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방사청 29억 원 손해배상 청구는 尹대통령 지시와 정반대”

軍 여름 운동복 납품 장애인시설 줄도산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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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24-04-2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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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계 운동복 성능 문제로 갈등

    • 검찰·법원은 장애인시설 손 들어줘

    • 입찰 제한에 손해배상 청구까지

    • 소송 취하 압박용? 방사청 “형평 맞춰야”

    • “민생토론회에서 尹대통령이…”

    육군 하계 운동복. [동아DB]

    육군 하계 운동복. [동아DB]

    방위사업청이 중증장애인시설생산품 생산시설(이하 중증장애인시설)과 군 장병용 하계 활동복(이하 여름 운동복) 납품을 두고 법적 공방을 벌이던 중 1심에서 승소한 중증장애인시설에 손해배상금을 청구한 사실이 드러났다. 중증장애인시설은 총 근무 인원의 50~77%를 중증장애인으로 고용한 업체다.

    방사청은 2022년 9월 성능 기준 미달의 군 장병용 여름 운동복을 납품했다는 이유로 중증장애인시설에 입찰 제한 처분을 내렸으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일부 중증장애인시설 측은 이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1심 법원은 방사청의 입찰 제한이 부당하다며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검찰도 2022년 7월 ‘혐의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방사청이 행정법원 판결에 항소하며 법정다툼이 이어졌다. 2월 22일 방사청은 돌연 불량 운동복으로 인한 손해배상금 관련 공문을 법정다툼 중인 중증장애인시설에 보냈다. 공문의 내용은 29억 원을 배상하라는 것. 방사청은 “계약조건에 따라 하자 판정을 받은 운동복에 대해 업체의 하자조치 미이행으로 손해배상금을 청구했으며, 관련법과 규정에 따라 조치 중”이라 밝혔다.

    중증장애인시설 관계자들은 “행정소송 결과가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고액의 손해배상금을 부과한 것은 공장을 운영하지 말라는 이야기”라며 “방사청의 손해배상금 부과는 중증장애인시설에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장애인업체 제작 공정에는 문제없다”

    방사청과 중증장애인시설의 갈등은 2020년 12월 촉발했다. 일부 군용 하계 운동복에서 물 빠짐 등의 현상이 발생했다. 방사청과 국방기술품질원(기품원)은 재발을 막기 위해 2021년 8월 하계 운동복을 납품하는 업체 13곳(중증장애인시설 11곳) 전체를 대상으로 성능검사를 실시했다. 이 성능검사가 소송전의 단초가 됐다. 당초 성능검사는 원단의 성능을 확인하는 절차였지만, 방사청과 기품원은 원단 대신 완제품을 검사했다. 완제품의 성능검사 기준은 원단과 같았다.



    중증장애인시설을 포함한 피복 납품업체들은 성능검사 결과에 반발했다. 당초 기품원이 내세운 성능검사 기준과 다른 방식으로 검사했기 때문이다. 당시 기품원이 각 업체에 보낸 정부품질보증 계획서에 따르면 “하계 운동복의 기능 검사는 원자재를 대상으로 한다”는 내용이 있다. 계획서엔 완제품에 대한 검수 기준도 있었는데 육안으로 치수를 확인하는 것 등이었다.

    방사청과 기품원은 원단 대신 각 업체가 납품한 하계 운동복을 공인 검사기관에 보냈다. 이 중에는 납품된 지 수개월이 지난 제품도 있었다. 정부품질보증 계획서의 내용과는 다른 검사였으니 통과하는 업체는 한 곳도 없었다. 방사청은 검사 초기에는 “새로운 성능 기준을 통과한 업체도 있다”고 주장했으나, 당시 ‘신동아’ 취재 결과 이 주장은 사실이 아니었다.

    2022년 11월 검사가 끝난 뒤 다시 확인해 보니 13개 업체가 전부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이에 대해 방사청은 “기준에는 문제가 없다”면서도 “군 장병들이 피복류에 대해 가진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다소 높은 기준을 잡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방사청은 이를 근거로 13개 업체에 입찰 참가 자격 제한 처분을 내렸다.

    방사청의 설명과 달리 여름 운동복은 군 장병들의 만족도가 높은 보급품이었다. ‘2019년 국방부 피복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군 피복 54개 품목 중 여름 운동복은 만족도 3.60점(5.0점 만점)으로 전체 5위를 기록했다. 1위는 슬리퍼(4.56점), 드로어즈 팬티(3.83점), 기능성 러닝셔츠(3.76점), 운동화(3.62점)가 각각 2~4위를 기록했다.

