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호

‘75년 지기’ 고려아연과 영풍은 왜 결별했을까

‘1·23 경영권 大戰’ 폭풍전야 고려아연

  • reporterImage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입력2024-12-27 09:00:03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1949년 최기호-장병희 공동 창업주 ‘영풍기업사’ 설립

    • 고려아연 경영은 최 씨 일가, 지분은 장 씨 일가

    • 2022년 고려아연 제3자 유상증자에 영풍 소송

    • 2024년 9월, MBK 참전으로 ‘머니게임’ 시작

    • 2025년 1월 23일 임시주총에서 경영권 대전

    장병희 영풍그룹 공동 창업주(왼쪽에서 여섯 번째)와 장형진 영풍 고문(왼쪽에서 네 번째),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왼쪽에서 일곱 번째) 등 장 씨와 최 씨 일가가 영풍그룹 사옥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영풍 홈페이지]

    장병희 영풍그룹 공동 창업주(왼쪽에서 여섯 번째)와 장형진 영풍 고문(왼쪽에서 네 번째),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왼쪽에서 일곱 번째) 등 장 씨와 최 씨 일가가 영풍그룹 사옥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영풍 홈페이지]

    현재까지 고려아연은 기업집단상 영풍그룹의 핵심 계열사다. 고려아연의 모기업인 영풍그룹은 1949년 11월, 황해도 출신 실향민 최기호와 장병희 공동 창업주가 서울 남대문 인근에 ‘영풍기업사’를 설립한 것에서 시작됐다. 각각 월남해 남대문 인근에서 장사를 하던 두 사람은 동향 출신인 것을 알고 가까워져 의기투합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아연과 영풍, 한국 산업 발전의 역사

    6·25전쟁 이후 1950년대 우리나라는 국가경제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비철금속 수요가 급격히 증가했다. 그 덕에 합금철과 연(鉛) 제품을 생산하던 영풍기업사는 빠르게 회사를 키워나갈 수 있었다. 최기호·장병희 공동 창업주는 영풍기업사에 머무르지 않고 해운, 상사 등 판매 관련 업종으로도 눈을 돌려 사업을 키워나갔다. 1951년 ‘애국해운’을 설립하고, 이듬해 2월 영풍기업사를 흡수합병해 ‘영풍해운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했다. 또 1960년에는 ‘연화광산’을 인수했고, 1962년에는 ‘양양상사’를 흡수합병해 ‘영풍상사’로 상호를 변경했다.

    1960년대까지 연과 아연 등 기초 금속 사업에 집중하던 영풍상사는 1970년대 당시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에 따라 혜택을 받으며 급성장했다. 1968년 아연괴 수입에 의존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경북 봉화군 석포면에 석포제련소를 설립하면서 비철금속 제련업에 진출했다. 이후 1974년 8월엔 최기호 창업주 등 최 씨 가문을 중심으로 경남 온산(현재의 울산 울주군 온산읍)에 ‘고려아연주식회사’를 설립, 연산 5만t 규모의 온산 아연제련소를 완공해 국내 아연 시장 공급을 주도해 나갔다. 2년 뒤에는 증권거래소에 ‘영풍상사’를 상장했고, 1978년 6월 영풍상사(주) 상호를 ‘㈜영풍’으로 변경하면서 영풍과 고려아연의 독립 경영이 공고해졌다.

    이후 고려아연은 세계시장에서 우수성을 인정받으며 국제적 경쟁력을 확보했다. 1988년 고려아연이 런던 금속거래소(LME·London Metal Exchange)에 아연 브랜드를 등록한 것. 이는 당시 한국 기업으로서는 처음이었다. 독립경영이 확고해진 후 영풍은 영풍문화재단(1980)과 영풍문고(1992)를 설립했고, 1995년 영풍전자 인수, 2005년 코리아서키트 인수 등 기존 제련업이 아닌 부문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고려아연은 제련업에 집중하며 세계1위 비철금속 기업의 토대를 닦았다.

    영풍의 ‘캐시카우’ 된 고려아연

    영풍과 고려아연의 분쟁의 단초가 된 것은 고려아연이 핵심 계열사로 성장하면서다. 영풍은 공동 창업주 일가가 지분을 나눠 75년간 동업해 왔다. 석포제련소를 운영하는 영풍은 장 씨 일가(회장 장형진), 온산제련소를 운영하는 고려아연은 최 씨 일가(회장 최윤범)가 경영을 맡았다. 대신 주식은 상대 일가도 동등하게 보유해 왔다.

    고려아연의 경영을 맡은 최 씨 일가는 2000년대 글로벌 도약에 성공하며 고려아연을 글로벌 1위 비철금속 제련 기업이자 영풍 기업집단의 ‘캐시카우’로 만들었다. 고려아연은 △1996년 호주 퀸즐랜드에 아연제련소 썬메탈(SMC) 설립 △2001년 런던 금 시장연합회(LBMA·London Bullion Market Association)에 금과 은 브랜드 등록 △2006년 10억 달러 수출탑 수상 △2013년 30억 달러 수출탑 수상 △2016년 호주에 물류 자회사 타운즈빌 로지스틱스 설립 △2021년 호주에 풍력발전소 프로젝트를 위해 아크에너지 설립 △2022년 호주 신재생에너지 기업 에퓨론 인수 등을 추진하며 사세를 확장했다. 현재 고려아연은 전자, 반도체, 자동차, 2차전지 등 첨단산업에 기초 소재를 공급하는 공급망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2~3년 사이 고려아연은 언론에 거론되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이는 2022년 최윤범(50) 회장 취임 이후 시기와 맞물린다. 최 회장은 최기호 영풍 공동 창업주의 장남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의 차남이다.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 법학 박사학위를 받은 최 회장은 2007년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경영지원본부장 이사로 입사해 아버지 최창걸 명예회장으로부터 경영 수업을, 현 이제중 부회장으로부터는 기술과 현장 경영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최 회장은 고려아연 페루 광산개발 현지법인 사장, 고려아연 자회사 호주 썬메탈 사장 등을 거치며 해외 사업을 직접 주도한 경험을 바탕으로 회장에 오른 뒤 신사업을 적극 추진했다.

