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여관방에서 탄생한 노조 규약
정의감 넘치던 노조, 2000년 이후 변질
2002년 대선 기점으로 본격 ‘노영방송’의 길
“딱 보니 100만 명” 발언, 박성제의 언론관 상징
20대 대선·22대 총선, 대놓고 편파보도
MBC 언론노조원들에게 “제게 왜 그랬습니까”
영원한 건 없어, MBC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오늘날의 MBC는 공영방송인가. 이 질문 앞에서 국민은 반으로 나뉜다. MBC에 무한 신뢰를 보이는 쪽과 MBC가 특정 정당의 선전 도구로 전락했다고 비판하는 쪽이다. MBC를 지지하는 이들도 지금의 MBC가 중립적이지는 않다는 것쯤은 안다. 안형준 사장조차 지난해 8월 ‘창사 62주년 기념식’에서 “국민의 반은 MBC를 신뢰하고 나머지 반은 비판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지금의 MBC는 정치적 중립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논란의 중심에는 MBC 노조가 있다. MBC 노조는 민주화 요구가 사회적으로 들끓고, 기업마다 노조가 생기기 시작한 1987년 태동했다. 처음에는 ‘MBC 노조’였다가 후일 산별노조 체제로 바뀌면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이하 언론노조)가 됐다. 처음에는 공정방송의 길을 걸었으나 점차 회사를 장악해 갔다. 노조가 만들어진 첫해, 파업을 통해 황선필 당시 사장을 물러나게 했고, 새로 부임한 김영수 사장도 낙하산 인사라며 사장실로 몰려가 몰아낸다. 노조가 물리력으로 사장을 몰아내는 일이 반복되자 간부들조차 노조 입김을 무시하지 못하는 수준에 이른다.
이러한 분위기는 2002년 대선을 기점으로 더욱 심화했다. 2002년 대선 당시 병역 브로커 김대업이 기자회견을 열고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부인 한인옥 여사가 아들의 병역 비리에 연루됐다고 주장했다. 훗날 허위 사실로 드러난 김대업의 주장을 두고 MBC 뉴스데스크는 당시 한 달 가까이 보도했고, 결국 대선 판도는 바뀌었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2년 뒤 마흔아홉 살이던 최문순 부장은 MBC 사장으로 고속 승진한다. 그는 2002년 당시 MBC 사회부 차장으로서, 김대업이 제기한 병역 비리 의혹을 취재·보도하는 과정에 깊이 관여했던 인물이다.
2013년 3월, 다른 목소리 낸 제3노조
2008년 보수 정권이 들어선 뒤, MBC 경영진이 교체되면서 내부 갈등은 극에 달했다. 언론노조는 2010년 부임한 김재철 사장이 방송의 공정성을 훼손하고, 정권에 유리한 보도를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2012년 1월 30일, 언론노조는 김재철 당시 사장의 퇴진과 공정방송 회복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이 파업은 170일간 이어졌다. MBC 역사상 최장기 파업으로 많은 프로그램이 중단됐고, 뉴스 보도도 큰 영향을 받았다. 당시 이명박 정부와 MBC 경영진은 언론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파업에 참여한 많은 기자와 PD들이 해고되거나 징계를 받았고, 파업이 끝난 후에도 MBC 내부 갈등은 지속됐다.
이 시기 MBC에는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속속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2013년 3월 6일 노동조합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자 하는 ‘MBC 노동조합(이하 제3노조)’이 발족했다. 김세의·박상규 기자·최대현 아나운서를 공동위원장으로 100여 명의 노조원이 뭉쳤다. 기존의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언론노조·제1노조), MBC 공정방송노동조합(제2노조)에 이어 만들어진 소수노조였다. 이들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에 가입하지 않는 순수 노조를 지향했고, 2017년 11월 초 공정방송노동조합과 통합을 발표한 뒤 현재까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제3노조에 따르면 언론노조원 수는 약 1100명, 제3노조원 수는 100명가량이다.
