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호

137억 년간 우주가 빚은 걸작, 137년 만에 무너뜨리는 기후위기

[Interview] 천문학자 이석영의 ‘에덴동산 지키기’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24-09-09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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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문학자는 별 통해 우주와 신의 뜻 알아가는 사람

    • 1000억 개의 태양을 품은 2000억 개의 은하

    • 외계 행성 찾기와 지구라는 기적

    • 인류는 모두 한 우주에서 태어난 초신성의 후예

    • 100만 년 동안 지켜온 평화가 깨지고 있다

    이석영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교수. [지호영 기자]

    이석영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교수. [지호영 기자]

    이석영(58)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교수를 만나러 연세대 과학관 630호실을 찾아가던 날은 서울에 시간당 65㎜의 폭우가 쏟아진 7월이었다. 이후 8월 중순까지 한반도는 3주 동안 폭염에 시달렸다. 8월 7일자 기상청 발표에 따르면, 7월 한 달 동안 열대야(전날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인 경우) 일수는 8.8일로 평년(2.8일)보다 3배가량 많이 발생했다. 이는 1973년 관측 이래 최고치였다. 직전 최고 기록은 1994년 7월 열대야 8.5일이었다. 이대로라면 8월 한 달 관측 기록이 또다시 최고치를 경신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연일 냉방기의 도움 없이는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내며 이석영 교수의 경고가 귓가에 맴돌았다.

    “우주가 137억 년 걸려 만든 공든 탑을 우리 인간이 137년 만에 무너뜨리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석영 교수는 은하의 형성과 진화 과정을 연구하는 세계적인 천문학자다. 천문학자라고 하면 사람들은 ‘별’을 떠올리지만 그는 이론 천문학자여서 실제로는 별 볼 일이 별로 없다. 오죽하면 미국 유학 시절 아내와 함께 햐쿠다케 혜성을 관측하러 나섰으나 북극성 위치를 확인하지 못해 헤매다가 결국 천문학도라는 사실을 숨기고 일반인의 도움을 받았던 에피소드를 실토하기도 했다(에세이집 ‘초신성의 후예’).

    대신 그는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우주, 어쩌면 눈을 감아야 더 잘 보이는 우주에 대해 몇 시간이고 얘기할 수 있다. 우주가 어떻게 시작됐을까. 어떻게 뜨거운 초기 우주에서 물질의 근원이 만들어졌을까. 식어가는 우주 속에서 어떻게 은하와 별들이 태어났을까. 오늘날 은하는 왜 저런 모습이 됐을까. 우리 생명체와 우주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이런 이야기들 말이다.

    빅뱅, 초신성, 인피니트, 아벨 1689

    가난한 목사의 아들은 어느 날 교회 연극에 등장한 동방박사에 마음을 빼앗겼다. “동방방사는 하늘의 별들을 연구해 우주와 신의 뜻을 알아가는 사람”이라는 아버지의 설명을 들었을 때 소년의 인생 목표가 정해졌다. 연세대에서 천문학과 물리학 이중 전공으로 학부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 예일대에서 ‘타원은하의 자외광 진화에 관한 이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미국 항공우주국(NASA) 고더드 우주비행센터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기초 연구의 메카로 불리던 고더드 우주비행센터에서는 코비(COBE) 우주배경복사 관측위성 연구팀(2006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과, 그가 속한 허블 우주망원경 스티스(분광기) 연구팀 등이 활동하고 있었다.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선임연구원을 거쳐 2001년 영국 옥스퍼드대학 물리학과 교수가 됐다. 당시 국내 언론은 ‘한국 국적의 첫 옥스퍼드대 정식 교수’로 그를 소개했다.

