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20, 30대가 인터넷 시장을 좌우한다고들 합니다만, 경험 많고 영업력 있는 40, 50대가 움직인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겁니다. 두고 보십시오.”
인터넷은 결코 젊은 세대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전순주(45) 사장. 그는 40대 중반에 인터넷 세상에 뛰어든 벤처 사업가다. 지난해 2월 인터넷 홈페이지 제작 대행사 ‘인터넷 비즈니스 뱅크(http://www.ibb.co.kr)’를 설립, 사업 기반을 착실히 다져가고 있다. 홈페이지 제작 ·관리는 물론 웹 호스팅, 광고 대행 업무도 한다.
고객사 직원들은 전사장을 ‘컴도사’라 부르지만 그 역시 몇 년 전만 해도 서류 작성용 워드 프로세서나 겨우 두드리던 ‘컴맹’이었다. 그러던 것이 십 수년간 몸담던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서 그의 인생에도 새로운 전기가 찾아왔다.
롯데그룹 자재관리과에 근무하던 전사장은 IMF 관리체제가 한창이던 지난 98년, 과감히 회사를 뛰쳐나왔다. 입사 초부터 ‘직장 생활 10년을 채운 후에는 내 사업을 시작하겠다’는 포부를 품고 있던 그였다. 그러나 사업가로 변신하기가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고, 무엇보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섣부른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하물며 당시는 구조조정의 한파 속에 대부분의 직장인이 좌불안석이던 상황이 아니었던가.
그런 위기의 순간에 전사장은 동료들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정리해갔다. 어차피 50세가 넘으면 명예퇴직이든 뭐든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데, 그럴 바엔 차라리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새 일에 도전해보겠다는 판단이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격언이 그를 고무시켰다.
“사표 낼 결심을 한 후 어떤 사업을 할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몇몇 친구들이 ‘정보 찾는 데는 인터넷이 최고’란 말을 해주더군요. 하다못해 설렁탕 장사를 하더라도 정보는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에 인터넷에 접근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에는 쓸모 있는 정보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각종 사업 관련 자료만 올려놓아도 이보다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 인터넷 붐이 일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직장 동료나 친구들, 심지어 모 회사 전산실장으로 근무하는 친구마저 인터넷 사업은 꿈도 꾸지 말라고 하더군요. ‘나이가 너무 많은데다 아는 것도 별로 없지 않으냐’는 거였어요. 하긴 학생들 중심의 동호회 활동 정도가 겨우 주목을 받던 시기였으니….”
하지만 전 사장은 바로 그런 이유들 때문에 ‘지금 내가 도전할 최고의 사업 분야는 인터넷’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사표를 낸 후 곧바로 용산전자상가로 달려가 최신 기종 PC를 구입했다. 이어 부천대학 정보검색사 과정에도 등록했다. 98년 7월의 일이었다.
위기를 희망으로 바꿔준 컴퓨터 공부
수강생 대부분이 20대였다. 첫날 강의실에 들어가니 그를 교수로 착각해 인사할 정도였다. 30여 명 중 최고령. 젊은 친구들에 뒤지지 않기 위해 3시간의 수업이 끝나면 녹초가 될 정도로 강의에 집중했고 집에 돌아와서도 하루 12시간이 넘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그야말로 고시 공부하듯 밥 먹는 시간 빼고는 컴퓨터에 매달렸다.
그 결과 오히려 다른 학생들이 그에게 모르는 부분을 물어올 정도로 실력이 쑥쑥 향상되었다. 지난해 초에는 다시 포스데이터에서 운영하는 웹마스터 양성 과정까지 끝마쳤다.
전사장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99년 5월. 당시만 해도 업체들의 인터넷 환경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사업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노트북 등 각종 장비를 일일이 들고 다녀야만 했다. 영업은 쉽지 않았고 한때는 직원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지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전사장은 우직하게 ‘고가, 고품질’ 전략을 밀고 나갔다. 창업 1년 남짓이 지난 지금 그는 골프교육 사이트(www.gol f21.co.kr), 놀이동산 소개 및 쿠폰 제공 사이트(www.parknews.co.kr) 등을 운영하는 탄탄한 인터넷 벤처 기업가로 번듯하게 자리잡았다.
“얼마 전 6살 난 조카가 인터넷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사이트를 찾아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영어는커녕 한글조차 모르는 어린아이도 하는 일인데, 다 큰 어른들이 왜 못 합니까. 더욱이 중·장년층은 젊은 세대보다 실물경제 경험이 많고 다방면에 축적된 지식도 훨씬 풍부합니다. 열린 마음만 갖고 있다면 사이버상에서도 얼마든지 주도권을 획득할 수 있을 겁니다.”