지금의 제3노조를 이끄는 사람은 오정환(60) MBC 노동조합 비상대책위원장이다.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1991년 MBC에 입사해 방콕 특파원, 사회1부장, 뉴스데스크 편집부장, 취재센터장을 거쳐 보도본부장을 역임했다. 그의 처지가 달라진 건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다. 그해 말 최승호 사장 부임 직후 언론노조가 주도한 총파업에 동참하지 않았던 제3노조원들은 보직을 잃고 단순 반복 업무에 투입됐다. 오 위원장은 아침뉴스 색인 입력 업무에 투입됐다. 아침뉴스 특성상 색인 입력이 필요 없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업무에서 배제된 것과 다름없었다. 그는 2021년 2월과 2022년 6월, 최승호·박성제 전 사장을 ‘부당노동행위’로 고용노동부에 고발했다.
2022년 윤석열 정권 이후 지금까지 MBC는 공정방송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오 위원장은 2017년부터 지금까지 부당한 인사를 감내하며 MBC 정상화의 의지를 외부로 끊임없이 드러냈다. 특정 정당의 부역자 노릇을 하는 이들을 보고만 있는 것은 진정한 언론인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했을는지도 모른다.
현재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의 이사진 교체 이후 MBC 사장 및 경영진 교체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MBC 언론노조는 2012년 총파업 태세로 전환하고 있다. 오 위원장은 차기 MBC 사장으로도 거론된다. 8월 12일 오 위원장을 만나 MBC의 현재 상황과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 그리고 MBC가 진정한 공정방송으로 거듭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물었다.
먼저 오 위원장님이 속한 MBC 제3노조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11년 전 설립 자체가 쉽지 않은 분위기였을 텐데요.
“MBC 제3노조는 2012년 언론노조의 6개월 초장기 파업을 겪은 뒤 그에 대한 반성 차원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언론노조는 겉으로는 공정보도를 내걸었지만, 결국 많은 직원이 그해 12월 대통령선거를 겨냥한 것이라고 생각했죠. 우파 정부 때 선거만 다가오면 언론노조가 뭔가 일을 벌였거든요. 그런 정치 노조를 방치했다가는 회사가 망가질 거라고 걱정했습니다. 지금 MBC 상황을 보면 그런 우려가 맞았고요. 제3노조는 2013년 3월, 지금은 펜앤드마이크 앵커를 하고 있는 최대현 아나운서와 박상규 기자 등이 공동위원장 체제로 출범했습니다.
순조롭게 성장하던 제3노조는 2017년 문재인 정부 들어서고 언론노조가 회사 경영권을 장악하면서 위기를 겪습니다. 최대현 초대 위원장이 해고되고, 임정환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 징계를 받자 겁을 먹은 조합원들이 줄줄이 탈퇴했어요. 130명에 달했던 조합원 수가 30명 안팎으로 줄어들 정도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됐습니다. 처음에는 조직을 정비하는 임시 역할이라고 생각했죠. 어렵게 후배들을 설득해 노조위원장을 선출했는데, 경영진이 또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노조위원장을 인사위원회에 회부하는 거예요. 해고될 거라는 소문까지 도니까 어쩔 수 없이 그분이 명예퇴직을 선택했습니다. 노조는 다시 비대위원장 체제로 돌아갔죠.”
언론노조를 출세의 발판으로 삼는 사람들
위원장님은 1991년에 입사했는데, 1987년 MBC 언론노조 설립 당시 초창기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 듯합니다. 당시 언론노조는 어떤 조직이었나요.
