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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신드롬의 겉과 속

“여당은 바닥민심 존중하고, 야당은 감성정치 편승 말라”

노무현 신드롬의 겉과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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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는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봉하마을을 찾았고, 수백만명이 전국 곳곳의 분향소에 들러 분향했다. 그의 죽음이 너무도 극적인 형태라 충격이 컸다 하더라도 이는 신드롬이라고 할 만큼 강렬했다. 왜 그랬을까?
노무현 신드롬의 겉과 속
재임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업무 수행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대단히 차가웠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가 떠난 뒤 보여준 국민들의 뜨거운 반응은 의외였다. 2007년 대통령선거 때 노무현은 유권자들에게 정책적 실패와 무능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당시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어려움과 혼란은 다 ‘노무현 때문’이라고 할 만큼 그는 비판의 대상이었다. 그랬던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동정과 연민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가히 신드롬이라고 할 만큼 사회적으로 폭넓고 강렬한 추모 현상의 원인은 ‘과거’가 아니라 바로 ‘오늘날’ 우리 사회에 내재하는 여러 문제점에서 비롯했다 할 수 있다. 즉, 죽은 자를 통해 산 자들의 문제가 극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실패한’ 정치인처럼 보였던 그가 그리움의 대상이 된 것은 ‘노무현’으로 상징되는 정치적 가치가 요즘 들어 너무도 절실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정책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균형 있는 발전을 이루기 위해 애썼다는 점을 시민들이 새삼스럽게 기억해냈다. 이렇게 노무현의 가치가 다시 부각된 것은 무엇보다 현 정부가 그러한 사안들을 관심 있게 다루고 있거나 해결하고 있다는 믿음을 국민에게 주지 못한 때문이다.

김수환 추기경 추모 열기의 원인

사실 노 전 대통령 서거를 둘러싼 ‘신드롬’ 이전에도 유사한 사회적 현상이 있었다. 바로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을 때다. 당시에도 수십만의 시민이 명동성당 등을 찾아 조문했다. 성당을 찾아 조문한 이들 가운데는 가톨릭 신자가 아닌 이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종교적인 이유보다는 정치적으로 어려웠던 시절 국민의 요구를 대변해주었고 민주화 이후에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찾아 보살폈던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그리움이 많은 시민을 그 자리로 이끌었다. 이제 떠나고 없는 김 추기경의 위로가 그리웠던 것이다.

이런 일련의 현상은 오늘날 대다수 시민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마음을 기댈 데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 전 대통령이나 김 추기경처럼 힘없고 소외된 이들을 대변하고 상징했던 이의 죽음은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를 되돌아보면서 그들로부터 받던 위로를 떠올리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사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선 많은 이가 힘들고 어려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10대는 경쟁만이 강조되는 처절한 입시전쟁에 내몰려 있고, 20대는 취업의 어려움 속에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지 못한다. 30대는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한 자리에 놓여 있거나, 집값이나 교육비 등으로 인해 결혼을 미루거나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조차 힘들다. 40~50대는 언제 직장에서 해고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지내야 하며 자녀의 사교육비에 허리가 휘고 있다. 60대 이상은 노령화 사회라고 하지만 은퇴 이후의 노후 대책에 암담함을 느낀다. 이처럼 모든 세대가 힘들어하지만 앞날의 희망은 좀체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몰아닥친 전세계적인 경제 불황은 미래를 암담한 잿빛으로 만들고 있다. 어디서도 위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 같고, 어려움 속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새로운 변화나 가치를 제시해주지도 못하고 있다. 살아 있는 권력이 애정을 갖고 국민을 돌보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떠난 정치적, 사회적 지도자를 통해 위로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소통부재’ 리더십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의 추모 신드롬은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 방식과 정책 방향에 대해 그간 국민이 마음에 담아두었던 불만을 극적으로 부각시켰다. 그러한 불만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소외감이 될 것이다. 노무현 추모 정국 속에서 가장 자주 제기된 이명박 정부의 문제점이 ‘소통의 부재’다. 이는 국민의 불만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현 권력은 일반 국민의 처지에서는 너무 먼 곳에 동떨어져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너무도 손쉬운 승리를 거두었다. 사실상의 본선이었던 한나라당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이후에는 여론조사에서 항상 부동의 1위였고 2위와의 격차 역시 매우 컸다. 상대 후보 측에서 제기한 각종 네거티브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은 요동치지 않았다. 그리고 대선 결과 압도적인 차이로 완승을 거두었다. 이런 손쉬운 승리가 권력의 오만을 가져왔다.

선거 압승에 도취한 나머지 과거에 대한 부정을 곧 현 정부의 정당성의 근거처럼 간주하기도 했다. 지난 10년에 대해 그저 잃어버린 10년일 뿐이라고 폄하하며 그간에 이뤄진 우리 사회의 발전과 국민 인식의 변화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한 오만으로 국민의 목소리에 겸허히 귀 기울이면서 사회적 통합을 위해 애쓰기보다 ‘나는 옳다. 나를 따르라’는 식의 독선과 교만의 국정 운영을 했다. 그런 국정 운영 방식이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국민으로부터 떨어져 고립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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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택│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kangwt@s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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