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2009년 11월30일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석정돼지공장과 대동강과수종합농장 현지 시찰 사실을 보도하면서 총 59장의 사진을 신문에 게재했는데 이 중 김 위원장의 얼굴이 보이는 사진이 28장에 달한다.
2008년 언론과 정부가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을 제기한 것도 북한 신문에서 1호 사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노동신문’ 8월15일자부터 1호 사진이 신문에 실리지 않았고 확인되지 않은 여러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1호 사진의 누락이 한동안 이어지자 세계 각국 언론은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을 기정사실화했다.
1호 사진은 신문뿐 아니라 방송에서도 활용된다. 사진 한 장을 TV 화면에 10초 정도 띄워놓고 아나운서가 ‘노동신문’ 기사를 그대로 읽는다. 1~2분짜리 동정 보도에 10여 장의 사진이 연속해서 등장한다.
김정일의 동정을 담은 동영상은 촬영 직후 방송을 통해 국내외에 소개하지 않고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 공개한다. 동영상은 뉴스보다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주로 보도한다. 서울에서 익히 봐온 김 위원장을 촬영한 동영상은 북측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해 송출한 화면이다.
‘노동신문’이 미쳤다!
그런데 지난해 10월부터 1호 사진과 1호 영상의 내용 및 공개 방법이 달라졌다.
북한 조선중앙텔레비전은 김 위원장이 2010년 3월6일 함경남도 2·8 비날론연합기업소 재가동 축하 군중대회장에 참석해 박수를 치는 동영상을 행사 당일 저녁에 공개했다. 북한 당국이 낮에 찍은 동영상을 당일 편집해서 신속하게 보도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 왜 그랬을까?
지난해 10월까지 북한은 김 위원장의 동선, 동정을 보여주는 사진과 동영상을 최대한 절제해서 보도했다. 최고지도자에 대한 정보를 불필요하게 노출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1호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1호’에 대한 불필요한 정보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는 것이었다. 동영상보다는 덜하지만 사진도 행보를 노출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행보를 추측할 수 있는 정보는 사진에 드러내지 않는다.
TV와 영화를 선전, 선동의 중요 도구로 여기는 사회에서 최고지도자의 동정을 동영상이 아닌 사진을 통해 보도한 까닭도 통제의 편이성 때문이다. 동영상에 비해 사진은 구체 정보가 덜 포함된다. 그런데 이번엔 동영상을 당일에 공개했다. 그만큼 2·8 비날론연합기업소 재가동은 북한에서 ‘일대 사건’인 것이다.
이례적인 일은 또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김 위원장의 이미지가 ‘노동신문’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비상식적으로 급증했다. 신문에 실리는 사진 수가 기형적으로 증가한 것. 특히 화폐개혁 직전인 10월, 11월엔 1호 사진이 전례 없이 많이 게재됐다. 하루 지면에 김 위원장의 얼굴사진이 40장 넘게 등장한 날도 있다.
화폐개혁 단행일인 11월30일자 ‘노동신문’이 압권이다. 김 위원장이 대동강 과수종합농장을 현지지도하면서 찍은 사진이 59장 실렸고, 이 중 28장에 김 위원장 얼굴이 보인다. 노동신문은 이 사진들을 싣고자 발행 지면을 10개면으로 늘리고 기사가 전혀 없는 ‘전면 화보’ 형식을 취했다. 이 또한 전례 없는 일. 이날 단행할 화폐개혁을 앞두고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북한 체제의 굳건함을 주민에게 알리려는 선전술로 풀이된다.
11월24일자 ‘노동신문’은 ‘김정일 앨범’을 연상케 한다. 노동신문은 이날 발행한 6개면 중 1∼5면에 걸쳐 김 위원장이 평북 운산공구공장을 현지지도하는 모습이 들어간 사진 23장을 게재했다.
하루치 신문에 김 위원장 얼굴이 4번 이상 등장한 달은 2009년 10월엔 6일, 11월엔 10일, 12월엔 5일, 2010년 1월엔 11일, 2010년 2월엔 한국에 배달된 21일치 신문까지 모두 4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