“제가 입사하기 4년 전 일이라 저도 전해 들은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어요. 여관방에서 노조 규약을 만들고, 한밤중에 구내식당에 모여 창립대회를 열었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선배는 정의감으로 노조 설립에 앞장섰을 것으로 믿어요. 그런데 그 노조가 변질됐습니다. 노조가 특정 정당의 하부조직처럼 변하고, 노조원은 편파보도가 공정보도라고 우기는 지경이 됐습니다. 언론노조를 만들 때 핵심 역할을 했던 분이 심재철 전 국회 부의장입니다. 1980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고, 주사파 이전 민주주의를 이념으로 했던 당시의 운동권 출신이죠. 그분이 ‘저런 노조를 만든 게 후회스럽다’고 말씀하십니다.”
1990~2000년대 언론노조는 공영방송 정상화, 공정보도에 긍정적 역할을 했다고 보나요.
“우리 사회가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 체제로 나아가는 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 봅니다. 언론노조가 공정보도를 주장했고, 대다수 노조원은 그것이 진심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숨어 있던 권력욕, 그리고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경시하는 세력이 자라나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죠. 저도 수십 년 전에 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 간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위원장이었던 분이 2017년 방문진 이사로 있었는데 저와 논쟁을 벌인 적이 있어요. 방문진에 보고하러 갔더니, 제게 ‘당신도 언론노조 간부를 하지 않았나. 그때와 지금이 뭐가 다르냐’고 묻더군요. ‘그때는 공정보도를 지향했고, 노조를 출세의 발판으로 삼는 사람도 없었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노조를 출세 발판으로 삼는 사람이) 없었던 게 아니라 제가 몰랐던 것 같습니다.”
언론노조가 2000년대 이후 사내 권력을 장악하게 된 결정적 사건, 혹은 계기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2002년 16대 대통령선거라고 봅니다. 그해 7월 병역 브로커 김대업이 기자회견을 열고 이회창 후보의 부인 한인옥 여사가 병역 비리에 연루됐다고 주장했죠.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MBC는 김대업의 주장을 한 달 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속보 형태로 쏟아붓는 듯이 보도했어요. 국민은 처음엔 김대업 주장을 무시하다가 MBC가 계속 주요 뉴스로 보도하니까 ‘무슨 비리가 있었나’ 의심하게 됐고, 결국 대선 후보 지지도가 바뀌었습니다. MBC 기자들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 공신이 된 셈인데, 그 보답인지 당시 49세의 최문순 부장이 MBC 사장으로 임명됐어요. 그리고 노조 간부 출신들이 회사 요직을 차지하면서, MBC는 본격적인 ‘노영방송’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렇게 달콤한 경험을 하고 나니까 노조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2008년 MBC ‘PD수첩’이 광우병 보도로 이명박 정부를 뒤흔들어 놓은 것도 같은 차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2017년 민주당이 다시 집권하자 언론노조는 MBC 장악에 대못을 박으려 해요. 인사 독점은 물론이고, 각종 사규를 바꿔서 누가 사장으로 오더라도 언론노조의 기득권을 깨지 못하도록 여러 겹의 안전장치들을 만들어놨습니다.”
지난 7년간 최승호, 박성제, 안형준 사장 체제의 MBC는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궁금합니다. 최근 입사한 기자들이 “이게 MBC 뉴스 결에 맞느냐”고 묻는다고 하는데, 지금의 MBC 보도국의 전반적 분위기라고 봐도 될까요.
“2017년 11월 문재인 정부가 김장겸 사장을 해임하고 최승호가 후임 사장으로 거론될 때입니다. 지금 국회 과방위 위원장인 최민희 전 민언련 대표가 한 팟캐스트에 나왔습니다. 진행자가 ‘노무현 대통령 말년에 진보언론이나 공영방송이 너무 잘못된 점만 꼬집어가지고…(문재인 정권에서도 진보언론이 비판을 하면 어쩌냐)’라고 묻자 ‘저도 심하다고 느끼면서 조·중·동 프레임에서 너희(진보언론)도 자유롭지 않은 게 아니냐 이런 토론도 많이 했고, 그들은 저를 ‘노빠’라고 욕하고 이런 게 있었거든요’라고 대답합니다. 최민희 전 대표 발언의 핵심은 ‘최승호 사장 등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동안 고생을 많이 해서 이제는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래도 최승호 사장은 최소한 겉으로는 공정보도를 주장해 온 사람이라, 문재인 정부 당시 편파보도를 하면서 마음이 불편하기는 했을 겁니다.
