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월호

김종필, 내각제 앞세워 틈새시장 엿본다

  • 서의동 < 문화일보 정치부 기자 > soidong@dreamwiz.com

    입력2004-11-01 17: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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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각책임제로 결(結)을 짓겠다
    • 대북정책, 국가안보 우선하겠다
    • 교육부재, 인성회복 주력할 터
    • 경륜과 온화가 장점, 약세와 노령이 약점
    김종필(JP) 자민련 총재는 2002년 1월15일 대전에서 대선출마를 공식선언할 예정이다. ‘1월15일’은 한때 민자당 대표였던 JP가 1995년 대전 유성에 내려와 자민련 창당의사를 밝힌 날이기도 하다.

    JP가 대통령후보로 나서는 이유와 배경에 대해 측근들은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현재의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의 혼란상, 현정부의 무리한 개혁추진에서 오는 불안감, 헝클어진 사회구조 등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박정희 전대통령에서 비롯된 ‘나라만들기’의 대단원을 마무리짓겠다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일궈놓고(起),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이 이어받고(承),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이 전기를 만든 것(轉)을 자신이 매듭을 짓겠다는(結) 이른바 ‘기승전결론’이다.

    마지막으로는 자신의 평소 소신인 내각책임제를 완수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대통령에 출마하겠다는 것이다. JP는 2001년 11월27일 열린 대전시지부 후원회에서 “다음 대통령은 현 대통령중심제를 내각책임제로 바꾸어놓고 대통령 자리를 내놓는, 굳은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중심제는 지역갈등을 더욱 심화시킬 뿐 아니라 1인의 제왕적 대통령에 의한 국정농단을 5년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체(政體)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밖에 ‘충청도 대권론’도 출마명분으로 꼽을 수 있다. “영호남이 같이 손잡을 수 없을 정도로 대립이 심화됐다. 이것을 타파하기 위해 다음 대통령은 충청도에서 나와야 한다”는 논지다.



    그러나 JP가 2002년 1월15일에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하더라도 여야 유력후보에게 힘을 실어준 뒤 출마를 중도포기할 가능성이 아직은 높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 충청지역을 사수하고 대선국면에서 ‘킹메이커’ 역할을 극대화하기 위한 ‘고공전술’이라는 것.

    그러나 자민련의 정진석 대변인은 JP출마의 ‘순수성’을 강조했다. “JP의 출마목적은 권력을 쥐겠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질서와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JP는 내각제가 실현되면 정계를 은퇴할 것”이라는 것.

    이 말은 JP가 집권하면 가장 먼저 내각책임제를 추진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2001년 상반기부터 자민련 안팎에서 나돌던 ‘JP대망론’문건이나 2001년 8월에 보도된 ‘뉴JP마스터플랜’에는 내각제 추진을 공약으로 걸고, 당선된 다음 2004년까지 내각제 개헌을 완료한 뒤 총선을 실시하고 다음달에 대통령을 사임한다는 구상을 담고 있다.

    JP가 집권하면 추진할 법한 둘째 과제는 대북문제를 포함한 국가안보의 재정립이다. DJ정부의 대북 햇볕정책 추진과정에서 북한상선의 NLL(남방한계선) 침범사태가 발생해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비무장지대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는데도 회담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 이틀 뒤에야 공개하는 식의 대북 ‘눈치보기’는 지양하겠다는 것이다. 뒤처진 군의 위상과 사기도 회복시키겠다는 것이다.

    대북정책도 수정이 예상된다. 김종필 총재는 2001년 11월3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현정부의 대북정책이 방향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정책의 일방성과 과속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또 국회 동의 없는 대북 현금지원과 식량 무상지원을 반대하며 이산가족이 동숙상봉하는 방안 등을 제시한다.

    경제정책의 방향에 대해서는 성장 쪽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21세기에는 근대화의 시대였던 20세기에 비해 성장의 과실을 나누는 분배문제에 신경을 좀더 써야 한다는 입장이다. JP는 경제의 일시적인 부침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다. “경제는 기복이 있는 법이다. 정부가 이 기복을 잘 관리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한다면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JP는 시장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편이다.

    교육문제와 관련해서 한 측근은 자신과 JP 사이에 있었던 논쟁을 소개했다. 이 측근이 ‘교육붕괴’라는 용어를 쓰자 JP는 “‘붕괴’가 아니라 ‘부재’다. 우리나라에는 교육 자체가 없다”고 했다는 것. JP는 최근 여러 자리에서 미국 ‘LA타임스’가 아시아 17개국 중에서 어른을 공경하지 않는 나라에 한국이 1위로 꼽혔다고 보도한 것을 소개하면서 교육부재에 따른 인성 상실을 우려했다.