    14년 만에 모교(연세대) 강단으로 돌아왔을 때 격세지감을 느꼈다. 그가 대학에 들어가던 1980년대 중반(84학번) 천문학을 한다고 하면 점성술과 혼동하거나 내일의 날씨를 묻는 이도 있었다. 그런데 ‘우주의 탐구’라는 1학년 대상 전공 탐구 과목 첫 시간에 그가 “여러분 빅뱅(big bang)이란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라고 묻자 학생들이 일제히 “네!” 하고 함성을 지르는 것 아닌가. 이 학생들을 데리고 한 학기 동안 당대 가장 주목받는 우주론인 ‘빅뱅 이론’을 강의한다고 생각하니 흥분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학기가 끝날 무렵 TV에 나오는 유명 아이돌 그룹의 이름이 ‘빅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고 의기소침한 것은 아니었다. 어디 빅뱅뿐인가. 블랙홀, 초신성(슈퍼노바), 인피니트(무한대), 심지어 2006년 ‘메이비’라는 가수가 발표한 ‘A letter from Abell 1689’라는 노래 제목에는 거대 은하 집단을 가리키는 은하단까지 등장한다. ‘아벨(에이벨) 1689’가 바로 처녀자리에 있는 거대 은하단이다. 이처럼 생소한 과학용어가 일상생활과 대중문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

    타원은하의 별 생성 과정과 원반형 나선은하의 기원

    허블망원경이 관측한 나선은하 M101. 소용돌이치는 나선팔이 보인다. 옆에서 보면 납작한 원반 형태의 나선은하 NGC891. [이석영 교수]

    허블망원경이 관측한 나선은하 M101. 소용돌이치는 나선팔이 보인다. 옆에서 보면 납작한 원반 형태의 나선은하 NGC891. [이석영 교수]

    이석영 교수는 ‘은하를 구성하는 별들의 진화(종족합성)’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틈틈이 은하 형성 분야에 곁눈질을 했다. 일반인의 눈에는 은하나 별이나, 진화나 형성이나 다 그게 그거다 싶지만 의학에서 내과냐 외과냐, 외과 중에서도 일반외과와 신경외과만큼이나 독립된 분야다.

    그러나 은하진화학회에선 이석영 교수를 기억해도 은하형성학회에 가면 발언 기회조차 얻기 어려운 무명 학자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를 기웃거린 지 10여 년 만에 그는 은하 형성의 기원을 밝히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될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2006년 8월 ‘네이처’ 지에 실린 ‘타원은하의 별 생성 역사에 대한 초거대 블랙홀의 영향’이란 제목의 논문이다.

    은하는 모양에 따라 타원은하, 나선은하, 불규칙 은하 세 종류로 구분한다. 눈송이처럼 둥근 형태의 타원은하와 달리, 위에서 보면 태풍처럼 회전하는 나선팔을 가지고 있는 나선은하는 옆에서 보면 납작한 빈대떡처럼 생겨서 ‘원반형 나선은하’라고 한다.

    그때까지 거대 타원은하는 우주 초기에만 별을 생성하고 생성을 멈췄다는 게 학계 통설이었다. 그러나 이석영 교수팀은 일부 타원은하가 꾸준히 별을 생성하고 있을 뿐 아니라 타원은하 질량의 0.2%에 불과한 블랙홀이 전체 은하의 진화를 결정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설명해 냈다.

    은하 형성 연구가 본궤도에 오르자 우주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나선은하의 기원에 도전했다. 이석영 교수팀은 이 문제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지름 6000만 광년의 우주 공간에 대해 수치 계산 시뮬레이션을 수행하고, 150여 개의 나선은하를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프랑스 파리천체물리연구소, 영국 옥스퍼드대학과 공동으로 수행하고 있는 뉴호라이즌 프로젝트). 쉽게 말해 세계 최초로 우주의 기원을 수치로 계산해 낸 것이다. 이 교수는 “은하의 DNA를 알아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9년 9월 ‘천체물리학 저널’에 논문 ‘z=0.7에서 은하의 원반과 구형체의 기원에 관하여’(제1저자 박민정 연구원)가 게재됐다. 여기서 구형체란 은하 중심부의 공처럼 볼록한 ‘팽대부’를 가리킨다. z=0.7은 우주의 나이 137억 년(또는 138억 년) 중 절반까지만 계산했다는 뜻이다. 절반까지 계산하는 데에도 4만8000여 대의 슈퍼컴퓨터로 1년 6개월(총 3000만 시간)이 걸렸다. 그는 아직도 후속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속속 밝혀지는 천체의 기원과 운명

