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들 먼저 수색하라고 양보까지 했는데…”
- “일반인 희생자 배제하고 국민성금 대책회의”
- “일부 유가족의 이기주의 섭섭해”
- “‘세월호 특별법’ 아닌 ‘단원고 특별법’”
그동안 255명의 단원고 학생·교사 유가족의 목소리는 언론을 통해 자주 전달됐다. 하지만 일반인 희생자 43명의 얘기는 듣기 힘들었다. 수적으로도 압도적인 데다 어린 학생들의 집단 사망이라는 점에서 국민 정서를 크게 자극한 단원고 희생자들에게 초점이 맞춰진 탓이다.
“가족 확인증 가져오라”
이런 상황에서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대책위원회 지성진 부위원장을 만났다. 지 부위원장은 세월호 참사로 부모와 형을 잃은 조요셉(7) 군의 외삼촌이다. 그는 세월로 사고 직후부터 일반인 대책위 임원을 맡았다. 그는 세월호 사건이 터진 4월 16일부터 지금까지 일반인 유가족이 받은 설움을 토로했다.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에 대한 서운한 감정도 여과 없이 드러냈다.
▼ 사고가 난 4월 16일 얘기부터 해주시죠.
“그날 오전 어머니에게 전화를 받았어요. ‘애들(여동생 가족)이 저 배를 타고 제주도에 갔는데 알아보라’고. TV에서 ‘학생들 전원구조’라는 자막이 나와 별걱정은 안 했어요. 일반인 구조 얘기는 없었어요. 그때부터 일반인 희생자는 외면당한 겁니다. 학생들이 구조됐으면 일반인도 당연히 구조됐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2시가 넘어가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전화를 수십 군데 돌렸어요. 중앙재난기구니 뭐니 하는…. 그런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부처가 없었어요. 전화도 잘 안 받고. 진도로 출발하기 전 청와대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어요. ‘우리나라는 아직 후진국이다. 이런 사고가 터졌는데도 서로 책임만 미룬다’고.
출발 직전 진도군청에서 첫 생존자 명단을 발표했는데, 거기에 조카(요셉)가 있었어요, 다른 가족은 없었고. 저녁 7시쯤 진도에 도착해 보니 진도군청 공무원이 요셉이를 돌보고 있더라고요. 공무원들이 뭘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었어요. 그날 요셉이는 진도군청 공무원 집에서 잤어요.”
▼ 이후 정부 지원은 어떻게 이뤄졌습니까.
“일반인 실종자 가족에 대해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실종자 가족임을 나타내는 표지도 단원고 실종자 가족에게만 지급됐어요. 단원고 가족들은 학부모 대책회의하는 천막도 만들었는데, 거기에 일반인 가족은 있을 곳이 없었어요. 언론도 모두 실종 학생들에게만 관심을 갖고. 언론이 다루지 않으니 공무원들도 신경을 안 쓰더라고요.”
▼ 처음부터 차별이 심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차별을 받았어요. 밤이 되면 제법 쌀쌀했는데 옷 같은 지원품도 못 받았어요. 학생 가족에게는 반별로 옷이나 신발을 내줬거든요. ‘실종자 가족 확인증’을 가져오면 지원품을 준다고 하던데, 도대체 그런 확인증을 어디서 받겠어요? 화가 치밀어 ‘더러워서 안 받는다’고 했어요. 나중엔 자원봉사자들도 차별하더군요. 단원고 학부모 기세가 워낙 드세 진도군실내체육관엔 들어가지도 못하고 천막에만 있었어요.”
▼ 안산에 합동분향소 만들 때도 차별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안산에 임시 정부합동분향소를 만들 때였어요. 가 보니 일반인 희생자 위패가 없는 거예요. 공무원에게 항의했더니 ‘생각을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화가 나서 마구 따졌어요. 그러자 부랴부랴 구석에다 공간을 만들어 위패를 갖다놓더라고요. 그때 제가 몇몇 방송과 인터뷰를 하면서 그런 사정을 얘기했어요. 그 후 세월호 사고로 피해를 당한 일반인이 있다는 게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죠.”