이게 박성제 사장 때가 되면 달라져요. 일종의 언론노조 1세대와 2세대 차이라고 할까요. 박 사장이 2019년 보도국장 시절 ‘조국 지지 집회’에 대해서 ‘딱 보니 100만 명’이라고 말한 게 그의 언론관을 상징한다고 봅니다. 사장이 된 뒤 2021년 5월 한 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해요.
‘공영방송의 중립성, 공정성, 독립성 이런 얘기를 많이 했잖아요. 저는 거기서 좀 더 나가야 된다. 시대정신과 관점, 상식 이런 거를 담아보자.’ 박 사장이 뭐라고 포장하든 결국 중립성, 공정성 대신 다른 목표를 추구하겠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MBC 뉴스는 박성제 사장의 말처럼 언론노조원들의 목표에 맞춰 사실을 왜곡하는 방향으로 질주합니다.
현재의 안형준 MBC 사장은 ‘박성제 전 사장이 시민평가단 투표라는 자충수를 두면서 얼떨결에 사장이 됐다’고 사내에서는 보고 있습니다. 안 사장의 조직 장악력이 떨어지니까, 언론노조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습니다. 그러면서 MBC 불공정 보도는 이제 체질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보도국에서 어떤 기사를 논의할 때 최근에 입사한 기자들마저도 ‘이게 MBC 뉴스의 결에 맞느냐’는 말을 종종 한다고 합니다. 취재 내용이 사실이냐, 기사가 어느 정도 중요하냐가 아니라 MBC가 정해 놓은 목표에 맞는지부터 묻는 거죠.”
선거 때면 반복되는 후진국형 보도
MBC 보도를 보면 공정보도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데, 최근 몇 년간 MBC 보도의 대표적 불공정 사례는 무엇이라고 보나요.
“선거 때 보도입니다. 평소에도 편파보도가 심하지만, 선거 때만 되면 마치 특정 정당의 선거운동 조직처럼 행동합니다. 2022년 대선 때 윤석열 후보 기사에는 당내 갈등을 담고, 이재명 후보 기사에는 공약을 담았습니다. 경기 성남시 대장동 비리가 이재명 전 성남시장이 아니라 윤석열 당시 검사 책임이라고 터무니없이 몰아갔습니다. ‘PD수첩’은 윤석열 후보 인터뷰를 배경으로 ‘거짓말’이라는 노래를 틀었습니다. 심지어 윤석열 후보 유세 화면은 주로 단상 쪽 모습을 쓰고, 이재명 후보 유세 화면은 군중 ‘풀샷’을 잡았죠. 단상만 잡으면 군중이 얼마나 모였는지 알 수 없어요. 이런 후진국에서나 볼 법한 일들이 MBC에서 벌어진 겁니다.
올해 4월, 22대 총선 때도 마찬가집니다. 민주당 후보들의 온갖 비리와 망언들을 축소 보도하거나 모른 척했죠. 이종섭 호주 대사 발령과 윤석열 대통령의 ‘대파 가격’ 발언은 과장과 왜곡을 섞어서 마치 나라가 뒤집힐 것처럼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그래서 MBC가 22대 총선에서 ‘민주당 승리의 공신’이라는 소리가 나오고, MBC 언론노조원들은 그걸 자랑스러워하는 분위기입니다. 그게 자랑거리가 아니라 ‘말기적 증세’인 걸 왜 모르는지 답답합니다.”