    허블망원경으로 관측한 별의 최후. [이석영 교수]

    허블망원경으로 관측한 별의 최후. [이석영 교수]

    이석영 교수는 지금까지 수백 편의 논문을 썼지만, 사람들에게 우주의 기원에 대해 알릴 기회가 있으면 마다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을 위한 빅뱅 우주론 강의’(초판 2009년), ‘초신성의 후예’(2014) 같은 교양 과학서를 썼고, 2019년 카오스재단이 기획한 ‘기원, 궁극의 질문들’이라는 강연에서 ‘별과 은하의 기원’ 편을 맡았다. 방송 출연도 여러 차례 해서 대중적으로도 친숙한 과학자다. 그는 2017년 ‘모든 사람을 위한 빅뱅 우주론 강의’ 증보판을 내면서 이렇게 썼다.

    “드디어 2014년 인류는 거대 우주 공간에 대한 슈퍼컴퓨터 실험을 통해 초기 우주에서 시작한 미세한 물질 분포가 어떻게 오늘날의 은하를 만들게 되었는지 재현해 냈다. 지금까지 관측된 수천만 개의 은하의 분포와 성질이 얼추 이해되는 순간이다. 은하 속에서 별이 탄생하고 별과 함께 행성과 다른 위성들이 탄생하므로 이제 인류는 드디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인지하는 대부분의 천체의 기원과 심지어 운명까지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감격을 나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과학사의 결정적 순간을 목도하고 있다는 감격은 이즈음 불안으로 바뀌고 있다. 그의 대중 강연 제목도 ‘별과 은하의 기원’에서 ‘에덴동산 지키기’로 바뀌었다.

    “저는 한 점에서 출발한 우주가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생명체를 낳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되느냐를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우주의 나이가 137억 년(140억 년에서 20억 년 정도 오차를 인정한다)인데 그런 조건이 만들어지기까지 100억 년이 필요했습니다. 큰 건물을 짓는 것에 비유하면 보이지 않는 기초공사에만 100억 년이 걸린 셈이지요. 결과적으로 우리 인류는 137억 년에 걸쳐 만들어진 위대한 존재입니다. 박수 치고 서로 축하할 일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쌓은 공든 탑을 우리 손으로 무너뜨리고 있다면 100년 뒤 우리 문명의 존속을 장담할 수 있을까요.”

    천문학자인 그가 왜 지금 우리에게 이처럼 무시무시한 경고를 하는 걸까.

    “1990년 미국 NASA에서 지름 2.4m의 눈(반사경)을 가진 허블우주망원경을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에 실어 우주 공간에 띄웁니다. 지구 대기의 영향을 받지 않는 우주 공간에서는 지상의 망원경보다 열 배 이상 더 선명하게 하늘을 관측할 수 있기 때문이죠. 비유하자면 축구장 관중석에선 그라운드에 놓인 축구공이 하얀 점처럼 보이는데 우주에 띄운 허블망원경은 축구공 옆에 놓인 수백 개의 탁구공까지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천문학자들은 1초에 8㎞의 속도로 지구를 도는 허블망원경으로 저 멀리 손톱만큼 작은 하늘, 지금까지 별이나 은하가 발견된 기록이 없는 우주 공간을 들여다보기로 합니다. 그렇게 넉 달을 기다렸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타납니다. 수천 년 동안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깜깜한 하늘에 천체가 드글드글한 것을 발견한 거죠. 저게 다 뭐지? 분광 관측을 해봤더니 전부 은하였어요. 그것도 100억 년 전 초기 은하의 모습이었죠.”

