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일 이 부품이 나사나 못 혹은 클립 따위가 아니라 ‘형사 가제트 만능팔’처럼 쓸모에 따라 다양한 변신이 가능하다면 어떨까. 조직이 개인을 책임져 주지 않는 시대, 조직이 개인을 위해 약간의 희생도 할 수 없는 이 시대에 한 ‘개인’으로 살아가려면 조직 밖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멀티형 자질을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명장’ 거스 히딩크가 선수들에게 냄새만 쫓아가는 개처럼 맡겨진 일만 충실하게 하지 말고, 전체를 읽고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설정해 창의적으로 움직이는 ‘멀티플레이어’를 주문했듯이 말이다.
동시대를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멀티형 인간’의 전형적인 인물들을 만나 그들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이승일] ”시간은 만들면 생긴다”

그의 전문 분야는 마케팅이다. 그가 거쳐온 회사는 생활용품전문업체, 은행, 음료회사. 소독약회사, 제약회사, 온라인회사 등 다양하다. 야후에 오기 전 그가 근무한 곳은 홍콩에 있는 아시아온라인사. 아세안 및 인도지역 사장과 전체 총괄 부사장을 맡았었다. 이와 같은 고속성장은, 그가 글로벌한 경험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시간 관리를 하면서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매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성장 과정부터 남달랐다. 경북대 마케팅 교수였던 아버지가 1969년 유엔 국제식량기구로 옮기면서 아버지를 따라 네팔로 갔다. 초등학교 3학년 때다.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다시 아버지를 따라 태국 방콕으로 옮겨 중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는 홀로 미국에서 다녔다. 그렇게 외국 생활을 하면서도 한국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 방학이 시작되는 6월초쯤 한국에 와서 7월 중순까지 머리 깎고 교복 입고 한 달 반 가량 학교를 다니곤 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나서는 충암고등학교 2학년 2학기에 편입해 설악산으로 수학여행도 다녀왔다. 그 이듬해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그의 인생 행로를 잡아준 사람은 아버지였다. 중학 시절, 매일 저녁 숙제를 끝내고 나면 한 시간 정도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부터 마케팅에 대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졌고 기업 경영인을 목표로 로드맵(경력지도)을 작성했다.
일도, 공부도, 노는 것도 그는 국제 감각을 키울 수 있는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그것만이 그를 키운 것은 아니었다. 그는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 겨울에는 신문 배달을 했고 여름엔 하루종일 바닷가에서 조개를 잡았다. 연세대 재학시절 방학 때면 공사판에서 등짐을 졌다. 미국 대학원 유학시절에는 학내에서 청소부 노릇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성장과정을 알 수 있는 일화 하나. 한번은 청소부 아르바이트 6개월 동안 1000달러를 모아 10년 된 중고차를 산 적이 있다. 그 얘기를 들은 아버지가 너무 고생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면서 돈을 보내주었다. 그러나 그는 그 돈을 돌려보냈다. 부모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3가지 부업을 병행해야 했다. 컴퓨터 컨설턴트와 대학원 기술사 사감 그리고 조교까지. 다행히 컴퓨터 컨설턴트는 학내에서 보수가 가장 좋았다. 그렇다고 공부와 일에만 매달린 것은 아니다. 목요일 저녁이면 친구들과 어울려 포커도 치고 볼링도 즐겼다.
그는 공 가지고 하는 운동은 거의 다 할 줄 안다. 농구, 야구, 미식축구, 배구는 수준급이다. 권투, 수구, 체조도 했다. 학부 공부할 때도 128학점을 이수하면 되는데 170학점을 땄다. 철학, 심리학, 문학 등 졸업과 상관없는 학점도 땄다. 그의 하루 취침시간은 4~5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