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강도 안보리 제재로 北 압박 시작
- 美 “정권교체로 갈 수밖에…” 인식 확산
- 北에 채찍 든 中…타격 있을까
- “强대强 대치 끝내야” 출구 모색 움직임도
한미 연합군사연습 ‘키리졸브’가 시작된 3월 11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운데)가 백령도 타격 임무를 부여받은 월내도 방어대를 시찰했다.
북한이 한미 연합군사훈련 ‘키리졸브’가 시작된 다음 날(3월 12일) “우리 영토에 한 점의 불꽃이라도 날린다면 본거지들을 무자비한 불벼락으로 벌초해버릴 것”이라고 위협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겉으로는 ‘남조선 벌초’ 운운하지만 속으로는 전전긍긍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태도가 과거와는 결이 달라서다. 대북 소식통은 “3차 핵실험과 관련해 북한 권부에서 중국이 자신들을 외면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내부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불량 국가의 버릇을 고치는 방법에 물리적 타격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돈줄을 죄는 게 훨씬 효율적일 때가 많다. 경제제재 성공의 열쇠는 중국이 쥐고 있다. 중국도 일단은 칼을 빼든 모습이다.
2월 중순 김강일 옌볜대 동북아연구소 교수가 서울을 방문했을 때 기자에게 “사정이 급하다. 방송사 인터뷰를 주선해줄 수 있느냐”고 말했다. “미국 ‘뉴욕타임스’와 인터뷰를 했는데 내가 북한을 사악한 체제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중국 공산당, 군부, 학계에서 미국 네오콘처럼 북한을 악의 축으로 보는 이가 늘고 있다고 말한 게 와전됐다. 내 처지가 곤란하게 됐다. 바로잡아야 한다.” 김 교수는 북한 쪽과도 친분이 두텁다. 잘못된 기사 탓에 평양이 그를 눈엣가시로 여길 수도 있는 노릇. 그의 말처럼 중국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일부 인사들이 ‘혈맹 폐기론’를 거론한다. 북한을 일반적 이웃 국가로 다뤄야 한다는 것.
중국서 ‘北=악의 축’ 시각 늘어
2월 하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논의 과정을 설명하던 정부 고위 당국자는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할 순 없지만 미국이 내놓은 제재안이 매우 강력하다. 미국이 하자는 대로 안보리가 결의하면 북한 경제는 대외 무역을 못하게 돼 고사(枯死)의 길로 접어든다. 안보리 결의는 모든 회원국이 다 지켜야 하는 무서운 것이다”라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 미국의 ‘넬슨리포트’는 “미국이 요구하는 강도 높은 결의안을 중국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3월 7일 안보리는 강력한 대북 결의안을 채택했다. 베이징이 고강도 제재안에 동의한 것. 앞서의 당국자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이 비핵화에 나서지 않고 계속 도발하면 북핵에 대한 미국의 스탠스가 바뀐다.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정권교체)로 가는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안보리 결의 내용은 정권과 핵, 둘 중 하나를 내놓으라는 것이다. 강한 제재가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도발을 막는 효과다. 다른 하나는 핵을 보유할 때 치러야 하는 대가를 높여 도저히 못 버티게끔 하는 것이다. 제재가 강하지 않으면 6자회담이건, 북미회담이건 협상이 안 된다.”
미국이 안보리 이사국에 대북 제재 결의안 초안을 회람시킨 3월 5일 북한은 ‘정전협정 백지화’ ‘핵 불바다’ 성명으로 위협했다. 제재안이 북한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북한이 궁지에 몰리거나 위협을 느꼈을 때 사용하는 표현이 성명에 많이 담겨 있다”고 대북 소식통은 말했다.
이번 제재(결의 2094)는 과거(2006년 1차 핵실험 관련 ‘결의 1718’, 2009년 2차 핵실험 관련 ‘결의 1874’)와 달리 금융제재와 불법거래 차단을 유엔 회원국에 의무화했다. 회원국의 제재 이행과 관련해 기존의 ‘촉구한다(call upon)’를 ‘결정한다(decide)’로 바꿔 법적 구속력을 부여했다. ‘결의 2094’의 골자는 △대량 살상무기와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금융거래 차단 의무화 △의심되는 북한 선박, 항공기를 검색할 권한을 각 나라에 부여 △북한 요주의 인물의 출입국 제한 및 관련 기관의 해외 자산 동결 등이다.
