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일본보다 도착시간 늦어
이처럼 유리한 입지조건을 갖춘 제주도에 1개 기동전단이 배치된다면, 동·서·남해에 배치된 기존의 3개 해역함대를 지원하고 적 해군력의 증원을 차단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 결과 한국이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 벌어질 수 있는 주변 강대국과의 해양관할권 분쟁, 해상교통로 방어에 더욱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 필요한 능력이 증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중국과의 EEZ 획정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는 이어도로 군함을 긴급 투입해야 할 경우 진해, 부산을 비롯한 남해안의 기존 해군기지에서 출발하면 약 25시간(시속 10노트 기준)이 소요되는데, 역시 해군기지가 위치한 중국 상하이(上海)와 일본 사세보(佐世保)에서는 각각 18시간, 21시간 만에 투입될 수 있어서 한국 해군에 불리하다.
하지만 제주도 남쪽에 해군기지가 존재한다면 불과 8시간3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다. 진해, 부산에서 제주도까지의 거리가 300㎞(경제 항해속도인 시속 15노트 기준으로 12시간, 최고 항해속도인 시속 30노트 기준으로는 6시간 소요)나 된다는 점에서 시간을 훨씬 단축할 수 있다.
따라서 원거리 항해능력을 갖춘, 한국 해군의 최신예 군함들로 구성된 기동전단·함대를 제주도에 건설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한 결정이다. 제주도가 발휘할 수 있는 천혜의 군사·안보적 가치를 살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 나라의 해양주권 수호에 대한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이처럼 제주도가 한국 해양안보에 기여할 수 있는 근거가 명백한데도 그동안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주장이 계속돼왔다. 여기에는 과거 제주도의 역사상 경험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고려를 침략한 몽골 제국은 삼별초의 저항을 완전 진압하고, 그 최후거점이던 제주도를 직할령으로 삼아 일본 침공을 위한 전초기지로 운영했다. 고려 말부터 조선 초 명종 시대에 이르는 240년 동안은 제주도에 30여 차례가 넘는 일본 해적(왜구)들의 침범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인 1934년에는 제주도 모슬포에 알뜨르 비행장이 세워져 중국을 공격하기 위한 폭격기가 배치됐고,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는 미군의 상륙 가능성에 대비해 제주도 전역에 80여 개의 동굴 기지가 설치되기도 했다.
그리고 1948년의 4·3 유혈사태에서는 5·10 총선거를 방해하려는 공산 게릴라들의 폭동과 이에 대한 군경(軍警) 및 반공단체들의 과잉진압으로 제주도 전체가 초토화되고, 제주도 인구의 10%에 달하는 3만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9만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런 점에서 제주 도민들이 군사시설의 존재에 대해 나타내는 거부감을 이해할 수 있다. 제주도가 ‘제주국제자유도시 특별법’에 따라 2005년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것도 우연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적, 정서적 배경을 감안한다고 해도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은 여러모로 타당성이 결여되어 있다. 게다가 상당수는 이미 오래전부터 해명과 반박이 이루어져왔음에도 마치 고장 난 녹음기처럼 같은 주장을 반복하는가 하면, 합리적 논리는 내팽개친 채 음모론적 비약을 서슴지 않는다. 제주 해군기지의 건설이 확정된 현 시점에까지 이러한 ‘반대를 위한 반대’가 그럴듯한 주장인 양 포장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대표적인 주장은 “평화의 섬에 군 기지가 웬 말이냐?”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평화=비무장’이라는 식의 논리다. 굳이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는 로마 격언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주장은 오류를 다분히 안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가공할 해군력
제주도가 ‘평화의 섬’이므로 군 기지를 건설해선 안 된다면, 지금의 제주도는 군대와 전혀 무관한 곳이란 말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이미 제주도에는 목포, 인천과 더불어 3대 해군 지역방어사령부로 유명한 제주방어사령부가 설치돼 있고 고속정 편대를 비롯한 일부 연안전투함정이 활동하고 있다. 게다가 제주공항에는 역시 해군 소속의 P-3 ‘오라이언’ 해상초계기와 수퍼링스 대잠헬기를 보유한 1개 항공대가 배치된 상태다. 이처럼 제주도에는 이미 군사시설이 존재하고 있고, 현재 추진되는 1개 기동전단·함대 규모의 제주 해군기지는 그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단순히 군사시설이니까 안 된다는 주장은 지극히 일관성이 결여된 것이라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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