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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비리그 꿈꾸는 외국어고 공부벌레들

아이비리그 꿈꾸는 외국어고 공부벌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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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침을 거듭하던 외국어고 ‘주가’가 다시 치솟고 있다. 서울의 2001학년도 외고 입시 경쟁률은 5대1로 95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내신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다시 외고로 몰려드는 까닭은?
교육부는 200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예년에 비해 다소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이미 수능에 ‘적응’해버린 학생들은 출제자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손쉽게 치러냈다. 수능이 끝난 직후부터 일선 고등학교에서는 ‘만점자가 나왔다고 자랑하는 학교가 있으면 바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언어영역이 까다로웠던 2000학년도 대입 수능에서는 만점자가 단 한 명이었다. 서울 대원외고 박혜진양(19·서울대 법학부 1년)이 그 주인공. 오승운양(20·서울대 기초과학부 2년)에 이어 2년 연속 여학생이 만점을 받아 화제가 됐는데, 특히 장양의 출신 고등학교가 외국어고여서 더 관심을 모았다. 외국어고의 경우 한 반 학생의 10% 가까이가 서울대에 진학하는 등 60∼70%가 이른바 ‘명문대’에 합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위 클래스의 변별력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2001학년도 입시에서도 외국어고의 강세는 두드러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외국어고 학생들은 입시에서만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는 게 아니다. 케이블 TV 영어채널 아리랑 TV에는 ‘퀴즈챔피언’이라는 인기 프로그램이 있다. 고등학생들이 학교별로 4명씩 팀을 이뤄 출전하는데 문답은 모두 영어로 진행된다. 아무래도 외국에서 살다왔거나 해외여행 경험이 많은 학생들이 높은 점수를 기록하는데, 가끔은 해외에 한번도 나간 적이 없는 ‘토종’ 학생들이 뛰어난 활약을 보이기도 한다. 이들의 유창한 영어실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 그중 상당수는 외고 학생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5주 연속 우승을 하면 ‘챔피언’ 타이틀을 얻게 되고, 나중에 챔피언 팀들끼리 실력을 겨뤄 ‘왕중왕’을 뽑는다. 그런데 지금까지 120여 회를 거치면서 배출된 일곱 팀의 챔피언 중 세 팀이 외고 학생들이었고, 왕중왕의 영광 역시 외고 학생들에게 돌아갔다.

명문대 입시, 경시대회 휩쓸어



외고생들은 각종 외국어 경시대회나 독서 경시대회 등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지난 10월 동아일보와 한국영어교육학회가 주최한 전국 고등학생 영어 경시대회에서는 서울의 3개 외국어 고등학교가 나란히 우수학교상을 받았다. 최근 몇몇 외국어고등학교는 재학생들을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하버드, 예일 등 미국 유수의 대학에 입학시켜 주변을 놀라게 했다. 외고가 이렇게 ‘뜨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의 고등학교는 일반계 고등학교, 실업계 고등학교, 특수목적 고등학교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일반계 고등학교는 인문계 고교, 실업계 고등학교는 공업고 농업고 상업고 등 직업교육을 실시하는 고교다. 또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90조에 의해 설치된 특수목적 고등학교로는 외국어고 과학고 예술고 체육고 등이 있다.

‘특별한 분야에 능력이 있는 학생들을 모집해 전문적인 교육을 실시한다’는 게 특목고의 설치목적. 이중 과학영재 육성을 목표로 설립된 과학고는 정책적으로 육성한 특목고이다 보니 처음부터 유능한 학생들을 끌어모아 출발할 수 있었고 오랜 기간 영재교육의 대명사로 알려지면서 재학생들에게 과학기술대 조기입학 등의 특혜가 주어졌다.

그러나 같은 특목고인 외고의 출발은 과학고와 사뭇 달랐다. 외고가 처음 문을 연 것은 1984년. 하지만 당시에는 ‘고등학교’라는 명칭을 달지 않았다. 교육법의 ‘각종학교’에 해당되는 ‘외국어학교’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대원외고 김일형 교감은 “외국어학교라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외국인 자녀들만 다니는 학교, 혹은 직업학교 정도로 생각했다. ‘고졸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래서 정원이 미달돼 일반계 고교 입시에서 떨어진 학생들이 모여들기도 했다”고 회상한다.

그런 인식을 깨뜨리고 우수한 학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는 것. 지금이야 ‘국제화’ ‘세계화’ 같은 말이 보편화됐고 인터넷으로 세계가 하나의 정보망으로 통합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외고가 첫발을 내딛던 80년대 중반만 해도 일반인들에겐 ‘국제무대’라는 개념이 낯설기만 했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인을 키우겠다”고 하면 “허황한 소리 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2001학년도 경쟁률 사상 최고

서울대 등 명문대 진학률이 얼마나 높은가를 ‘좋은 고등학교’의 척도로 삼는 우리 풍토에서 외고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역시 명문대 진학률이 높아지면서부터였다. ‘외국어학교’라는 알쏭달쏭한 이름을 달고도 해마다 많은 수의 서울대 합격자를 배출하니 실력 있는 학생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한 외고에서 무려 202명이 서울대에 합격하는 진기록을 세운 해도 있다.

91년 외국어학교는 외국어 영재 발굴을 목적으로 한 특수목적고로 지정되면서 지금의 ‘외국어고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를 계기로 전국에서 외국어고 설립이 잇따랐다. 84년 출발 당시 2개에 불과했던 외고는 2000년 12월 현재 18개에 이른다. 서울에만도 대원 한영 명덕 대일 서울 이화(여학교) 등 6개의 외고가 설립됐다. 서울에 있는 외고는 모두 사립이며 수업료는 일반계 고등학교보다 2배 정도 비싼 50여만 원(분기당)이다.