컴퓨터 공부를 시작한 후 전 사장은 흰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던져 버렸다. 방배동 회사 사무실말고 서초동에 자그마한 개인작업실을 얻어놓고 밤새 인터넷과 씨름하며 새 사업을 구상한다.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인터넷의 속성상 안주란 곧 퇴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머지 않아 정보 활용 능력이 빈부를 결정짓는 새로운 시대가 올 것입니다. 주저하다 뒤처지는 일이 없도록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죠. 하나도 늦지 않았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때가 가장 적절한 시점입니다.”
[ “PC 켤 줄도 몰랐지만 이제는 생활의 일부분” ] 이충열, 삼우공간건축 부사장
전 자우편함 열기로 매일 아침을 시작하고 인터넷을 통해 그날의 주요 뉴스를 챙기는 삼우공간건축 이충열(58) 부사장. 환갑을 코앞에 둔 나이지만 사이버 세상에서 만큼은 20대 청년 못지않은 젊음을 자랑한다. 마우스며 키보드를 조작하는 솜씨도 능숙하기 그지없다.
인터넷 초기 화면이 뜨면 습관처럼 클릭하는 것이 ‘즐겨찾기’에 심어놓은 자신의 홈페이지 주소. ‘건축사 이충열의 홈페이지’란 글씨가 떠오르고, 이어 그의 약력과 가족 사진이 화면을 서서히 채워 넣는다.
96년 전무이사로 정년 퇴임하기까지 이 부사장의 직장은 금강개발이었다. 97년부터 지금의 회사에 몸담게 됐지만 그때까지도 컴퓨터 활용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젊은 시절은 컴퓨터가 채 보급되기 전이었고, PC 사용이 보편화될 무렵엔 간부급 사원이 돼 손수 문서 작성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켤 줄조차 몰랐던 이씨가 마음을 고쳐먹은 건 98년 중순. 신문마다 인터넷을 주제 삼은 기사가 자주 실리는데다, 우체국을 거치지 않고도 몇 초 안에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니 그것 참 신통하다 싶었다.
“거래 업체에서 보내오는 자료 중엔 종종 CD롬이라는 것이 끼어 있었어요. 혼자서는 도무지 열어볼 수가 없었지요. 몇몇 교수들에게 자료를 요청하면 굳이 전자우편으로 보내주겠다며 이-메일 주소를 물어 당황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죠. 결국 컴퓨터를 배워보자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학원 다니기는 아무래도 쑥스러워 젊은 직원들을 귀찮게 하기 시작했다. 아주 기본적인 것, 그러니까 컴퓨터를 켜고 끄는 것부터 시작했다. 이어 문서 작성을 위한 워드 프로세싱을 배웠고, 마침내 인터넷 세상에도 발을 들여놓게 됐다.
물론 낯선 컴퓨터 용어들을 익히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인터넷 표기어들도 처음에는 너무 생소해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이 탓인지 묻고 돌아서면 금방 또 잊어버려 같은 질문을 여러 번 하자니 직원들에게 낯이 서질 않았다.
직접 홈페이지도 만들어
하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컴퓨터 속 세상은 즐겁고 신기했다. 특히 인터넷이 그러했는데, 생전 다시 가볼 수 없으리라 여겼던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을 맘 내키는 대로 들락거리는 것은 물론, 소장품 사진을 내려 받아 파일 속에 저장해 두고 원할 때면 언제든 꺼내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뿌듯할 수 없었다. 출근해 신문부터 보던 습관이 인터넷 검색으로 바뀌었다. 지난 연말에는 크리스마스 카드며 연하장도 전자카드로 보냈고, 인터넷을 통해 책도 여러 권 사보았다.
인터넷은 업무에도 큰 도움을 준다. 건교부와 노동부·감사원 등에서 발표한 건축 관련 최신 정보를 신속히 받아볼 수 있어 정보력이 훨씬 커졌다. 대학원에 다니는 아들과 인터넷을 주제로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며 부자간의 거리도 한 뼘은 더 가까워졌다. 생활에 엄청난 변화가 생긴 것이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이것저것 하다보니 홈페이지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침 정부에서 ‘100만인 홈페이지 갖기 운동’이란 걸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온라인 신문에 게재된 인터넷 주소로 들어가 시키는 대로 해봤지요.”
홈페이지 만들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회사 장비를 이용해 가족사진도 스캔 받아 올렸다. 꼭 누구에게 보여주겠다거나 대단한 정보를 담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젊은이들의 전유물이라는 인터넷에 자신의 힘으로 가족의 보금자리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아직은 미흡하지만 앞으로는 이 홈페이지가 명실공히 ‘건축가 이충열’의 사이버 홈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꾸밈을 시도해 볼 생각이다.
“친구들에게 다른 건 몰라도 전자우편 정도는 주고받으며 살자고 권해요. 똑같은 21세기에 살면서 인터넷이 주는 즐거움과 편리함을 향유할 수 없다면 너무 억울하잖아요. 뭐 꼭 이걸로 돈을 벌거나 지위를 높여보겠다는 게 아니라, 노년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 도구로 활용해보자는 거지요. 혼자 보고 느끼기 아까운 것이 정말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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