    중증장애인시설 및 기타 군 여름 운동복 납품업체들은 방사청의 처분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처음에는 4곳이 패소했다. 장애인업체 관계자는 “각 업체가 소송 준비를 소홀히 하기도 했고, 당시만 해도 검찰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며 “검찰 조사 결과 혐의 없음이 입증되고부터 재판 결과가 뒤집혔다”고 말했다. 실제로 검찰 조사 결과가 나온 뒤 7곳의 업체가 1심에서 연달아 승소했다. 재판부(서울행정법원 제4부)는 지난해 10월 13일 판결문에서 “원단의 품질기준은 완제품 상태에 적용될 수 없고, 그 외 원고(중증장애인업체)의 제작 공정에 별다른 잘못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나머지 2개 업체는 소를 취하했다. 해당 업체는 지난해 방사청이 입찰 제한을 해제했다. 입찰 제한 조치가 사라졌으니 자연히 소도 취하하게 된 것.

    “희망을 잃었라”

    방위사업청이 군 하계 운동복 납품업체에 보낸 손해배상금 납부 독촉 공문. [㈔한국장애인중심기업협회]

    방위사업청이 군 하계 운동복 납품업체에 보낸 손해배상금 납부 독촉 공문. [㈔한국장애인중심기업협회]

    지난해 12월 12일을 기점으로 13개 업체의 1심 재판이 전부 끝났다. 재판 종료 두 달 뒤 방사청은 13개 업체에 손해배상금을 납부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방사청이 내건 손해배상의 근거는 계약서상의 특수조건인 제34조 1항.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규정한 기간 내에 납품된 물건의 규격과 품질이 계약 내용과 상이함이 발견될 때 대체 납품이나 물품 대금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 13개 업체의 제품이 방사청의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으니 대금을 반환하라는 의미다.

    중증장애인시설 측은 “방사청이 내건 기준은 완제품이 아닌 원단에 대한 기준이었다”고 맞서고 있다. 중증장애인시설의 법무대리인인 김지민 법무법인 소울 변호사는 “재판부는 완제품을 대상으로 한 원단 검사는 구매요구서에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며 “만약 13개 납품업체가 모두 불량 원단을 사용했다면 품질검사에서 유사한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그런 경향성이 있다고 볼 근거를 방사청에서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방사청 측은 “소송 결과가 손해배상 청구에 일부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방사청 관계자는 “운동복 납품 부적격 판정을 내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각 업체에 손해배상금 관련 공문을 보냈다”며 “소송이 진행되며 손해배상을 하지 않겠다고 밝혀 와 다시 상기하는 차원에서 최근 공문을 보낸 것”이라고 밝혔다.

    13개 업체에 확인한 결과 이들은 사전에 방사청 손해배상금 공문을 받은 곳은 총 3곳이며 10곳은 이번 공문을 통해 손해배상금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방사청의 손해배상 요구에 일부 업체는 군납을 포기하기도 했다. 강동훈 한국신체장애인복지회 사업단장은 “입찰 금지 조치로 인해 매출이 급감한 상태에서 손해배상금까지 내게 되면 대부분의 중증장애인시설이 도산 위기에 내몰린다”며 “1심에서 승소한 업체 중에는 아예 군납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곳도 있다”고 밝혔다.

    중증장애인시설이 군납을 포기하거나 행정소송을 취하해도 방사청은 손해배상금을 받아낼 계획이다. 방사청 관계자는 “일부 업체만 손해배상금을 내지 않게 한다면 형평성에 문제가 생긴다”고 밝혔다. 각 업체를 압박하기 위해 손해배상금 공문을 보낸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개인이 아닌 국가기관인 만큼 감정을 담아 일 처리를 하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익명을 요구한 중증장애인업체 관계자는 “희망을 잃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2월 8일 민생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이야기를 듣고 희망을 품었다. 토론회에서 정부 관계자가 ‘행정처분 면제를 위해서는 사법기관의 판단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발언하자 윤 대통령은 ‘집행정지도 변호사를 선임하고 소송도 제기해야 하는데 중소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형식적인 법 집행을 하지 말라’고 했다. 마치 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들렸다. 어렵사리 재판을 진행했고, 1심에서 승소했으니 곧 입찰 제한 처분이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대가 무너졌다. 민생토론이 끝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방사청은 손해배상 청구서를 보냈다. 청구 자체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지만 입맛이 썼다. 방사청의 청구서는 대통령의 지시와 정반대의 선언처럼 보였다.”



    박세준 기자

    박세준 기자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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