“실종자 수색 때도 차별”
▼ 누구한테 가장 서운합니까.
“누구일 것 같아요? 솔직히 단원고 유가족들이에요.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을 가장 차별한 게 그분들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저는 두 달여 진도에 머물면서 일부 단원고 유가족에게서 극단적 이기주의를 봤습니다.”
▼ 뜻밖이네요. 같은 희생자 가족끼리….
“그들은 일반인 희생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았어요. 물론 자식 잃은 부모 심정이 얼마나 참담할지 이해는 돼요. 그래서 저희는 실종자 수색을 할 때도 거의 의견을 내지 않았어요. 학생 위주로 수색하라고 양보했습니다.”
▼ 학생 위주로 수색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요.
“학생들이 많이 모여 있던 4층 중심으로 수색을 벌였잖아요. 우리가 양해를 한 거예요. 4층 선미 부분 수색이 늦게까지 안 됐는데, 수색을 하려면 일부를 잘라내야 했어요. 그렇게 하면 일반인 실종자들이 주로 있던 3층은 수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저희는 학부모들을 배려해서 4층 먼저 하라고 했어요. 어떤 학부모는 우리한테 대놓고 ‘4층 끝나면 3층 하라’고 하더라고요.”
▼ 시간이 지나면서 실종자 가족들이 초기와는 달리 해양수산부나 해양경찰을 감싸더군요.
“사고 초기엔 해수부와 해경 욕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분들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풀어졌어요. 가까워지기도 하고. 그래서 나중엔 사기를 북돋워 주고 그랬죠.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진도에 왔을 때는 ‘이주영 장관과 해경청장은 서울로 부르지 마라. 그들이 없으면 의사결정이 늦어진다’고 당부하기도 했어요. ‘장관 불러다놓고 윽박질러댈 텐데, 그런다고 해결이 되냐’고. 보호해주고 싶은 심정도 있었고요. 특히 이주영 장관에겐 고마운 게 많아요. 이 장관은 단원고, 일반인 가리지 않고 가족 얘기를 잘 들어줬어요.”
▼ 세월호 특별법을 만드는 과정에는 어떤 식으로 참여했습니까.
“참여한 거 없어요. 그리고 그간 나온 법안은 전부 ‘세월호 특별법’이 아니라 ‘단원고 특별법’이에요. 여야 합의안도 마찬가지고요. 법안 내용이 주로 안산에다 희생 학생들을 위한 무슨 시설을 만든다거나 단원고를 특수목적고로 만든다는 것들뿐이에요. 특히 안산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들이 낸 법은 정도가 심해요. 국회의원이 아니라 안산시 시의원이 낸 법안 같았어요.”
▼ 어떤 내용이 그런가요.
“일반인 희생자 가족의 의견을 수렴한 게 거의 없어요. 국회의원을 찾아다니며 우리 주장을 전달하고 호소문을 뿌렸지만 소용없었어요.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만나 ‘일반인 희생자는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 특별법을 공평하게 만들어 달라. 소수의 의견을 배척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더니, 자기는 공감하지만 새누리당을 설득하라고 하더군요. 황당했어요. 여당을 설득하는 건 야당이 할 일이지, 우리가 할 일인가요.”
대책위 양분된 계기
▼ 일반인 유가족의 요구안에는 어떤 게 있습니까.
“일반인 유가족 중에는 재산이 좀 있는 분도 있어요. 그런 분은 당장 상속세 문제가 발생합니다. 지금 상태라면 보상금을 받더라도 자기 돈을 더 보태야 상속세를 낼 수 있을 정도예요. 어떤 집은 가장이 사망하면서 당장 생계가 어렵게 됐어요. 빚을 진 가장이 사망한 경우 유가족은 남은 빚에 이자까지 감당해야 할 상황이고. 단원고 학생들의 경우와는 전혀 다른 고민이죠. 그런데 ‘세월호 유가족이 세금 감면, 이자 감면까지 요구한다’고 알려지면서 국민으로부터 욕을 먹었어요. 국민이 볼 때는 유가족이 별걸 다 요구한다고 할 수 있지만, 정말 절실한 분이 많아요.”