기자들은 사안을 항상 비판적 시각으로 보기에 자신이 몸담은 조직이라도 무조건 복종하지 않는 속성이 있죠. 그러니 어떤 언론사든 ‘내부 비판’이 있기 마련인데요, 지금의 MBC는 그런 내부 비판이 사석에서조차 없는지 궁금합니다.
“MBC에서는 언론노조와 비언론노조 기자들 사이 사적 교류가 없어서 자세한 상황은 모릅니다. 교류는 고사하고 사무실에서 대화도 잘 안 합니다. 지난해 안형준 사장 취임 이후 보여주기식으로 우리 제3노조 한 명을 취재센터 국제팀으로 발령했는데, 하루 종일 아무하고도 말을 못 해서 거의 정신병에 걸릴 뻔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만약 언론노조원들 사이에 사석에서 내부비판이 있었다면 밖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지금껏 아무 소문도, 흔적도 없는 걸 보면 언론노조에 순치됐든, 공포에 질려 있든 언론사로서는 죽은 조직이 됐습니다.”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 부결됐던 ‘방송4법’ 개정안을 22대 국회 개원 이후 7월 30일, 또다시 통과시켰습니다. 개정안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국민주권의 영구 소멸입니다. 지금 법안대로라면 앞으로 MBC와 같은 공영방송 사장들은 친(親)민주당, 친언론노조 성향 인사만 뽑힐 겁니다. 구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요. 개정안에는 MBC 감독기관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21명으로 늘리고 △방송기자연합회·PD연합회·방송기술인연합회 총 6명 △언론 관련 학회 6명 △시청자위원회 4명 △국회 5명씩을 각각 추천하도록 돼 있습니다. 방송기자연합회·PD연합회·방송기술인연합회는 사실상 언론노조와 한몸이라고 봐도 무방하고, MBC 시청자위원들도 언론노조 측이 동의해야 선임할 수 있죠. 언론 관련 학회는 차치하고라도, 친언론노조 몫이 자동적으로 과반(국회에서 민주당이 최소 1명 추천하면 11명이 된다)이 되도록 만들어놨어요. 이 뒤로는 선거에서 누가 이기든, 국민이 어떤 선택을 하든 영원히 공영방송들이 친민주당, 친언론노조 방송이 될 겁니다. ‘공영방송 주인은 국민’이라는 말은 허울만 남게 되고요.
언론노조는 ‘방송4법’ 개정을 주장하면서 ‘언론 독립’ ‘방송 자율성’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론노조가 그 독립성을 가지고 뭘 하겠습니까. 지금까지 행동을 보면 공영방송을 영구 장악하면 더 끔직한 편파보도, 이제는 거리낄 것도 없는 왜곡 보도를 하지 않겠습니까. ‘언론 독립’ ‘방송 자율성’은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적 가치입니다. 본연의 가치와 목적은 권력의 일탈에 대한 감시·비판, 정확한 정보 제공으로 민주주의 실현 기여입니다. 그 목적이 왜 필요한지부터 국민에게 납득시켜야 합니다.”
MBC 출신인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의 임명으로 MBC가 변화될 것이라고 기대합니까(이진숙 위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7월 31일 공식 임명됐으나 8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취임 이틀 만에 직무 정지 당했다. 헌재 결정이 날 때까지 김태규 부위원장이 직무대행을 맡는다).
“이진숙 위원장은 MBC, 나아가 방송계 전체의 문제를 잘 아는 사람 가운데 한 명입니다. 언론노조의 실체에 대해서도 혹독한 체험을 통해 잘 이해하는 분이죠. 방송 정상화와 국민주권 회복에 올바른 방향을 세울 것으로 믿습니다. 다만 각 방송사의 문제에 방송통신위원회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습니다. 방송사 개혁은 내부에서 고민하고 풀어가야 합니다.”
‘정권은 유한해도 언론노조는 무한하다’는 헛된 생각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2년 7개월여 남았습니다. 임기 내 MBC와 언론노조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고 보나요.
