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3월 11일 귀국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4월 24일 재보궐선거에서 서울 노원병 지역구 출마 의사를 밝힌 그의 행보는 정치권의 지대한 관심사다. 특히 지난해 말 대선 패배 이후 갈피를 못 잡고 헤매는 민주통합당에는 엄청난 부담이다. 새누리당 역시 박근혜 정부 출범 과정에서 발목이 잡히긴 했어도 야당의 지리멸렬을 내심 즐겨왔으니 안철수의 조기 귀환은 적잖이 신경 쓰이는 변수일 것이다.
안철수는 달라졌는가
안 전 교수의 복귀가 정치권을 넘어 국민적 관심사로 다시 부각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나의 판단으로는 지난해 11월 23일 대의명분도, 실리도 다 내던진 대선 중도하차와 함께 한국 정치사에 새로운 획을 그을 뻔했던 ‘안철수 현상’도 마침표를 찍었다. 새 정치를 고대하며 마그마처럼 끓어올랐던 국민적 갈망은 이제 미지근한 커피 수준으로 식었다. 야권에서 누가 이겨도 본전치기나 다름없는 노원병에서 당선된다 한들 그걸 ‘안철수 현상의 부활’쯤으로 해석하기엔 턱없이 미흡하다. 유력 대선 후보의 이미지를 활용해 손쉬운 국회의원 지역구 하나 챙기는 정도라면 안철수가 그토록 타파하려 했던 기득권 정치와 뭐가 다른지 구분하기도 어렵다.
더구나 ‘돌아온 안철수’에겐 특별히 달라진 모습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귀국 일성으로 ‘낮은 정치’와 ‘가시밭길’을 언급했는데, 서울 노원구가 과연 그런 행보에 적합한지도 논란거리다. 무엇보다 신당 창당이나 새 정치 비전 같은 현안엔 모호한 답변만 하고 있다. 지난해 대선 당시와 눈에 띄는 차이점이라면 그의 주위에 박선숙 전 본부장, 유민영 전 대변인 같은 과거의 핵심측근들이 전면에서 사라졌다는 사실 정도다. 83일의 해외체류 기간에 많은 생각을 했다는데 그는 대체 뭘 생각한 것일까.
필자가 지난해 안철수 진심캠프에서 국민소통자문위원으로 짧게나마 겪은 일들을 토대로 추측한다면 그는 아직도 큰 그림보다는 지엽적 실리에 집착하고 있는 듯하다. 지난해 대선에서 모든 걸 걸고 새 정치를 구현해내겠다던 그가 어쩌다 기득권 정당들의 잔칫상 제물로 전락하고 말았는지를 뼈저리게 반추해봤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얘기다.
안철수가 대선에서 실패한 원인을 꼽으라면 당연히 대세를 꿰뚫어보는 안목과 신념의 결핍이었다. 한국 정치사에 유례없는 안철수 현상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기본인식이 부족했고 새 정치를 구현해내겠다는 신념도, 필요한 인물을 기용하는 능력도 모자랐다. 그저 안철수 현상이 자기 개인의 대중적 인기인 것으로착각한 채 아이돌 스타같이 행동하면서 소중한 국민적 에너지를 사유재산처럼 낭비했다.
‘모범생’ 안철수가 두려워한 것
지난해 11월 23일 캠프 사무실에서 대선 후보 사퇴 브리핑을 하고 나오는 안철수 전 후보.
