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무성 ‘수평적 黨 靑’ 넘어 ‘결재권자’로?
- “朴, ‘겉과 속 다른 여당’ 견뎌내지 못할 것”
줄리어스 시저처럼, 박근혜 대통령은 아마 이렇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2월 7일 오전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우주로 쏘아 올린 지 불과 몇 시간 뒤 국방부는 ‘주한미군 사드 배치 공식 협의’를 발표했다. 2월 10일 통일부는 ‘개성공단 전면 가동 중단’을 발표했다.
북한 김정은의 핵-미사일 공세에 박 대통령은 이렇게 숨 쉴 틈 없이 초강경으로 대응했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으로 이어진 대북정책을 갈아엎은 것이다. 여론은 일단 대통령의 결단을 지지한다. 박 대통령 측은 야권의 비난을 개의치 않는다. ‘북한 핵이 터져 서울시민 수십만이 죽어도 야당은 박근혜만 공격할 것’이라고 본다. 납작 엎드려 있던 친노가 궐기하는 건 총선을 앞두고 오히려 잘된 일로 여긴다.
박 대통령은 “군사적으로 평택이 맞지만 중국이 가만히 있겠나, 중국에서 먼 대구·왜관이 사드 배치 유력 후보 지역”이라고 언론에 말한 ‘정부 관계자’의 ‘사대(事大)근성’에도 분노한 것 같다. 보도 당일 국방부가 이 기사를 콕 집어 “주변국 입장을 고려하는 것은 군사적이지 못하다”고 쐐기를 박았다. 중국은 “사드는 유방을 겨누는 항우의 칼”(왕이 외교부장)이라며 거칠게 불만을 쏟아내지만, 박 대통령은 ‘아몰랑’ 요지부동이다.
“스텝 꼬이니까 그런 행동”
사드와 개성공단을 통해 입증된 박 대통령의 저돌성은 의회 권력 교체기의 국내 정치에도 투사될 수 있다. ‘선거’와 ‘외교’가 그의 ‘복수전공’이기도 하거니와, 새누리당 공천 및 총선 결과가 그의 손발을 묶을 수도, 그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에겐 선거 중립 의무가 있지만, 그와 청와대가 뒷짐 지고 수수방관할 것 같진 않다. 말하자면, 박 대통령은 총선 결과에 강한 영향을 주면서 동시에 총선 결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는 처지라고 할 수 있다.이와 관련해, 여권 내부에서 회자되는 ‘가설’이 있다. ‘친박계가 공천에서 밀리면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대승해도 박 대통령은 레임덕에 빠진다’는 것이다. 친박계 김태흠 의원은 이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해도 박 대통령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있다는데요.
“‘대통령과 여당은 공동운명체’라는 공식이 깨지면 그렇게 되죠.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입법이나 예산 처리로 뒷받침해줄 의원이 많이 나와야 해요. 그렇게 되지 않으면 우려스러운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거죠.”
▼ 소속은 여당이지만 계파가 다르든지 해서 여당 역할을 하지 않는, 오히려 야당 역할을 하는 의원이 많으면….
“그러면 박 대통령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되겠죠.”
김 의원의 말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신동아’ 인터뷰에서 “여당 안에서 야당 역할하는 의원을 걸러내겠다”고 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청와대 속사정을 잘 아는 여권 인사 A씨는 “박 대통령이 문재인·안철수를 더 신경 쓰겠나, 아니면 유승민·정의화를 더 신경 쓰겠나? 당연히 후자다. 내부에서 ‘국회법’이니 ‘직권상정 반대’니 하면서 일 못하게 막으면 핵노답”이라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정부 일각에서 “정의화식 정치는 ‘수술은 아주 잘됐으나 환자는 사망한 외과수술’과 같다”는 말이 나온다. 정의화 의장이 외과의사 출신인 것에 빗댄 말이다. 이어지는 김태흠 의원과의 대화다.
