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복마을’ 늘면 저출산 문제 해결 가능
- 빅데이터 공개·활용으로 ‘세계표준’ 만들 터
- 큰아들 면회? 가려다 안 갔다
- 이혼 둘러싼 억측 괘념치 않아
8월은 그렇게 지나갔다. 남 지사의 가정사에 묻혀 잠시 주춤했던 연정과 협치는 9월 들어 서서히 제 궤도를 찾아갔다. 8월 29일 자치단체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공공기관장에 대한 인사청문회 도입에 합의했고, 9월 4~ 12일 경기도 공공기관장 후보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실시됐다. 지역 방송사까지 생중계한 경기도 인사청문회는 성공적이라는 안팎의 평가를 받았다. 경기도는 연정과 협치를 위해 사회통합 부지사를 신설할 예정이다.
9월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 있는 경기도 서울사무소에서 남경필 지사와 마주 앉았다. 그는 가족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사건 이후 처음으로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
“참 ‘핫’했죠”
▼ 추석 연휴는 어떻게 보냈습니까.
“집과 고향이 가까워요. 국회의원 때도 그랬지만, 명절은 모처럼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에요.”
▼ 이번 추석은 연휴가 꽤 길었는데요, 군에 있는 큰아들 면회는 다녀왔나요.
“면회를 갈까 하다가, 안 갔어요.”
▼ 전화통화는?
“가끔 해요.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와요.”
▼ 어제(11일) 검찰이 불구속 기소했더군요.
“앞으로 재판을 지켜봐야죠.”
후임병에게 가혹행위를 한 혐의로 군 검찰의 조사를 받아온 남 지사의 장남 남모 상병은 9월 11일 불구속 기소됐다. 이에 앞서 군 검찰은 8월 19일과 23일 두 차례에 걸쳐 남 상병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증거 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 어떻게 지낸다던가요.
“자숙한다고 해요. 그 문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씀드릴게요. 이제 막 검찰 조사를 마치고 재판을 앞둔 상황인데….”
남 지사는 장남의 군 폭행 문제가 불거진 직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제 아들은 조사 결과에 따라 법으로 정해진 대로 응당한 처벌을 달게 받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로서 저도 같이 벌을 받는 마음으로 반성하고 뉘우치겠습니다”라고 사과했다.
▼ 지난 한 달(8월)을 그 어느 때보다 ‘핫(hot)’하게 보냈죠.
“참 ‘핫’했죠.”
▼ 도지사에 취임하자마자….
“모두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 제가 부덕한 대가를 치른 거죠.”
▼ 부인과는 예전부터….
“그 얘기도 나중에 따로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 같아요.”
남경필 지사의 전 부인 이모 씨는 남 지사가 7월 1일 경기지사에 취임한 지 28일 만에 법원에 이혼조정신청을 했고, 8월 11일 이혼에 합의했다.
▼ 이혼 사유를 두고 이런저런 얘기가 많이 떠돕니다.
“제가 모자라서 일어난 일이고요, 어떤 얘기가 나오든 괘념치 않습니다. 팩트(fact·사실)의 힘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 이명박 정부 때 있었던 사찰과도 관련이 있나요.
“그때도 그랬지만, 정치인 가족으로서 겪는 어려움이 있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할 말을 하면서 살기가 쉽지 않죠. 집사람과 아이 일을 겪으면서 정치인과 공인(公人)은 그 가족까지 더 엄격한 몸가짐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어요.”
▼ 정치인은 ‘투명한 유리병 속에 사는 것과 같다’는 얘기도 있죠.
“그런 점이 있습니다.”
‘아버지 남경필’과 ‘남편 남경필’에 대해 이렇게 묻고 저렇게 질문을 던졌지만, 그는 ‘속 시원한 답변’ 대신 일관되게 ‘다음’을 기약했다.
“내가 틀릴 수 있다”
남 지사를 잘 아는 이들은 그가 정치인으로 꾸준히 성장해온 비결로 ‘태도’를 꼽는다. 유복한 집안에서 구김 없이 자란 덕에 사고가 유연하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을 갖췄다는 평이다.
▼ 올해로 정치 입문 17년이 다 돼갑니다. 꾸준히 정치를 해올 수 있었던 비결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정치를 하면서 제게 철학처럼 굳어진 신념이 하나 있어요. 대의민주주의는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거예요. ‘나만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다른 사람과 상의하려 하지 않게 돼요. ‘내가 틀릴 수 있다’ ‘오류투성이다’는 점을 인정할 때 비로소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대화하게 됩니다. 대화 상대가 많으면 많을수록 오류를 더 줄일 수 있고요. 제가 경기 도정에 연정을 도입하고 협치를 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전지전능하지 않다’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권력을 나눠 손을 맞잡아야 통합의 정치를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 뜻이 아무리 좋아도, 상대가 진정성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평소에 다른 정치를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도지사가 된 뒤 연정을 제안했다면 (야당에서) 안 받아줬을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연정을 제안했을 때처럼요.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 이전에는 통합의 길을 걸어왔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엔 조금 달라졌죠. 취임 초 국가보안법과 사학법 등 4대 악법을 철폐하겠다며 갈라치기 정치를 했죠. 그러다 임기 중반 국정운영이 어려워지니 대연정을 제안했고요. 그래서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의) 진정성을 믿지 못해 일언지하에 거절한 것이고요.
