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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으로 바위치기…그러나 진실은 살아 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680일의 명암

계란으로 바위치기…그러나 진실은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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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바로세우기’ ‘옛 정권하의 과오를 바로잡고 새로 태어나기’라는 목표를 가진 사상 초유의 반관반민 조직은 이렇게 해서 태어났다. 민주화운동에 대한 신념과 전문적 수사기법, 이 두 가지 요소를 함께 버무려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것이 당초 이 생소한 조직이 바라는 바였다.

그러나 의문사 피해자들의 친구로, 형으로, 아니면 소위 ‘운동’을 같이했던 사람들로 이루어진 민간 조사관들과, 어쩌면 그들이 찾아 헤맨 원흉이 있을지 모를 기관에서 온 파견 조사관들이 조화를 이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것은 분명 의미 있었지만 상처도 큰 모험이었다.

한 사건에 대해 6개월, 한차례에 걸쳐 3개월 이내에서 조사기간 연장 가능. 당초 특별법에 명시돼 있던 조사기간이었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수십년 전에 발생한 사건을 1년도 안되는 시간 동안 조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유가족들의 애는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조사관들의 법적 권한 역시 미약하기 짝이 없다보니 유가족의 입장에서는 하루하루가 금쪽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상황은 마음처럼 전개되지 않았다. 조사시한은 어렵사리 3회에 걸쳐 3개월 내에서 연기할 수 있도록 법개정이 이뤄졌지만 강제력 있는 권한은 여전히 갖지 못했다. 따라서 ‘1순위’인 몇몇 유명인사와 관련된 사건을 제외하고는 시간이 흐르면서도 별다른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고, 유가족들은 민간 조사관과 위원회에 답답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대책마련을 호소했다.

그러나 초기 의문사위는 이러한 유가족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다. 유가족들이 요구한 사건조사 중간결과 발표에 대해서도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응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회 입장에서는 미진한 조사상황을 일일이 공개할 수 없는 까닭이었겠지만, 유가족들 사이에서는 ‘의문사위가 대충대충 하다가 제대로 진실규명도 하지 않고 끝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민간 전문위원이나 민간 출신 위원회 간부들도 비슷한 입장이었다.



담당 과장의 사표 소동

이런 기류 속에서 위원회가 출범 1년을 갓 넘기자 ‘민 대 관’ 사이의 갈등이 한 사건을 계기로 폭발하게 됐고, 이는 언론보도를 통해 외부에 알려졌다. 최근 전직 대통령의 관련성이 드러난 ‘녹화사업’ 관련 의문사에 대해 담당 과장과 민간 조사관들이 ‘강제징집된 운동권 학생들의 프락치 활용의혹과 당시 사회·정치상황 전반을 포함해 철저히 조사한다’는 방침을 밝히자 기관파견 조사관 일부가 ‘사망 전후의 행적과 사인만 밝히면 되지 않느냐’며 사실상 항명한 사건이었다.

결국 담당 과장은 “현 체제에서는 진정한 진상규명에 한계가 있다”며 사표를 내던졌다. 유가족이나 민간 조사관들은 단순히 사인을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죽음이 발생한 시대적·사회적 배경까지 드러내기를 원했지만, 위원회 활동이 끝나면 자신의 친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기관파견 조사관들은 이에 소극적이거나 반대했다. 어쩌면 이는 반관반민을 시도할 때부터 예견된 ‘구조적 필연’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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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권 sout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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