▼ 현재 의원이든 아니든 박 대통령과 호흡이 맞는 사람이 많이 공천을 받아야 새누리당의 총선 승리가 박 대통령에게 의미가 있다고 보는 건가요.
“그런 거죠. 박 대통령은 이번 북한 미사일 대처에서 나타나듯이 ‘겉과 속이 다른 상대’를 받아들이질 못해요. 물론 비박근혜계 중에도 대통령과 호흡이 맞는 의원들이 있어요. 그러나 (비박계 좌장인) 김무성 대표가 선거를 준비하는 과정에 문제가 많습니다. 김 대표가 국민 뜻만 받드는 상향식 공천을 한다면서 비박계 의원 50여 명이 모인 자리에 참석한 건 언행일치가 안 되는 모순된 행동이죠.”
▼ 오해를 살 줄 알면서 굳이 참석한 이유는 뭘까요.
“스텝이 꼬이니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거죠.”
“묘안 짜도 이미 늦었다”
‘친박계와 비박계가 몇 명이나 공천 받느냐’는 박 대통령에게 총선 결과 못지않게 중요한 일인 듯 보인다. 그렇다면, 이론적으로 두 계파가 ‘어느 누구도 불리해지지 않는 파레토 최적’을 찾아내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여권 인사 A씨는 이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영화 ‘내부자들’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욕망이 적을수록 그만큼 행복할 것이라고 하는 것은 대단한 개소리다.’ 친박계와 비박계 모두 자신의 욕망을 줄일 의사가 전혀 없다. 더구나 친박계는 비박계를 극도로 불신한다. 김무성 대표가 최근 대통령을 겨냥해 ‘권력자’ 발언을 했고, 유승민 의원과 정의화 의장도 박 대통령의 권력을 제한하려 했다. 비박계는 지난 2년여간 박 대통령의 개혁에 별로 동조하지 않았다.
친박계 일부는 비박계가 총선 후 차기 대권을 위해 본색을 드러낼 것으로 본다. 김 대표는 ‘수평적 당·청’ 관계를 넘어 대통령 관련 법안과 예산의 ‘결재권자’가 되고 준(準)내각제 양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비박계도 친박계가 공천학살을 시도한다고 의심한다. ‘당장 친박계가 민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현역 물갈이를 밀어붙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친박계 조원진 의원은 “유승민 의원은 지금도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면서 드러내놓고 박근혜 정부를 매도한다. 완전 독재자라는 거 아니냐. 자신이 모셨던 사람을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 인간의 신의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친박계와 비박계 간엔 신의가 사라져 이젠 힘으로 겨루는 일만 남은 것일까.
‘공천 판세’는 비박계 우위로 비친다. 상향식 공천 기조가 반영됐다. 이 방식이 현역 의원에게 유리하다는데, 비박계 현역 의원이 더 많다. 김 대표의 당 장악력도 건재하다. 갈 길 바쁜 친박계는 ‘진박 마케팅’이라는 ‘자살골’까지 허용했다. 비박계 우위 판세는 김 대표 측근 B 의원의 말에서도 읽힌다.
“친박계가 이래볼까 저래볼까 아무리 묘안을 짜내봐도 이미 때는 늦었어요. 안 돼. 그렇기 때문에 김무성 대표가 자신감을 가지고 이한구 카드를 받은 거죠.”
“김무성이 두려워하는 건…”
반면 친박계는 우선추천·단수추천 같은 전략공천으로 기회를 노린다. 당 공천관리위원회와 최고위원회에서 수적 우위를 확보한 것도 위안거리다. 공천에서 친박계가 치고 올라가고 비박계가 우수수 떨어지는 반전이 일어날까. 이종훈 시사평론가는 “박 대통령이 간절히 원한다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청와대는 어떤 숫자를 그려보고 있을까요.
