각하고 고민할 때는 모국어를 쓰잖아요. 머릿속에 모국어 체계가 잡혀 있으면 그 말을 적합한 외국어로 번역하는 기술만 알면 돼요. 오히려 모국어 체계가 안 잡혀 있는 바이링구얼은 외국어 기술적으로는 훌륭하지만 알맹이 없는 말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코코네는 일본 내 영어 서비스, 한국 내 일어 서비스뿐 아니라 영어권을 위한 일어 서비스, 일본 내 한국어 서비스, 한국 내 영어·중국어 서비스 등 여러 언어권을 위한 다양한 언어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천 대표는 특히 한·중·일이 서로 언어를 배우고 교류하는 것을 제1 목표로 삼았다.
▼ 왜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인가요?
“지도는 바꿀 수 없죠. 한국은 아시아의 두 강국 사이에 끼어 있잖아요. 시기적으로도 좋아요. 제가 처음 일본에 갔던 20년 전만 해도 한·중·일은 서로 역사적 앙금 때문에 소통도 없고 관심도 없었죠. 이제 여행도 자유롭고 한류 때문에 분위기도 좋잖아요. 한국이 잘살기 위해서는 미국 문화 잘 알고 미국말 유창하게 하는 사람보다 남대문시장 아주머니들처럼 사업을 위해 일본어 중국어 잘하는 사람이 많아야 해요. 한국 입장에서는 서로 통하고, 힘을 합쳐 할 수 있는 일이 미국보다 일본, 중국에 훨씬 많으니까요.”
카카오 김범수 대표와 기부
대학에서는 법학, 대학원에서는 사회심리학, 인지언어학을 공부한 천 대표는 어떻게 ‘일본 게임계의 신화’가 됐을까? 1990년대 후반 전세계에 ‘인터넷 바람’이 불었다. 게이오대학은 학생 모두가 무조건 컴퓨터를 이용하도록 했다. 가상의 공간에서 콘텐츠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걸 보면 볼수록 신기했다.
마침 초·중·고등학교 동창이 한국에서 사업을 벌였다고 전했다. 바로 한게임·NHN 창업자 김범수 현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다. 오랜 친구는 힘을 합쳤다. 천 대표는 “원래 친구끼리는 동업하지 말라고 하던데 잘 안 됐으면 큰일 날 뻔했다”며 웃었다. 1999년 김 의장은 한게임을 창업했고 2000년 천 대표는 한게임재팬을 설립했다. 그는 “사실 2000년이면 네이버나 한게임이 한국에서도 자리 잡은 건 아니었기 때문에 ‘해외진출’이라기보다는 해외에서 동시에 사업을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게임재팬(2003년 합병 이후 NHN재팬)은 한국 한게임과 달랐다. 한국 한게임이 게임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포털사이트’ 개념이라면, 한게임재팬은 ‘커뮤니티’ 개념이 추가됐다. 한국 유저들은 게임 승부 자체에 관심이 많았지만, 한게임 재팬 유저들은 게임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서로 알아가는 과정에 관심을 더 많이 뒀다. 한국 한게임에서 망한 ‘아바타’ 사업이 한게임재팬에서 크게 성공한 것도 같은 이유다.
김범수 의장과 천양현 대표는 NHN 이후 행보도 닮았다. 김 의장은 2007년 카카오 이사회를 설립하고 지난해 3월 스마트폰 버전 메신저 ‘카카오톡’을 출시했다. 현재 카카오 이사회와 코코네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같은 건물을 나눠 쓰고 있다. 천 회장은 “친구끼리 더 자주 만나고 의견 교환도 더 잘하자는 의미”라며 “카카오가 일본 진출할 때 내가 지인을 소개해주거나, 코코네코리아 사업에 김 의장이 조언을 해주는 정도다. 서로 회사에 지분이 있거나 회사를 합병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랜 친구는 얼마 전 ‘의미 있는 기부’를 했다. 모교인 건국대 사범대학 부속고교에 각 1억원씩 총 2억원의 장학금을 기부한 것. 학교 측은 두 사람의 뜻을 기려 ‘김범수-천양현 장학회’를 설립했다. 천 대표는 “학교에다 언론에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결국 알려졌다”며 부끄러워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니던 1980년대 초반만 해도 경북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는데 요즘은 수학여행을 해외로 간다더군요. 돈 없어서 수학여행 못 가는 친구도 있대요. 그럼 가난한 학생은 친구와 추억을 쌓을 기회도 없는 거잖아요. 안타까워요. 그래서 공부 잘하는 학생 말고 형편 안 좋아서 소중한 경험 못 하는 친구들 도와달라고 조금 기부한 것뿐이에요. 사회에 나와 보니 학교 때 공부 잘했던 것보다 사람들이랑 잘 어울리고 배려 잘하는 사람들이 더 유능하다는 걸 알았어요. 후배들도 그런 삶의 이치를 어려서부터 알고 더불어 살아간다면 좋겠어요.”
반짝 1위 앱은 가치 없어
최근 앱, IT업체에 또 해외진출 바람이 불고 있다. ‘카카오톡’ 역시 지난해 미국, 일본 등에 출시돼 큰 인기를 끈다. 하지만 NHN, 다음, 네이트 등 ‘1세대 인터넷 기업’의 해외진출 성적표는 화려하지 않다. 이에 대해 10년간 해외에서 인터넷 사업을 했고 최근 일본 앱 시장을 제패한 천 대표는 “내가 이런 말할 위치인지 모르겠다”며 말을 이었다.
“한국 IT업계가 끊임없이 글로벌 시장을 향해야 하는 것은 분명해요. 한국 국민 5000만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사업을 한다는 건 곧 망하겠다는 뜻이니까요. 게다가 요즘은 해외진출에 현지 법인이 필요 없는 시대가 됐어요. 하지만 주의할 건 그만큼 앱이나 사이트가 금방 인기를 끌 수 있고 그 인기가 일시적으로 끝날 가능성도 크다는 거예요. 앱은 생각보다 간단한 시장이 아니에요. 글로벌이 뭔지, 사업 목표가 뭔지 명확히 정의를 하고 나서 시장에 뛰어들어야 해요. ‘앱스토어 무료 1위’ 반짝 하는 앱이 아니라 기업 가치가 확실한 앱을 만들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