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9일 압록강 위에서 본 북한 황금평 섬.
김 주석은 섬에 오른 뒤 누렇게 익은 벼이삭이 넘실대는 너른 들판을 지켜보다 “벼이삭이 좋다. 황금평야구먼”이라고 탄성을 내뱉는다.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시 공무원이 기자에게 전한 바에 따르면 김 주석이 즉석에서 한 이 말에 따라 섬의 지명이 황금평리로 바뀌었다고 한다.
김일성 “황금평야구먼”
김 주석과 황금평의 인연은 이보다 24년 전인 1962년 12월1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그는 중국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와 ‘조중변계조약’을 맺었다. 북한과 중국 간의 국경을 확정지은 것이다. 이에 따라 황금평의 주인도 정해졌다.
황금평은 섬이지만 사실 중국 땅과는 개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거의 붙어 있다. 바지를 걷고 건널 수 있을 정도다. 반면 북한 쪽 신의주시에선 배를 타고 한참을 가야 닿을 수 있다. 그럼에도 김 주석은 국경 협상과정에서, 다른 쪽에선 어떤 양보를 했는지 모르지만, 이 섬을 비롯해 압록강 위에 떠 있는 대다수 섬을 북한령으로 귀속시켰다. 그래서인지 그는 이 섬에 애착을 보였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가진 황금평이 최근 한국 매스컴의 비상한 관심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황금평과 나진·선봉이 한반도의 지각변동을 예고한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조선일보 6월26일 보도)
결정적인 계기는 북한이 황금평을 중국에 수십년(혹은 100년)간 임대해 개발을 위탁하고 함경북도 나진선봉특구도 중국에 활짝 개방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다. 특히 황금평의 경우 지난해부터 북·중 공동개발설이 나돌다 최근 대형 이벤트까지 벌어져 국제적 이목을 끌고 있다.
지난해 12월 북·중은 ‘황금평·나선특구 합작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5월 장성택 부위원장을 대동해 중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중국과 황금평 개발 합의를 끌어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6월8일 북한과 중국은 황금평을 마주 보는 단둥의 한 지점에서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 조·중 공동개발 공동관리대상 착공식’을 열었다. 양국이 사실상 경제특구에 해당하는 지역을 개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전 10시반경부터 40분간 진행된 착공식을 위해 황금평과 단둥시를 구분하는 철조망이 일부 뚫렸으며 북측에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겸 노동당 행정부장, 이수영 합영투자위원장, 중국 측에선 천더밍(陳德銘) 상무부장(우리의 지식경제부 장관에 해당)이 참석했다.
이외 양국 관료와 단둥·황금평의 현지주민들이 참석했다. ‘조중 친선’ ‘공동 개발’ 등의 문구가 적힌 대형 풍선 수십여 개가 뜨고 군악대 연주, 축포, 비둘기가 동원됐다. 그러나 취재진의 접근은 철저하게 차단됐다.
“집안 기울자 선대 땅까지…”
당시 행사에 참석한 한 중국 관계자는 기자에게 “당시 폭우가 내렸지만 동원된 것으로 보이는 1000여 명의 청중은 행사장을 가득 메운 채 미동도 하지 않더라. 북·중 정부는 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준비해온 행사를 진행했다. 의지가 느껴졌다”고 전했다.
북한의 ‘조·중 나선경제무역지대와 황금평 경제지대 공동개발 계획 요강’에 따르면 북한은 황금평을 중국 측에 장기 임대하는 방식으로 상업센터 및 정보 산업, 관광문화 산업, 현대시설농업 산업, 가공 산업 등 4대 산업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땅을 내주는 대신 외국투자 유치, 외화벌이(토지 임대료 및 북한 근로자 임금), 고용 창출 효과를 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단둥의 한 기업인은 “집안이 기울자 선대의 노고가 깃든 땅까지 아들 대에서 건사 못하고 남에게 넘기게 된 것과 같은 형국”이라며 씁쓸해했다.
황금평과 나진·선봉 패키지 개발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각국에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한다. 즉 이곳의 개발이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어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 북한의 중국 예속화가 더욱 빨라질 수 있다는 점, 중국 동북지역의 숙원인 동해 항구(나진·선봉항)를 갖게 된다는 점, 중국 해군의 동해 진출 시 한국·일본·러시아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 등 어느 하나 쉽게 볼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동북아·북한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