▼ 대책위는 처음부터 단원고와 일반인으로 나눠졌나요.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닙니다. 저희가 같이 대책위를 만들자고 요구했는데, 단원고 측에서 분명한 답을 주지 않았어요. 그쪽에선 정부나 지자체에 뭘 해달라고 하면 거의 다 해줬으니 크게 아쉬울 것이 없었던 것 같아요. 청와대에서 불러주고 교육청이 나서서 해결해주고. 단원고 가족이 대통령 면담한 사실을 저희는 TV를 보고야 알았어요. 저희에겐 통보도 없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일반인 대책위가 만들어진 겁니다. 나중에 단원고 측에서 연락이 오긴 했지만 진실성이 없었어요.”
▼ 진실성이 없었다?
“각자 알아서 자기들 대책위로 들어오라는 식이었어요. 그리고 저희가 결정적으로 배신감을 느낀 사건이 하나 있어요. 국민성금 처리를 논의하는 회의에서 저희를 완전히 배제한 겁니다.”
▼ 국민성금 처리 문제는 아직 논의되지 않은 걸로 아는데.
“다들 그렇게 알고 있죠. 그런데 사실은 5월 말부터 단원고 대책위측은 모금기관, 관련 공무원들과 여러 차례 회의를 가졌어요. 저희는 전혀 몰랐고요. 단원고 가족이 요구해 열린 회의였어요. 회의에 참가한 모금기관, 정부 관계자들은 회의 자체를 다소 부담스러워하며 회의의 대표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 걸로 압니다.
회의에서 단원고 측은 모금기관에 성금을 낸 개인과 기업의 명단, 금액, 기부 이유 등을 정리해서 달라고까지 요구했어요. ‘일반인 희생자 몇 명 때문에 성금 모금의 취지가 훼손돼선 안 된다’는 식의 말도 오갔어요. 성금 처리를 위한 특위를 어떻게 구성하자는 구체적인 안도 나오고. 그 얘기를 듣고 정말 화가 났어요. 그런데 제가 ‘왜 일반인 대책위를 배제하고 그런 회의를 하느냐’고 항의하면 그쪽에선 ‘그런 회의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해요.”
6월 3일 인천시청 앞 미래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49재 추도식이 거행됐다.
“일반인 희생자 비율은 미미”
지 부위원장이 언급한 성금처리 대책 회의에서는 성금 처리를 담당할 특별위원회 구성, 성금 사용 방안 등이 논의된 것으로 전해진다. 단원고 대책위 측이 생각하는 특위 구성원은 세월호 희생자, 실종자 가족, 정부 관계자, 모금기관 대표, 각계 원로 등이다. 관계기관에 따르면 회의가 열릴 즈음인 6월 5일 성금 총액은 1005억 원으로 기업 897억 원, 일반인 108억 원이었다.
대책회의에서 단원고 대책위는 “세월호 희생자 304명 중 일반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10% 정도로 미미하다. 그분들의 주장은 우리와 차이가 있다” “희생자 쪽에서 대표성을 갖는 건 우리다. 일반인 (희생자) 30여 명 때문에 전체 사업이 흔들려선 안 된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세월호 사고는 천안함 사건이나 대구지하철 사고 등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접근방식을 달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이 전혀 맞지 않는 요구를 한다면 묵과하지 않겠다”는 얘기까지 나왔다고 한다.
▼ 회의 내용을 안 뒤 어떤 조치를 취했나요.
“6월 12일 성금모금 단체에 공문을 보냈어요. ‘엄연히 2개의 대책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일반인 대책위와 상의 없이 성금 집행을 하지 말라’고. 그리고 우리 일반인 유가족은 그 동안 ‘우리 몫의 성금을 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어요.”
▼ 단원고 대책위는 여야 합의안을 거부한 반면 일반인 대책위는 수용했는데요.
“합의안이 만족스러워서 수용한 건 아닙니다. 언제까지 세월호 문제만 끌어안고 있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국가를 생각해 참고 양보했어요. 2차 합의안을 놓고 투표를 거쳤고 90% 이상이 찬성해 수용했습니다.