다만 안철수 처지에서는 기존 정당 후보들과 똑같은 손익계산법을 택할 이유가 없었다. 한때 50%를 넘나들던 그의 지지율이 20%까지 추락하는 최악의 상황을 가상한다 한들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어차피 정치권 루키(신인)인 그로서는 여론시장에 형성된 가상의 주가(株價)를 일부라도 현금화한다면 엄청난 정치적 자산을 얻게 되는 셈이다. 그는 스스로 “대선 결과에 관계없이 정치인으로 남겠다”고 선언한 만큼 한 방에 성공하지 못했다 해서 좌절할 필요도 없었다. 새 정치를 바라는 국민 열망을 확인하고 정치 경륜을 축적한 것만으로도 그의 출발은 충분히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철수는 두려워했다. 3자 대결구도가 끝까지 이어지면서 박근혜가 대선 승리를 가져갈 경우의 두려움 말이다. 민주당이나 그 지지자들이 문재인 패배의 책임을 모두 안철수에게 떠넘기며 맹비난을 가하리란 건 뻔히 예견된 일이다. 평생 남에게 손가락질을 받아본 적이 없는 모범생 안철수에겐 구태정치의 겁박과 잔꾀를 감당할 배짱이 없었다. 아마도 안철수를 막판에 주저앉히는 데 공을 세운 민주당 출신 핵심 측근들도 똑같은 논리로 후보 사퇴를 종용했을 것이다.
아무튼 연말 대선의 팽팽한 삼각 줄다리기는 뒷심이 부족한 안철수가 먼저 손을 놓아버리면서 균형이 무너졌다. 그 후에도 여러 곡절이 있었지만 안철수가 빠진 양자대결 구도에서 박근혜의 승리는 당연한 결과였고 이변은 없었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갓 출범한 지금 국민은 한치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여야 구태정치에 또다시 한숨만 짓고 있다.
이런 과정을 되돌아본다면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아는 상식적 교훈을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다. 새누리당 정권이 아무리 부패하고 무능해도 민주당은 ‘지속가능한 대안세력’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건 역대 선거에서도 누차 증명된 일이니 딱히 새로울 것도 없다. 지난해 4·11 총선 결과만 보더라도 새누리당의 눈부신 선전(善戰)이라기보다 민주당의 코미디 같은 자멸 아니었던가. 한국 정치의 부패와 부조리가 근절되지 못하고 기득권 정당이 정신을 못 차리는 원인의 절반 이상은 견제능력을 상실한 가짜 진보세력에게 있고, 그게 지난 대선에서도 어김없이 증명됐을 뿐이다.
민주당을 친정으로 여긴 安 캠프
지난해 11월 21일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TV토론 장면.
가령 자연인으로서 안철수의 삶의 궤적을 살펴보자. 정치 행보를 시작하기 전 그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대학교수 가운데 제법 우수한 편에 속했을 것이고, 넘쳐나는 벤처기업인들 가운데 얼마간 성공한 기업인이기도 하다. 남모르는 고통과 노력이 있었겠지만 비교적 평탄한 성장배경을 감안한다면 그의 인생은 모범적이긴 해도 위대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의 삶을 이끌어온 원동력이라는 ‘사회적 부채의식’도 고상하되 존경을 표할 만큼은 아니다. 한국 사회 곳곳엔 김밥할머니처럼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으며 가진 걸 다 내주는 진짜 천사가 수두룩한데, 사회에 빚진 마음으로 살아왔다는 고백만으로 국민적 존경을 바랄 순 없다. 더구나 안 전 교수를 가까이에서 접해봤던 인사들 중에는 과연 그의 삶이 그토록 헌신적이었는지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보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그가 가망 없는 한국 정치를 구원해낼 메시아처럼 부각됐던 이유는 부패와 무능으로 점철된 기득권 정치에 견주어봤을 때 상대적 우위 덕분일 것이다. 물론 대학생 수준의 지능을 매료시킬 만한 논리적 일관성과 감성적 화술도 뛰어난 장점이지만 그건 본질과는 무관한 조미료일 뿐이다. 요컨대 안철수의 가치는 기득권 정치세력과 차별화한 행보를 끊임없이 보여주는 데 있고, 그러지 못하면 그는 기껏해야 장삼이사 정치인 반열을 넘어설 수 없다. 애초부터 국민이 안철수에게 기대한 건 그렇게 흔해빠진 정치인의 모습이 아니라는 얘기다.
