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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달린다

시각장애 마라토너 이용술씨의 도전 인생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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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걷기도 힘든 시각장애인이 마라톤을 한다. 남들이 한번 완주하기도 힘든 마라톤 풀 코스를 49회나 완주한 철각(鐵脚) 이용술씨가 그 주인공.
  • 달리고 또 달리면서 마음의 상처를 잊어버리고 정신의 쾌락을 얻는다는 이씨의 ‘마라톤 미학’과 기구한 인생 스토리.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달린다

‘제 2회 남산 단풍 하프마라톤’ 대회에 참석한 이용술씨(왼쪽)와 도우미.

남산의 단풍이 유달리 곱던 11월10일. 조금 일찍 도착한 이용술씨(41)가 운동화 끈을 조인다. 오전 9시30분 ‘제2회 남산 단풍 하프마라톤’ 대회가 열리기 직전이다. 잠시 뒤 이씨가 부회장으로 있는 ‘시각장애인 마라톤클럽’ 회원들이 걸음을 더듬으며 하나 둘 모여든다. 목소리를 듣고 다가와 반갑게 손을 부여잡는다. 그러고는 다들 마라톤 준비에 바삐 움직인다.

잠시 짐을 맡기러 저만치 이동했던 이씨, 방향을 잃었는지 혼자 우두커니 서있다. 이내 익숙한 목소리를 찾아냈는지 몸을 돌려 곧장 걸어온다. 청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들은 목소리로 서로를 느끼고 알아낸다. 이렇게 아슬아슬한 이들이 어떻게 42.195km를 뛴다는 것일까.

단상에서는 몸 풀기 체조를 유도하는 구령소리가 들려온다. “다리 운동!”하고 외치자 모두들 다리 굽히기를 하는데 이씨만 양다리를 벌리고 서 있다. 그러면서 주위에 묻는다. “이렇게 하는 거 맞아?” 그의 등판에는 시각장애인이라고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다. 함께 달리던 마라토너들은 흘끗 쳐다보더니 이내 의아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한치 앞도 내딛기 힘든 이가 마라톤을 한다는 것은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씨는 하프코스(21km)를 280회 이상, 풀코스(42.195km)를 49회, 울트라마라톤(100km)의 하프코스격인 63.5km를 3회나 완주한 베스트 마라토너다. 다들 독하다고, 혹은 대단한 일을 했다고 말하지만 그는 기록이나 완주가 목표가 아니다. 그저 길이 난 곳으로 쉼 없이 달려나갈 뿐이다. 그는 이미 마라톤에 중독된 사람이다. 대부분의 중독이 고통과 쾌감을 동반한다면 이씨의 마라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가 마라톤으로 인해 얻는 쾌감과 고통의 정도는 누구와도 비할 수 없다.

눈과 가슴 연결하는 ‘사랑의 끈’



처음에는 앞서가는 사람의 발소리를 듣고 뛰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길을 잃기도 했고 이유 없이 쫓기는 사람이 달리기를 멈추고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불쑥 생각해낸 것이 도우미 제도. 외국에서는 플레이메이커라고 해서 널리 실행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선 시도된 일조차 없었다.

그는 당장 실행에 옮겼고 지금은 널리 알려져 인터넷에 도우미 3명을 구한다는 글을 올리면 40여명이 지원할 정도. 이렇게 자신으로 인해 장애인들이 뛸 수 있는 환경이 점점 나아지는 걸 보면서 그는 사명감을 느낀다.

대회 때마다 도우미는 다르다. 많은 이가 도우미를 자청했는데, 이로 인해 그에겐 절친한 친구들이 생겼다. 둘이 함께 달리는 것은 혼자 달리는 것 보다 몇 배나 힘이 들기 마련. 그러기에 마음과 호흡이 맞는 도우미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이씨의 도우미는 동갑내기 안성배씨. 남산에서 달리며 만난 사이인데, 지금은 마라톤을 넘어 절친한 친구사이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꼭 잡고 걷는 그들이 더욱 친밀해 보인다. 말뿐 아니라 느낌까지 소통하는 듯. 그의 눈이 되어주기 위해 그들은 마음부터 연결하는 듯했다.

출발점에 서자 시각장애인들이 모두 제 짝을 찾아 손을 잡는다. 그리고 이씨가 개발한 ‘사랑의 끈’으로 서로를 연결한다. 처음에는 보통 줄을 잡고 뛰었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50cm의 탄력 있는 끈으로 바꿨고, 양쪽을 둥글게 해서 손목에 끼울 수 있게 만들었다. 뛰는 게 훨씬 수월해졌다. 그는 항상 시각장애인들의 마라톤을 위해 더 편리한 것을 생각한다. 비장애인이라면 사소한 불편에 대해 불평을 말하면 되지만 장애인은 자신의 못남을 탓해야 하는 큰 좌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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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 영 시인·자유기고가 jeffbeck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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