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상률 전 국세청장(위)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국세청 전경.
이번 사건의 주연은 누가 뭐라 해도 박연차(64) 전 태광실업 회장이다. 그가 입을 열 때마다 전·현 정권 실세들이 차례차례 불려나가 조연자리를 채웠다. 그러나 박 전 회장만큼이나 비중이 컸던 주인공이 또 있다. 바로 한상률(55) 전 국세청장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 그는 절대로 잊히면 안 되는 인물이다. 그는 박연차라는 이름의 ‘판도라의 상자’를 처음 열었고 상자 속 모습을 속속들이 들여다봤다. 상자를 뒤지며 보물찾기에 나섰던, 그러나 아직 그를 만나지 못한 검찰은 상자 속 모습이 처음엔 어땠는지 지금도 알지 못한다.
상자가 열리기를 바라지 않았던 수많은 권력자의 구애를 한 몸에 받은 사람도 바로 한 전 청장이었다. 그는 그렇게 이 사건의 처음과 끝에 서 있었다. 게다가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유일하게 국세청장을 지낸 사람이다. 그가 떠난 빈자리는 아직도 채워지지 않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국세청’ 추적기는 곧 ‘한상률’ 추적기라 할 수 있다. 그는 지금 미국의 어딘가에서 제2의 인생을 즐기고 있다.
세무공무원 or 정치인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이 필요합니다. 단지 법이나 규정에 저촉되지 않으면 된다는 수준이 아니라 윤리적으로 올바른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우리가 변화하지 않으면 국민들은 우리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끊임없는 자기변신의 창조성이 필요한 이유입니다.”(한상률 국세청장 취임사 중에서, 2007년 11월 30일)
2007년 가을 어느 날, 느닷없이 터진 전군표 전 국세청장의 뇌물수수 사건으로 국세청은 충격에 휩싸였다. 국세청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교도소 담장 위에 선 국세청장’이라는 비아냥이 국세청을 때렸다. 한 전 청장은 그런 와중에 국세청장에 취임했다.
부랴부랴 단행된 인사였지만 ‘한상률 국세청장’은 사실 예정된 인사에 가까웠다. 충남 서산 출생, 태안고, 서울대 농대 졸업…, 출신성분은 좋지 않았지만 그는 능력 하나만은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는 서울지방국세청(이하 서울청) 조사4국장, 국세청 조사국장, 서울청장, 국세청 차장 등을 거친 흔치 않은 조사통이었다. 그를 잘 아는 한 국세청 직원은 “한 전 청장은 과장시절부터 국세청장이 되겠다고 마음을 먹고 준비했던 사람이다. 한마디로 ‘스스로 준비한’ 국세청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상황은 복잡해졌다. 청장 취임 20일 만에 살아남느냐 죽느냐를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전 정부에서 임명한 사정기관 수장이 새 정부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믿는 게 있다면 누구보다 뛰어난 친화력과 자신감 정도였다. 한 전 청장은 정권이 바뀌자마자 새 정부 측 인사들과 스킨십을 시도했고 새 정부의 코드에 맞는 구상, 정책을 준비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 시절부터 이명박 정부가 내건 화두는 ‘기업프렌들리’였다. 노무현 정부가 성장보다는 분배에 관심을 쏟는 바람에 기업활동이 위축됐고 성장동력이 떨어졌다는 게 한나라당과 이명박 당선자의 생각이었다. 당선자가 들고 나온 ‘기업 프렌들리’의 핵심은 규제철폐와 유연한 세무행정이었다.
한 전 청장은 여기에 철저히 발을 맞췄다. 2008년 1월14일, 한 전 청장은 “올해 세무조사 건수를 지난해에 비해 5~10% 정도 줄이겠다. 기업들이 세금 문제에 신경 쓰지 않고 경영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선 1월6일 인수위 업무보고에서도 기업의 투자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투자 의욕을 위축시킬 수 있는 정기 세무조사를 대폭 줄이고, 세무조사 방식도 전면 재검토한다는 방안도 내놨다. 새 정부가 내세운 ‘일자리 300만개 창출’을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세정지원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혀 새 정부 인사들에게 확실히 눈도장을 찍었다.
노력한 만큼 결실은 돌아왔다. 새 정부 출범 직후인 3월7일 국세청장 유임이 확정됐다. 한 전 청장은 유임에 보답하듯 정부부처 중 처음으로 노무현 정부가 없앴던 기자실을 확대, 부활시켰다. 기자실 부활은 이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줄곧 주장했던 공약사항 중 하나였다. 인수위에 참여했던 한 여권인사는 “(기자실 문제가) 이 대통령 측에서 한 전 청장을 ‘우리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