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거를 수집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부 지시로 최교수를 심사했다”
● “최교수를 中情으로 데려온 이는 中情 감찰실에 있던 최교수의 동생”
● “영장 없이 최교수를 연행하고 가택을 수색했다.”
● “최교수는 두 번 평양에 다녀왔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증거는 확보하지 못한 채 사고가 일어났다”
● “천지신명에 맹세코 재우지 않은 것 외에는 최교수를 고문한 적이 없다”
● “최교수는 ‘야식 먹은 것이 좋지 않다. 토하고 싶다’며 화장실에 갔다. 그가 구토하는 사이 비위가 상한 김○○ 직원은 화장실 밖으로 나와 있었는데…”
● “최교수가 투신한 현장에는 中情 수사관 외에도 경비원이 있었다”
● “최교수 시신은 계단을 둘러싼 철책에 부딪쳐 왼쪽으로 4∼5m 튕겨 나갔다”
● “최교수를 고문치사했다고 믿는다면 나와 김○○ 직원을 대질시켜 달라”
● “김대통령도 군사정권 때 누명을 쓰고 법정에 서지 않았소. 지금 내가 바로 그런 상태요”
● “국민 혈세로 움직이는 진상규명위는 선입관으로 나를 모함하고 있다” 》

75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정정한 차씨는 “사람을 모함해도 이렇게 모함할 수는 없다. 최교수와 유가족에게만 인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인권이 있다”며 상당히 분개했다. 신동아는 차씨의 항의에 대한 대처 방안을 찾느라 고심했다. 그러다 차씨가 단 한번도 언론과 인터뷰한 사실이 없다는 데 주목해, “그렇다면 차선생이 아는 최교수 의문사 부분을 공개해달라. 정식으로 인터뷰하자”고 제의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신건(辛建) 국정원장에 대해서도 할말을 해야겠다”며 목소리를 높이던 차씨는, 이 제의를 수용했다. 진상규명위에 닷새간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는 차씨는 인터뷰에 앞서 “기자 양반. 인터뷰 전에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최교수 사건 주무 심문관으로서 신변관리 소홀로 귀중한 생명을 잃게 한 데 대해 인간으로서, 유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길 없습니다. 그리고 부(중앙정보부)의 명예를 실추시킨 데 대해서도 그저 황송할 따름입니다”라고 밝혔다. 편의상 차씨가 최교수를 남산분청사 지하조사실에서 조사한 것을 1부, 7층 VIP 조사실에서 조사한 것을 2부로 나눠 정리한다.
당시 중정 청사는 이문동과 남산에 나눠져 있었다. 대부분의 중정 사무실은 이문동에 있었으므로 이문동 청사는 본청사, 남산 청사는 분청사로 불렀다. 분청사에는 대공수사국 등이 있었고 부장 사무실은 본청사와 분청사 양쪽에 있었다. 최교수의 프라이버시를 직접적으로 해칠 수 있는 부분은 삭제하거나 표현을 완화했음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