안 전 교수가 현실 정치를 시작하게 된 배경이 그렇다면 그가 풀어야 할 첫 번째 숙제도 명확해진다. 바로 대안세력으로서 기능을 상실한 민주당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의 문제다. 그건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도 최우선 과제였고, 석 달간의 미국 체류를 마치고 돌아온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 다시 지난 대선 과정으로 돌아가보자. 국민소통자문위원으로 한발 늦게 캠프에 합류했던 나로선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 없지만 안철수 캠프 전체가 마치 민주당을 친정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던 건 분명한 사실이다. 안 후보부터가 자신의 대선 출마 선언으로 민주당에 큰 빚이라도 진 것처럼 여겼고, 특히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에선 빚쟁이에게 시달리는 채무자처럼 송구스러워했다.
안철수는 9·19 출마선언 때 후보단일화에 관해 분명한 조건을 달았다. 민주당의 쇄신, 그리고 국민적 동의였다. 그러나 이후 실제 단일화 과정에서 그 두 가지 조건은 실종됐다. 11월 5일 전남대 강연에서 느닷없이 양자 회동을 제의했고, 이튿날 저녁 회동에서 7개항을 합의하면서 ‘후보등록 이전 단일화’라는 족쇄를 스스로 찼다. 그때까지 민주당이 어떤 쇄신을 보여줬고 국민이 얼마나 동의하겠는지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은 캠프 내에선 나 외에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형님에게 야단맞는 동생
대선 후보 사퇴 기자회견 직후 캠프 관계자를 위로하는 안철수 전 후보.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도 민주당이 무소속후보 한계론, 형님론을 내세우며 안철수 캠프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일이 종종 벌어졌고 반칙과 술수도 잇따랐다. 그럴 때마다 안철수 캠프의 반응은 으레 “민주당이 그럴 수 있느냐”는 정도가 고작이었는데, 나로선 그런 반응이 오히려 이상했다. 외국에서 살다온 게 아니라면 민주당이 어떤 정당인지 모를 리 없고 화를 내야 당연한 상황에서 왜 그런 표현을 쓸까. 설령 민주당이 페어플레이를 한다 해도 건곤일척의 승부를 겨뤄야 하는 상대에게 마치 연인끼리 앙탈 부리는 듯한 반응은 대체 뭔가.
후보 사퇴 이틀 전인 11월 21일의 안철수-문재인 양자 TV토론은 그 모든 것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나는 국민소통자문위원 신분으로 기조회의에 줄곧 참석하고 실무팀장들과 비교적 가깝게 지낸 덕분인지 TV토론 리허설에서 운좋게 문재인 대역을 맡게 됐다. 리허설 과정에서 두세 번 후보와 직접 대면할 기회를 가졌고 그때마다 나는 ‘공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가령 11월 13일 오후 첫 리허설 때 이렇게 조언했다.
“객관적으로 봐도 안철수-문재인 토론 대결에 관한 일반 국민의 기대치는 ‘안철수 100대 문대인 0의 승리’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문 후보도 당내 경선을 거치면서 토론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특히 양자 TV토론은 답변 중심의 패널 토론과 다르다.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게임이다. 세계에서 가장 말을 잘하는 오바마도 1차 토론 때 수비만 하다가 롬니에게 엄청나게 고전하지 않았나. 국민에게 안철수 내면에 숨은 카리스마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공격을 해야 한다.”
안 후보가 내 말을 얼마나 귀담아들었는지 모르지만, 최소한 양자토론에서 공격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을 리는 없다. 토론 당일인 21일 오후 최종 리허설 때도 나는 또 한 번 적극적 공격을 주문했다. 답변 능력에 관한 한 안 후보는 졸면서도 만점을 받을 만큼 단련돼 있었기 때문에 수비 연습은 별 의미가 없었다. 문재인 후보 역시 그 전날 기자협회 회견, 방송클럽 회견에서 달변가에 가까운 말솜씨를 뽐냈지만 장황한 답변 속엔 당연히 허점도 많았다. 따라서 그런 허점을 파고들 핵심 포인트 몇 개를 간추린 페이퍼를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 후보는 토론현장에서 아예 공격 의지를 보이지 않았고, 막판엔 되레 큰형님에게 야단맞는 막냇동생 같은 장면까지 연출했다. 그날의 TV토론은 모든 조직을 총동원한 민주당의 파상적 공세로 궁지에 몰린 안 후보에겐 전세를 뒤집을 마지막 기회였지만 허무하게 날리고 말았다. 모처럼 후보에게 직접 조언을 했던 나로서도 뼈저리게 아팠다.