    그러나 인성 회복을 위한 구체적 대안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대학입시와 대학경영은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민련이 교원정년 연장, 사립학교법 개정반대 등을 통해 교권보장을 강조하고 있는 점을 볼 때 지나친 수요자 위주의 교육정책보다는 수요-공급자 모두에게 균형 있는 교육정책을 중시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대통령이 갖춰야 할 자질과 능력면에서 볼 때 JP의 장점으로는 오랜 국정경륜이 으뜸의 덕목으로 꼽힌다. 그는 5·16 이후 공화당 창당, 중앙정보부 창설, 경제기획위원회 조직 등 박정희정권의 국정운영에 필요한 시스템 구축을 도맡다시피 했다. 1971년 6월부터 1975년 12월까지 4년6개월간 국무총리를 역임했으며 김대중정부 수립 이후 공동정부 총리로(1998년 2월∼2000년 1월) 재임한 기간을 합하면 6년반에 이른다. 공화당 당의장(1963년 12월∼1964년 6월, 1965년 12월∼1968년 5월)과 민주자유당 대표최고위원(1992년 8월∼1995년 2월) 등 집권여당 대표를 맡은 경력도 빼놓을 수 없다.

    국정경험에서 비롯한 외교력도 JP의 큰 자산이다.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의 부친인 부시 전대통령 등 공화당 인사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으며 일본정계에서의 영향력도 크다.

    JP는 온유하고 남과 화합할 줄 아는 성품을 갖췄다는 것이 주변의 일반적인 평가다. JP를 만나본 사람들은 좌중을 휘어잡는 달변과 유머감각, 정치철학에 감화를 받는다. 정치적 고비 때마다 나타나는 ‘몽니’는 일종의 ‘방어기제’적 성격이 강하다.

    반면 ‘2인자 기질’은 결정적인 흠이다. JP 주변에 복심(腹心)이라 부를 만한 사람이 없는 것도 다 이런 ‘2인자 기질’에서 비롯됐다. 민주당의원 이적사태에 반발, 2001년 1월 당을 떠났다가 10월 한나라당에 입당한 강창희 의원은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진심으로 충성하고 같이 뭔가 도모하려던 사람도 결국은 다 떨어져 나가더라”면서 “JP가 자꾸 방향을 틀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배겨나지를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JP가 대선고지에 도달하는 데 있어 최대의 장애물은 세(勢)가 가장 약하다는 점이다. 교섭단체에도 못미치는 소수정당의 총재, 영남·호남·충청 등 3남지방 중 인구가 가장 적은 충청지역을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어 ‘홀로서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권력을 쥐기 위해선 부득이 여타 정파와의 합종연횡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노령이라는 약점도 빼놓을 수 없다. 1926년 1월생이니 16대 대통령에 취임하는 2003년 2월이면 만77세가 된다. 그러나 측근들은 그가 워낙 건강체질이어서 국정수행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강조한다. JP는 그 연령대 노인들에게서 나타나는 노안, 기억력 감퇴, 집중력 저하 등의 징후가 전혀 없다. 요즘도 새벽 2∼3시까지 독서를 한 뒤 아침 7시면 일어난다. 주말마다 골프장을 찾는 것도 체력관리의 비결이다.

    동서양 고전 섭렵한 독서광

    JP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역시 박정희 전대통령이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두 차례나 외유를 하는 등 끊임없이 견제를 받았지만 박 전대통령의 투철한 국가관과 철학을 존경하는 마음이 ‘지하수처럼 흐르고 있다’는 것. 외국 인물로는 영국의 처칠 수상과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 JP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드골 대통령은 루스벨트나 처칠한테 멸시당하면서도 조국의 광복을 위해 참아낸 끝에 급기야 노르망디에 상륙해서 조국을 회복한다. 그랬다가 이것저것 자기 생각대로 잘 안되니 물러난다. 10년이 지났을 때 국민의 요청에 따라 다시 정계에 복귀, 어려운 일 몇 가지 해결하고 프랑스를 반석 위에 올려놓는다. 그런데도 젊은 사람들이 물러나라고 하니까 국민투표에 부쳤다. 여기에서 패배하자 ‘내가 원했던 결과가 아니다’며 물러난다. 그런 뒤 2년 있다가 세상을 떠난다. 나도 어느새 매듭단계에 와서 그런 생각이 가끔 난다”.

    JP는 다양한 종류의 책을 두루 읽는 편이다. 공주중학 시절 기숙사생활을 하면서 하룻밤에 한 권 독파를 목표로 삼고 책을 읽었는데, 다 읽지 못하면 다음날 결석하는 일도 있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JP는 지금도 “내가 지니고 있는 상식의 원천은 10대시절 독서에서 섭취한 것”이라고 말한다. 동서양의 고전을 두루 섭렵했으며 한학에도 조예가 깊다. 이밖에 JP의 기호는 다음과 같다.

    노래는 나훈아의 ‘너와 나의 고향’을 즐겨부르고, 프랭크 시내트라의 ‘마이웨이(My way)’, ‘에비타’ 주제가인 ‘돈 크라이 포미 아르헨티나(Don’t cry for me Argentina)’ 등을 즐겨 듣는다. TV사극 ‘장녹수’의 주제가도 차 안에서 즐겨 듣는 곡.

    영화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등 명화들은 두루 좋아하는 편이다.

    종교는, 개신교 감리교인이며 정동교회에 나가지만 매주 빼놓지 않고 예배를 볼 정도로 독실한 수준은 아니다.

    취미가 매우 다양하다. 바둑과 골프가 대표적인 취미지만 오르간, 아코디언, 만돌린 등 악기연주도 수준급이다. 붓글씨, 서양화에도 조예가 깊다. 바둑은 2급. 골프는 70대 중반의 실력으로 ‘에이지 슈터(age shooter, 자신의 나이보다 적은 타수를 치는 골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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