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대학들은 평준화되어 있어 우리와 대조적이며, 서열이 느슨한 미국과도 차이가 있다. 독일 고교생들은 내신성적과 아비투어(Abitur) 성적으로 대학진학 자격을 얻는다. 아비투어는 주어진 지문을 나름대로 해석해 논술 형태의 글을 쓰는 졸업시험으로 과목당 3~4시간이 걸린다. 대학이 평준화되어 있으므로 일단 진학 자격을 얻은 학생들은 대학이나 전공을 선택할 때 경쟁할 필요가 없다.
독일의 경제와 사회체제가 그렇듯이 교육제도도 효율성보다는 상대적으로 평등을 강조한다. 그러나 미국 대학과 마찬가지로 독일 대학들도 대학별로 어떤 전공이 강하다든지, 어떤 학파나 학풍을 가지고 있다든지 하는 특성을 유지한다. 가령 마인츠대학은 칸트(I. Kant) 철학 연구에 중점을 두며, 브레멘대학은 경제학에서 더 폭넓은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출신 대학보다 어떤 교수 밑에서 공부했냐가 중요하다. 미국처럼 교수-전공-단과대학으로의 상향적인 평가가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독일에는 대학 서열이 없으므로 특정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서 특권을 부여받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처럼 개별 교수의 연구와 학생의 지식습득 정도에 대한 평가는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에서도 졸업장은 중요하지 않으며, 학문적 목적 이외의 파벌은 형성되지 않는다. 다만 특정 대학 졸업생들 사이의 인연은 돈독한 편인데, 그것도 학창시절을 함께 보냈다는 사적인 관계로 끝난다.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한 K박사는 “대학이 평준화되어 있기 때문에 독일 학생들은 자신의 학문적 관심에 따라 이 대학 저 대학을 옮겨다니면서 지식을 얻는다. 그러므로 학문적 경쟁은 종합대학이 아니라 개인의 차원에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이런 풍토이기 때문에 독일이 자랑하는 하버마스(J. Habermas) 같은 대학자가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독일 사례에서 종합대학 차원의 경쟁이 없어도, 교수나 학생끼리 얼마든지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대학이 평준화되면 교수나 학생의 실력이 떨어질 거라는 일부 한국 지식인들의 목소리는 기우인 셈이다.
프랑스에는 대학수준의 교육기관이 일반대학과 고등전문대학(그랑제콜, Grands e´coles)으로 이원화되어 있다. 대학에 들어가려면 대학진학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baccalaure´at)’에 통과해야 한다. 이 시험은 우리의 수능시험과 달리 주입식 교육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수준이 높다. 그렇지만 고교 졸업자 중 우수한 학생들은 일반대학으로 진학하지 않고 예비학교에서 준비한 다음 고등전문대학에 입학한다.
그랑제콜은 고등사범학교, 고등행정학교, 고등토목학교 등으로 구성되어 교육·행정·토목 등 사회 각 부문에서 지도자로 성장할 엘리트를 양성한다. 다만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그랑제콜 출신이라도 일반대학을 거쳐야 한다. 일반대학과 그랑제콜 출신 사이에는 거의 경쟁이 존재하지 않으며, 주로 각 부류 내에서 경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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