하지만 TV토론의 패배 원인이 겉보기처럼 안 후보의 토론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다는 건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실족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민주당에 대한 부채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민주당을 자기 세력으로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순진한 착각에 빠져 있었거나.
小利에 집착할 일 아니다
따라서 미국에서 긴 고민의 시간을 갖고 돌아온 안 전 교수가 새 정치를 다시 시작하려 한다면 재보선 출마 같은 소리(小利)에 집착할 게 아니라 과거에 대한 반성과 향후 행보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게 순리다. 물론 거기엔 민주당을 대체할 신당 창당 여부도 포함돼야 마땅하다. 나는 안 전 교수가 돌아온다고 했을 때 영화 속 검투사 같은 용맹은 아니더라도 지난해 9·19 대선출마 선언 때 같은 결기를 갖고 그 정도의 큰 그림을 제시하길 기대했다.
그러나 여전히 애매모호하고 불투명한 태도는 ‘3개월 전의 안철수’에서 얼마큼 달라졌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그런 어중간한 모습은 지난해 11월 23일 후보 사퇴 직후 상황을 연상케 한다. 당시 나는 충격과 상실감에 빠져 사나흘을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 부끄러운 기록이라도 남겨두자는 생각으로 ‘안철수 캠프 50일간의 비망록’을 쓰기 시작했다.
며칠간 밤낮 없이 써내려간 비망록이 200자 원고지 분량으로 몇 백 쪽에 달할 무렵인 11월 30일 안 전 교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일주일간 푹 쉬다가 돌아왔다. 그동안 도와준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며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다. 나는 어처구니없는 후보 사퇴에 대한 실망감 탓에 별로 공손하지 않은 투로 “밤낮을 거꾸로 지내면서 비망록이나 끼적거리고 있다”고 대답했고 그는 “나도 한번 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보여줄 순 있지만 글을 좀 표독스럽게 쓰는 체질이라 마음 약한 사람이 읽기엔 거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상관없으니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보내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비망록 중에는 가슴속에 묻어둬야 할 사적인 내용, 또는 추측에 의존하거나 감상적으로 흐른 내용이 적지 않았다. 또 안철수 사퇴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해도 내 손으로 명확한 연관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외부세력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그런 건 이미 사퇴한 안 후보에게 도움도 안 될뿐더러 나보다 더 사실관계를 잘 아는 사람들 몫으로 맡겨두는 게 옳을 것이라 생각했다.
안 후보가 외부 유세에 전념하느라 챙겨보지 못한 캠프 내부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부분만 따로 정리했다. 몇몇 측근의 농간을 실명으로 언급한 게 다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가급적 원본 그대로 보내줬다. 프로 정치세계에서 승부를 좌우하는 건 요행이 아니라 결국 실력이란 걸 깨달으려면 잔인한 표현 따위에 얽매일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개헌 공약을 요구하라”
그 비망록 일부를‘신동아’가 입수해 1월호에 익명으로 게재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폭로꾼 신세가 되기도 했다. 연말 송년회 때 안철수 캠프 속사정을 묻는 몇몇 지인에게 참고삼아 보라고 앞부분만 보내줬는데 흘러나간 듯하다. 보도 시점이나 분량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언론 플레이 따위를 할 의도가 전혀 아니었음을 다시 밝혀둔다.