특목고와 실업고는 일반계 학교보다 한 달 정도 먼저 학생을 모집하는 전기(前期). 외고는 매년 11월 특별전형과 일반전형의 두 가지 방식으로 학생들을 모집한다. 2001학년도 외고 입시 경쟁률은 4.99대 1로 95년 이후 최고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특별전형에서 탈락한 학생들이 대부분 일반전형에 다시 응시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경쟁률은 7대 1에 육박할 전망이다. 매년 10월 경에 열리는 외국어고 학교설명회에는 전국에서 수천 명의 학생과 학부모가 모여드는 바람에 행사장인 강당 공간이 모자라 교실에서 방송으로 설명을 들어야 할 정도다.

학교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지만 특별전형에서는 대개 전국 규모의 외국어 경시대회 입상자, 학교장 추천학생, 중학교 성적 우수학생 등을 위주로 선발한다. 대원외고는 토플 500점 이상을 자격기준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대일외고는 중학교에서 학생회장을 맡았던 학생, 한영외고는 외교관 및 해외주재원 자녀, 국가유공자 자녀를 정원 외로 선발한다. 일반전형은 무시험 전형이 원칙으로 대개 영어 듣기시험 점수와 중학교 내신을 합산해 선발하는데, ‘교과면접’이라는 이름으로 언어영역과 수리영역, 구술시험 등을 치르는 곳도 있다.

외고는 전공별로 반이 나뉜다. 대개 영어과 독일어과 프랑스어과 중국어과 일본어과 등을 두고 있고 있으며, 명덕외고와 대일외고에는 러시아어과, 대원외고와 한영외고에는 스페인어과도 설치돼 있다.

대원외고는 94년에 영어과를 폐지했다. 이제 영어는 국제사회의 필수적인 공용어가 됐기 때문에 굳이 반을 따로 편성할 필요가 없다는 게 대원외고측의 설명이다. 대신 이 학교는 중국이 21세기의 새로운 강대국으로 부상할 것에 대비, 중국어과를 2개 반으로 늘렸다. 또한 이화외고에는 일본어과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입시제도 변화로 부침 거듭

외고 학생들은 자신이 택한 과의 외국어를 ‘전공어’로 공부한다. ‘제1외국어’로는 보통 영어를 선택한다. 또한 ‘제2외국어’ 하나를 골라 1년 동안 공부해야 한다. 가령 중국어과 학생의 경우 중국어를 전공어로, 영어를 제1외국어로, 그리고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중 하나를 제2외국어로 공부하는 것이다. 학습목표대로라면 외고 학생들은 졸업 무렵에 전공어와 영어는 ‘능숙’하게, 제2외국어는 ‘생활회화 수준’으로 최소한 3개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외고 학생들의 영어실력은 웬만한 대학생들보다 낫다고 한다. 최근 국내 한 대학과 학술교류차 한국을 방문했던 미국의 한 대학 카운슬러는 모 외고를 둘러보고 나서 “외고 학생들의 영어 질문수준이나 회화능력이 어제 만났던 대학생들을 능가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일부 외고는 토플점수가 일정 기준에 미달하면 학년 진급시 불이익을 주기도 하는데, 대원외고의 경우 1학년은 450점, 2학년은 500점, 3학년은 550점의 하한선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는 학생은 드물다고 한다. 토플, 토익 만점자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대원외고의 경우 2000년에만 6명의 학생이 토플에서 만점을 받았다.

그러나 외고가 순풍만 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교육현장이 교육부의 대입정책 변화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린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외고는 특히 이런 ‘바람’을 많이 탄다. 문제는 고교 내신성적. 우수한 학생들을 모아놓았기 때문에 일반계 고교에서 상위권에 들 수 있는 실력을 가진 학생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다. 불과 0.1점 차이로 합격과 불합격의 명암이 갈리는 대학입시에서 내신이 불리하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요즘처럼 수능의 변별력이 낮아진 상황에선 내신이 외고 지원을 꺼리게 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외고 설립 초기의 대학입시에서는 외고생에게 특수목적고 학생이라는 이유로 비교내신제를 적용했다. 외고생의 경우 일반고교생처럼 고교 재학시 석차에 따른 상대평가 내신을 적용하지 않고 수능에서 얻은 점수대별로 등급을 달리하는 평균 내신성적을 적용한 것. 이 때문에 외고는 교육여건이 뛰어난 것은 물론 내신까지 유리해져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특수목적고 학생에게 비교내신제를 적용하는 것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이 제도는 폐지됐고 이에 따라 특목고 학생들은 커다란 불이익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등교거부와 항의시위가 잇따르는가 하면 자퇴하는 학생들도 늘어났다. 차라리 외고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치러 내신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매년 7월에 실시되는 검정고시에 응시하려면 적어도 시험 6개월 전에 학교를 떠나야 한다. 그래서 외고와 과학고 2학년 학생의 12월은 자퇴서를 앞에 놓고 망설이기를 거듭하는 시기가 된다. 한영외고의 경우 97년에 비교내신제가 폐지되면서 100명이었던 일본어반 학생들이 졸업 때는 60명으로 줄었다. 서울의 6개 외고 입시 경쟁률도 97학년도의 4.60대 1에서 98학년도에는 1.79대 1로 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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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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