    은하는 적게는 1000만 개, 많게는 1조 개의 별이 모여 있는 거대한 별의 무리다. 그중에서 보통 은하수라고 부르는, 태양계가 속한 ‘우리 은하’에는 태양과 같은 별이 600억 개쯤 있다. 지구엔 ‘절대 지존’인 태양이 사실은 600억 개의 별 중 하나에 불과하며, 심지어 우리 은하의 중심부로부터 2만6000광년 정도 떨어져 있는 변두리의 작은 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파악된 것만으로도 이런 은하가 2000억 개쯤 된다. 이런 은하 하나하나가 태양과 같은 별을 600억~1000억 개씩 가지고 있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다중우주설’에 따르면 우리가 볼 수 있는 우주 밖에 얼마나 더 큰 우주가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쯤 되면 누구나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과학적으로 설명할 방법이 없는 지구라는 기적

    은하의 형성과 진화 과정을 연구하는 이석영 교수의 최근 관심사는 ‘지구라는 기적’을 지켜내는 것이다. [지호영 기자]

    은하의 형성과 진화 과정을 연구하는 이석영 교수의 최근 관심사는 ‘지구라는 기적’을 지켜내는 것이다. [지호영 기자]

    “천문학에서 가장 활발한 연구 분야가 외계 행성 찾기입니다. 태양계 바깥에서 찾은 외계 행성이 5000개쯤 됩니다. 그중 지구와 가장 유사한 행성이 케플러-452b이죠. 일단 이 행성이 섬기는 별의 질량이 태양과 비슷합니다. 태양보다 질량이 조금만 더 커도 별의 수명이 짧아져서 수억 년에 걸쳐 생명체가 발현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질량이 조금만 더 작으면 자외광을 만들어낼 수 없어서 식물들이 광합성을 하지 못하죠. 케플러-452b의 표면온도는 영하 10도 정도로 지구의 표면온도가 영상 15도 정도니까 지금까지 발견된 외계행성치고는 꽤 유사한 값입니다. 다만 질량이 우리 지구의 5배여서 너무 크다는 점이 걸립니다. 그럼에도 이처럼 유사한 행성이 발견된 게 처음이어서 고무적이죠. 지구에서 1400광년 거리에 있으니까 꽤 가까운 편입니다. 보잉747 비행기로 가면 20억 년 정도 걸립니다.”

    외계 행성까지 가는 데 20억 년이 걸린다는 말에 피식 웃고 만다. 이석영 교수의 설명은 이어진다.

    “태양계 내의 행성들을 한번 볼까요. 수성엔 대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태양과 너무 가까워서 중력이 큰 태양에 다 빨려간 거죠. 수성의 표면이 온갖 운석과 충돌한 자국들로 뒤덮여 있는 이유도 대기가 없어서입니다. 아름다운 금성은 표면온도가 밤낮없이 450도입니다. 극단적 사우나 상태라고 할까요. 당연히 물이 모두 증발해 버렸죠. 지구와 가장 닮았다고 하는 화성, 과학자들 중에는 지구의 생명체가 화성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화성에는 다행히 대기가 조금 남아 있기는 한데 너무 희박해서 ‘온실효과’가 없습니다. 낮과 밤의 온도 차가 100도나 됩니다. 오늘 낮에 영상 30도였는데 내일 새벽은 영하 70도라면 동식물이 살 수 있을까요? 멋진 외모를 자랑하는 목성은 별과 같이 질량이 크기 때문에 우주 초기의 화학 조성(우주 전체 질량의 70% 이상은 수소, 25%는 헬륨)이 남아 있어요. 수소나 헬륨은 발화성이 심해서 목성을 관측하면 사시사철 매 순간 태풍과 벼락이 치고 있습니다. 더욱이 목성이나 토성은 기체로 이루어진 행성이어서 지구처럼 발 딛고 살 수 있는 땅이 없습니다. 결국 사람이 살 수 있는 행성은 지구밖에 없는 거죠.”

    이 교수는 어떤 이유로(달이 만들어졌을 때의 충돌 영향으로 추측) 지구의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진 것이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지구 안쪽에 맨틀이 만들어져 자기장이 형성된 것이나 모두 기적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된다고 했다.