아무튼 안 후보는 비망록을 본 뒤 “감사합니다”라는 짤막한 인사를 전해왔고 12월 3일 해단식 이후엔 분명히 달라진 듯한 언행을 보였다. 4일 국민소통자문단 위원들과 해단식 후 첫 오찬을 하면서 그는 많은 실수와 오판이 있었다고 반성했고 향후 행보에 관한 의견을 물었다. 그의 태도 변화에 다시 용기를 얻은 자문위원들은 각기 견해를 표시했고 나도 “상황이 어려워졌지만 안철수의 새 정치는 계속돼야 한다”는 취지로 조언했다. 특히 당장 발등의 불인 문재인 지원 방식에 관해선 철저히 기브 앤드 테이크(give · take) 방식이 돼야 하고 전면지원 대가로 뭘 요구할 것인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튿날 안 후보 집으로 찾아온 문 후보의 면담을 거절하더니 그 다음 날 갑작스럽게 회동한다는 소식에 나는 ‘개헌 공약을 요구하라’는 건의를 e메일로 보냈다. 당시 상황에서 안철수에겐 운신의 폭이 거의 없었다. 비록 후보 사퇴를 했을망정 새 정치 명분을 포기하지 않은 한 문재인 지원 대가로 추후 자리 몇 개 약속받는 식으로 협상하는 건 말이 안 될 노릇이었다. 정치권의 해묵은 숙제인 개헌 카드 정도는 내밀어야 안철수다운 정치 혁신이라는 평가와 지지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개헌의 핵심은 정당 후보들도 언급한 대통령 권한 축소나 책임총리제 같은 곁가지가 아니었다.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개헌 방향은 당연히 대통령 4년 중임제, 그리고 대통령과 국회의 임기불일치 해소다. 특히 임기 불일치를 해소하는 방식은 결코 쉬운 방정식이 아니다. 2018년 2월까지인 대통령 임기를 차기 총선이 치러지는 2016년과 맞추려면 본인의 집권기간을 1년 이상 단축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자기 임기를 줄이고 싶은 대통령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그 정도 파격적 공약 없이 박근혜 후보를 이길 가능성은 없다고 봤다. 안 후보의 처지에서도 막막하게 5년 후를 기약하기보다 3년여 만에 재기를 준비하는 게 여러모로 유리한 선택일 것이다.
신념과 철학 결핍 보완해야
하지만 막상 문재인과 회동한 그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겠다”는 등 뭐가 뭔지 모를 표현을 써가며 또다시 이해 못할 행보를 하기 시작했다. 별로 내키지 않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선거유세장에 미련을 갖는 그의 모호한 태도에 두 번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국민소통자문위원 9명이 안 후보와 결별선언을 하게 된 것은 그런저런 사연들의 결과였다.
그런 전력으로 미뤄본다면 안 전 교수의 지금 행보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느낌을 주긴 어렵다. 물론 나는 정치인 안철수를 기회주의자로 매도할 마음이 없다. 언론에서 ‘간철수’ ‘타이밍 정치’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시점을 신중하게 선택하는 것이 그 자체로 잘못된 건 아니다. 단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유난히 큰 성격인 데다 밀어붙이는 의지가 강하지 못할 뿐이라는 게 나의 판단이다. 그건 단점이지만 경우에 따라 장점이 되는 양면성도 있다. 알량한 제 힘만 믿고 독선으로 빠지는 정치인이 하나 둘이었던가.
돌아온 안철수가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려면 신념과 철학의 결핍은 반드시 보완해야 한다. 재보선에 출마한 지금도 유세장 스타놀이에 대한 중독 때문이 아니라면 국민의 궁금증에 명확한 대답을 내놔야 한다. 나는 비망록에서 ‘안철수는 안철수 현상을 제대로 이해했는가’라는 의문부터 제기했는데, 그건 안철수를 지지했던 수많은 사람의 공통된 물음이라고 생각한다. 또 신당 창당을 포함한 향후 행보에 대해서도 좀 더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는 게 도리다.
만약 그런 큰 그림 없이 일단 국회의원 배지부터 확보하는 게 목표라면 “새 정치를 하겠다”는 약속도 훗날로 미뤄두는 게 안철수다운 모범적 행동일 것이다. 여의도에 넘쳐나는 수많은 의원 가운데 “나는 낡은 정치를 하겠다”고 말하는 정치인은 단 한 명도 없다. 새 정치는 말이나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 비전이고 행동이다. 국민은 너무 오랫동안 너무 많이 속아왔다. 그런 국민에게 인내심을 가져달라고 요구하는 건 무례이고 결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