    2022년 최 회장은 2차전지 소재, 자원순환 사업, 신재생에너지 및 그린수소 등 3대 신사업을 주축으로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본격화했다. 그 일환으로 2022년 호주 재생에너지 업체 에퓨론, 미국 전자폐기물 재활용업체 이그니오, 순천 제강분진 재활용업체 GSDK(현 스틸싸이클씨)를 사들여 자원순환 사업을 강화했다.

    환경오염 리스크로 빚어진 갈등

    고려아연이 비철금속 제련에 집중하는 대신 전혀 다른 업종인 코리아써키트 등 전자산업으로 눈을 돌린 영풍은 자신들의 사업다각화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자, 고려아연의 이런 신사업 움직임에 우려를 표했다. 고려아연이 이들 업체를 인수하면서 차입금을 들여왔는데, 2023년 상반기 기준 고려아연의 차입금 규모는 1조500억 원을 넘었다. 영풍은 고려아연의 이러한 경영 방식이 과거부터 이어온 ‘무차입 경영’ 기조와 맞지 않다는 이유로 반발했다. 일각에서는 영풍의 반발이 고려아연의 미래를 위한 신사업 투자로 자칫 지속적으로 확대돼 온 영풍에 대한 배당금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공교롭게도 고려아연이 신사업을 확대하려던 시기에 영풍의 환경오염 리스크가 문제가 됐다. 2021년 11월 환경부는 영풍이 수년간 낙동강 최상류(경북 봉화군 석포제련소 인근)에서 중금속 발암물질인 카드뮴 오염수를 불법 배출했다고 발표하며 과징금 281억 원을 부과했다. 이후에도 영풍은 석포제련소에 저장돼 있는 폐기물을 직접 처리하지 않고 고려아연에 떠넘기려 시도했다. 고려아연 측은 “영풍이 이를 돈을 주고 사가도록 한 데다가 물류비도 고려아연이 맡도록 부당한 요구를 했다”고 밝혔다. 또한 제련 잔재물인 자로사이트와 최근엔 황산 처리 등을 놓고도 고려아연 측이 이를 거부하면서 갈등을 빚었다. 반면 영풍 측은 “고려아연 측과 폐기물 처리에 관해 논의한 적은 있지만 온산제련소에는 보내지 않기로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영풍은 2024년 11월 대법원에서 영풍의 폐수 유출 관련 ‘물환경보전법’ 위반에 따른 행정처분이 확정돼 석포제련소 조업을 60일간 정지해야 하고, 대구지방환경청 수시 점검에선 황산가스 감지기를 끄고 조업을 한 사실이 적발돼 추가로 10일 조업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소송 전 비화’ 경영권 갈등, 루비콘강 건너

    결과적으로 환경오염 문제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특수 사업을 영위하는 영풍과 고려아연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에서 생각의 차이를 드러내 갈라서게 됐다고 볼 수 있다. 고려아연은 제련 시 필수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잔재를 처리하기 위해 세간의 무리한 시도라는 우려에도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고려아연의 신사업 확대에 국내 굴지의 기업들도 손을 내밀었다. 수소와 신재생에너지 분야에는 한화가, 2차전지와 리사이클링 분야에는 LG와 현대차가 줄지어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바 있다.

    양사가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넌 것은 경영권 분쟁이 소송전으로 비화하면서다. 2024년 3월 영풍은 고려아연과 HMG글로벌을 상대로 제3자 유상증자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HMG글로벌은 현대차그룹이 공동 출자한 전기차 배터리 및 자원순환 관련 합작법인으로, 고려아연은 2023년 5300억 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투자했다. 영풍은 “HMG글로벌을 대상으로 한 고려아연의 유상증자는 현 경영진의 사적 이익인 경영권 강화를 위한 것”이라며 위법 행위로 간주했다. 또 HMG글로벌이 현대차, 현대모비스, 기아 등이 설립한 법인으로 고려아연의 정관에서 규정된 ‘외국 합작법인’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2024년 9월, 영풍이 지분 확보를 위한 ‘머니게임’에 나서며 양사 간 지분 경쟁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됐다. 영풍은 경영권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최 회장의 독립 경영을 막겠다는 심산으로 9월 12일 국내 최대 사모펀드(PEF) MBK파트너스와 주주 간 계약을 체결하고 의결권을 공동으로 행사하기로 했다.

    MBK파트너스가 영풍과 함께 고려아연 최대주주에 올랐고, 이들은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에 나섰다. 2025년 1월 23일 임시주주총회에서 이들의 경영권 확보가 이뤄질 경우 실제 경영권은 영풍과 MBK 간 경영협력계약에 따라 MBK파트너스가 갖게 된다. ‘75년 지기’들의 결별 뒤 제3자가 경영 최전선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정혜연 차장

    정혜연 차장

    2007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여성동아, 주간동아, 채널A 국제부 등을 거쳐 2022년부터 신동아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금융, 부동산, 재태크, 유통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의미있는 기사를 생산하는 기자가 되기를 꿈꿉니다.

    “2025년 1%대 성장률 대한민국, 개혁해야 회생한다”

    나야, 감칠맛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