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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입가경 전작권 전환 논쟁

워싱턴서 ‘연기’ 역설한 기무사령관 vs‘합의 준수’ 총력방어 나선 주한미군사령관

점입가경 전작권 전환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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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논란이 고스란히 살아 돌아왔다. 예비역 단체들과 보수층을 중심으로 제기된 2012년 전환일정 연기 주장이 북한의 강경행보와 맞물려 탄력을 받은 데다, 군 내부에서조차 일부 고위 관계자들이 ‘자가 발전’에 나서고 있다.
  • 전환일정 재검토를 약속했던 청와대는 기존합의를 준수해야 한다는 워싱턴의 단호한 입장 앞에서 곤혹스러워하는 중. 문제는 사안이 이렇듯 떠도는 동안 한국군의 미래를 고민하고 준비하는 작업은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점입가경 전작권 전환 논쟁
잠시 옛이야기를 더듬어보자. 때는 1992년 8월21일 오후. 6공화국의 마지막 기무사령관인 서완수 중장은 노태우 대통령에게 정례 업무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노 대통령의 의지로 추진되고 있던 평시작전통제권(평작권) 환수의 문제점을 보고했다.

서 사령관은 평작권 환수가 ▲육군참모총장 등 군 지도부 내부에서조차 이견이 있고 ▲우리 군의 준비 및 작전수행태세가 미흡하며 ▲평작권 환수시 북한의 오판 가능성과 함께 강경태도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는데다 ▲한미 군사동맹 관계에 차질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그는 ‘평시작전통제권을 1993~95년 기간 중 한국군이 환수한다’는 1991년 11월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의 합의는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기무사령관의 보고내용이 알려지면서 김종휘 당시 외교안보수석은 격분했다. 그는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보고 배후에 군 예비역 장성과 현역들에게 작전권 환수 반대를 사주하는 로버트 리스카시 당시 한미연합사령관이 있다고 믿었다. 리스카시 사령관이 기무사령관 집무실에 다녀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대통령 보고가 이루어졌다는 점이 그 정황증거였다.

청와대는 즉시 합참 전략본부에 반박대응을 지시했다. 당시 천용택 중장이 이끄는 합참 전략본부와 그 산하 군사전략과장 김관진 대령, 미주전략과장을 맡고 있던 권안도 대령이 주축이 되어 참모총장과 주요 지휘관들에게 작전권 환수의 당위성을 설득했다. 요즘 말로 하자면 군 내부의 ‘자주파’들이었던 셈이다. 이들이 기무사의 따가운 시선을 무릅쓴 결과 이필섭 합참의장, 김진영 육군총장 등 군 수뇌부는 평시작전권을 반드시 환수해야 한다는 데 의견통일을 이룬다. 창설된 지 얼마 안 된 합참조직의 중견 장교들이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기무사의 ‘반란’을 진압한 것이다.

평시작전통제권 환수 논의는 1990년 한미군사위원회에서 “평시작전통제권은 1993년까지, 전시작전통제권은 1995년까지 환수하자”는 안을 미국 측에 제시한 것이 시초였다. 당시 미 국방부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12·12 쿠데타 이후 제기된 ‘작전권을 갖고 있는 미군이 전방병력의 이동을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속내를 품고 있었다. 넌-워너 법안에 의해 주한미군 병력이 축소되고 ‘한국방위의 한국화’가 이루어지는 안보상황도 작전권을 한국에 되돌려주고 싶어한 이유였다.



Envisioned와 Decided

애초 미국 측은 1991년 1월1일부로 한국에 평작권을 전환할 의도가 있음을 내비쳤다. 몇 번의 협상을 거친 후 양국은 1991년 11월 23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 “1993~95년 기간 중 평시작전권을 한국군이 환수한다”는 데 합의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마저 성에 차지 않았던 노태우 대통령은 전시작전권까지 염두에 두었을 때 되도록 빠른 시기에 평작권을 환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2년 1월28일 노태우 대통령의 국방부 연두순시 발언이다.

“우리의 자주적 방위역량과 태세를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의 기본바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금년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는 평시작전통제권을 1993~95년 중 환수하도록 한 기존합의를 구체화하여 최단 시일 내에 찾아올 수 있도록 협의해야 합니다. 가급적 1993년 초에 환수하는 것이 바람직할 듯한데, 잘 검토해보기 바랍니다.”

문제는 리스카시 한미연합사 사령관이었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은 “리스카시가 총독 행세를 한다”며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했다. 리스카시의 주한미군사령부는 평시작전권을 1996년에, 전시작전통제권은 2000년 이후에 한국으로 전환하자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1992년 5월부터 시작된 주한미군과의 평작권 환수 협상이 진전을 보지 못했던 것도 이 같은 리스카시의 집요한 반대 때문이었다. 국군의 날인 1992년 10월1일 오전 11시30분, 김종휘 외교안보수석은 도널드 그레그 당시 주한 미대사와 리스카시 사령관을 청와대 자신의 집무실로 불러들였다. 당시 이 일에 관여했던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 자리에서 김 수석의 발언은 초강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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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D&D Focus 편집장 jdkim20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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