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2월25일 취임식을 마친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청에서 환영 나온 시민들과 악수하며 인사하고 있다
‘접시꽃 당신’의 시인 도종환은 연단에 올라 “노무현을…사랑합니다”라고 절절하게 외쳤다. 이어 “그분의 몸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산산조각이 난 것은 우리 민주주의, 균형발전, 평화로운 나라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 산산조각 난 것일지도 모릅니다”라고 했다. 시인 안도현은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라는 조시(弔詩)를 낭독했다. “아, 그러다가 거꾸로 달리는 미친 민주주의 기관차에서 당신은 뛰어내렸어요. 으깨어진 붉은 꽃잎이 되었어요.”
광장의 수십만 시민이, TV수상기 앞 전국의 시청자가 “산산조각이 난 민주주의” “거꾸로 달리는 미친 민주주의”라는 외침을 지켜보고 들었다. 노제의 감성적인 ‘민주주의 위기’ 호소에 여론은 ‘가슴’으로 화답했다. “저 무자비한 권좌의 폭력의 주먹의 불의 앞에서 소리쳐 울지 않을래요.” 안도현이 이렇게 토로해도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3일 뒤 여론조사 결과는 놀라웠다. 수년 만에 한나라당 지지율이 민주당에 역전되어 있었다. 국민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민주주의 위기’를 함께 느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객관의 영역에서 보자면 ‘민주주의 위기’ 주장은 좀 과한 느낌이 있다. 군사독재에 항거한 1987년 체제와 이명박 체제는 다르다. 지금 대통령직선제, 삼권분립, 법치주의, 지방자치 등 민주주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조짐은 없다. 불법구금, 재산몰수, 강제해직, 언론탄압도 없다. “적어도 형식적인 면에서는 치열한 투쟁을 통해 얻어낸 민주화의 성과가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유지되고 있다.”(6월5일 한국일보).
반(反)이명박 진영은 촛불집회, 광우병 보도 등 이념갈등 사례를 이명박 정권의 ‘민주주의 파괴’ 증거로 들이밀었다. 이명박 정권의 과오를 비판한다면서 같은 과오를 답습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과 이명박 정권의 공통적인 ‘맹점(blind point)’은 ‘독선’이다. 상대편이 분명히 보유한 ‘일정량의 진실’조차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일부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정권에 고언(苦言)을 하는 모양새지만 실제로는 정권의 몰락을 희구하는 것으로 비쳤다. 당연히 정권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이 때문에 반이명박 진영의 ‘민주주의 위기’론은 대부분 울림도 없거니와 정권의 내성만 키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현 정권을 ‘악의 편’이라고 말한 순간, 앞으로 그의 고언은 현 정권에는 전혀 필요가 없게 됐다.
숙의민주주의 위기
이명박 정권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한다면, 정권이 감내하지 못하는 ‘거대담론’의 굴레는 벗겨주어야 한다. 이는 서로의 접점을 찾아 사회 통합과 발전을 향해 한발이라도 전진하기 위한 현실적 방책이다. 우리는 문제의 범위를 정교하게 좁혀 그 부분만을 치유하는 외과적 수술을 택해야 한다. 이를 염두에 두고, 현 시국이 던지는 본래의 질문인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고 있는가”로 돌아간다면, 기자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다만, ‘민주주의 위기’라는 거대담론을 ‘숙의민주주의 위기’로 수정한다는 전제하에서다.
이명박 정권은, 아무리 나쁘게 봐도, 그 태생이 반민주는 아니며 민주주의 전반을 후퇴시키는 독재정권으로 규정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에서 숙의민주주의는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이는 현 정권이 앓고 있는 중병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과 한나라당 지지율이 급강하하는 이유도, 그에 대한 해법도 여기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5월29일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가 치러진 서울광장에 많은 시민이 모여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추모하고 있다.
‘숙의민주주의(熟議民主主義·Deli-berative Democracy)’는 서로 다른 의견의 참여, 이를 통한 상호 이해와 합의, 공론의 형성을 지향한다. ‘다수결의 원칙’이 형식적 제도적 민주주의라면, 숙의민주주의는 과정적 내용적 민주주의다. 숙의민주주의에서는 ‘의견의 질’을 중요하게 본다. 한 명의 의견이 9명의 다른 의견에 비해 훨씬 더 ‘고품질’일 경우 9명은 그 한 명의 의견에 따르게 된다.
TV 시사토론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는 패널들의 의견의 우열을 비교한다. 패널들은 논쟁을 통해 검증받고 주장을 더욱 정교화한다. 양측은 중간으로 수렴되기도 한다. 이런 숙의과정을 통해 의견들 전체 집합의 질적 수준, 합의 수준이 높아진다. 다수결의 원칙과 숙의민주주의가 날줄과 씨줄처럼 작동할 때 민주주의는 튼튼해진다.
숙의민주주의는 이명박 정권 초기부터 귀가 따갑도록 회자되어온 ‘소통’의 문제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민영 고려대 교수 등의 연구에 따르면 숙의민주주의 수준은 ‘설득’과 ‘경청’이라는 두 기준으로 측정된다. 자신의 주장의 근거를 제시하고 상대편 의견도 경청하는 최고의 숙의 수준이 ‘소통’이다. 이외에는 자신의 주장의 근거만 제시하고 상대편 의견은 듣지 않은 ‘소란’, 자신의 주장의 근거는 제시하지 않고 상대편 의견만 잘 듣는 ‘소침’, 자신의 주장의 근거도 제시하지 않는 상대편 의견도 듣지 않는 ‘소외’가 있다.
이명박 정권은 △정부와 국민 간 숙의 △당·정 간 숙의 △청와대 내부의 숙의에서 모두 ‘소외’ 수준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권은 2008년 2월 출범 후 지금까지 1년4개월여 동안 국민과의 의사소통에 숙의민주주의의 두 기준인 ‘설득’과 ‘경청’을 외면해왔다는 평이다. 인사와 정책을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고, 여론조사결과나 언론보도로 표출되는 여론을 잘 반영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