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감 넘치는 광고 카피처럼 동양대학교는 젊은 대학이다. 1994년에 첫 신입생들이 학교에 발을 디뎠으니 올해로 딱 10년이 됐다. 이 대학 최성해(崔成海) 총장의 나이는 50세. 일반 교수들의 나이도 대부분 30~40대로, 평균연령이 30대 후반이다. 그러나 ‘젊은 대학’이라는 말이 미숙한 대학, 혹은 아직도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대학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개교 초기부터 ‘컴퓨터 분야 특성화 대학’이라는 목표를 분명히 했다. 동양대가 개교 10주년을 맞는다고 하면 교육계 종사자들은 오히려 “동양대의 역사가 그것밖에 안 됐나”라고 물을 정도이다. 그만큼 컴퓨터와 연관된 학문분야의 선두에 섬으로써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성화’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1995년 동양대는 국내 대학으로는 최초로 ‘컴퓨터 분야 특성화 정책’을 발표하였다. “동양의 MIT가 되겠다”고 선포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허황된 꿈이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이 대학은 종합정보시스템·학술정보시스템을 구축하고, 당시 웬만한 대학은 재원(財源) 부족으로 엄두도 내지 못했던 ‘재학생 1인당 1대의 교육용 PC 확보’ 목표를 개교 2년 만에 이루어냈다. 게다가 다른 대학들이 전산실에조차 인터넷망을 완벽하게 구축하지 못하던 때에 재학생의 대부분이 생활하는 기숙사에 유무선 인터넷망을 완벽하게 갖추어 국내 최초의 ‘인터넷 기숙사’를 선보였다.
이후 동양대는 교육인적자원부의 가상대학 프로그램 실험대학, 한국 사이버대학의 거점 대학으로 지정되는 등 일취월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컴퓨터 분야 특성화 대학’이라는 목표가 현실에서 하나 둘 구체화되면서 동양대는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실시한 대학종합평가 교육 우수·시설 설비분야 최우수 대학교로 선정되었고(2000년), 정보통신부로부터 IT 관련학과 장비지원 대학교로 지정되었으며(2001~02년), 교육인적자원부 선정 교육개혁추진 최우수 대학교에 3년 연속(2000~02년) 꼽히는 개가를 올렸다.
이밖에도 교육인적자원부 선정 지방대학육성 우수 대학교(2001년), 정보통신부 선정 비IT학과 교과과정개편 지원 대학교(2002년), 교육자원부 선정 특성화 우수 대학교(2003년) 등 동양대학교가 최근 이룩한 성과는 10년차 대학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특히 1998년 첫 졸업생을 배출한 이후 지난 6년 동안 매해 85% 이상의 순수취업률을 기록함으로써 전국 최고수준의 취업률을 기록하고 있다.
2000년부터 동양대는 인성과 전문성을 겸비한 ‘디지털 선비’를 육성한다는 목표 아래 ‘선비21프로젝트’를 추진중이다. 최근에는 ‘공무원사관학교’로 거듭나겠다고 발표해 대학가의 관심을 끌고 있다.
물과 숲이 어우러진 캠퍼스
동양대는 중앙고속도로 풍기 톨게이트에서 나와 소수서원(紹修書院) 방면으로 10분 정도 달리다 서원 조금 못미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주소지는 경북 영주시 풍기읍 교촌동 1번지. ‘교촌(校村)’이라는 지명이 암시하듯 시골이지만 이 마을에는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까지 모든 단계의 교육기관이 형제처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경북 영주를 흔히 ‘선비의 고장’이라 부른다.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 선생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창건하였다가,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에 의해 최초의 사액서원이 된 소수서원이 자리잡고 있는 영주시는 그 지형을 보면 선현들이 왜 이곳에 학문의 요람을 만들 생각을 했는지 알 만하다.
소백산맥이 서남쪽으로 뻗어 고을을 우람하고도 따뜻하게 감싸고 있는 터전에, 남원천, 내성천, 서천이 휘감고 돌아 학(鶴)이라도 몇 마리 뛰어놀면 곧장 시조 한 수 읊을 수 있는 듯한 청명한 분위기를 풍긴다. 흥선대원군이 전국의 서원을 철폐할 때에도 명현거유(明賢巨儒)들이 숱하게 배출된 소수서원만은 남겨두었다. 바로 그 자리에 지금은 동양대학교가 둥지를 틀고 있다.