우리도 정부와 새누리당에 서운한 게 많습니다. 하지만 서로 조금씩 양보해 빨리 합의하면 좋겠어요. 그리고 단원고 대책위가 정도를 넘어선 주장을 한다고 생각해요.”
“정도 넘어선 주장”
▼ 어떤 부분이 그런가요.
“김영오 씨의 단식, 정치권과의 극한 대립이 모두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유가족이 벼슬이냐’는 국민 여론을 듣는 것도 싫어요. 사실 진도에 있을 때부터 이 문제로 많이 고민했어요. 물론 나도 자식을 잃었다면 더했을지 몰라요. 그래서 이해하려 노력했죠.
그러나 지금은 그들의 판단에 동의할 수 없어요. 의도도 좋아 보이지 않고. 여야가 2차 합의해서 만든 안까지 수용하지 못한다면 어쩌자는 건지…. 더는 그들과 같이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 어떤 의도가 있다고 보는 겁니까.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진상조사위원회가 만들어지고, 거기에 대책위나 야당 쪽 인사들이 들어가면 온 나라를 들쑤시고 다닐 게 뻔합니다. 청와대나 국정원을 다 들쑤시겠다는 의도가 빤히 보여요. 그런 것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 여야 합의안을 수용할 때 단원고 측에서는 연락이 있었나요.
“단원고 측에서 수용 발표를 일주일만 보류해달라고 요청했어요. 일주일만 버티면 다 해결된다면서. 우리에게 그쪽 부위원장이 찾아와 요청했어요. 하지만 발표를 미룰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 2차 합의안에 대해 같이 논의해 투표하자는 제안은 없었나요.
“그런 연락은 없었습니다.”
▼ 단원고 유가족인 김영오 씨의 단식을 놓고 열띤 논란이 빚어졌습니다.
“솔직히 좋게는 보지 않습니다. 이혼 후 부모로서의 의무를 다하지도 않은 사람이 왜 단식을 합니까. 대통령을 욕하는 영상도 봤는데 충격적이었어요. 그런 인격을 가진 사람이 하는 단식이 좋아 보일 리 있나요. 나라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단원고 유가족은 정부에서 주는 긴급복지자금도 다 받았어요. 일반인 유가족은 절반이 못 받은 것을. 또 여행자보험으로 1억 원씩 받아갔습니다. ‘보상에는 관심이 없다’라면서, ‘진상규명이 먼저’라면서 찾아갈 건 다 찾아가고. 이중적으로 비칠 수 있어요.”
▼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는 문제가 특별법 논란의 핵심입니다. 단원고 유가족 측은 대통령이 결단하라고 요구하는데.
“국민의 한 사람으로 생각해도 진상조사위원회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는 것은 반대입니다. 사법체계를 뒤흔드는 요구라고 생각합니다. 법을 바꾸면 된다고 하는데, 그럼 앞으로 이런 사고가 날 때마다 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얘긴가요.
인터넷을 보니 누군가 얼마 전 부산에서 물난리가 나 여러 명이 희생된 사건을 두고 ‘왜 그때 하필 폭우가 쏟아졌는지, 왜 다리를 거기에 만들었는지를 진상조사하기 위해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써놨더라고요. 그 글을 읽으면서 솔직히 부끄러웠어요.
그리고 대통령이 책임지라고 요구하는데, 언제 우리나라가 대통령에게 입법권을 줬습니까. 주지도 않은 입법권을 행사하라고 요구하는 건 뭔가요. 그리고 야당은 자기 역할을 사실상 포기했습니다. 협상은 유가족에게 맡기고 자기들은 광화문에 피켓 들고 서 있어요.
내가 그들에게 따졌습니다. ‘협상은 유가족에게 맡겨놓고 당신들은 여기서 뭐하는 거냐’고. 난 요즘 창피해서 세월호 유가족이란 말도 잘 안 해요. ‘세월호가 국가의 발목을 잡는다’는 말도 더는 듣고 싶지 않고요.”
9월 15일 현재, 세월호 실종자는 10명이다. 단원고 학생과 교사가 7명, 일반인 실종자는 3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