북한 처지에서 당혹스러운 것은 중국이 이런 고강도 제재에 동의했다는 점이다. 중국은 북한 대외무역액(한국 제외)의 90%를 차지하는 북한의 생명줄이다. 리바오둥 유엔주재 중국대사는 3월 7일 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핵실험은 국제사회의 뜻에 반한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 안보리 결의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걸음으로 마땅히 전면적으로 이행돼야 한다. 우리는 일관되게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해왔다”고 말했다.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 기관지 ‘학습시보’의 덩위원 부편집장은 2월 28일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에서 “북한을 버려야 한다”면서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관계는 위험하다. 중국, 북한의 차이는 중국, 서방의 차이보다 크다. 북한 정권이 곧 붕괴될 것인데, 왜 조만간 멸망할 정권과 관계를 유지해야 하느냐”고 주장했다.
“아직은 사용할 수 없는 핵”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3월 7일(현지 시간) 뉴욕 맨해튼 유엔본부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한 제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북한 김정은의 선택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4차 핵실험, 장거리미사일 발사, 대남 도발 등으로 긴장을 더 높이는 것이다. 북한은 위기를 고조시켜 협상력을 높인 경험을 갖고 있다. 다른 하나는 ‘핵무기를 다른 나라로 확산하지 않을 테니 핵 보유국임을 인정한 상황에서 핵감축 북미 양자협상을 하자’면서 대화에 나서는 것이다.
미국의 대화 요구에 마지못한 척 응하면서 한국도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여 경제 지원을 요구하는 시나리오다. 군사적 옵션이 배제된 안보리 제재만으로는 북한에 결정적 타격을 주기는 어렵지 않으냐는 지적도 있다. 이것이 미국의 딜레마다. 북한의 핵무기, 핵시설(혹은 지휘부까지)을 일거에 타격하는 방법이 있겠으나 “무자비한 불벼락으로 벌초해버릴 것”이라는 협박대로 북한이 한국을 보복공격한다면 그 후폭풍이 심대하다. 미국의 해법도 경제제재와 대화를 병행하는 방법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까닭이다.
미국의 고민은 ‘레짐 체인지를 준비해야 할 단계인지, 아직은 아닌지’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미국은 일단 제재를 통해 북한 정권이 손들고 나오게 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고위 안보 당국자로 일했던 인사는 2월 26일 북한의 핵 능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직은 사용할 수 없는 핵이다. 1, 2년 안에 사용할 수 있는 핵무기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미국, 러시아도 수백 번의 핵실험을 통해 오늘에 이르렀다. 미사일에 핵을 장착하고 실전 배치할 단계에 이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곳에 도달하려고 애쓰는 것은 확실하니 5~10년 안에 도달할 수도 있다고 본다.”
북한이 ‘긴장 고조’라는 선택지를 고를 때 미국이 추진할 수 있는 독자 대북 제재로는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2차 제재)이 있다. 북한과 거래하는 나라의 금융기관을 국적에 상관없이 제재하는 방식이다. 북한과 거래하는 곳은 미국 내 모든 금융기관과 거래할 수 없게 하는 것. 이렇게 되면 기축통화인 달러화 결제와 국제금융망 사용이 어려워진다. 북한과 거래하는 금융기관과 기업이 영업활동에 심대한 타격을 받는 것. 또한 북한 금융기관은 외환결제를 사실상 할 수 없게 된다. 미국 의회는 이란을 상대로 세컨더리 보이콧 방식의 제재를 입법화한 바 있다.
한국의 카드는?
“공화국이 얼마나 험한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줘야 외세가 안 건드린다” “적이 압박할수록 우리는 공세적으로 맞받아쳐야 한다”는 평양의 오랜 사고방식은 동북아 안보 방정식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한국이 가진 카드는 뭘까. “미국과의 공조를 강화해 제재를 성공적으로 이행하고 중국을 설득해야 한다”는 교과서적 얘기가 주류를 이룬다. ‘강(强)대 강(强)’ 대치를 끝내고 출구를 모색해야 한다는 견해도 흘러나온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3월 13일 “북한이 일정 기간 자제하면 경색을 풀 방안을 시도할 수 있다. 그 첫 번째 시도는 인도적 지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자위적 핵무장론’을 거론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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