저는 국회에 있을 때 ‘국회 선진화법’과 ‘여야 중진대화’ 같은 대화와 타협의 정치, 협치의 정치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어요. ‘너는 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있느냐’는 얘기까지 들어가면서. 그런 노력을 도의회와 야당이 인정해줘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남 지사는 경기지사 당선 직후인 6월 11일 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당에 ‘연합정치’를 제안했다. 야당은 ‘연합정치’ 대신 ‘정책협의’를 역제안했고, 남 지사가 이를 수용함으로써 정책협의회가 구성됐다. 정책협의회를 5차례 가진 뒤 지난 8월 5일 20개 항에 달하는 ‘경기도 연합정치 실현을 위한 정책협의회 합의문’을 확정했다. 8월 29일에는 ‘경기도 공공기관장 인사청문 MOU’가 체결됐고, 이에 기초해 9월 4일부터 12일까지 경기도 공공기관장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실시됐다. 광역단체 차원에서 인사청문회를 실시한 것은 경기도가 처음이다.
▼ 권력 분산에 대한 의지가 남달라 보입니다.
“우리 사회는 뛰어난 한 사람이 영도력과 카리스마로 끌고 갈 수 있는 사회가 아니에요.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나갔죠. 지금은 권력을 나누고 공유하면서 함께 사회를 이끄는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해요. 통합의 정치가 시대정신이라고 봐요. 혼자보다는 그룹과 네트워크 속에서 토론하며 일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에요. 리스크도 줄일 수 있고, 좀 더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죠. 연정과 협치로 경기 도정을 획기적으로 바꿔, 한국 정치에 통합의 정치가 뿌리내릴 수 있는 토대를 만들겠습니다.”
경기 북부 살리기
남 지사는 국회의원 시절, 대통령과 당 지도부를 향해 ‘상대를 존중하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하라’는 주문을 자주 했다. 그런 그에게는 늘 ‘소장 개혁파’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광역단체장이 된 지금, 그는 과거 자신의 발언을 얼마나 실천에 옮길까.
▼ 연정과 협치가 잘 이뤄지려면 도의회, 특히 야당 의원들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남경필 지사는 즉답 대신 점퍼 호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제 휴대전화에 도의회 의원들 전화번호가 모두 저장돼 있어요. 의원들도 제 전화번호를 모두 알고요. 저녁에 약주 한잔 하고 제게 전화하는 의원이 많습니다. 야당 의원들이 더 자주 전화를 해요.”
▼ 연정과 협치가 시너지를 내려면 도민이 체감할 수 있는 좋은 정책이 뒷받침돼야 할 텐데요.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경기도에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면 서울로 출퇴근하는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돼요.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지식 기반 일자리와 문화관광 분야 일자리를 많이 만들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 일자리 창출 외에 경기도가 당면한 다른 현안으로는 어떤 게 있습니까.
“도민들이 제게 남북 격차 해소와 교통 문제를 많이 호소합니다. 경기 북부가 크게 낙후한 것은 도로와 철도 같은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올해부터 북부 쪽 인프라를 까는 데 많은 예산을 투입할 예정입니다. 경제는 심리적 요소가 중요하다고 하죠. 그래서 북부 경제 활성화를 위한 상징적 조처로 경제투자실도 북부에 두고, 일주일에 하루는 제가 직접 북부청사에서 집무할 계획입니다.”
▼ 선거 때 내건 공약은 잘 이행하고 있습니까.
“공약 이행 추진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실천해가고 있어요.”
▼ ‘따복마을(따뜻하고 복된 마을 만들기)’ 공약이 특히 기억에 납니다.
“공동체를 복원하는 것이 우리 사회 여러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길입니다. 지금보다 육아와 보육시설이 부족했던 과거에 예닐곱씩 자녀를 낳아 기를 수 있었던 것은 마을 공동체가 살아 있었기 때문이죠. 엄마들의 자치활동으로 공동체가 활성화한 수원의 한 아파트를 가 봤더니 셋째를 낳은 가정이 많더라고요. 공동체 복원은 저출산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됩니다.”
▼ 이론과 실제가 다르듯, 공약과 현실은 좀 다르지 않던가요.
“그런 면이 있어요. 선거 때는 공동체를 위한 공간을 제공하면 커뮤니티가 만들어질 것으로 봤는데, 마을공동체 사회운동을 하는 분들을 만나보니 ‘관 주도로 하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민간이 주도할 테니 관은 지원을 하라고요. 선거 때 따복마을 6000개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숫자에 집착하지 않고 사업을 내실화해서 지역 특성에 맞게 맞춤형 지원을 하는 쪽으로 추진하고 있어요.”
빅파이 프로젝트
따복마을과 함께 남 지사는 도민과 국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경제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의 하나로 ‘빅파이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한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공공 데이터를 개방해서 누구나 빅데이터를 활용토록 하는 것입니다. 데이터는 원석과도 같아요. 원석을 잘 가공하면 값진 보석이 되듯, 데이터도 마찬가집니다. 데이터를 공유하는 것은 곧 권력을 나누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어요. 독점하지 않고 공유한다는 점에서. 경기도가 보유한 데이터 가운데 사회적 이견이 없는 것부터 공개해 나갈 겁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데이터를 어디까지 공개할 것이냐에 대한 규범을 만드는 논쟁도 병행할 계획입니다. 데이터는 쌓여 가는데, 공개 범위와 활용에 대한 규범이 아직 세계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거든요. IT 적응력이 가장 빠른 경기도에서 빅데이터 공개와 활용에 대한 세계표준을 만들어나갈 겁니다.”
경기도는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32.4%를 생산하는 대한민국의 맏형과도 같은 지역이다. 인구가 가장 많을 뿐 아니라 1년 예산도 전국 광역단체 가운데 제일 많다. 남 지사는 대한민국 축소판 같은 경기도정에 연정과 협치로 통합의 정치를 뿌리내려,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대한민국 대표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졌다.
“경기도가 한국은 물론 세계의 모범, 전범이 되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렇게 되도록 연정과 협치, 소통과 상생으로 경기도정을 변화시키고 혁신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