    “0.5가우스밖에 안 되는 지구의 자기장이 태양으로부터 매 순간 날아오는 인체에 유해한 방사능 물질들을 다 막아주고 있어요. 태양처럼 완벽한 별을 모시고 있고, 태양과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에, 23.5도라는 완벽한 기울기를 갖고 있는 지구라 해도 어느 날 이 자기장이 사라지면 태양 방사능 때문에 지구의 생명체는 다 죽게 됩니다. 이것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그는 종종 자신의 나이를 137억 살이라고 말한다. 언뜻 터무니없게 들리지만 이유가 있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6대 원소인 수소, 탄소, 질소, 산소, 황, 인은 모두 우주에서 왔다. 먼저 살다 간 별들이 죽으면서 우주에 뿌려준 것이라고 하면 더 이해가 빠를까.



    “인류는 모두 137억 살입니다”

    2015년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한 장면. 이석영 교수는 핵전쟁으로 멸망한 지구를 보여준 가장 공포스러운 영화였다고 기억한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

    2015년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한 장면. 이석영 교수는 핵전쟁으로 멸망한 지구를 보여준 가장 공포스러운 영화였다고 기억한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

    “주기율표의 1번 원소 수소와 2번 헬륨은 대부분 빅뱅 초기 3분 동안 만들어져 온 우주에 고르게 뿌려졌습니다. 탄소와 질소는 태양과 같이 작은 별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작은 별의 수명은 100억 년 정도 되는데 뜨거운 중심부에서 태울 수 있는 수소와 헬륨이 고갈되면 100억 년 동안 만든 물질의 절반 정도를 우주에 환원하고 백색왜성이라는 별이 돼 죽습니다. 태양보다 질량이 열 배 이상 더 큰 별들은 수명이 1000만 년 정도로 짧은 편인데 마지막 순간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며 죽습니다. 이때 별이 평생 모은 산소, 인, 황 같은 원소들을 90% 우주에 뿌립니다. 폭발 시 밝기가 엄청나서 이를 본 조상님들은 ‘별이 새로 생겼네’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별이 죽어가는 모습을 본 것이죠. 어쨌든 이처럼 별들이 환원한 물질이 생명의 씨앗이 됐고, 인간도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우리 몸속에는 대략 10조~28조 개의 원자가 있는데 원자 하나하나 어디에서 왔는지 기원을 알 수 있어요. 단적으로 말하면 부모님이 준 것은 하나도 없고, 지구상의 80억 인구 모두가 한 우주 안에서 태어난 형제, 초신성의 후예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교수는 나를 낳아준 부모와 조상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만큼이나 생명의 근원에 대해서도 궁금해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지구는 우주가 137억 년 걸려 조성한 에덴동산입니다. 그런데 지금 지구가 위태롭잖아요. 집중폭우, 폭염, 가뭄 등 전 세계가 기상이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100년 전 세르비아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밀란코비치가 지구 공전궤도 이심률과 자전축 경사의 변화, 세차운동 이 세 가지가 지구의 기후변화 패턴을 결정한다는 수학적 가설을 세우고 계산해 봤더니 지난 100만 년 동안 지구에 빙하기가 오고 가고 다시 오고 하는 것이 다 설명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밀란코비치의 계산과 실제 지질학자들이 땅을 파서 알아낸 빙하기 사이클도 거의 맞아떨어졌습니다. 그런데 1850년 이후 지구의 온도가 엄청나게 빠르게 상승합니다. 100만 년 동안 잘 맞았던 밀란코비치의 계산이 틀리기 시작한 겁니다. 지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지구의 온도가 1.5도 오르는 것을 ‘point of no return’, 즉 돌아갈 수 없는 임계점이라고 합니다. 남극, 사하라, 그린란드, 남아프리카, 북인도 등은 이미 티핑포인트를 지나고 있습니다. 차라리 계산이 틀리기를 바랄 뿐이죠. 10년 전에 이런 이야기를 할 때에는 티핑포인트가 100년 후쯤이라고 예상했는데 지금은 10~20년 이내에 온다고 말합니다. 우주가 빚은 지구라는 걸작이 어영부영하다 사라질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한 것이죠. 만약 내년까지 지구의 온도를 0.1도 낮추지 않으면 지구가 멸망한다고 가정합시다. 우리 모두 죽는다는데 무슨 수라도 쓰지 않겠습니까.”

    오늘도 기상청은 당분간 무더위와 열대야가 계속된다고 예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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