“언론노조와 민주당이 아무리 방해해도 임기가 끝난 방문진 이사진과 MBC 경영진은 바뀔 겁니다. 그러면 언론노조는 갑자기 피해자 행세를 하면서 새로운 경영진을 사사건건 방해하고 왜곡해 선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언론노조는 이미 몇 차례 회사를 지배하면서 많은 것을 누렸기 때문에 다시 전문가 집단으로 돌아가기 힘듭니다. 따라서 경영권 탈환에 전력을 기울일 겁니다. 궁극적으로 2027년 대통령선거 때 자신들이 미는 정당이 승리하면 모든 것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래서 태업을 하거나, 일부러 물의를 일으켜 주목을 받고, 그것을 마치 훈장처럼 여기는 일들이 벌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새 경영진이 회사를 꾸려가는 데 고생 많이 할 거예요. 하지만 MBC 구성원들이 생각해야 하는 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앞으로 MBC를 둘러싼 환경이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 ‘편파보도를 해도 한쪽 진영의 국민이 지지해 주면 아무 일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항상 유효한 건 아니죠. 변화에 적응하려면 먼저 기본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MBC 정상화를 위해 어떤 것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보나요.
“당연히 시작은 경영진 교체부터죠. 끔찍한 불공정 보도를 중단해야 합니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보도를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데, MBC 직원 대다수를 차지하는 언론노조원들이 얼마나 동참할지 미지수입니다. 언론노조가 새 경영진에 협조하는 직원들을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그래서 정말 많은 설득과 노력이 필요할 겁니다. 많은 MBC 직원이 언론노조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어요. 2018년 ‘참혹한 상황’을 봤고, 정권은 유한하지만 언론노조는 무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새 경영진이 용기를 북돋우고 언론인로서 책임의식을 불어넣어 줘야 합니다.”
그가 말한 ‘참혹한 상황’은 당시 최승호 사장 체제의 MBC가 언론노조와 노사협약을 맺으며 인사고과가 아닌 ‘근속연수’에 따라 직급을 나눠 236명을 승진시키고 106명을 강등한 일이다. 강등 인사 대부분이 제3노조원과 비노조원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7월 25일 국회 이진숙 방통위원장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그는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감정이 북받치자 그는 MBC 언론노조 출신 인사들을 쳐다보며 이렇게 되물었다. “그때 저한테 왜 그랬습니까. 왜 그랬는지 묻고 싶어요.”
반기를 들기 쉽지 않았을 텐데, 제3노조를 세운 지도 벌써 11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제3노조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으로 시작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가해자들을 비판하기는커녕, 피해자인 저희에게 ‘그렇게 힘들어하면서 왜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느냐’고 조롱했습니다. 농민들에게 땅이 목숨이듯이, 직장인에게는 일해서 가족을 부양할 직장이 목숨입니다. 저희 노조원들이 각막이 떨어지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암에 걸려 장기를 떼어내도 회사에서 버티는 이유예요. 저희가 아니면 MBC 내 수많은 부조리를 고발할 사람이 없습니다. 성경에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는 말이 있는데, 딱 그런 기분이 들더군요. 그래서 안에서는 부당노동행위 중단, 밖으로는 공정보도 회복을 이루려고 싸우고, 목소리 높여 왔어요. 저를 믿고 고생해 온 제3노조 동지들에게 갚아야 할 빚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 빚을 갚을 생각입니다.”
정혜연 차장
grape06@donga.com
2007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여성동아, 주간동아, 채널A 국제부 등을 거쳐 2022년부터 신동아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금융, 부동산, 재태크, 유통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의미있는 기사를 생산하는 기자가 되기를 꿈꿉니다.
“‘폭풍군단’ 노림수는 다탄두 ICBM 텔레메트리 기술”
제8회 ‘K사회적가치·ESG, 경제를 살리다’ 포럼 성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