“새누리당 공천자 중 절반 이상이 친박계인 상황을 원하겠죠. 20대 국회에서 100~120명의 의원이 친박계인 상황? ‘현역 의원 50명만 공천하자’는 이야기도 이 차원에서 나왔고. 밀어붙이겠죠.”
▼ 김무성 대표가 그렇게 되도록 놔두지 않을 것 같은데….
“반발하죠. 김무성-이한구가 궁극적으론 이 때문에 요즘 만날 싸우는 중이고.”
▼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 카드는 김 대표로선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카드인데 왜 받았을까요.
“친박계가 다수인 최고위원회가 총사퇴하면 김 대표도 자동으로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하고…. 김 대표는 이게 두려운 거죠. 그의 목표 중 하나는 대표직 유지예요. 총선 전에 물러난다고 가정해봐요. 본인은 대선주자로 끝이고 비박계는 구심점을 잃고…. 친박계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 김 대표는 판을 깨지 않으면서 우세를 유지해야 하네요. 친박계가 더 큰 걸 요구하면?
“유아인 식으로 ‘에이, 그거 하지 마요’ 하면서 유연하게 막아보려 하겠죠.”
▼ 김 대표가 방어를 잘해서 총선 후 비박계가 새누리당의 과반을 차지하면 어떻게 될까요.
“7월 전당대회에서 황진하나 유승민을 새 대표에 앉히는 화룡점정까지 더해지면 ‘김무성 완승’이죠. 박 대통령 성격상 이렇게 되도록 놔둘까요? 이번에 개성공단 밀어붙이는 거 보세요. 그러나 실패하면 아무리 박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레임덕은 각오해야겠죠.”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 소장은 “박 대통령은 자신과 가치를 공유하는 여당 의원만 필요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 소장은 “친박계와 비박계 중 한 쪽이 확실한 우위를 잡지 못하면 진흙탕 싸움이 될 것이다. 상향식 공천이라는 미명 아래 불법이 난무하고 고소·고발이 폭주할 수 있다. 총선 승리가 가물가물해질지 모른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 대표 측은 ‘신동아’ 인터뷰에서 ‘전략공천 강행하면 공멸’을 언급했다. 황 소장은 “김무성 대표의 ‘권력자’ 발언은 공천을 둘러싼 두 계파 간 휴전이 깨졌음을 의미한다”고도 했다.
박 대통령은 의원 시절인 2010년 6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세종시 수정안 법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는 데 앞장섰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레임덕에 접어들었고 박근혜 의원은 대선주자로서 입지를 탄탄히 구축했다. 이때도 여당은 과반 의석을 갖고 있었지만 이 대통령에게 힘이 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총선 후 김무성 체제하의 여당에서 똑같은 일을 당할 수 있다. 김태흠 의원의 말대로, 박 대통령은 겉과 속이 다른 여당을 견뎌내지 못할 것 같다.
서청원 vs 친박계 내부 균열?
여권 내에선 ‘서청원 최고위원과 친박계 간에 균열이 발생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서 최고위원은 74세의 7선 의원이다. 전례에 비춰보면 ‘고령자·중진 용퇴론’이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 최고위원 측은 2013년 10월 보궐선거로 의원이 된 직후부터 ‘2016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면서 경계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서 최고위원은 요즘 휴대전화를 갖고 다니지 않으며 언론 인터뷰에도 거의 응하지 않는다고 한다. C씨는 “얼마 전 서 최고위원을 만난 자리에서 청와대 고위 인사가 대화 주제로 올랐는데 서 최고위원이 이 인사를 강하게 비판하더라”라고 전했다.
여권 내에선 “최경환 의원이 경제부총리에서 퇴임해 국회로 복귀한 뒤로 김무성 대표와의 주된 협상 창구가 서 최고위원에서 최경환 의원으로 이동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서 최고위원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친박계 내에서 서 최고위원에 대한 신망이 여전히 높다. 서 최고위원은 당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최고위원회에서 김 대표를 견제한다. 이런 서 최고위원이 없으면 친박계는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