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일 오후 제19대 국회 개원사를 하는 강창희(66) 신임 국회의장의 표정은 밝았다. 재석의원 283명 중 195명(69%)의 찬성표를 얻어 19대 전반기 국회의장에 선출된 직후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4·11 총선에 당선되고 내친김에 국회의장에 취임한 그의 컴백은 화려했다. 6선(選)과 ‘친박(친박근혜)’은 그의 8년의 정치적 휴지기를 잊게 했다. 강 의장은 1983년 11대 전국구 의원직을 승계한 뒤 12·14·15·16·19대 때 줄곧 대전 중구에서 당선됐다.
“여의도 밖에 있어보니 국민의 불만을 알 수 있었어요. 전기톱, 최루탄 등을 동원한 ‘애들 보기 민망한’ 몸싸움과 비리·부정으로 잇속만 챙기는 모습에 넌더리가 난대요. 이번 국회에서는 싸움하는 건 꼭 막을 겁니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려야죠.”
낙타처럼 걷자고 했지만, 그가 건너야 할 사막은 뜨겁다. 대선을 앞둔 시점이고, 통합진보당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자격심사도 예고돼 있다. 국회의원 특권 폐지, 그중에서도 특히 불체포 특권 폐지를 강조했지만 7월 11일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이 부결되면서 첫 난관에 봉착했다.
“대선의 해에 정치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린 경우가 많아요. 대선을 앞두고 상대 당을 흠집 내고 시간을 끌면 자기 당 후보가 불리해지니까요. 물론 민생 현안이라면 제가 다그쳐서라도 빨리 해결할 겁니다. 체포동의안이 매끄럽게 처리되지 않아 안타까운데요, 이번 일이 국회 쇄신을 위해 가일층 노력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국회의장 후보에 내정됐을 때는 ‘5공 막내’라며 자격 문제를 시비하는 의원들도 있었다. 육사(25기) 출신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 창당한 민주정의당에 참여하면서 정계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자신도 인정한다. 그러나 민주화와 정당정치에 대해선 자부심을 드러낸다.
“제가 5공화국 때 정치를 시작한 것은 맞죠. 그런데 시작이 아니라 어떤 정치를 해왔느냐가 더 중요하잖아요? 문제가 있었다면 6선까지 할 수 있었겠습니까.”
강 의장은 1992년 3당 합당에 반대해 민정당을 탈당했고, 자유민주연합 부총재 시절 민주당이 자민련에 의원을 꿔줘 교섭단체로 만들려 할 때는 이를 반대하다가 당에서 제명당했다.
“2년간은 국민만 보고 낙타처럼 뚜벅뚜벅 나아갈 겁니다. 강창희가 있어 좋았다는 소리를 듣도록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